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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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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바탄'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4.09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26] 이스탄불을 헤매다26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옥수수와 군밤을 파는 성소피아 성당 앞의 노점상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예레바탄

예레바탄 입구

지하저수지 예레바탄에서

성소피아 성당에서 나오니 길에는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런데 리어카에서 파는 군것질거리가 예사롭지 않다. 군밤과 구운 옥수수. 이건 코리아 콘셉트인데? 이 나라 사람들도 저런 걸 좋아하나 보다.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건너 예레바탄 지하저수지로 향한다. 소위 지하궁전이라고 일컫는, 이스탄불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소다. Yerebatan에서 Yere땅에라는 뜻이고 Batan빠지다라는 뜻이란다. 결국 땅 속에 빠진 궁전이란 말인데 지하저수지 치고는 제법 호사스런 이름을 얻은 셈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가 물을 저장하기 위해 532년에 건설했다고 한다. 성소피아 성당을 지어 놓고 ! 솔로몬이여~” 어쩌고 하며 감격을 금치 못했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지하 저수지는 궁전이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길이가 140m, 70m, 높이 9m8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적에게 포위될 경우를 대비하여 물 비축용으로 지었다는데, 당시 도시 규모와 인구를 짐작할 수 있다. 물은 도시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베오그라드 숲에서 끌어왔다고 한다. 이 저수지에는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병사들이 열병하듯 서 있는데, 기둥마다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재미있는 건 기둥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예레바탄의 기둥들.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천형처럼 거꾸로 선 메두사의 머리

맨 오른쪽 '수공'이란 글씨가 보이는지.

성소피아 성당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 동네는 무엇을 지을 때마다 석재를 고대 신전에서 뽑아다 쓴 모양이다. 그러니 출신지에 따라 생김새가 모두 다를 수밖에. 이것도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 해야 하나? 바깥세상은 땀을 흘릴 만큼 더운데 안으로 들어서니 으스스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원하다. 조명을 받은 바닥에는 물고기들이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지하세계에서 일평생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조금만 나가면 태양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이 곳의 진짜 명물은 메두사의 머리다. 맨 안쪽으로 가면 돌로 조각한 2개의 메두사 머리를 만날 수 있는데 하나는 뺨을 바닥에 댄 채로, 또 하나는 아예 머리를 땅 쪽에 박은 채 서 있다. 저들은 왜 저런 모습으로 저 곳에 있는 걸까. 1984년 보수공사를 할 때 발견됐다는데, 지금도 왜 그곳에 그 모습으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듯, 마법에 걸린 메두사의 형상을 보는 사람은 돌로 변하는 저주가 내려진다는 이야기만 그럴 듯하게 뒷받침해줄 뿐이다. 되짚어 나오다보니 입구에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한다. CD와 엽서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판매대에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다. 대여섯 개 언어를 따라가다 보니 뜻밖에 한글도 있다. ‘수공손으로 직접 그렸다는 것이겠지. 우와! 심봤다. 그렇다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중 한국인들이 5~6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이거 좋은 일인가?

점심을 먹은 카페거리. 오른쪽 조금 흔들린 여인들이 바로 헤매던 동포

이스탄불의 거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지하 저수지에서 나오니 더 이상 걷기 어려울 만큼 허기가 진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나온 게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가 이스탄불에 가면 꼭 들러보라고 추천해 준 음식점이 생각난다. “성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건너자마자 만나는 골목을 한참 들어가면.” 그렇다면 이 근처인데. 문제는 한참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음식점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골목에는 카페들이 주르르 늘어서 있는데 그 집이 그 집 같다. 에라, 모르겠다. 입구 쪽에 있는 카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아무리 좋은 집이 있다고 해도 찾아갈 힘이 없을 만큼 배가 고프다. 케밥과 맥주를 한 잔을 주문해 허겁지겁 점심을 때운다. 케밥보다는 시원한 맥주가 입에 더 반갑다. 서울 가면 이놈의 맥주 마르고 닳도록 마셔야지. 맥주회사들 잘 들어. 나 귀국하기 전에 여유분 좀 만들어놔야 할 거야. 입에 케밥을 구겨넣고 맥주를 들이키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왔다 갔다 한다.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어느 집이 마땅한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해서 느닷없이 이 집 음식 먹을 만 해요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온다. 친구들끼리 터키 중부를 돌고 와서 마지막으로 이스탄불을 탐색하는 중이란다. “혹시 두 분은 안 싸웠어요?” 함께 온 사람과 헤어지고 혼자 유령마을 카야쾨이를 찾아왔던 아가씨가 생각나서 물었더니 싸울 일이 있어야지요.” 하며 까르르 웃는다. 그래, 싸울 일이 뭐 있을까. 좋은 경험 하자고 떠난 여행, 힘들고 피곤할수록 양보하고 배려하면 될 것을.

톱카프 궁전의 문들

그녀들과 헤어져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엔 톱카프 궁전. 내가 가고 싶은 모든 곳이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다. 트램이나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면 또 얼마나 번거로울까. 트램이 천천히 오가는 길을 따라 톱카프 궁전으로 간다. 이곳은 한 때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영토로 거느리며 대제국을 형성했던 오스만의 황제들이 살던 궁전이다. 1453년 우여곡절(배를 끌고 언덕을 넘는 일이 벌어졌다) 끝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탄 메흐메트 2. 남이 지어놓은 궁전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새 궁전을 짓기로 한다. 그 장소가 바로 세 대륙을 지배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물론 마르마라해, 보스포러스 해협, 골든혼으로 둘러싸여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이 자리였다. 1472년 착공해서 1478년에 준공했다. 톱은 대포라는 뜻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그저 궁전이라고 불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대포를 설치했기 때문에 이름이 톱카프로 굳어졌다. 70의 넓은 부지에 자리한 이 궁전은 투르크 족 전통의 흔적이 배어 있다. 마치 유목민들이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게르를 치는 것처럼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건물을 배치하는 형식으로 지었다. 많을 땐 이곳에 5000명 넘게 거주했다고 한다. 궁전은 세 개의 문과 그에 딸린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인 황제의 문을 지나서 만나는 곳이 제1정원. 이곳은 개방 공간이다.

톱카프 궁전 내부

톱카프 궁전을 거닐다

궁전을 수비하는 예니체리라 불리는 근위대가 주둔했기 때문에 예니체리 마당이라고도 부른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정원에는 잘 손질된 녹색 잔디가 깔려 있다. 잔디 위에 큰 그늘을 내리고 있는 플라타너스에서 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 이젠 이곳에도 어쩔 수 없이 가을이 오려나보다. 그래, 명색이 10월인데. 그러보니 나뭇잎들도 조금씩 누런 색깔을 띠고 있다. 내 나라에는 지금쯤 가을이 깊겠다. 길지도 않은 여행에 벌써 향수병이 들었나? 잡념을 털어버리려 얼른 두 번째 문인 평안의 문을 지난다. 이곳에서 제2 정원을 만나는데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궁전의 시작이다. 이 정원에서는 출정식, 공주의 결혼식 등 각종 국가행사가 치러졌다고 한다. 또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한 디반 건물과 왕실 주방건물도 있었다. 왼쪽으로는 하렘 입구가 있다. 술탄의 어머니, 부인 등 여자들만 생활하는 하렘은 아랍어 하림이 어원으로 금지된 곳이라는 뜻이다. , 황제 이외의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이 하렘에는 약 250개의 방이 있다. 한번 하렘에 들어간 여자는 죽어서나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하니 황제의 눈에 띄어 하룻밤 함께 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으리라. 희망치고는 참 비참한 희망이다. 오스만 제국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슐레이만 시절에는 하렘에 머무는 여인이 1000여 명에 이르렀고 황제가 마음에 드는 여인을 찾아가는 비밀 통로도 있었다고 한다.

궁전내부의 이곳 저곳. 맨 아래 사진 수도꼭지는 황제가 밀담을 할 때 보안을 위해 틀어놓았다지.

다시 걸음을 옮겨 지복의 문을 지나니 제3 정원이 나온다. 이곳에는 황제 알현실이 있다. 오스만의 황제들은 신비감을 유지하기 위해 공식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외교사절도 이 방에서 만났다고 한다. 오른쪽 건물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다. 호박만한 금덩이라도 전시돼 있나? 얼른 쫓아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가 바로 보물 전시실이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 이후 약탈을 당할 일이 없었던 터키는 각종 유물들이 잘 보존돼 있다. 세계 최대의 에머랄드로 장식된 단검, 황금 의자, 보석이 촘촘히 박힌 주전자, 86캐럴짜리 다이아몬드 등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온갖 보물들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노래를 부르고 있다. 모조품이 아니고 전부 진품이라니 그 가치가 얼마며 이만한 보물을 모을 수 있었던 황제의 권세는 대체 얼마만큼 컸던 것인지. 문제는 워낙 보석이 많으니 어지간한 건 그저 돌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든 내가 들어서면서부터 제복을 입은 경비원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발광을 시작하더니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셔터를 누르려는데, 병아리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내 팔을 잡는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셔터 소리에 보석이 경기라도 일으킨다더냐? 워낙 보석 같은 것에 흥미가 없는데다가 박절한 경비원의 눈초리가 싫어 건성으로 돌고 그냥 나온다. 3 정원을 벗어나니 제4 정원이 이어진다. 이곳은 황제와 가족들의 휴식공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보이는데 왜 이곳에 궁전을 지었을지 바로 알아차릴 만큼 전망이 좋다. 마르마라해, 보스포루스 해협이 코앞에 있다.

저렇게 바다가 코앞에 있다.

세 갈래로 나눠진 바다

난 지금 유럽에서 아시아를 건너다보고 있다. 대륙과 대륙이 이리 지척이구나. 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질곡이 있었을지. 궁전의 해안 쪽 끝에는 규율을 어긴 하렘의 여인들을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지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참 끔찍한 일이다. 자유와 희망 따위는 약에 쓰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일생을 마쳤을 여인들. 아름다운 바다가 지척인데도 죽기 위해서나 갈 수 있었다니. 이젠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누가 발목에 납덩이라도 매달아놓은 듯,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2정원으로 다시 나와서 마루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리쉼을 한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나 혼자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쓸쓸해진다. 홀로 하는 여행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우울한 기분이 들 때. 그땐 얼른 훌훌 털고 일어서야 한다. 톱카프 궁전에서 나와 그랜드바자르로 가고 싶었는데 마침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아쉬울 데가 있나. 이스탄불까지 와서 실크로드의 종착점이었다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다니. 유럽의 물산이 아시아로 전해지고 아시아에서 온 물품들이 유럽으로 넘어간 곳이 바로 그랜드바자르다. 30의 거대한 면적에 출입구만 20개가 넘고 입점한 점포가 5000개를 헤아린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이스탄불로 가기 전에 그랜드바자르를 들른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거기 들어갔다가 잘못하면 길 잃고 못나올 수도 있어요겁을 주길래 코웃음을 쳤는데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본 풍경들. 저 갈라타 다리 1층에 한 많은 고등어 케밥집이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에미뇌뉘 선착장에 이르자 해협을 오가는 유람선과 광장을 오가는 인파, 그리고 해변에서 낚시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늦여름(?)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철없는 강아지처럼 길 위를 뒹굴뒹굴 구른다. ! 옷 버린다. 그 모습이 지친 몸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을 조금 설명하고 가야할 것 같다. 이곳은 두 개의 해협과 하나의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조금 전 다녀온 톱카프 궁전이 있는 쪽, 즉 오른 쪽은 마르마라해이고 앞으로는 보스포러스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흑해로 연결된다. 그리고 저만치 갈라타 다리가 보이는 왼쪽으로는 골든혼이라는 바다의 지류가 뻗어있다. 굳이 말로 된 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해를 조금 넓히기 위해서다. 이스탄불은 이렇게 바다에 의해 크게 세 쪽으로 나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에 속한 구시가지, 그리고 역시 유럽의 신시가지, 다음이 아시아다. 지금까지 봐온 블루모스크, 성소피아 성당, 지하궁전, 톱카프 궁전 등 대부분의 이름 있는 유적은 구시가지에 있고, 구시가지에서 골든혼 위의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가 시작된다. 신시가지에서 차를 타고 보스포러스 다리를 건너야 아시아에 닿게 되는 것이다. 물론 구시가지에서 직접 배를 타고 아시아로 건너가는 방법도 있다. 무슨 도시가 이렇게 복잡한지 원. 갈라타 다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간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다리는 아래 위 모두 인파로 북적거린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질 하는 사람들. 저 아이 큰 낚시꾼 될게다.

갈라타 탑에서 본 이스탄불

다리 1층에는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저곳에서 그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판다는데. 잠시 서서 입맛을 한 번 다셔보지만 결국 그냥 지나친다. 조금 전에 밥을 먹은 것도 문제지만, 그곳을 들를 만한 시간이 없다. 조금만 여유가 있다면 고등어케밥에 맥주 한 잔 하면서 석양을 즐길 수도 있을 텐데. 다음에 올 땐 오늘의 아픔을 반드시 보상 받고 말리라. 다리 한 가운데로는 트램 철로가 있고, 양쪽 난간에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다. 남녀노소, 아니 여자는 없다. 암튼, 온갖 사람이 없이 쏟아져 나와 다리 아래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정말 물고기가 잡히는 것일까? 다가가 보니 숭어처럼 생긴 물고기들이 그릇마다 잔뜩 들어 있다. 어떤 꼬마 아이는 피라미를 닮은 작은 물고기를 장난감 삼아 갖고 놀고 있다. 너 크면 큰 낚시꾼 되겠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서 찾아갈 곳은 갈라타 탑.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다. 골목길을 따라 15분쯤 걸어올라가니 갈라타 지역의 가장 높은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 탑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굳이 이 갈라타 탑을 찾은 것은 탑 자체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이스탄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528년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항구를 지키기 위한 감시탑으로 세웠는데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파괴됐다고 한다. 그걸 갈라타 지구를 차지한 제노바 자치구가 1348년에  타워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이름으로 재건축했다. 한 때는 포로 수용수나 기상관측소로도 쓰였다니, 팔자가 드난살이로 평생을 마친 여인만큼이나 험했던 모양이다. 

갈라타 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의 풍경

탑 아래에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들 역시 이스탄불 전경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겠지. 꽁무니에 서서 한 참 지난 다음에야 입구의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11층 높이의 이 탑은 10층까지만 엘리베이터가 가고 맨 위층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10층은 전망대와 레스토랑, 나이트클럽이 들어서 있다. 발코니 난간에 서면 누구나 아! 하는 감탄사를 아끼지 못한다. 말 그대로 이스탄불 시내의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기 조금 넓은 바다가 마르마라해,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 저곳은 골든혼.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보스포러스 해협 저기 어디에서 배를 끌고 언덕을 넘어 골든혼으로 들어갔다지. 하지만 지금은 산도 언덕도 흔적조차 없다. 대신 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성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 등 조금 전에 다녀왔던 건물들도 저만치서 손을 흔든다. 우리의 남산타워처럼 최고의 전망대다. 문제는 난간이 너무 좁고 관람객은 너무 많다는 것. 줄을 서서 천천히 도는 게 아니라 먼저 온 사람 나중에 온 사람이 마구 섞여서 엉덩이를 비비고 새치기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친 몸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얼른 다시 내려온다. 갈라타 탑을 빠져나와 광장의 벤치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다. 이스탄불에서, 아니 터키에서 내 공식 일정은 끝났다. 이젠 공항으로 가야한다. 이율배반적인 감정, 허전함과 안도감이 전신을 엄습한다. 게 바로 시원섭섭하다는 건가? 그나저나 정말 여기서 끝일까?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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