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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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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장 배우 영사기 필름'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7.25 [사라져가는 것들 18] 옛날극장2
2007. 7. 25. 19:31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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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영화라는 '괴물'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가을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햇살이 쏟아져 내려 자글거리는 한낮이었다. 허름한 트럭 한대가 먼지를 피워 올리며 마을 앞 신작로를 느리게 달렸다. 잡음이 더 많은 스피커에서는, 뾰족한 여자의 목소리가 튀어 나와 온 동네를 달음질 쳤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면민 여러분… 방금 개봉된 따끈따끈한 영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로 오늘 밤 여러분을 모시고자…" 박노식, 장동휘, 허장강이 출연하는 '당대 최고'의 영화가 저녁에 상영될 예정이니 많이 왕림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영화를 보지 못하면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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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거란 듯, 약간의 엄포까지 묻어 있었다. 트럭이 마을 앞을  지나간 순간부터 동네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맨 먼저, 열다섯의 나이에 가출을 단행한 뒤 서울 물 좀 마시고 귀향한 상필이형이 마을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는 스피커 속의 여자보다 더 말이 많았다. 마치 박노식, 장동휘와 호형호제라도 하고 지낸 양 침을 튀겼다. 아이들은 괜히 신이 나서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영화라는 것을 처음 보거나 한 두 번 본 게 고작인 어른들까지 저녁을 일찌감치 챙겨먹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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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먼지로 꾀죄죄해진 채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결연한 태도로 어른들을 졸랐다. 영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동네 아이들이 단체로 웃골 방죽에 뛰어들기라도 할 듯 비장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의 성화가 먹힌 건지 어른들의 인심이 후해진 건지, 그 날 꽤 많은 아이들이 천막극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천막은 벼를 벤 논 한 가운데에 세워졌다. 미처 물기가 다 빠지지 않은 바닥은 축축했다.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촤르르 촤르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말로만 들어봤던 영화라는 건, 생각보다 더 신기한 물건이었다. 하얀 천(스크린) 안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말을 하는…. 그 뿐인가. 살아서 주먹질을 해대고 펄펄 날기도 했다. 스크린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목소리보다는 잡음이 더 극성을 떨었지만 신기함을 반감시키지는 못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악당들을 물리칠 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이의 영화와 관련한 첫 경험은 그렇게 얼떨결에 왔다가 갔다. 그리고 아이가 정말 영화관이란 곳을 처음 가본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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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들어가 첫 시험이 끝나기 전 날 종례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무엇인가 썼다. '내일 영화관람'. 처음엔 무슨 소린가 어리둥절했지만, 환호성이 터지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읍내출신 아이들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골출신 아이들은 연신 탄성을 내 뱉었다. 쿼바디스였던가 벤허였던가…. 장대한 스케일의 서양영화였다. 영화는 가설극장에서 본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웅장했다. 대형(?)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는 서양배우들을 보면서 아이는 넋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이에게 '진짜영화'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다닐 때는 얌전하게 학교에서 보내주는 영화만 봤지만, 고등학교 때는 '몰래 보는 영화'에 빠져들기도 했다. 돈만 생기면 친구들을 꼬여내서 극장을 찾고는 했다. 들킬세라 2층 영사실 옆 구석자리에 앉아 숨죽이고 영화를 봤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는, 오종종한 TV의 화면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그렇게 극장을 드나들다가 결국 선생님에게 걸려 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엉덩이에 맞는 '빠따' 몇 대 정도는 영화가 품은 매력을 하루아침에 포기시킬 만큼 위력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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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들은 활을 떠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한 아이가 몰래 숨어 영화를 보던 그런 모습의 극장은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부터 '이것저것 틀어주던' 재재개봉관이란 것이 사라지더니 재개봉관도 속속 자취를 감추고, 영원히 남을 것 같았던 개봉관마저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졌다. 어느 곳은 새 단장을 해 음식점이 되기도 하고, 또 어느 곳은 나이트클럽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체인점식' 극장이 채워나가고 있다. 세월 따라 극장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우선 극장건물 머리에 붙어있던, 페인트로 그린 간판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매끈하게 잘 빠진 실사포스터가 그 자리를 메웠다. 전에는 극장마다 간판을 전문으로 그리는 전속 '간판쟁이'가 있었다. '뼁끼(페인트)통'을 들고 뒤통수를 맞아가며 그림을 배우기도 했지만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한 사람도 있었다. 극장 한쪽 구석에는 허름한 작업실이 있게 마련이었다. 베니어판이나 온갖 도구 등 잡동사니들이 동거하는 그 안에서 '간판쟁이'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상을 꽃처럼 피워냈다. 그들의 그림에 따라 그 극장의 품격이 정해지기도 했다. 신성일이니 김지미니 얼굴을 실감나게 잘 그려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간판쟁이'는 그 극장의 보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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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팔고 사는 풍경도 세월 따라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매표구에 돈을 넣으면 표가 나왔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뒤 기계(자동발권기)가 주는 표를 받거나 창구에서 예매번호와 바꾼다. 물론 매표소에서 직접 표를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바로 영화를 보기도 힘들뿐더러 꽁무니에 서 있노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눈총이라도 받을 것 같다. 입구에 앉아 약간은 위압적인 눈길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기도' 아저씨도 보기 어려워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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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둑영화' 한번 보려다 기도에게 멱살을 잡혀 내동댕이쳐지는 껄렁쇠도 있었다. 반대로 기도를 잘 알면 공짜로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극장 안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언제나 약간씩 지린내를 풍기던 극장 안은 불을 켜놔도 음침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찾아오는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야말로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상영시간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으면 쏟아지던 휘파람과 고함소리. 아마 영사기사는 그 순간 뭔가 문제가 생긴 필름과 씨름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느 순간 기사가 필름이 담긴 양철통을 영사기에 걸면 잠시 후 챠르르~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극장 안은 조용해지고, 한줄기 빛이 부유하는 먼지 사이를 달려 스크린에 쏘아진다. 그리고 그 빛들이 그려내던 그림은  이루어지는 것 하나도 없는 현실과 달리 늘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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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얼마나 많이 돌렸는지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중간중간 끊어진 곳을 이어놓은 까닭에 내용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건너뛰기 일쑤였다. 아직도 극장에 필름은 건재하지만 그 때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더 아쉬운 건 그나마도 필름의 시대가 그리 길게 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영화에도 디지털 바람이 거세게 불 테니…. 영화를 상영하는 중간에 필름이 끊겨서 극장 안이 컴컴해지면 휘파람이 난무하고, 돈 거슬러달라는 고함이 천장을 찔렀다. 그래도 거슬러 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 틈에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수작을 걸다 뺨을 맞고 눈을 부라리는 설익은 건달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개봉한 영화가 시골 읍내까지 내려오려면 몇 달씩 걸리기 일쑤였다. 요즘이야 수십 개의 카피본이 전국에 동시에 걸리는 세상이니 실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건 군것질거리를 파는 꼬마였다. 네모진 모판에 끈을 매어 목에 걸고 껌이니 과자니 팔던 아이. 극장측의 배려로 장사가 가능했겠지만, 컴컴한 그 곳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된 그 아이도 어느 날 휘황찬란한 현대식 극장을 찾을 것이다. 잘 꾸며진 매점에서 잘 튀겨진 팝콘과 콜라를 사서 아이에게 안기며 슬쩍 천장에 시선 한번 줄 것이다. 뭐, 눈물을 흘릴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영화처럼 명멸하며 지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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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보고 들은 것만 적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즐기긴 하지만 마니아급은 못되거든요. 혹시 사실관계와 다른,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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