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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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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목판'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1.05 [사라져가는 것들 92] 엿장수10
2009. 1. 5. 09:46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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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그를 ‘팔도’라고 불렀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이 그랬는지 팔도를 누비고 다닌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는지는 확실치 않다. 철컥 철컥 철철철~ 엿가위소리가 동구 밖에서 들려오면 어른들이 “팔도가 오는구먼” 하는지라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팔도아저씨라 부르곤 했다. 팔도아저씨는 엿장수였다. 언짢은 일이 생겨도 얼굴을 떠나지 않는 웃음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모자라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가 어디서 사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고 했다. 언제부터 마을에 드나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아들 하나 딸린 홀아비라고 했고, 어떤 이는 몇 해 전 물난리 때 가족을 몽땅 잃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사람은 없었다. 팔도아저씨가 엿목판이 얹힌 고물리어카를 끌고 나타나면 마을 전체가 활기를 띠었다. 아이들은 고물부터 찾아 헤맸다. 아무리 뒤져봐도 땡전 한 푼 없는 시골아이들에게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마루 밑을 뒤지고 장독대를 돌아보고 담장 밑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날이 그날인 농촌살림에 고물이라고 하늘에서 뚝뚝 떨어질 리 있을까. 고물 중에 값나가는 양은솥이나 헌 고무신 같은 것은 그야말로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때우고 또 때워서 쓰는 판이니 아이들 손에까지 오는 데는 부지하세월이었다.

그나마 만만한 게 빈병이나 고철 따위였지만 그조차도 약에 쓰기 위한 개똥마냥 찾으면 없었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평소에 그런 것들을 모아뒀다가 팔도아저씨가 나타나면 자랑스럽게 내가고는 했다. 팔도아저씨의 리어카에 실리는 물건은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놋쇠요강‧무쇠 솥‧화로‧놋그릇‧쟁기보습‧전선‧비료포대‧돼지털 같은 각종 짐승의 털까지…. 곡물이나 마늘 같은 것도 대환영이었다. 팔도아저씨를 반기는 건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어른들도 가위소리가 들리면 모아뒀던 고물을 꺼내들었다. 리어카에는 엿 외에도 빨래비누나 성냥 등을 싣고 다니기 때문에 교환이 가능했다. 쪽머리를 한 할머니들은 머리빗을 때 머리카락을 모았다 엿으로 바꿔 손자들을 먹이기도 했다. 팔도아저씨의 엿가위 소리는 경쾌하면서도 구성졌다. 철철철~ 철컥 철컥… 듣는 이의 어깨가 절로 들썩일 정도였다. 기분이 좋아지면 덩실덩실 춤사위를 섞어 엿타령을 부르기도 했다. 가끔 각설이타령이 섞여 돌아가는 엉터리였지만 통박을 주는 이는 없었다. 엿은 두 가지였다. 하얗게 분칠한 가락엿과 통째로 가져온 판엿. 판엿은 엿가위와 끌을 이용해서 그때그때 끊어주었다. 가져온 물건에 따라 양이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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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관심은 조금이라도 엿을 더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팔도아저씨의 솜씨는 빈틈이 없었다. 끌을 판엿에 놓고 가위로 툭툭 치면 병 하나만큼, 헌 고무신만큼 정확하게 끊어져 나왔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에는 항상 자신의 것이 적어보이게 마련이었다. 보통은 엿가락을 들고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길세라 줄행랑을 놓게 마련이지만, 어떤 녀석들은 엿처럼 눌어붙어서 생떼를 부렸다. “조금 더 줘요. 저번보다 훨씬 적어요.” 그러면 팔도아저씨는 쉬이~ 쉬이~ 다른 아이들 눈치를 보면서 조금 더 떼어주고는 껄껄 웃었다. 먹을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 군것질거리가 따로 있을 리 없었다. 고구마나 감자가 아니면 누구네 잔치라도 해야 떡고물이라도 얻어먹는 판이었으니, 집나간 누이 돌아온 듯 엿장수가 반가울 수밖에. 게다가 엿이 아니면 단맛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팔도아저씨로부터 받은 엿을 입에 넣으면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으랴. 조금 큰 아이들이나 마을 청년들은 엿치기를 했다. 가락엿을 하나씩 골라들고 동시에 분질러서 안에 숭숭 뚫린 구멍이 가장 큰 사람이 1등을 하는 놀이였다. 물론 맨 꼴찌를 한 사람이 엿 값을 물어야했다. 어쩌다보면 노름처럼 되어 엿 한판을 거들내는 일도 없지 않았다.

돈도 고물도 없는데, 엿을 먹고 싶은 욕망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선 아이들은 가끔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곡식을 퍼내기도 하고 아직은 멀쩡한 냄비나 기름이 남아 있는 병을 비워서 들고 나갔다. 하지만 팔도아저씨의 눈은 귀신이라도 붙은 듯 정확했다. 아무리 어른이 심부름을 보냈다고 우겨도, 한눈에 척 알아보고 혼쭐을 내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엔 그 동네에 발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러지 않아도 별 일을 다 당하는 판이었다. 어떤 이들은 “저번에 우리애가 멀쩡한 솥단지를 훔쳐다가 엿을 바꿔 먹었으니 도로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팔도아저씨가 아무리 눈 밝고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모두 구별할 방법이야 있을까. 멀쩡하다고 신고 다니는 고무신도 엿 바꿔먹기 알맞을 정도로 낡아 이리저리 기운 게 대부분인 것을. 엿장수의 애환은 그 뿐 아니었다. 엿목판을 다 비우는 날이면 다행이지만 유난히 팔리지 않고 너무 멀리 가버린 날은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런 땐 남의 사랑방에 들어 머슴들 틈에 끼어 잘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사랑방에 엿 잔치가 벌어지고는 했다. 그나마도 여의치 않을 땐 남의 헛간에 들어 이슬을 피하고 다음 날 또 장사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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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사건은 사전에 모의된 것은 아니었다. 마을 악동들의 우두머리인 병구의 심술과 장난기가 만들어 낸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병구는 그날따라 독 오른 뱀처럼 잔뜩 약이 올라 있었다. 팔도아저씨의 엿가위 소리가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빈병은커녕 병뚜껑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녀석은 하는 수없이 팔도아저씨가 전을 편 용득이네 마당으로 터벅터벅 내려갔다. 하지만 거기라고 그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엿을 산 아이들은 빼앗기기라도 할까봐 집으로 달리기 바빴다. 그 꼴을 본 병구는 기분이 확 상하고 말았다. 리어카 주변에는 병구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몇몇이 침을 흘리며 서 있었다. 돈은커녕 깨진 사금파리 하나도 없는 녀석들이었다. 병구는 그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들 엿 먹고 싶지?” 아이들은 무슨 지당한 말씀을 그리 애써서 하느냐는 듯 고개를 끄떡거렸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엿 실컷 먹게 해줄게” 병구의 제안은 엿판을 통째로 털자는 것이었다. 녀석은 팔도아저씨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장사가 잘 된 날은 동네의 맨 끝집 덕구씨네 뒷간을 들러 볼일을 보고 가는 버릇. 혁명을 하자고 해도 따라나설 만큼 엿이 먹고 싶었던 아이들은 군말 없이 마음을 합쳤다.

병구와 아이들은 웃말쪽으로 가는 팔도아저씨의 뒤를 몰래 따랐다. 팔도아저씨는 철컥 철컥 가위질에 어깨장단을 맞추면서 리어카를 끌고 갈뿐 조금도 경계하는 기색이 없었다. 예상은 빛나가지 않았다. 덕구씨네 집 바깥마당에 리어카를 세운 그가 괴춤을 잡고 뒷간으로 들어갔다. 병구의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아이들이 잽싸게 엿목판을 덮쳤다. 솔개가 병아리를 채듯 엿을 한 주먹씩 호주머니에 넣고 또 양손에 가득 들고 냅다 내뺐다. 잠시 뒤, 시원한 표정으로 뒷간에서 나온 팔도아저씨의 눈앞에는 텅 빈 엿목판만 먼지를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그는 오랫동안 넋 나간 표정으로 산모롱이에 앉아있었다. 엿을 찾으러갈 생각 따위는 아예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세상을 잃은 듯 힘없는 걸음걸이로 마을을 벗어날 땐 천지가 어둠에 깊게 가라앉은 뒤였다. 개나 한두 번 컹컹 짖어댔을 뿐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 뒤 팔도아저씨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저지른 사단을 알게 된 어른들이 엿 값을 갚아주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그의 그림자나마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싸구려 허 어 허 허
굵은 엿이란다
정말 싸구나 파는 엿

맛좋고 빛좋고 색깔좋고
사월 남풍에 꾀꼬리빛 같고
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설같이도 희얀 엿
싸구려 허 어 허 허
굵은 엿이란다
(후략)

그 신명나고 구성지던 엿타령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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