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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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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8 [사라져가는 것들 45] 연8
2008. 2. 18. 17:42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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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놈의 시누대는 왜 재실영감네 뒤란에서만 자라는지.(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건만 다른 집에서는 시누대 이파리 한 장 보기 어려웠다. 간덩이가 유난히 큰 아이들 서넛이 밤에 몰래 재실영감네 뒤란에 들어가 대를 뿌리 채 캐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각자 제집 뜰에 심었는데, 괜히 헛심만 쓴 꼴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은 곧 비실비실 죽어버렸고 힘겹게 살아난 놈도 더 이상 자랄 생각을 포기한 채, 조릿대인양 불어오는 바람에 춤이나 출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연을 만들어야 하는 겨울이 되면 재실영감네 뒤란 쪽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는 했다. 왕대라고 연을 못 만들 건 없었다. 하지만 마디가 두드러지지 않고 낭창낭창한 시누대에 맛들인 아이들에게 왕대가 눈에 찰 리 없었다. 재실영감의 심술은 해를 더할수록 빛났다. 그깟 대나무 몇 그루 베어간다고 대밭이 억새밭으로 변하는 것도 아닐 테고, 눈에 넣을 듯 아낀다고 대나무에서 사과가 열릴 리도 없는 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재실영감은 자신의 시누대밭에 아이들이 얼씬하는 것조차 눈에 불을 켜고 막았다.

(주)시누대는 지역 및 사람에 따라 신호대, 신우대, 신이대, 신의대, 고려조릿대라고도 부른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시누대=海藏竹(해장죽-화본과의 다년생 대나무)의 잘못'이라고 풀이해놓았다. 그러나 시누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꽤 많기 때문에 그대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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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아이들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찬바람이 씽씽 불고 연을 띄울 때가 되면 재실영감과 악동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재실 영감은 낮이면 순찰하듯 정기적으로 대밭을 돌았다. 그러니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노리는 건 밤이었다. 아무리 심술통이 수박통만한 재실영감이라고 해도 그깟 대 좀 지키겠다고 밤을 새울 수는 없는 일. 아이들은 밤이 깊으면 숨을 죽이고 대밭으로 갔다. 주머니칼로 어른 엄지 굵기 만한 대나무를 베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땀 깨나 흘리고 나서야 대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땀의 대가는 만족스러웠다. 연을 만들기 위한 준비의 절반은 끝난 셈이었다. 물론 연은 대나무만 가지고 만드는 건 아니다. 문종이로 쓰이는 한지와 실, 실을 감을 수 있는 얼레(연자세)도 필요했다. 한지 역시 아이들에게는 그리 만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봄에 문을 바를 때 따로 빼내두지 못하면 구하기가 어려웠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에게 연을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한두 장 얻기도 했다.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보다 연을 만들거나 팽이를 깎는데 훨씬 뛰어난 솜씨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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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료들이 갖춰지면 본격적으로 연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연은 형태와 문양에 따라 10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방패연과 가오리연이 주종을 이룬다. 방패연은 말 그대로 직사각형의 방패처럼 생겼다. 가운데에 ‘방구멍’이라는 구멍을 내며, 보통 세로와 가로를 3대2의 ‘황금비율’로 만든다. 방패연은 가오리연에 비해 비교적 복잡하고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로 큰아이들이 연싸움용으로 만들었다. 가오리연은 마름모꼴로 진짜 가오리처럼 생겼다. 꼬리를 길게 붙이는 게 특징이다. 바람이 꼬리를 타고 흐르기 때문에 띄우기가 쉽다. 만드는 방법도 비교적 간단해서 나이어린 아이들이 만들었다. 연을 만드는 순서 중 맨 먼저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대나무살을 깎는 것이다. 방패연에는 대나무살 다섯 개가 들어간다. 살은 탄력이 좋아야하되 가능한 한 너무 무겁지 않도록 깎아내야 한다. 가운데를 조금 굵게 하고 양끝은 얇게 다듬는다. 대나무를 가늘게 쪽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쪽 난 대나무를 무릎에 대고 안쪽 살을 낭창낭창해질 때까지 깎아내려간다. 이때 너무 많이 깎아내면 가볍긴 하지만 탄력을 못 받아 연살로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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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살을 다 깎으면 한지를 직사각형으로 자른 뒤 가운데에 방구멍을 내야한다. 방구멍은 맞바람의 저항을 줄여 연이 상하지 않게 하는 것과 동시에, 구멍을 통과한 바람이 뒷면의 부족한 공기를 즉시 채워 연이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연 싸움을 할 때 아래위로 조정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방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방구멍의 지름은 연 가로길이의 3분의 1보다 약간 큰 게 좋다. 연 만들 종이를 여러 겹으로 접어 끝을 적당하게 잘라내면 둥근 구멍이 된다. 종이에 살을 붙일 때는 밥풀을 사용한다. 밥풀은 종이가 아닌 살에 칠해야한다. 맨 먼저 머릿살을 한지 상단에 감아 붙인 뒤 대각선으로 살을 붙인다. 다음으로 가운데살을 세로로 붙이고 허리살을 가로로 붙인다. 작게 자른 한지를 살 위에 덧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마무리한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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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으로 실을 매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머릿살의 양 끝을 뒤쪽에서 당겨 매어 불룩 튀어나오도록 해야 한다. 연을 띄우는 맛은 누가 뭐래도 연싸움에 있다. 공중에서 연끼리 싸우다가 실 하나가 끊어지면 뿌리를 잃은 연은 한없이 날아간다. 울며불며 쫓아가는 ‘초보’들도 있지만 대개 빈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연줄에 사금파리 가루를 섞은 풀을 먹이기도 했다.

 연은 단순히 놀이기구만은 아니었다. 액땜이나 무병을 비는 기복적 의미와 함께 군사용으로도 쓰였다. 문헌 속 연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연에 관한 기록이 있다.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 여왕의 등극에 반발한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유신이 밤에 횃불을 매단 큰 연을 띄워 패망의 기운을 불식시키고 군졸들의 사기를 높여 난을 평정했다는 내용이다. 또 고려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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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이 전투에 연을 활용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암호전달용으로 썼다고 한다. 겨우내 계속되던 연놀이는 대보름이나 그 전날 밤, 집안의 좋지 않은 액을 연에 심어 날려 보내는 ‘액연(厄鳶)날리기’를 함으로써 끝맺는다. 실을 최대한 풀어줬다가 끊어버리면, 연은 액을 모두 싣고 멀리 멀리 날아간다. 그렇게 우리네 생활과 밀접했던 연을 이제 보기 쉽지 않다. 보름을 전후 해 연 날리기 행사를 하는 곳도 꽤 있지만 말 그대로 ‘행사’일 뿐 삶 속에서 함께 하던 연은 아니다. 추운 겨울날 언덕 위에서, 내 연 이겨라! 형아 연 이겨라! 빽빽 소리 지르며 연 싸움 하던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아이들이 떠나고, 연 하나 날지 않는 빈 들판엔 바람이 홀로 남아 휘휘~ 휘파람이나 불고 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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