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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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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학교 분교 폐교'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7.18 [사라져가는 것들 17] 분교3
2007. 7. 18. 18:57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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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별러서 떠난 여행이었다. 팽팽하게 감아버린 기타줄처럼, 몸 안의 신경줄들이 어느 날 툭! 툭! 끊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남쪽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무언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그런 기대가 남아있다는 건 설렘이 있다는 것이고, 설렘이 있다는 건 내 안에 존재하는 희망의 불꽃이 다 사그라진 건 아니란 뜻일 게다. 시골버스를 타고 낯선 길을 달리는 건 행복한 일이다. 오랜 시간 섬이었다가 육지와 이어진 남쪽 어느 마을을 지나는 참이었다. 여름은 온 세상에 짙푸른 물감을 마구 뿌려놨다. 들과 산을 손에 쥐고 짜면 파란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처럼 눈부신 한낮. 초점 없는 동공으로 내내 창 밖에 머물러 있던 시선이 어느 순간 한 지점에 딱 멈춘다.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것. 작은 학교인 듯 싶다. 하지만 정상적인 학교는 아닌 것 같다. 주변에는 풀이 무성하고 퇴색하고 있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유한 색깔이 배어 있다. 폐교일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동네가 꽤 큰데다 한눈에도 부촌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번듯했기 때문에 쉽사리 수긍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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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한낮, 꽤 오래 전부터 버스 안의 손님이라고는 '철' 모르는 나그네 하나뿐이다. 운전사에게 다가가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운전사는 힘도 들이지 않고 대답한다. "걱정 마슈. 예가 종점이니 내리기 싫다고 해도 내려줍니다." 마음이 따뜻한 만큼 말이 딱딱한 이곳 사람들은 농담도 가끔은 화난 것처럼 한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 보니 한 눈에 폐교임이 확인된다. 곳곳에 쇠락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큰 동네도 아이들이 없어 폐교를 하다니…. 작지만 꽤 아름다운 학교였음이 틀림없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운동장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열병식을 하고 있다. 나무마다 검은 열매가 가득 열려 있어 군침을 돌게 한다. 땅에도 새까맣게 떨어져 있다. 몇 개 따서 입에 넣어보지만 어렸을 때 입안을 황홀하게 해주던 그 맛이 아니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걸까. 들큰하지만 시큼한 그리고 조금은 떫은, 그래서 슬프다고 할 수밖에 없는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개구리 한 마리가 낯선 나그네의 기척에 놀랐는지 펄쩍 뛰어 저만치 달아난다. 하릴없이 운동장을 걷는다. 어떤 아이가 언제 떨어트리고 간 것일까. 운동장 한가운데에 운동화 한 켤레가 뒹굴고 있다. 꺄르르, 꺄르륵…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둘러보지만 정적만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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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는 학교건물은 언뜻 본 것보다는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문에는 판자를 대 못질해놓고 '무단 출입 땐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문을 붙여놨다. 좀 으스스하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조금만 손질하면 훌륭한 삶터가 될 것 같다. 전부터 폐교를 활용해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꿈을 꿔온 터라 쉽사리 돌아 나오지 못한다. 텅 빈 게시판 앞에서 교적비를 발견한다. '1964년에 개교하여 졸업생 420명을 배출하고 1994년에 폐교…' 1994년이면 20년도 훨씬 지났다. 그런데도 건물이 멀쩡한 것 보면 그동안 동네사람들이 중간중간 손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동네 주민 중에 이 학교 출신이 얼마나 많았으랴. 저만치 '책보(옛날에는 보자기에 책을 싸들고 다녔다)를 든 아이상'과 '아이를 안은 선생님(?)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총 420명의 아이들이 뛰어 놀고 꿈을 키웠을 학교가 이젠 풀밭에서 쓸쓸히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 이야기를 듣고 싶어 동네를 어슬렁거려보지만 강아지 몇 마리만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저만치 노인 한 분을 보고 다가갈까 하다가 멈춰버린다. 부질없는 짓이다. 태어나 죽은 이야기를 들은들 무엇하랴. 결국 학교 다닐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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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그랬던 걸까. 또 다른 폐교를 발견한 건, 섬에서도 유명한 다랭이논을 찾아갔을 때였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터라 느린 걸음으로 혼자 어슬렁거리며 걷던 차에  건물 하나에 또 시선을 잡혀버리고 말았다. 풍경으로 치면 먼저 학교보다 훨씬 아름답다. 바다가 코앞에 있다. 운동장가에 만들어놓은 꽃밭에는 누가 가꿔놓았는지 붉고 노란 꽃들이 초여름 햇살의 애무를 받으며 까르르 숨이 넘어간다. 바다에서 올라온 바람이 등에 찬 땀을 거둬간다. 철퍼덕 주저앉아 배낭에 넣어온 맥주를 꺼낸다. 맥주는 미지근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청량해진다. 맥주를 다 마시고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운동장과 교실 사이의 언덕에는 이충무공의 동상이 우뚝 서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못 다 마친 전쟁을 아쉬워하는 걸까. 동상 앞에는 조회를 할 때 쓰던 교단이 아직도 의연한 자세로 서 있다. 머리가 조금 벗겨진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훈화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너희들은 이 나라의 기둥이니 밝고 바르게…" 매번 듣는 훈화가 지루해진 아이들은 발로 흙을 툭툭 차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장난도 쳤을 것이다. 아아!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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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교실을 폐쇄하지 않아 드나드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어느 교실엔 아직도 책걸상이 가득 쌓여있고 어느 교실은 먼지들만 바닥에서 배밀이를 하고있다. 천장에서 내려온 알전구는 지금이라도 스위치를 올리면 세상을 명징하게 밝힐 것 같다. 칠판은 낙서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은수 왔다감' '경수·상래·호금 다녀감' '모두 모두 잘됐음 좋겠다' 이 학교를 마지막으로 다녔던 졸업생들일까? 안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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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안타까움이 백묵가루 대신 묻어있다. 열 명, 다섯 명, 세 명, 두 명… 학교에 아이들이 자꾸 줄어가고, 결국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을까. 창문 쪽으로 돌아서니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환한 색깔 속에서 공부했을 아이들. 그들의 가슴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빛났을까. 복도는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반 이상은 내려 앉아있다. 삐걱거리며 걷는 내내 아이들이 남겼을 이야기를 들으려 귀를 기울여본다. 뒤뜰에서 물이 끊긴 급수대와 무너질 듯 버티고 있는 화장실을 만난다. 마침 불어온 바람에 화장실 문이 덜컹하고 소리를 지른다. 반갑다는 소린지, 그만 나가라는 소린지. 초여름의 싱싱한 해가 학교 건물에 레이저광선을 닮은 빛을 쏘아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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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듯, 오래된 화단에 앉아 턱을 괴고 상념에 빠진다. 본교가 분교가 되고, 그 분교마저 세월의 억센 손아귀에 휘둘리다 사라져가고…. 이 나라에 존재했던 분교라는 이름은 그렇게 잊혀질 것이다. 아무리 깊은 산골마을이라도 숨듯이 서 있던, 하지만 그 마을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아침마다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던 건물은 잊혀질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는 가슴속의 그리움만으로 존재할 것이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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