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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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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강'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1.02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13] 샤클르켄트 협곡22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샤클르켄트 협곡의 바위들. 저 틈으로 길이 있다.

멀리서 본 협곡. 두 개의 산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산이 갈라져 협곡이 생겼다.

 

샤클르켄트 계곡으로

페티예에서 카쉬(Kaş)로 가는 길에는 트레킹의 명소 샤클르켄트(Saklikent) 계곡이 있다. 도시를 탈출한 버스는 신나게 시골길을 달린다. 버스를 운전하는 하산도 한적한 도로로 나오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 휘파람이라도 나올 것처럼 밝은 표정이다. 하산은 결혼을 몇 달 앞둔 예비신랑이다. 운전을 하지 않을 때는 늘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이스탄불에 있는 약혼녀와 밀어를 속삭이는 것이다. 믿음 씨는 그런 하산을 자꾸 놀린다. “너 그러다가 나중에 큰 문제 생긴다여행객을 태우고 며칠씩 돌아다니다 보면 아내와 떨어져 있는 날이 많을 텐데, 결혼한 뒤에도 지금처럼 전화를 하지 않으면 바가지를 긁힐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하산은 그런 말에 꿈쩍도 않고 틈만 나면 애인과 통화를 한다. 사람에게 적절치 않은 표현일지 몰라도, 이 청년은 갓 잡아 올린 꽁치처럼 날렵하고 싱싱하다. 성격도 깔끔해서 늘 하얀 셔츠를 입고 차도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해 놓는다. 늦은 저녁에 일행을 내려주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아침에 약속시간이 되면 정확히 버스를 대기시킨다. 운전사들이 먹고 자는 숙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긴 여행을 하다보면 불편하거나 불쾌할 일도 생길 텐데 한 번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 어느 집 규수인지 시집 한 번 잘 가는 셈이다.

협곡에 들어가기 전 상가. 냇물이 제법 많이 흐른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다리. 저곳은 수심이 무척 깊다.

길 옆에는 올리브나무와 옥수수밭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곳곳에서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관광입국을 실현하기 위해 온 나라에 삽을 들이댄 것 같다. 그래도 제발 마구잡이 개발은 하지 말기를. 자연의 선물은 한번 망가뜨리면 억만금으로도 되사기 어려운 법이니. 집집마다 심은 석류나무들이 농익은 여인네의 가슴 같은 탐스런 열매를 매달고 있다. 조금 더 달리자 드디어 샤클르켄트. 페티예에서 남동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페티예 여행자들이 꼭 들러 가는 코스기도 하다. 샤클르켄트 협곡은 황소처럼 길게 누운 타우르스 산맥이 중간에 뚝 끊어지면서 생겨났다. 마치 누가 거대한 칼로 내리친 것 같다. 우리나라 같으면 전설이나 신화 몇 개쯤은 품고 있을 법하다. ‘옛날에 옛날에 하늘에서 큰 칼을 가진 장군이 내려와 '어느 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산이 쫙 갈라지면서 그 자리에 알 하나가…' 하지만 그런 전설이나 신화를 얘기하는 사람도 써놓은 곳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옛날 리키아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 살던 시절에는 분명 전설이 입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튀르크인들이 들어와 살다 보니 전설조차 땅속에 묻혀버린 게 아닐까. 낯선 땅에 정착해서 삶터를 일구는 사람들에게 남의 전설 보다는 한 끼의 밥에 더 관심이 갈 수도 있을 테니.

깊은 곳은 물이 퍼렇지만 우윳빛이 섞여있다.

협곡으로 들어가다

계곡에서 나온 물은 인근의 큰 하천인 에센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협곡의 길이는 총 18km. 수량은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갈수기인 여름에는 물이 거의 없고 가을부터 불어나기 시작해서 많을 때는 사람의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다. 그래서 수량이 많을 때나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는 혼자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는 권고도 한다. 잘 알다시피, 계곡 트레킹은 물속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물에 젖어도 상관없는 옷을 입어야 한다. 춥지 않은 계절엔 짧은 반바지가 좋다. 신발은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샌들이 좋은데, 만약 준비가 안됐으면 근처 가게나 식당에서 유료로 빌릴 수도 있다. 나는 그냥 긴 바지 등산복에 여행 내내 신고 다닌 간이샌들을 신고 들어가기로 한다. 엄상욱 씨는 그런 복장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싸구려 샌들임을 한눈에 알아보는 눈치란) 고개를 흔들지만, 무식과 깡다구로 뭉쳐진 나는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만다. 정 안되면 맨발로 걸으면 되지. 여름의 끝인데도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수량이 제법 많고 우유처럼 뿌옇다. 석회질이 많이 섞여서 그런 게 아닐까. 저런 물은 미끄럽기 쉬운데. 그래도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거야.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전의를 불태워본다.

곳곳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저 다리를 내려서면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이곳도 예외 없이 입장료를 받는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절벽 옆으로 나무다리가 이어진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사람, 트레킹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연신 엇갈린다. 조금 더 올라가니 매점이 나온다. 거길 지나자 냇물이 기세 좋게 흐른다. 저 내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량은 걱정할 정도로 많지는 않다. 입구에는가이드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협곡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지만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라고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바지를 둥둥 걷어붙이고 물에 발을 살짝 넣어보니 냉기가 짜르르 흐른다. 온 몸의 세포들이 움찔, 아우성친다. 하지만 물이 차다고 돌아설 수는 없는 일. 저벅저벅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청년 하나가 나타나더니 뒤를 따라온다. 딱 보니 동네청년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 부유해 보이는 유럽인도 많은데 하필 왜 나를 따라오지? 그가 이것저것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무안과 약간의 뻔뻔함을 적절히 버무린 미소도 가끔 버무려 넣는다. 영어도 제법 한다. “100m쯤 올라가면 폭포가 있는데 풍경이 기가 막히다” “그런데, 그 카메라는 얼마냐?” 여보게 청년, 나도 자네처럼 관광지에서 자랐다네. 거기서 세상의 쓴 맛을 배운 대신 함부로 호주머니를 열지 않는 법도 알게 되었지. 선수끼리는 이러는 게 아니네.

 

트레킹의 시작. 저 물을 건너는 게 첫 시험이다.

나를 따라온 동네 청년

청년은 관광객을 안내해주고 푼돈을 챙기는 걸 취미 겸 업으로 하는 게 틀림없다. 특별히 안내가 필요한 곳도 아닌데 장사가 될까? 아무튼 자네는 사람 잘못 골랐네 그려. 선구안을 좀 길러야지. 돈 많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을 잡아야지, 하필 나처럼 젊고(?) 튼튼한데다 돈까지 없는 최악의 카드를 선택하다니. 이번에도 카메라가 문제였을 것이다. 이렇게 큰 카메라를 가졌으니 푼돈 정도야 쉽사리 내놓지 않으랴, 라고 혼자 결론을 내린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건 그대의 선택일 뿐. 난 그가 뭐라고 하던 묵묵부답으로 걸음을 재게 놀린다. 물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차고 더 탁하고 더 깊다. 느닷없는 냉기는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낸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조금씩 깊어지니까 약간의 공포감마저 인다. 하지만 맞은편에 닿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왜 위험해보이기까지 하는 이곳에 다리를 놓지 않을까. 수량 등을 감안한 물리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처음에 쉽지 않은 고비를 넘기게 해서 경각심을 북돋워줄 생각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버릴 옷, 처음부터 젖게 만들어 옷 따위에 연연하지 않게 하려 했는지도.

우윳빛 물이 쏟아지는 계곡. 이 곳을 지나가면 검은 빛 물이 흐른다.

아무튼 수량이 많을 때나 비가 오는 날은 함부로 뛰어들 건 아닌 것 같다. 트레킹도 좋지만 목숨을 걸 필요야 있나. 건너편에 도착할 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따라오던 청년은, 내가 반응이 없자 몇 번 아쉬운 눈초리를 던지더니 쩝쩝 입맛을 다시며 돌아선다. 몇 리라라도 쥐어줄 걸 그랬나? 하지만 아무 곳에서나 호주머니를 열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지갑은 편하지 않다. 지금의 내가 그런 처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동정심마저도 사치가 될 때가 많다. 유료화장실을 안 가려고 소변조차 참는 게 여행자다. 동정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특이한 건 터키를 돌아다니는 내내 거지를 못 봤다는 것이다. 아이들이나 장애인도 저울로 몸무게를 재주고 돈을 받거나 엽서라도 들고 나와 팔지, 그냥 적선해 달라는 경우는 없었다. 우연히 내 눈에만 띄지 않은 걸까. 아니면 거지가 없을 정도로 나누는 사회가 된 걸까. 청년도 가버렸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곡탐험이다. 처음 깊은 물을 건너고 나니 그 다음엔 수월한 코스가 이어진다. 첨벙첨벙, 어린아이처럼 물길을 헤치면서 걸어가다 보니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진다. 빛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들어본다. 황금색 햇살이 연신 쏟아져 내리는데 그 끝은 어디쯤인지 아득하다.

하늘에서는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들어온다.

위기의 순간을 맞다

바닥엔 시커먼 진흙이 깔려있어서 물은 탄광촌의 그것처럼 시커멓다. 물과 대조적으로 바위는 하얀 빛으로 반짝거린다. 하지만 바위 군데군데에 낙서를 해놓거나 진흙 손도장을 찍어 놔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냥 보기만 하면 어디 부러지나? 그 중에 한자로 써놓은 낙서가 있길래, 혹시나 해서 가까이 가 봤더니 다행히 간자체가 섞였다. 먼 이국 땅에 가죽 대신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중국인이 다녀간 모양이다. 제발 세계 어느 곳의 유물에서도 한글로 된 이름 석 자는 볼 수 없기를. 앞으로 나갈수록 오가는 사람이 적어진다. 처음에는 다큐팀 카메라맨도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꽤 오래 함께 걷던 K도 중간에 돌아갔다. 이젠 우락부락한 청년들만 씩씩한 걸음으로 오고간다. 으슥한 곳을 지날 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홀로 걷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저 젊은이들 중에 누군가가 안 좋은 마음을 갖고 달려들면 나는 속수무책이다. 빈 몸으로도 힘겨운 길을 카메라 장비가 든 배낭을 메고 땀에 절어 걸어가는 자그마한 동양인 사내. 한번 불안한 생각이 드니까 모든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혹시 다른 마음을 먹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비킨다. ,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 허약하구나. 두려움은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거늘.

본격적으로 트레킹 코스에 접어들었다. 검은 물이 흐른다.

나름대로 수양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궁핍한 처지가 되니 의심부터 하려드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저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는다면 얼마나 화가 나고 억울할까. 길이 많이 험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에 돌아선다. 나도 진퇴를 놓고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어느 책에선가 샤클르켄트 협곡을 끝까지 가봤다는 한국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말 때문에 더욱 오기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물론 나 역시 18km를 끝까지 가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는 데까지는 가봐야 할 것 아닌가.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겠다는 욕심도 한몫을 했다. 가도 가도 비슷한 길의 연속이다. 위기는 아무런 징후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한 순간 몸이 허청, 기울더니 깊은 웅덩이에 쑥 빠지고 만다. 물이 탁하기 때문에 깊고 얕은 걸 구분할 수 없던 게 화근이었다. 급하게 균형을 잡는 바람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옷은 몽땅 젖었다. 속옷까지 물들이는 흙탕물의 축축한 감촉.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보호하려는 본능은 두 손은 높이 치켜들게 만들었다. 허리 가까이까지 차는 물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허둥대는 사내. 내가 생각해도 참 우스운 꼴이다.

하얀 바위에 써놓은 낙서와 손 도장. 한자 이름이 눈에 띈다.

여음곡(女陰谷)’에서 돌아서다

길이 이곳밖에 없을까? 웅덩이를 빠져나와 차분하게 살펴보니 바위 뒤쪽으로 샛길이 있다. 그럼 그렇지. 마음이 흐트러지니 쓸데없이 허둥대다 길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왕 옷도 버렸는데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절경을 구경할지 알아? 혹시나 혹시나여태껏 걸어온 인생길과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너무도 닮았다. 길은 갈수록 험해진다. 바위를 기어오르고 물을 피해 돌아가다 또 한 번 아뜩한 일이 생긴다. 뭔가 적으려고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수첩이 사려졌다. 조금 전까지 메모를 하고 꽂아두었는데.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여행 내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수첩. 내 여행의 전부가 사라진 것이다. 어디쯤에서 흘린 걸까? 물에 떠내려갔거나 진흙에 묻혀버린 건 아닐까? 다스리기 힘든 공포가 머리를 타고 내려와 등골을 지나 발끝까지 훑는다. 세상이 다 아득하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지난 며칠이 고스란히 지워지는 것이다. 기록하는 걸 낙으로 삼는 자가 기록할 기회를 잃는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걸 절감한다. 차라리 지갑을 잊어버리는 게 낫지.

마지막으로 돌아서며 '여음곡'이라 이름 붙여준 거대한 바위.

허둥지둥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아무리 둘러봐도 수첩은 없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조급해도 안 된다. 높은 바위를 낑낑거리며 넘어왔던 기억이 나서 그곳을 다시 힘들게 올라간다. ! 있다. 내 수첩이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잃어버렸던 가족이라도 만난 듯 부둥켜안는다. 남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내겐 둘도 없는 환희의 순간이다. 온 몸을 팽팽하게 당기던 긴장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이젠 정말 내려가야겠다. 시간도 꽤 흘렀고, 무엇보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또 미친병이 발동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안 될까? 마음 약한 나는, 고집스런 또 다른 나에게 두 손을 들고 만다. 없는 힘까지 끌어내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번엔 수첩을 꼭꼭 여며둔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멈춘다. 바위 사이로 좁은 틈이 있긴 한데, 아무리 봐도 그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바위들로 구성된 골짜기의 구조가 참 특이하게 생겼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 골짜기는 오늘부터 여음곡(女陰谷)’이야. 그럴 듯하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할 모양이다. 내려오는 길은 수월하다. 거의 다 내려올 무렵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운 일행과 만난다. 초로의 한 사내가 내 얼굴을 유심하게 보더니 느닷없이 곤니찌와를 외친다. 곤니찌와? 이 시간에 무슨 곤니찌와야, 그리고 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고생 끝이라 그랬을까, 돌아오는 길은 이렇게 평탄했다.

코리언이란 말에 더욱 반가운 표정이 된 이 아저씨, “아프다, 아프다를 연발한다. 아프다고? 당신 아픈 걸 왜 내게 말해. 나도 여기저기 아파 죽겠거든. 그런데 얼굴엔 아픈 기색이 조금도 없다. 가만, 아프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예쁘다구나. 어디선가 한국인을 만나 한마디 배운 말이 예쁘다인데, 그걸 아프다로 기억한 모양이었다. 이런 때 그냥 지나가면 안 되지. 저만치 가는 사람을 불러 세워 예쁘다라는 발음을 확실히 교육시킨다. 그리고 아저씨. 그건 인사가 아니라 ‘pretty’‘beautiful’이란 뜻으로 쓰는 말이거든요. 한국식 인사는 안녕하세요라고 해요. 앞으로 곤니찌와 같은 천박한 말은 쓰지 말고 안녕하세요라는 우아한 말만 쓰세요. 알았지요? 에구, 오지랖도 넓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뛰다시피 협곡을 빠져나온다. 출발지점까지 오니 일행들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걷다가 돌아간 K를 빼고는 협곡을 제대로 들어간 사람이 없단다. 난 다들 따라오는 줄 알았지. 그렇다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왔담.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랴. 어차피 홀로 걷는 길.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먹고 섭섭했던 마음을 싹 지워버린다. 이래봬도 난, 당신들이 못 본 거 다 보고 온 사람이야.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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