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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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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샘'에 해당되는 글 1

  1. 2012.12.03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21] 야곱의 샘에서 담을 넘다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는 PC방.

마을의 공동묘지.

흙집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니 현대식에 가까운 집들이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의 건물들은 흙이 아니라 시멘트로 치장하고 있다. 고대의 어느 공간에서 느닷없이 현대로 이동한 한 기분이다. 흙과 시멘트 사이가 천년쯤 되는 것 같은데 고작 5분 거리밖에 안되다니. 아까 흙집에서 만났던,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도 이 동네에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2층 슬래브 집 마당에는 오토바이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서 있고 1층 처마에는 ‘INTERNET CAFE’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쉽게 말해 PC방이란 뜻이겠지. 3,000년 전의 흙집과 PC방의 차이는 이렇게 지척이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묘지,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단어다. 게다가 평소에는 돌보지 않는 듯 풀들이 제각기 하늘까지 올라가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곳도 추석 때만 벌초를 하러가나? 길가에서 당나귀 수레를 타고 가는 아이를 만난다.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수레에서 내려 당나귀를 세우고 포즈를 취해 준다. 어라? 이 녀석 제법 프로 냄새가 나네? 헌데 포즈만 프로가 아니다. 사진을 다 찍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돌아서려고 했더니 옷깃을 잡으며 손을 내민다. 그리고 외친 한마디!

“Give me money!!

그렇구나. 목적은 모델료였구나. 돈이 상투 끝에 올라앉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따지고 보면 마차를 세우고 포즈를 세워주는 것이야말로 대가를 받을만한 노역이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늘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돈을 주지 말라는 머리를 따라야 하나, 측은지심을 강조하는 가슴을 따라야 하나.

 

 

당나귀 마차를 모는 소년.

마을 끝머리쯤에 야곱의 샘이 있다. 이곳이야말로 별러서 온 곳이다. 일정에는 없었는데 내가 고집해서 끼워넣었다. 언제 다시 하란에 올 거라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단 말인가. 하지만 샘 앞에 서자마자 한숨부터 나온다. 사방을 철제 담으로 둘러쳐놓고 문은 꽁꽁 잠가놓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전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이 쓴 글에 관리는 안 하고 있는지 벌판 한 가운데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관리를 한다는 핑계로 아예 사람의 접근을 막아버렸다. 관리인이라도 있으면 문을 좀 열어달라고 졸라보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비루먹은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이걸 어쩌나. 저만치 안쪽으로 샘 같은 게 보이는데 너무 멀어서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기에는 너무 섭섭하다. 하릴없이 담을 따라 걷다보니 제법 낮은 곳이 보인다. 게다가 이건 뭐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발판 같은 게 놓여있다. 이런 땐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담으로 기어오른다. 하나, , ! 뛰어내리는데 뭔가 느낌이 안 좋다. 발이 삐끗한 모양이다. 난 아직도 내가 나이는 30대쯤, 몸무게는 60kg쯤 되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 순간적으로 대퇴부까지 자극하는 통증에 멈칫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카메라를 바투 쥐고 샘을 향해서 달린다. 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총탄 속을 누비는 병사의 각오가 이러했을까. 샘에는 4각의 쇠로 된 상자를 덮어놓았다. 이 동네는 쇠로 시작해서 쇠로 끝나는구나. 전에 우리 시골에 있던 샘과 비슷한 것 같은데, 상자를 덮어놓는 바람에 물이 있는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

 마을엔 포장을 친 간이시장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샘을 들여다보다 말고 셔터를 누르려는 참에 어디선가 새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말로 치면 어이, 어이~”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게 소리치는 게 틀림없다. ‘거기 들어간 놈 잡히면 죽는다는 뜻이겠지? 후다닥 셔터를 몇 번 누르고 왔던 길을 향해서 다시 내달린다. 삐끗했던 발목은 여전히 아프지만 살아야겠다는 일념은 통증마저 유예시킨다. 여기서 붙잡힐 수는 없지. 순간적으로 다시 담을 넘는다. 이게 몇 년 만의 담치기냐. 마지막 담치기를 할 무렵이 열일곱이던가? 열여덟이던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정말 10대로 돌아간 듯 내 동작은 번개처럼 빠르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절룩절룩 걸어가는 내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 한 가닥이 걸린다.

그래도 난 찍었어.’

그깟 샘 하나가 무엇이길래 목숨까지 거느냐고 타박할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내겐 그만큼 중요하다. 어디 다녀왔다고 자랑이나 하려는 게 아니라, 옛사람들의 흔적을 확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먼 길을 온 것이다. 하란은 성서의 무대가 되는 땅이다. 그 무대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숱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니 야곱의 샘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이다. 노총각 이삭이 리브가를 색시로 맞아 알콩달콩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이 집안 손이 귀한 건 내림인 모양이다. 아브라함도 100세나 돼서 이삭을 낳았으니. 결혼 후 30년이 지날 무렵 드디어 리브가에게 태기가 있었다.

 

 

야곱의 샘 안내판.

태어난 아이들은 쌍둥이였다. 이란성 쌍둥이였던 듯 형제는 완전 딴판이었다. 형은 온몸이 붉은 털로 뒤덮여 있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지었고 동생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야곱이라고 지었다.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다. 에서는 씩씩하고 거칠어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신 깊은 생각이나 자제력은 부족한 편이었다. 동생 야곱은 그와 반대여서 성격이 차분하고 주로 천막에서 지내는 것을 즐겼다. 그렇다고 야심까지 없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것부터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야곱은 장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형제의 순서가 바꾸고 싶다고 바꿔지는 건 아닐 터. 여느 사람 같으면 그러려니 했으련만 야곱은 안 되면 되게 하라무대뽀 정신을 버리지 못했다. 어느 날, 에서는 사냥을 하다가 뱃가죽이 등에 붙을 무렵 돌아왔다. 마침 그때 야곱은 팥죽을 쑤고 있었다. 에서에게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만큼이나 반가울 수밖에. 죽 솥에 머리라도 박을 듯 달라 들면서 동생에게 사정을 했다.

사랑하는 동생 야곱아, 죽 한 그릇만 줘라

, 나 먹으려고 쑤는 건데. 이 죽 주면 내가 부탁하는 거 하나 들어줄래?”

부탁? 뭔데?”

장자권(長子權)을 내게 줘.”

장자권? 그거 복권 이름이냐? 뭔지는 모르지만 가져. 얼른 죽 한 그릇 주고

비록 장난 비슷한 일이었지만 야곱은 죽 한 그릇에 형에게서 장자권을 양도 받았다. 에서야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겠지.

 

 

담도 높고 문도 잠겨 있다.

결정적인 사건은 형제가 더욱 성장한 뒤에 일어났다. 야곱의 샘에 대해 알려면 이 정도 공부는 해야 하니 조금 지루해도 어쩔 수 없다. 하란까지 와서 야곱 이야기 한 자락 안 듣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법. 이삭도 어느 덧 늙어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어두워질 때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더 살랴 싶어서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상속을 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그 절차가 바로 축복을 내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에서를 부른다.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세기 272~4)

 

이삭의 말대로 진행됐으면 나도 예까지 올 일이 없었으련만, 아비와 아들의 대화를 리브가가 듣고 말았다. 아참, 그 얘기를 안 하고 지나갔구나.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부부 간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기 달라 이삭은 큰 아들 에서라면 죽고 못 살았고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만 끼고 돌았다. 이복형제도 아닌데, 사건을 만들어야 이야기가 나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자간의 대화를 엿들은 리브가는 야곱으로 장자를 삼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음모’, 이 단어 참 쓸 만하다. 에서가 사냥을 떠난 뒤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새끼 염소 두 마리를 잡아오게 한다. 다음에 그 고기로 이삭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고 에서의 옷을 입힌 다음, 털이 많은 에서처럼 염소새끼 가죽으로 손과 목을 둘러준다.

 

안쪽 돌 기둥 사이에 있는 게 야곱의 샘이다.

야곱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어머니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니 못 이기는 체 하고 아비 이삭에게 들어간다. 눈이 먼 이삭은 결국 리브가의 꾀에 속아 음식을 맛있게 먹은 다음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린다. 잠시 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지만 모든 건 끝난 뒤. 아비에게 울고 불고 난리를 쳐본다고 축복이라는 게 어디 스티커처럼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것인가. 일을 꾸민 어미가 미웠지만 그 또한 어쩌겠는가. 죽여 버리겠다고 야곱을 찾았지만 이미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은 뒤였다.

야곱, 이 웬수 같은 놈. 아버지만 죽고 나면 그날부로 묻어버릴껴.”

야곱을 향한 에서의 화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잘못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으로 보내기로 한다. 여기서부터 야곱의 샘이야기가 시작된다. 리브가의 친정이 어디던가.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시켜 리브가를 데려온 곳이 어디던가. 그러고 보니 내내 괴롭히던 궁금증이 쉽게 풀려버리고 만다. 아브라함이 내 고향에 가서 며느릿감을 데려오라던 곳은 하란이었음이 확인된다. 왜냐고? 리브가가 아들을 보낸 친정이 바로 하란이었으니까. 그리고 야곱이 라헬과 인연을 맺은 야곱의 샘이 지금 내 눈앞 하란에 있으니까. 결과가 맞았으니 나머지 궁금증은 그냥 묻어버리자. 외삼촌을 찾아가기 위해 집을 떠난 야곱이나 따라가 보자. 야곱은 걷고 걸어 어느 샘가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목동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샘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는 아무 때나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게 아니라 저녁 무렵이 돼서 목동들이 모두 모여야 샘을 덮은 큰 돌을 열고 물을 먹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담을 넘어 들어가보니 이렇게 덮어놓았다.

여기서 야곱과 그의 사촌 누이 라헬의 극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역시 우물가는 만남의 장이다. 샘에서 쉬고 있는 야곱 앞에 아리따운 처녀 하나가 양떼를 몰고 나타난다. 바로 라헬이다. 무엇에 끌렸는지 야곱은 샘을 덮은 돌을 열고 양떼에게 물을 먹인다. 그러면서 족보 확인이 시작된다.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비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됨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비에게 고하매(창세기 2911~12)

 

처음부터 입을 맞췄다는 게 좀 수상하긴 하다. 그리고 울긴 또 왜 울어. 그날부터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거한다. 이쯤에서 야곱 이야기를 마칠 수도 있겠지만 그리되면 장가를 간 재미있는 사연을 전할 수 없으니 조금만 더하자. 야곱의 외삼촌이자 리브가의 오빠인 라반은 실속주의자였다. 약간의 사기성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라반은 야곱을 불러 말한다.

네가 비록 내 생질이지만 공짜로 일을 시킬 수야 있겠냐? 무엇으로 보수를 주면 좋을까?” 딱 보니 약점을 잡고 머슴으로 부려먹으려는 것이다. 야곱은 그때 이미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제가 어찌 외삼촌께 보수를 바라겠습니까? 약소하지만 라헬을 제게 주면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겠습니다.”

이런 이런, 너 그러다 크게 당한다. 야곱은 라헬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7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다. 드디어 결혼하던 날, 야곱은 얼마나 좋았던지 완전 술독에 빠져 버리고 만다. 아니면 외삼촌 라반이 동네 건달들 시켜서 일부러 먹였는지도 모르지. 첫날밤을 치루고 새벽에 일어난 야곱은 기절할 듯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곁, 색시의 자리에는 사랑하는 라헬이 아닌 그녀의 언니 레아가 수줍게 누워 있었다. 뭐야, 이거. 이미 일은 치렀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

얼랄라? 이것이 무슨 시추에이션이여? 왜 네가 내 옆에 누워 있어? 라헬은 어디 가고?”

나도 몰라요. 아버지가 들어가래서 들어왔단 말이에요.”

배신감에 미칠 것 같았던 야곱이 외삼촌인 라반에게로 달려가 따졌다. 라반의 대답이 걸작이다.

어이, 생질. 열 받지 말어. 이 동네가 말이여. 얼마나 고루한지 작은 딸을 큰 딸보다 먼저 시집보내면 난리도 아니여.”

이런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있나. 그러면서 라반은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니 참고 한 일주일 버텨봐. 내가 작은 딸도 생질에게 줌세. 대신 7년 머슴살이 추가는 옵션이여. 오케이?”

어쩌겠는가. 야곱은 또 7년간의 머슴살이를 한다. 그런 인고의 세월 덕분이었는지 야곱은 두 아내를 얻은 데다 그녀들의 몸종까지 첩으로 거느리게 된다. 몸종이 무슨 별책 부록이냐? 마누라로 삼게. 뭐 그 당시의 풍습이 그랬다는 것이겠지. 자식복도 많아서 아들 12, 딸 하나를 얻는다. 그의 아들 12명은 이스라엘 민족 12지파의 시조가 된다. 그건 훗날 얘기고. 아무튼 잔머리야곱이 더 잔머리외삼촌에게 속아 14년이나 머슴을 살면서 사랑을 완성한 얘기는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사랑을 얻기 위한 희생과 노력,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시대에 한번쯤 되새겨볼 만 하지 않은가.

 

나오는 길에 잠시 둘러본 하란성의 하나 남은 성문.

성서의 땅 하란, 그곳에 있는 야곱의 샘에서 청량한 물을 한 잔 마시며 여행의 행복을 누려보겠다는 꿈은 쇠창살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꿈꾸던 하란에 왔고 성서의 인물들을 하나씩 만났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라헬. 지금 그들이 저만치서 손을 흔들고 있다. 나는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고 앞으로 늘 나 안에서 함께 할 것이다. 어느 땐 용기를 주고 어느 땐 질책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젠 정말 하란을 떠나야 할 시간.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흙먼지 날리는 이 불모의 땅에 사랑담은 인사를 보낸다. 굿바이! 하란.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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