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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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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석양을 받은 크즐쿨레가 붉게 빛난다.

조선소 쪽에서 바라본 크즐쿨레.

크즐쿨레의 꼭대기층. 가운데에 물 저장고가 있다.


크즐쿨레와 테르사네

오후 일정은 크즐쿨레와 테르사네에서 시작한다. 크즐쿨레는 높이 33m8각형 5층탑을 말한다. 단순히 기념물로 세운 탑은 아니고 직경이 29m나 되는 작은 성이다. 알란야 성이 산 위에 있는데 반해 크즐쿨레는 바다 곁에 세웠다. 두 곳은 서로 마주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 셀주크 튀르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 1세 때인 1226년에 지었다. 테르사네는 역시 셀주크 튀르크 지배시기인 1228년에 완공한 조선소다. 그 당시 지어진 조선소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두 곳은 위치도 가깝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크즐쿨레를 지은 목적이 바다를 통한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조선소 테르사네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 내부에는 대포도 설치했었다고 한다. 시리아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 탑은 튼튼하기로도 유명하다. 두꺼운 곳은 벽 두께가 무려 12.5m나 된다. 어지간한 대포 정도로는 눈도 깜짝 안하게 생겼다. 단단하게 짓기 위해서 시멘트 반죽을 할 때 달걀을 섞었다는 말도 있다. 건축에는 문외한인지라 달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먹을 것 안 먹고 탑을 짓는데 썼다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겠다. 또 중간 기둥은 신전에서 뜯어다 썼다고 한다. 기둥이 탑보다 훨씬 오래된 셈이다. 1951년에 수리를 하면서 크즐쿨레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붉은 탑이란 뜻이다. 석양 무렵이면 탑 전체가 붉은 보석덩어리처럼 빛난다. 장관이다

.

크즐쿨레 내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각종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탑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이 얼마나 좁고 가파른지 금세 등에 땀이 밴다
. 이 건물은 현재 민속 박물관으로 쓰고 있지만 그렇게 특별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각종 사진과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셀주크 튀르크제국의 인장도 눈에 띄는데 독수리 머리가 둘, 즉 양두독수리다. 하나는 소아시아를 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두 곳을 점령하면 세상 모두를 점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비잔티움제국 역시 양두 독수리를 인장으로 삼았다. 2층에는 산꼭대기에 있는 알란야 성채와 통하는 길을 만들어놓았다. 비상시에는 이 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맨 위층 한 가운데는 물탱크가 있다. 비상시에 대비해서 빗물을 받아서 보관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장기간 농성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탑의 맨 꼭대기에서 보는 풍경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알란야 성채에서 절경에 취했던 끝이라 감동은 좀 무디다. 이번엔 조선소인 테르사네로 간다. 크즐쿨레에서 내려와 서쪽 성벽 끝 쪽을 보면 다섯 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게 바로 테르사네다. 폐쇄된 상태로 있던 이 조선소가 수리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된 건 올 528일부터였다고 한다. 믿음 씨도 처음 가본다고 기대에 찬 표정이다.

크즐쿨레에서 내려다 본 알란야 언덕의 주택가.

동굴처럼 보이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조선소 테르사네다.

테르사네의 도크와 도크 사이.


세계 最古의 조선소에서


 가장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세계 최고(最古)의 조선소를 볼 수 있으니 나 역시 운이 좋은 편이다. 생각해 보면 독특한 의미를 지닌 조선소인 건 분명하다. 셀주크든 오스만이든 튀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민족이야 말로 근본이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이들 아닌가. 호수 정도에 배를 띄워봤을지는 모르지만, 커다란 전선을 타고 전쟁을 한다는 걸 꿈이나 꿔봤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만든 조선소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튀르크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조선술과 해전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확보한 배나 해전술로 그리스를 지배했다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기는 하지만. 그런 역사를 거치다 보니, 두 나라는 지금도 원수나 다름없다. 아무튼 오스만 튀르크가 해양까지 장악하는 기초가 된 조선소가 바로 이 테르사네다. 키프로스를 정복하러 갔을 때도 바로 이곳에서 만든 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소로 가는 길 옆에는 올리브 열매가 소담지게 달려 있다. 오렌지 나무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풍성하게 자란 아주까리도 자주 눈에 띈다. , 아주까리.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것인데. 조선소는 다섯 개의 도크가 있다. 맨 첫 번째 도크에는 목제 기중기가 전시돼 있다. 세월의 때가 덜 묻어 있어 아직은 도크와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한다. 다음 도크에는 건조 중인 목선이 전시돼 있다. 이것 역시 최근에 만든 것이다. 여기서 건조된 배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만조가 되면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테르사네 도크에서 바라본 지중해.

배를 만들 때 쓰던 기중기.

배의 골조.

조선소에서 나오니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 일행과 합류한 뒤 호텔로 돌아간다. 이제 알랸야에서, 아니 지중해에서의 공식일정은 끝났다. 나는 내일 새벽 이스탄불로 떠나야 한다. 저녁을 마치고 일찌감치 다큐팀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들은 저녁 촬영 일정이 있어서 나가야하고 나는 일찌감치 쉬어야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이 같으니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공항이나 인천공항에서 잠시 만나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은 없을 것 같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서로 다른 일을 했지만 편치 않은 길을 함께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동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어지간하면 알란야의 밤 문화도 함께 둘러보고 석별의 정이라도 나누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알란야는 지중해의 휴양지 중에 밤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을 어쩌랴. 그것보다는 새벽에 안탈리아까지 가는 게 더 걱정이다. 알란야는 공항이 없기 때문에 다시 안탈리아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아침 650분 비행기니까 새벽에 출발해야하는데 그 시간에는 버스가 안 다닌다. 택시를 타자니 너무 비싸고, 믿음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호텔 측과 얘기한 끝에 싼값에 미니버스를 내어준단다. 하지만 그 싼값이 내겐 거액이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짐을 정리하다보니 올 때보다 많이 줄었다. 새로 추가된 거라고는 카쉬의 거리에서 산 가죽신 하나.

알란야의 부두.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안탈리아 외곽.

이스탄불로 가는 길. 바다, 산맥, 그리고 도시들이 교대로 나타난다.

지중해와 작별하다

일찌감치 누워보지만 이 생각 저 생각이 거미줄처럼 얽혀 잠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집을 떠나온 지 몇 년은 된 기분이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깜박 잠에 들었나 했는데 알람이 울린다. 새벽 3. 부지런히 샤워하고 옷 입고 호텔 문을 나서니 작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 혼자 버스를 전세 내보기는 처음이다. 출발하려는데 믿음 씨가 눈을 비비며 로비로 내려온다. 운전사와 내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안탈리아 공항까지 잘 태워다주라고 부탁하러 나온 것이다. 고마운 친구. 서울에 오면 내가 쏘가리 매운탕 곱빼기로 쏠게.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자 버스는 온통 캄캄한 새벽길을 달려간다. 안탈리아 공항에 도착해 보니 제법 시간 여유가 있다. 안도감 때문인지 그제야 미뤄뒀던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까딱 잘못 졸았다가 비행기 놓칠라. 캐리어를 인천공항까지 보내고 일찌감치 수속을 밟는다. 650분 이스탄불행 비행기 이륙. 지중해여, 안녕.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아나톨리아 땅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떠도는 영혼들, 그리고 바다, 나무, 바람 한 자락에게까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안탈리아에서 이스탄불까지는 한 시간 남짓. 올 때도 그랬지만, 비행기가 비교적 낮게 날아가기 때문에 산과 바다와 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

낮은 집들도 보이고.

잠시 뒤, 눈에 익은 지형이 들어온다. ? 벌써 이스탄불이네. 보스포루스 해협이 저만치 보인다. 754분 아타튀르크 공항 착륙. 하늘은 시리도록 맑다. 기온은 지중해보다 제법 낮아서 비교적 청량하다. 이제부터 혼자 이스탄불을 탐험해야 한다. 저녁 이맘때까지는 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니 주어진 시간은 열두 시간. 한정된 시간의 외출을 허락 받은 무기수가 이런 심정일까? 낯설고 설레는 것 투성이다. 출발선에 선 스프린터처럼 온 몸의 근육에 긴장을 불어넣고 눈을 부릅뜬다. 지금부터는 버스를 태워줄 사람도 없고 길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 조금 무식하고(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무식하고 전혀 준비가 안 된)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배낭여행자일 뿐이다. 이거 괜한 짓을 하는 건가? 아무튼 힘차게 출발!! 공항서 첫 번째 목적지로 삼은 구시가지의 술탄아흐메트(Sultanahmet)까지는 전철(metro)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트램으로 갈아타야 한다. 전철을 타러 가는 길도 만만찮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물어물어 역에 도착한다. 어라? 여기는 아직도 토큰을 쓰네. 눈치를 보자 하니 우리처럼 전자식이 아니라 플라스틱 코인 같은 것을 넣고 전철을 탄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걸 제톤(Jeton)이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이건 웬 돌발 상황? 서울에서 표를 끊어서 전철을 탈 때처럼, 넣은 코인이 나와야 나갈 때 쓸 텐데 감감 무소식이다. 당황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에 역무원이 있다. 객지에서 오촌당숙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부른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메트로를 타러 가는 길이다.

이스탄불에서 '어리버리'


어이~ 역무원 아저씨. 얘가 내 코인 삼키고 안 내놓는데? 헌데 이 친구 반응이 또 엉뚱하다. 가까이 와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질문은 못 들은 척하고 카메라를 얼마에 샀느냐고 자꾸 묻는다. , 인간아!! 묻는 것에 대답부터 해야지. 이젠 카메라 얼마냐 소리 아주 지겹다. 한참 뒤 설명을 듣고 보니 코인을 넣고 그냥 가면 되는 것이란다. 그럼 나갈 땐? 그냥 나가면 된단다. 하지만 이미 코인으로 인한 불행이 잉태됐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탄 전철,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구조 자체가 시쳇말로 대략 난감이다. 폭이 좁디좁아서 앞에 사람과 겸상 받듯 가까이 앉아야 한다. 잘하면 얼굴 맞닿겠다. 다행히 내 앞에는 예쁜 여자가 앉아있다. 물론 딱 거기까지만 다행이다. 그녀 옆에는 남편이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다. 이들 역시 외국에서 온 여행객인 것 같다. 두 정거장을 간 뒤 내리더니 이번엔 아가씨가 탄다. 이번에야 말로. 어라? 이 아가씨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이게 웬 ㄸ…. 그런데 가만히 보니 눈의 초점이 내게서 약간 비껴나 있다. 그럼 그렇지. 내 옆에 그녀의 남자친구가 서 있다. ! 열차는 지상과 지하를 교대로 달린다. 내가 내려야하는 역은 가만, 가만, 굉장히 어려운 역인데? 맞다. 제이틴부르누(Zeytinburnu). 이 역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고 구시가지까지 가야한다. 전철역과 트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종점인 악사라이 역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것보다는 편리하단다.

메트로 정거장 풍경.

트램을 타고 가는 길.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다행히 하늘이 어여삐 여기고 순국영령이 보우하사 제이틴부르누 역을 안 놓치고 제대로 내렸다. 트램으로 갈아타기 위해 사람들을 졸래졸래 따라가는데, 또 한 번 문제가 터졌다. 모두가 거기서 다시 코인을 넣고 트램 쪽으로 넘어간다. ? 난 코인이 없는데? 아까 안받아왔단 말이야.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코인을 갖고 있지? 그 역무원이 날 속인 거야?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없고 트램은 코앞에 서 있는데 게까지 갈 방법이 없다. 한참 두리번거리는데 이번에도 착하게 산 덕분인지 역무원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다. 역무원 아저씨, 이차 저차 해서 코인을 못 받아왔는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면 좋겠수? 손짓에 발짓까지 섞어서 물어보니,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갈아타려면 제톤을 두 개 사야한단다. 전철과 트램의 코인이 각각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당연한 얘기네. 알아들었으면 저쪽 가서 제톤을 다시 사오란다. , 무슨 국제 관광도시가 이래. 어디다 좀 써놓든가. 역무원에게 물어볼 때 카메라만 신경 쓰지 말고 그런 것도 알려주든가. 괜스레 등에 땀이 흐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떠난 내 스스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책에 다 쓰여 있는 것을. 이스탄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교통카드를 사는 것이다. 악빌(Akbil)이라고 부르는데 역 같은 곳에서 판다. 이거 하나면 버스, 지하철, 트램, 페리 등 뭐든지 만사 오케이라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한 개로 여러 명이 쓸 수도 있고 다 쓰면 충전할 수도 있다.

저 멀리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보인다.

저만치 블루모스크가


다 쓰고 난 악빌은 출국하기 전에 가까운 판매점에 반납하면 보증금도 돌려준다. 깨달은 진리 하나. ‘무식하면 용감하고, 용감하면 고생한다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트램으로 갈아탔다. 이제 구시가지의 술탄아흐메트역에서 내리는 것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좀 마음이 놓이니 별 쓸데없는 게 궁금해진다. 출근시간인데 왜 이렇게 트램이 한가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떠오른 생각. 그래, 오늘 일요일이잖아. 왠지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더라니. 요일이야 어떻든 나는 지금 로마 땅을 달리고 있다. 사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이곳은 1000년 넘게 로마의 수도였던 곳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이 걸쳐 있는 도시이자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터키 최대 도시다. 동양과 서양 문화,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만나고 융합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공화국의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갔지만 이스탄불은 여전히 이 나라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부동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벅차게 뛰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에 유적들도 보인다. 내가 드디어 이스탄불 한 가운데에 발을 디뎠구나. 트램이 서고 드디어 술탄마흐메트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저만치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어서 오라고,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 손짓한다. 야호!! 나는 지금 이스탄불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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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알란야의 호텔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

알란야에서 묵었던 호텔.

드디어 10월을 맞이하다

아폴론신전의 야경에 흠뻑 취한 채 시데를 출발한 시간이 720.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 씻고 누우면 얼마나 좋을까만 지금부터 알란야(Alanya)로 가야한다. 그곳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버스가 안탈리아 시내를 벗어나니 오로지 캄캄한 세상. 창밖을 스쳐가는 풍경을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뿐이다. 그래, 때로는 상상 속의 풍경이 더욱 아름다울 때도 있는 법. 알란야는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져 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이슥한 밤이다. 이러다 저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는지 원. 설마 굶기기야 하겠나. 알란야 시내에 도착해서도 버스는 골목골목을 누비더니 해변 쪽으로 빠져나가는 기색이다. 창밖 가로등 아래, 빵을 사들고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여인의 실루엣과 조우한다. 여기도 생로병사, 부와 가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곳. 낯선 도시에 대한 이질감이 반으로 줄어든다. 호텔에 도착하니 늦은 밤인데도 뷔페식 식사가 마련돼 있다. 다른 손님들이 없는 것을 보니 따로 식사를 준비해달라고 미리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다가 창밖을 보니, ! 그곳엔 또 특별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호텔 아래 도로 건너가 바로 바다인 듯, 정박한 배들과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무슨 조명을 쓰기에 저런 황금도시를 만들었을까. 식사를 하다말고 굳이 창문에 카메라를 대고 풍경을 찍는다. 좀 흔들리면 어때. 부랴부랴 밥을 먹고 나니 씻고 잠자기도 바쁘다.

딤 동굴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알란야 전경.

딤 동굴의 종유석들.

아침에 일어나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101일 토요일이라고 가르쳐 준다. 드디어 달이 넘어갔구나. 10월이란 단어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 쯤 내가 사는 땅에는 가을이 물씬 익어갈 텐데. 내겐 오늘이 지중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다큐팀은 내일을 쉬는 날로 잡았지만, 나는 그들과 헤어져 이스탄불로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올 곳이지만 터키까지 와서 역사와 문화의 보고(寶庫), 이스탄불을 그냥 스쳐 지나간다는 건 예의가 아니다. 외로운 길이겠지만 어차피 여행이란 외로움을 담보로 내놓고 신천지를 보는 것. 떠나는 건 떠나는 것이고 알란야도 충분히 탐색해볼 일이다. 아침식사 후 맨 먼저 길을 잡은 건 딤(Dim) 동굴. 종유석과 석순이 장관이라고 한다. 가는 길에 현대자동차 매장을 만난다. 괜스레 뿌듯하다. 여기서는 현대를 휸다이로 읽는단다. 그럼 삼성은? 삼숭이란다. 그렇게 읽힐 줄 알았으면 애당초 이름을 좀 더 쉽고 글로벌하게 지었을 텐데. 창업주들이 옛날 기업을 일으킬 때, 이렇게 세상을 누비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딤 동굴은 산 중턱에 있다. 가는 길에 보이는 비치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진을 쳤다. , 이 사람들아. 이젠 10월이라고 10. 내 조국에서는 서리가 내릴 판인데 어쩌려고 홀딱 벗고 물로 뛰어들어. 하긴, 자신들이 좋다는데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딤 동굴은 버스로 한참 올라간 뒤 다시 조금 걸어가야 한다. 해발 240m라니 그리 높지는 않다.

온갖 형상의 석순과 종유석.

딤 강 유원지.

400가지의 메뉴에 질리다

산에는 소나무가 유난히 많다. 당연히 솔방울도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어릴 적 땔감을 찾아 솔방울을 주우러 다니던 생각이 난다. 저 정도면 밥 한 끼는 거뜬히 할 텐데. 이 촌놈 냄새는 언제나 내 몸을 빠져나가려는지. 아마 운명처럼 끌어안고 죽을 것이다. 동굴은 우리의 석회동굴과 그리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아기자기 하달까. 종유석과 석순들이 재주껏 삼라만상을 만들었다. 부처도 있고 해파리도 있고, 어느 건 폭포처럼 우르르 소리 내며 흘러내릴 것 같고. 형성된 지 100만년 정도로 추산된다는 이 동굴은 길이가 총 360m. 터키에서 손꼽히는 것은 물론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동굴이란다. 맨 앞에서 열심히 가다보니 작은 못이 나오고 거기가 끝이다. 곳곳에서 파닥 파닥 머리 위를 나는 박쥐 떼를 만난다. 너희들의 영역에 이방인이 침입한 셈이구나. 주는 것 없이 단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 나와, 길가 매점에서 차이를 한 잔 마시며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다. 다음 목적지는 딤 강(). 딤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러고 보면 딤이라는 게 이 지역의 이름인 모양이다. 특별히 찾아간다기에 대단한 강인가 했더니 폭이 개천 수준이다. 대신 수량은 제법 많다. 여길 왜? 궁금했는데 다큐팀의 일정에 포함됐단다. 우리의 유원지와 비슷한 곳이다. 한탄간 유원지, 송추 유원지그런 식. , 강물을 끼고 장사를 하는 곳인데 우리의 유원지보다 훨씬 잘 만들어놓았다.

강 위에 설치된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나무판자로 강을 덮고 철제 기둥으로 칸을 나눈 다음에 고급스런 등받이 의자를 설치했다. 칸과 칸 사이에는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이 보이도록 해놓았다. 이 정도 환경이라면 닭백숙에 소주 혹은 파전에 막걸리가 제격인데 이곳 사람들은 주로 차를 마신단다. 싱거운 사람들 같으니. 그런데 차만 파는 것은 아니다. 다큐팀이 작업을 하는 동안 한쪽에 앉아 슬그머니 메뉴판을 열어봤더니. 이런. 대체 이 메뉴가 다. 마시는 것만 해도 soft drink’s, local drink’s, shot drink’s, wine, import drink’s, cocktail’s. 읽다가 숨이 넘어갈 정도다. 여기에 식사(또는 안주가 될 만한 것들)가 수백 가지. 눈대중으로 세어보니(아니 할 일이 없어서 열심히 세어봤더니) 400가지가 넘는다. , 이곳 주방장은 천수관음이냐? 비슷비슷한 재료를 가지고 조금씩 변형시키니 견디는 거겠지? 예를 들면 설렁탕 한 솥 끓여놓고 육개장 시키면 고춧가루 좀 타서 내보내는. 딤 강을 떠나 향한 곳은 유명한 알란야 성채. 그 전에 알란야 성이 왜 유명한지. 알란야가 대체 어떤 곳인지 공부를 안 하고 갈 수는 없다. 중부 지중해에 위치해 있는 알란야는 인구 12만 명의 작지 않은 도시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쪽은 팜필리아, 동쪽은 킬리키아((Kilikia)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을 코라케시온이라 했는데, 기원전에는 동지중해를 누비던 해적들의 소굴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알란야 성채

알란야 성채.

알란야 성채에서

2세기경의 해적 두목 다아도토스 트리폰이란 자는 왕권까지 넘볼 정도로 큰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긴 도둑이건 해적이건 나라를 세우면 왕인 게지. 한고조 유방이나 명태조 주원장의 근본이 왕후장상의 피였더냐. 으음, 이런 소리 함부로 하다가 사회 불만 세력으로 찍힐라. 암튼 그렇게 대단했던 해적도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장악하면서 세력이 약해지게 된다. 이곳은 십자군전쟁과도 인연이 있다. 3차 원정 때에는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프랑스의 필리페가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13세기 이곳을 점령한 셀주크 튀르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가 자신의 이름을 따 알라니예(Alaniyye)로 부른 것이 오늘날 알란야의 어원이 됐다. 셀주크의 술탄들은 겨울이면 이곳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겨울 수도 역할도 했다. 1471년에는 오스만제국의 영토로 편입됐다. 알란야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알란야 성채는 BC 67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해적을 소탕하고 쌓은 것이라는데 1226년에 조금 전 등장했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가 대대적으로 증축했다고 한다. , 지금의 성채는 대부분 셀주크 튀르크 때 쌓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성채까지는 제법 높은데다 가파르기까지 해서 걸어가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여행객이라면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 유적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다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을 권한다. 40~1시간 정도 걸린다.

여기서부터 환상의 풍경이 연출된다.

교회도 자미도 세월에 닳고 무너지고.

나도 혼자라면 당연히 걸어갔겠지만 일행과 함께 움직이려니 버스를 타는 수밖에.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니 알란야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터키, 그중에서도 지중해 지역을 다니다 보면 평생 사용한 감탄사보다 더 많은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믿음 씨 말에 의하면 터키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싸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라고 한다. 자신의 나라를 자랑하려고 하는 말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지중해의 여행지는 유럽 각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다르단다. 예를 들면 안탈리아는 러시아인, 보드롬은 영국인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이곳 알란야는? 독일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다른 곳에 비해 비용이 비교적 싸게 먹히고 덜 복잡하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상당수의 관광객은 투어보다는 진짜 휴식을 위해 휴양지를 찾는단다. 유적을 순례하기보다는 호텔을 정해놓고 그곳에서 축구도 하고 쇼핑을 즐기고 저녁에는 쇼를 보고. 골프를 치러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여름은 덥기 때문에 10월말에서 5월까지가 본격시즌이다. 안탈리아 인근만 해도 20여개의 골프장이 있는데 그린피는 한국보다 비싼 편이란다. 티켓을 끊고 입장해서 본격적으로 성채 탐색에 나선다. 성 안쪽에는 긴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특히 이 지역을 차례차례 차지했던 세력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잔티움 제국의 교회와, 셀주크-오스만 튀르크 제국 초기의 자미.

성벽에는 철망을 씌워놓았다.

돌틈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또 지고...

폭탄테러 소식을 듣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넓은 정원을 만나게 된다. 전쟁을 전제로 만든 성이지만 지금은 그저 평화로운 기운만 가득하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커다란 물 저장고(사르느즈)가 눈에 들어온다. 저장고는 성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하긴 싸움을 하든 족구나 하며 놀든 물만큼 중요한 게 있으랴. 골조만 남아 조금은 흉물스러워 보이는 비잔티움 교회를 지난다. 내 삶을 지키거나 상대방의 죽음을 전제로 한 성채와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교회. 극단적인 이질감 속에서도 또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동질감을 느낀다. 병사들은 포화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전쟁과 평화는 애당초 남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처럼 나란히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인류의 역사를 직조해온 것일지도. 도저히 틈이 없을 것 같은 메마른 성벽에도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냈다. 꽃 한 송이를 통해, 난 지금 평화로운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안도를 얻는다. 얼마 안 가 성벽의 끄트머리에 도달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니 정말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야말로 아름답다는 말이 얼마나 옹색한지 실감나게 해준다. 그동안 내지른 감탄사들이 조금 아깝다. 저만치가 바로 클레오파트라 해변이라지? 클레오파트라는 저 아름다운 해변에서 무엇을 했을까. 시퍼렇다 못해 시커먼 바다. 누가 잉크를 저리 엎질러 놨길래. 막혔던 가슴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저곳이 클레오파트라 해변이라지. 숨이 턱 막히더니 가슴이 뻥 뚫렸다.

성채에서 바라본 알란야 시내.

성채에서 내려오는 길, 예쁘게 가지를 펼친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들인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간 턱을 하느라 그런지 더위가 조금 주춤한 것 같다. 어디선가 철없는 닭이 구성지게 울어댄다. 다행히 꼬끼월월(무슨 소린지 잘 모르는 분은 5회를 읽어보시길)은 아니고 그냥 꼬끼오다. 그런데 이게 웬 환청. 닭 울음이 느닷없이 병사의 외침으로 바뀐다. “적이 쳐들어온다, 적이 쳐들어온다. 세시 방향, 세시 방향으로 대포를.” 에구, 이제 별 소리가 다 들리는구나. 얼른 내려가야겠다. 내려오는 길에 가로수에 늘어져 있는 능소화가 눈길을 잡는다. 10월의 능소화라. 여긴 뭐든지 철이 없구나. 내려오는데 코디네이터 엄상욱 씨가 어제 우리가 있던 안탈리아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고 전해준다. 1명이 죽고 2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별 일 없느냐고 친구가 연락을 해왔단다. 그런데 터키인인 믿음 씨는 그 사실을 아예 모른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몇 가운데 연락을 해보더니 확인이 안 된단다. 하긴 이 동네에서 쿠르드족의 테러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외신에서나 다루는 뉴스란다. 지진과 쿠르드족은 터키의 풀리지 않는 숙제다. 쿠르드족은 아나톨리아 동부에 분포돼 있는데, 산악지대의 주민은 반()유목민이며 평야지대에서는 농경으로 삶을 꾸린다. 16세 초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점령당했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뒤 거주지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되면서 3000만 명이 터키와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살게 됐다.

저 푸른 바다를 지나는 배도 파랗게 물들 것 같다.

풍덩 뛰어들고 싶은 심정들일까?

떠돌이 개의 천국 터키

그중에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는 터키로 1200만 명에서 1500만 명 정도를 헤아린다. 1970년대 들어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PKK), 이라크의 쿠르드애국동맹(PUK)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으로 각국에 내전이 발발, 10년간 4만 명 이상이 죽고 2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특히 터키 남동부에 대한 자치권을 주장하고 있는 PKK는 지난 1984년 이후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 본거지를 두고 터키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어제 안탈리아의 폭탄테러도 그런 무장 투쟁의 일환으로 일으킨 것이다. 테러를 할 때는 외국인들이 없는 군사지역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지만 그래도 어찌 아나, 폭탄에 눈이 없으니. 은근히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오늘 메뉴는 햄버거란다. 원래 즐기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보조를 맞출 수밖에. 찾아간 곳은 익숙한 간판 버거킹. 전에 먹어본 기억이 있길래 베이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별 사람 다 보겠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아차! 여긴 이슬람국가지. 돼지고기가 있을 턱이 있나. 그럼 치킨!! 닭 안 먹는단 얘긴 없더라. 가게 앞 큰 길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햄버거를 베어 무는데 덩치 큰 검정개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슬그머니 길 가운데 눕는다. 길 양쪽으로 테이블을 놓았고 그나마 터놓은 길이 거긴데 개가 누워버렸으니 오가는 사람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그래도 다들 건드리지 않고 슬그머니 피해서 간다.

길을 턱하니 막고 있는 떠돌이 개. 음식도 골라먹는다.

 

배가 고픈가 싶어서 햄버거 조각을 줬더니, “네 정성이 갸륵해 먹어준다는 듯 심하게 게으른 동작으로 다가와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다. 세상의 양반 개는 여기 다 모였나. 그리고는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참선에 들어간다. 이왕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터키는 집 없는 동물(반드시 유기동물은 아니다)의 천국이다. 특히 개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오가며 산다. 복잡한 거리에서도 아무데나 턱, 하고 누우면 그 영역이 절대 보장된다. 보드롬 오래된 빵집 앞의 그 좁은 길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아 행인들을 품평하는 개를 보았고, 알란야 성채에서도 송아지만한 개가 저 멀리 클레오파트라 해변을 바라보며 견생무상(犬生無常)’을 참구(參究)하는 것을 보았다. 어디가나 마찬가지다. ’늘어진 개 팔자라는 말이 이 나라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의 떠돌이 개들이 비루해 보이는 것과 달리 하나같이 깔끔하고 영양상태도 좋다. 먹는 건 이 사람 저 사람이 챙겨주니 별 걱정 안 해도 되고, 건강관리는 관공서에서 해준단다. 귀에 관리를 위한 인식표가 달려 있다나.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천국처럼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떠돌이 개들이여. 편도 비행기 값만 벌면 터키로 가시라. 그곳에 그대들의 파라다이스가 있나니. 눈치 보며 쓰레기통이나 뒤져야 하는 이 나라는 깨끗이 잊으시라. 그나저나 개 얘기 하다가 날 새겠다. 햄버거 하나 먹었으니 힘내고, 또 배낭 메고 일어서야지.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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