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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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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펠로스'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1.09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14] 유람선 위의 사람들28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느닷없이 등장한 백두산 금강대협곡 사진. 샤클르켄트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도시 카쉬

협곡을 빠져나오니 흠뻑 젖었던 옷이 그새 거의 말랐다. 극한상황 뒤의 안도감 때문인지 온몸이 나른하면서도 가뿐하다. 속옷을 갈아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캐리어를 꺼내달라고 하는 것도 미안하려니와 갈아입을 곳도 마땅치 않아 포기한다. 버스가 샤클르켄트를 출발하려는 순간, 지난봄에 다녀왔던 백두산 금강대협곡이 생각난다. , 그게 왜 이제야 생각나지? 그러고 보니 금강대협곡이 샤클르켄트보다 훨씬 멋있었다. 이곳이 조금 음울해 보인다면 금강대협곡은 훨씬 밝고 웅장했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 아래쪽에 있는 V자의 협곡으로 화산 폭발 때 만들어진 것이다. 길이는 약 15km이며 절벽의 높이는 100m~200m. 협곡에 가기 위해 원시림을 통과해야 하는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신비롭고 장엄하다. 샤클르켄트가 계곡에서 트레킹을 직접 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면 그곳은 협곡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난간만 만들어놓았다. 아찔한 절벽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란. 더구나 내가 갔을 땐 절벽 중간 중간에 진달래까지 만개했었다. 물론 그곳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는 중국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원래 땅주인인 우리는 외국 관광객이 되어 갈 수 밖에 없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텐데. 그래서 잘 지켜야 하거늘. 괜한 아쉬움으로 입맛이 쓰다.

페티예에서 카쉬로 가는 길. 산을 깎아서 도로를 만들었다.

카쉬에 내리자마자 내 마음을 빼앗았던 오래된 카펫가게.

카쉬로 가기 위해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은 구절양장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구불구불 끝이 없다. 도로의 왼쪽으로는 산, 오른쪽으로 파란 바다가 이어진다. 산과 바다가 씨줄 날줄처럼 엮여 꿈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카쉬에 도착하니 오후 231. 아직 점심 전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풍스런 건물 하나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오래된 것만 보면 자석 만난 쇠붙이처럼 끌려가는 이 고질병. 다큐팀은 부두 쪽을 향해 가는데 내 발길은 자꾸 그 고택을 향해서 간다. 그 건물이 있는 쪽을 옛날 카쉬라고 부른다고 한다. 집을 반으로 나눠 왼쪽엔 부동산사무실이 있고 오른쪽은 카펫가게가 자리를 잡았는데 마당까지 카펫을 널고 깔아놓았다. 세월을 듬뿍 담은 카펫과 오래된 건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 앞에서 한참 서성거린다. 한눈에 봐도 카쉬는 천혜의 관광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시는 크지 않지만 뒤쪽으로 거대한 바위산이 솟아있다. 그 산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안정감과 강한 인상을 준다. 산이 품은 골짜기마다 하얀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옥색 바다와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부두에 빽빽하게 들어선 배들. 이런 풍경 때문에 사람들은 카쉬를 일러 터키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이라고 하는구나.

바다에서 바라본 카쉬. 골짜기마다 하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일행이 탔던 유람선.

드디어 배를 타다


카쉬는 BC 6세기에 세워진 고대도시로, 그 때 이름은 안티펠로스(Antiphellos)였다. 지리적으로 리키아 연맹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지역의 대외 창구 역할을 했다. 항구도시로 누린 번영을 말해주듯이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리스 양식의 극장과 도리아 양식의 무덤들이 남아있다. 카쉬는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스쿠버다이빙과 트레킹, 래프팅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어 숱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또한 지중해 연안 섬들을 돌아보는 보트투어의 거점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1인당 60리라 정도를 내면 아침에 출발해서 섬들을 돌아보고 오후에 돌아오는 코스다. 조금 길게 해상투어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Blue voyages를 이용하면 된다. Blue voyages란 배에서 며칠간 지내면서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변에 중간 중간 들르는 것을 말한다. 이를 이용하면 육로로는 찾아가기 어려운 고대 리키아의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다. 다큐팀과 합류해보니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 일행도 보트투어를 한단다. 풀코스나 Blue voyages는 아니지만 근해에 나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예약돼 있단다. 야호! 철없는 아이들처럼 환호가 터진다. 저걸 못 타보고 가면 여행기가 앙꼬 없는 찐빵이 될 뻔했는데.

우리가 탔던 유람선 곁으로 지나던 다른 유람선.

유람선만 배냐? 요트도 지나간다.

우리가 탈 배는 일반적인 보트보다는 제법 크고 보드롬 해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범선보다는 작다. 선미(船尾) 쪽에는 가운데에 놓인 식탁을 중심으로 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고, 뱃머리 쪽에는 누워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도록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일광욕이라면 목을 매는 백인들이 참 좋아하게 생겼다. 선실에는 화장실과 주방이 있다. 작은 배지만 있을 건 모두 있는 셈이다. 근처에 정박된 다른 배들도 모두 고만고만한 모습이다. 배에서 일행을 맞은 사람은 40대쯤의 강건한 인상의 남자. 조금 뒤에는 선실 쪽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나와서 수줍은 미소로 반긴다. 선장의 아내인 모양이다. 남자가 배의 시동을 걸자 여자가 선미로 가서 말뚝에 매어 있는 줄을 푼다. 배는 답답했다는 듯이 파란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간다. 늘 바라만 보던 바다 한 가운데로 들어서니 색다른 기분이다. 바다는 맑고 푸르다. 배가 지나가고 있는 곳의 수심이 최소 7m라고 하는데 바닥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거짓말 좀 보태면 지나가는 물고기 눈 흘기는 모습이 보일 정도다.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귓불과 뺨을 스치고 온 몸을 간질인다. 또 한 번 전신을 적시는 평화. 배 옆으로 하얀 돛을 단 요트들이 날치처럼 지나고 점, , 점 작은 섬들도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이 물빛을 보라. 에머럴드인들 이렇게 아름다우랴.

우리의 선장 아저씨. 물론 물고기도 굽는다. 전직은 어부.

배 끝에 이런 그릴이 마련돼 있다.

선장은 어부보다 행복할까?


카야쾨이를 돌아볼 때 이미 이야기 한 적 있지만, 터키로서는 볼 때마다 배가 아파도 한참 아플 섬들이다. 세계 1차 대전에서 괜히 독일 편을 들었다가 패전국이 된 터키.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1923년에 연합국과 맺은 로잔조약에 의해 이스탄불을 되찾는 대신 그동안 차지하고 있던 섬들을 그리스에 내줬다. 유럽에 한 발을 걸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섬을 내줬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터키의 앞바다인데도 섬 근처에서는 휴대전화에 그리스의 와이파이가 잡힌다고 한다. 와이파이도 제 국적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조금 더 나가니 물은 푸르다 못해 검은 색을 띤다. 햇살을 듬뿍 머금은 물비늘이 배가 지나가는 길 옆으로 잇달아 자지러진다. 부부는 항해 중에도 분주하게 오간다. 승객들이 시원한 바람과 검푸른 바다에 흠뻑 빠져 있는 사이 아내는 주방장이 되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선장인 남편은 선미의 그릴에서 생선을 굽는다. 투어코스의 하이라이트가 점심식사기 때문이다. 남편의 직업은 어부였는데 작년에 배를 사서 해상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건져 올리던 손으로 관광객이 탄 유람선을 몰고 물고기를 굽는다. 이 배는 그가 평생 키워온 꿈의 결정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꿈을 이룬 지금 그는 행복할까?

선장의 아내이자 부선장이고 주방장까지 겸하는 그녀. 카메라를 절대 피하지 않는다.

가끔은 발로 배를 모는 서비스 묘기를 보이기도.

선장이 구워낸 도미. 얌마! 눈 깔어.

낯선 사람들과 만나 일하려니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운 점도 있어요.” 말을 극도로 아끼는 그 대답에서 힘들기도 하지만이라는 부분에 좀 더 큰 무게가 실렸다고 생각하는 건 내 억지일까? 차라리 파도나 물고기와 씨름하는 게 낫지 낯선 이방인들을 태우고 고기를 잡던 바다를 돌고 도는 게 뭐 그리 신이 날까. 굳이 송충이와 솔잎까지 들먹일 생각은 없다. 돈을 벌기 위해 평생 꿈꾸던 것이겠지만, 난 그의 얼굴에서 보람대신 후회를 읽고 만다. 아무리 봐도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배를 모는 유람선 선장보다는 힘찬 몸짓으로 그물을 던지는 어부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지금 굽고 있는 도미도 그가 직접 잡은 것이라고 한다. 잠시 뒤에는 아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나씩 내오기 시작한다. 소박한 밥상이다. 감자, 치즈, 샐러드, 마카로니. 그리고 생선구이. 음식 솜씨를 일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배어 있는 정성만큼은 천하진미다. 그녀 역시 어부의 아내에서 어느 날 유람선의 주방장 겸 부선장이 됐을 것이다. 식사를 하는 중에 선장의 아내는 입가에 순박한 미소를 띤 채 이방인들을 살짝살짝 훔쳐본다. 그러다 남편이 자리를 비우면 대신 배를 몰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생각보다 능동적으로 포즈를 취해준다. 가끔은 배를 발로 운전하는 묘기도 보여준다. 얼굴에는 신산한 날들이 고랑으로 그려져 있지만 열심히 살아온 한 여자의 자긍심도 함께 배어있다.

수영 삼매경에 빠진 젊은 친구들. 물이 얼마나 파란지 사람까지 파랗게 물들 것 같다.

배 위와 앞머리에는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엄상욱 씨의 경우


지중해를 가르는 배에 비스듬히 누워 바람을 즐기는 시간,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다. 여행자로서는 조금 과분해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친 젊은 친구들은 언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는지 놀란 개구리처럼 바다로 풍덩풍덩 뛰어든다. 덩치 큰 믿음 씨도 멋진 수영솜씨를 자랑한다. 내가 3년만 젊었어도. 아참, 난 수영을 못하지. . 물이 얼마나 파란지 수영하는 사람들까지 파란색으로 물들 것 같다. 몇몇 사람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물이라는 듯 물끄러미 구경만 한다. 그 중엔 바다에서 용이 단체로 승천해도 모른 척 할 사람도 있다. 바로 앞에서 몇 번 언급했던 엄상욱 씨. 그는 주변 풍경엔 아랑곳 않고 양산을 쓴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을 할 때는 철저한 프로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끽하는 사람이다. 늘 양산을 쓰고 다니는 바람에,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내가 양산맨이란 별명을 하사했다. 그러고 보니 양산과 관련해서 그가 해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난다. 이스탄불에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무조건 한국 여성으로 보면 된단다. 혼자든 단체든 차에서 내렸다 하면 양산부터 펴들기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은근히 흉보던 그대는 왜 우산도 아닌 양산을 그리 열심히 쓰고 다니는 거야.

이 분이 바로 양산맨 엄상욱 씨. 어디에 있든 양산과 함께 한다.

"용이 승천한들 휴대전화만 하랴"

그는 다팀의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이스탄불에서 합류했다. 방송 내용에 맞는 주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모양인데 스튜디오 작업만 주로 해온 내겐 조금 낯설다. 현지인 가이드인 이믿음 씨, 즉 규벤이 있으니 가이드라고 하긴 그렇고, 촬영을 좀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고용한 일종의 로드매니저 역할이다. 섭외는 주로 믿음 씨가 하고 엄상욱 씨의 일은 대부분 다큐팀 통역이다. 여행 당시 36세였으니 이제 37세가 됐다. 인물과 풍채는 훤하게 좋은데 아직 싱글. 그의 공식 직함은 FT TOUR라는 회사의 실장이다. 실질적으로는 대표지만(아주 작은 회사니 대표든 과장이든 별 차이가 없다) 실장이라는 직함을 쓴다. 회사를 차리고 처음 맡은 일이 이번 다큐팀의 코디네이터다. 그 전에는 가이드로 일했다. 터키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국내 여행 한번 변변히 가본 적이 없단다. 그런데 훗날 생각해보니 핏속에 역마살이 흐르더란다. 이스탄불에 있는 친구가 놀러 오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터키행 비행기를 탔던 게 타국살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눌러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친구 따라 장 구경 갔다가 장돌뱅이가 된 셈이다. 가끔 고국에 들르긴 하지만 아주 귀국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헥토르에이전시의 한국인 아가씨도 그렇고 이 엄상욱 씨도 그렇고. 그만큼 터키가 매력 있는 곳이란 얘기인지. 뭔가 핏줄을 당기는 게 있는 건지.

저 멀리 그리스 섬이 보인다.

이곳에서 배가 회항한다. 난 저 집이 무척 궁금했다. 아니 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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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는 혼자 살지만 럭셔리한 생활을 한다고 자랑한다. 김치도 직접 담그고 우리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단다. 타향살이도 제대로 하려면 역시 음식 솜씨가 좋아야. 카야쾨이의 조용한 마을에서 배회로 한나절을 보낼 때, 나를 찾으러 왔던 사람이 바로 이 엄상욱 씨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어디에 어떤 끈으로 연결돼있을지 정말 알 수 없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와 나는 무관한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으로 들어와 살지만, 가까운 내 친구 하나가 그리스에서 여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와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엄상욱 씨의 말에 따르면 내 친구가 여행사 대표로 터키 관광시장을 개척할 당시, 자신은 가이드로 일했다는 것이다. 하긴 그리스와 터키는 보통 하나의 관광코스로 묶기 때문에 만나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어디 가서, 아는 사람 없다고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아무튼 이 엄상욱 씨는 무척 성실한 데다 터키어 실력도 뛰어나보였다. 다음에 전문적으로 터키를 탐구할 일이 있으면 꼭 이 친구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 혹시 독자들 중에 터키에 가실 분이 있으면, 가이드가 필요한 여행이라면, 슬그머니 비밀댓글로 연락하시길.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전액 무료로 팡팡!!!

절벽 위에 보이는 작은 구멍이 리키아 무덤이다. 저건 또 어떻게 만들었을까.

바다 위에서 보내는 꿈같은 시간은 길지 않다.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절벽에서 다시 리키아시대의 무덤들을 본다. 먼저 아민타스 석굴무덤에서도 그랬듯이 저 절벽에 어떻게 저런 무덤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몸을 던져 저 무덤 하나를 만들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믿음 씨가 터키와 그리스 간의 전설을 하나 얘기해준다. 지금은 그리스 땅으로 돼 있는 코스라는 섬이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이란 뜻인데, 터키 땅의 카쉬는 눈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하나였던 눈과 눈썹이 헤어져 있는 셈이다. 배는 나갈 때보다 더 빨리 돌아와 일행을 부두에 내려놓는다. 이제부터는 눈썹인 카쉬의 구시가지를 본격적으로 탐색할 시간. 낯선 땅은 늘 설렘을 먼저 선물한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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