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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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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댐'에 해당되는 글 1

  1. 2012.10.01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12]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의 무덤14

넴루트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노인과 당나귀.

당나귀를 만난 건 넴루트산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2,150m의 산을 오르는 데는 버스도 허덕거리는 판이었다. 그런 길을 노인 하나가 당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올라가고 있었다. 노인의 체구가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짐까지 가득 실었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몇몇 사진쟁이, 다른 이들의 눈총을 무릅쓰고 버스를 세운다. 차에서 후다닥 뛰어 내려가 셔터를 누르는데 노인이 자꾸 손짓을 하며 뭐라고 한다. 아마 저리 가란 뜻인 것 같다. 에이, 사진 좀 찍는다고 뭘 그렇게 소리까지 지르시고. 버스에 올라와서 저 노인이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으니, 가까이 가면 당나귀가 미쳐 날뛰는 수도 있으니 좀 떨어져서 찍으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투덜거렸네. 할아버지 죄송해요. 다시 바라보니 당나귀나 노인이나 유유자적이다.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별 수 있겠느냐는 달관적 포기가 얼굴에 그득하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넴루트산은 말라티아에서 차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는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시러강과 동행한다. 산은 황량하고 강바닥은 말라있다. 비가 많은 봄에는 물이 많지만 여름에는 곧잘 강바닥을 드러낸단다. 문제는 모래가 드러나면 건축업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퍼간단다. 이 동네도 모래라면 환장하는 인간들이 있었네 그려. 그래, 모래 퍼 먹고 잘들 살아라. 자연이 준 게 모두 공짜인 줄 알면 큰 코 다치느니. 함부로 퍼 쓰다가는 그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자연도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를 치유하려 애쓰지만, 정도가 넘으면 포기하는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건기라 강바닥이 말라있다.

 

강바닥은 말랐어도 주변엔 초지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낮게 자리 잡은 집들.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에 자주 시선을 빼앗긴다. 어디든 저렇게 생명이 태어나고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 차는 산악지대를 끝없이 달린다. 우리 대사관에서 보낸 문자가 생각난다. ‘접경 지역은 가지 마세요나는 지금 그 접경지역으로 자꾸 달려가고 있다. 이것도 반정부적 행동인가? 하지만 나는 그곳에 꼭 가야할 일이 있다. 차는 이제 본격적으로 넴루트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래를 봐도 꼬불 꼬불, 위를 봐도 꼬불 꼬불. 저 길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걸까. 이렇게 자꾸 올라가다가 느닷없이 하늘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가진 젊음과 도전하는 용기가 아름답다. 끊임없이 이어진 돌산은 잘 벼린 정()도 거부할 것 같다. 그만큼 단단해 보인다. 느닷없이 커다란 분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분지 안의 평원에서 뛰노는 소와 말들. 야생마는 아닐 텐데.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풍경은 경이와 행복감을 동시에 준다. 조금 더 올라가자 드디어 돌무덤이 자리 잡은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너진 석상들도 눈에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몸을 잔뜩 움츠리고 만다.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분다. 저 아래는 펄펄 끓는 여름인데 이곳은 아직도 늦겨울이다. 겉옷을 꺼내 입는다. 산정으로 올라가는 길,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이곳에 묻힌 안티오코스 왕이 나를 거부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기어이 그대를 만나고 가리라. 곧 이 거대한 고대 묘지의 동쪽 테라스에 도착한다. 계단에 주저앉아 한숨을 몰아쉰다.

 

넴루트 산을 오르는 길.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

이제 이곳이 대체 어디며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설명하고 가야하겠지? 이곳에는 신이 되고자 하는 싸가지 없는꿈을 품었던 한 인간이 묻힌 무덤이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안티오코스 1. 옛날 아주 옛날에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이렇게 시작해서 벌거벗은 임금님식의 우화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지금 얘기하는 건 분명히 실재했던 역사다. 옛날이야기 같은 역사. 아나톨리아 땅 카파도키아의 북쪽에 콤마네게라는 왕국이 있었다. 처음부터 왕국은 아니었고, 팔자 사나운 년 역마살 타고난 사내 따라다니듯, 이 나라 저 나라에 묻어가던 속국 쯤 됐었다. 히타이트의 변방으로도 살았고,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에 점령되기도 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 치하에도 있었고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셀레우코스 왕조가 임명한 콤마네게의 총독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사람이 나도 나라 하나 세워보자고 독립을 선언했다. BC 162년에 있었던 일이다. 여기에서부터 별로 길지 않았던 콤마네게 왕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안티오코스라는 이름을 가진 네 명의 왕과 미트리다테스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왕이 다스리다 사라진 나라다보니 역사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사실 이 나라는 넴루트산의 이 거대한 무덤이 아니라면 역사에 이름을 올릴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 왕국을 유명하게 한 사람이 바로 안티오코스 1세로 넴루트산 꼭대기에 무덤을 세운 주인공이다. 또 독립 왕국을 세운 프톨레마이오스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안티오코스 1세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면서 스스로를 신과 동격이라고 선언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분지에는소와 말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돌무덤.

여기서부터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이 왕국의 역사는 안티오코스 1세의 역사다. 그가 죽은 뒤 후손들이 살아간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에 종속변수로 존재할 뿐이다. 로마는 정권을 가진 자의 입맛에 따라 이 작은 나라를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 원정 전쟁에 불러내기도 하고 필요하면 왕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서기 59년에 벌어진 로마와 아르메니아의 전쟁 때에도 불려갔다. 이 전쟁에서 이기면서 안티오코스 4세는 아르메니아 일부를 얻었지만, 그 떡이 바로 쥐약이었다. 그는 페르시아와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고 로마에 의해 왕위를 박탈당했다. 서기 72년이었다. 그와 그의 가족은 모두 로마로 불려갔다. 이로서 콤마네게 왕국은 역사에서 그 이름을 완전히 지우고 로마의 일부가 되었다. 다시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 안티오코스 1세가 무덤을 만들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는 살아있을 때부터 자신의 왕릉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콤마네게 사람들은 신들은 하늘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에 신전을 만들었다. 안티오코스 1세도 자신의 왕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넴루트산의 꼭대기 바위에 자신이 사후에 들어갈 석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바위를 깨트려 만든 주먹만한 돌들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물론 비밀의 문도 만들었을 것이다. 봉분의 원래 높이는 60m였지만 조금씩 흘러내리고 또 석실을 찾으려는 후세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면서 50m로 낮아졌다. 지금도 돌들이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덤에는 안티오코스 1세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미트리다테스 1세 등도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 테라스의 석상 몸체들.

석상들의 머리가 따로 떨어져나와 있다.

이 능묘에서 챙겨봐야 할 것은 거대한 자갈 봉분이 아니라 석상들이다. 묘에는 동쪽과 서쪽, 북쪽 세 곳에 테라스를 만들었다. 테라스는 종교의식을 치르는 성스러운 장소, 히에로테시온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제단 뿐 아니라 신상들이 서있다. 동쪽 제단에는 아폴로, 제우스, 안티오코스(자신이 신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끼어있다), 헤라클레스, 독수리, 사자의 석상 등이 있다. 반대쪽인 서쪽에는 사자와 독수리, 안티오코스(또 꼈다), 아폴로, 제우스, 헤라클레스 등이 있다. 안티오코스 자신과 신들을 함께 조각함으로써 신과 동격이라는 것을 못 박은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신들 사이에 사자와 독수리는 웬일일까. 사자는 들짐승의 왕을 상징하고 독수리는 날짐승의 왕이라 하여 모두 왕권을 나타낸다. 또 독수리는 제우스신의 신조(神鳥)이기도 한데, 바로 인간과 신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신상들은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크다. 대부분 높이가 8m 정도인데 무게로 치면 60t이나 된다. 아무리 둘러봐도 근처에는 60t 정도의 돌이 없다. 그렇다면 제법 먼 곳에서 바위를 옮겨왔다는 것인데 2000m가 넘는 이 산꼭대기까지 어떻게? 모든 게 신기할 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신상들의 조각을 보면 대개 그리스 신과 페르시아 신들을 절충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대외적 환경이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 신상들의 얼굴은 그리스풍이지만 모습 자체는 헬레니즘의 유행과 맞아떨어진다. 모자, 의상, 신발, 헤어스타일은 페르시아풍이다. 각 신상의 뒷면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리스어 비문이 쓰여 있다.

 

북쪽 테라스에서 바라본 봉분.

북쪽 테라스에는 석판들의 잔해만 남았다.

문제는 이들 석상들의 모습이 온전치 못하다는데 있다. 대부분 머리가 굴러 떨어져 있다. 꼭 시간의 심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아나톨리아의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지진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스교도들이 일부러 밀어 떨어트렸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코 부분이 주로 파손 된 것을 놓고 이 말 저 말이 많다. 설마! 그냥 지어낸 말이겠지. 과정이 어떻든 간에 신이 되고자 했던 한 인간의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계단에 앉아 거친 숨을 가라앉히니 거대한 무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왕권이 대단하긴 했구나. 이 높은 곳에 저런 구조물들을 세우다니. 지금의 터키, 그리스인들이 살았고 로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한 때는 알렉산도르스와 페르시아의 점령지였고 투르크가 차지한 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참 놀라운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과연 그 위대한 유산들이 인간의 힘으로 이뤄진 것일까.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역광 때문에 셔터 누르기가 두렵다. 정말 안 좋은 시간에 올라온 셈이다. 이곳은 일출과 일몰 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별러서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대개 새벽시간을 선택한다. 황홀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워낙 고지대이다 보니 한 여름에도 새벽에는 무척 춥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옷은 물론 담요를 챙겨서 와야 한다. 그런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 광경을 놓치고 말았다. 조금 속상하다. 일출을 제대로 보려면 보통 새벽 3시쯤에 출발해야 한다. 넴루트산은 여름 한철만 개방한다.

 

서쪽 테라스로 가는 길.

 

동쪽 테라스에 있는 사자상.

다른 사람들이 동쪽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슬그머니 북쪽으로 간다. 이곳에는 테라스는 없고 몇몇 석판들의 잔해만 남아 있다. 적막만 감도는 이곳이야말로 진짜 무덤 같다. 맨 꼭대기에서 돌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려온다. 아득한 옛날에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돌이 나를 반기듯 내려와 발치에 머문다. 이 돌과 나는 어떤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까. 이 돌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것일까. 하늘은 징그러울 정도로 파랗고 내 앞에 있는 돌의 침묵은 길어진다. 사실 이 거대한 돌무덤과 석상들은 오랜 세월 망각된 존재였다. 넴루트산 위에 거대한 구조물이 있다는 게 알려진 것은 1881년 독일인 칼 세스터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 그는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항구에서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달라고 고용한 사람이었다. 길을 찾던 그가 콤마게네 지역에서 아시리아 유적을 찾았다는 보고를 했다. 다음해에 터키 학자들이 이곳을 방문했고 1883년 넴루트산 정상에 있는 돌무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발굴은 그보다 훨씬 뒤인 1938년 미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특히 테레사 고엘이라는 여성 학자의 이 유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한 재를 무덤 인근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유언대로 그녀는 영원히 이 무덤 주변에 머물고 있다. 1986년부터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석실의 입구는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쪽 테라스.

 

이제 서쪽 테라스로 넘어간다. 이곳의 모습은 대체로 동쪽 테라스와 비슷하다. 다만 석상들이 동쪽보다 훨씬 심하게 파손됐다. 동쪽테라스의 석상들이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나란히 정리돼 있다면 이곳의 석상 머리들은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다. 이곳에는 콤마게네 왕조의 조상들을 새긴 석판이 잘 보존돼 있다. 나는 또 엉뚱한 상념에 빠진다. 이곳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묻혀 있을까. 신이 되고 싶었던, 지금 내 상식으로는 약간 머리에 이상이 있는, 왕 하나의 사후를 위해서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예라는 이름으로 노역에 시달리고 죽어갔을 사람들. 그 모습을 보고 들었을 산천은 그저 무심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눈 아래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평원을 가로지른 길 하나가 끝없이 달려가고 있다. 아드야만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평원을 벗어난 산들은 산악지대 특유의 삭막함을 보여주고 있다. 계곡들은 바짝 말라있다. 예전에는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 계곡마다 숲을 이루고 기름진 토양을 만들었다지. 무엇이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었을까. 기껏 해봐야 시간에 핑계를 미루는 수밖에. 서쪽 테라스를 벗어나 남쪽으로 간다.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봉분만 눈에 들어온다. 가늘게 풀어진 길 하나가 산 밑으로 더듬더듬 내려가고 있다. 올라온 쪽이 말라티야라면 내려가는 쪽은 아드야만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동생이브라힘의 고향이라는 곳. 길 끝에 건물 하나가 서 있다. 휴게소인가보다.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 안티오코스 1세.

석판에 새겨진 조각들.

눈을 들어보면 저 먼 곳에는 파란 물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물은 갇혀 있는 듯 움직임이 없다. 저게 뭐지? 훌리아를 불러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보이는 게 아타튀르크댐이고 왼쪽이 카라카야댐이란다. 카라카야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아타튀르크댐은 익숙하다.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한 나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댐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줄기에 댐을 세우고 메마른 대지에 물을 대서 옥토로 바꾸는, 터키 동남부개발프로젝트를 GAP라고 부른다. 그동안 낙후됐던 동남부 지역을 곡창 지대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 아래 1974년부터 시작됐다. 특히 돌과 흙으로 채워진 8400만m²의 아타튀르크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댐의 물은 수로와 운하를 통해 남쪽의 170만ha의 평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터키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농업, 교육, 관광 뿐 아니라 위생상태의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국제적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특히 시리아와 긴장관계의 이면에는 이 프로젝트가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그리스 강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경계선에 있다. 따라서 이 두 나라는 터키가 물을 독점하려고 한다.”면서 문제를 삼아왔다. 상류에서 거대한 댐을 막아버리면 수자원 사용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수도꼭지를 남의 나라에 맡기는 꼴이 된다. 하지만 터키는 그 정도 문제 제기로 물러날 기미는 없는 것 같다. 내 땅을 흐르는 강을 내가 좀 막아서 써보겠다는데 왜 시비야. 그러고 보면 또 딱히 할 말도 없다.

 

저 길을 따라 아드야만 쪽으로 간다.

저 멀리 아타튀르크댐이 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댐 건설로 이주해야하는 주민만 해도 15,000명이 넘는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을 떠나야한다. 우리 땅에서도 댐을 막을 때마다 일어나는 비극이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이주해야하는 대상이 쿠르드족이라는데 있다.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운동을 막기 위해 댐 건설을 추진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사정이야 어떻든 2000m가 넘는 산정에서 바라보는 평원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뱀의 등을 탄 듯, 구불구불 걸어 산 아래로 내려온다. 시간을 보니 630. 아쉽다. 일몰까지 1시간만 기다리면 되는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다. 물론 혼자 버틴다고 해결될 될 일은 아니다. ! 다음에 꼭 혼자 와서 일출, 일몰 실컷 보고 갈 테다. 터키에서는 이곳 넴루트산을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부른다. 내가 봐도 그런 주장을 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대외 홍보물에도 안티오코스 왕의 머리나 독수리 상을 빼놓지 않는다. 이 높은 곳에 세워진 거대한 왕릉. 풀어내기 어려운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다 내려와서도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본다.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 그의 무너진 꿈들이 자갈돌이 되어 자꾸 굴러 내려온다콤마네게 왕국의 흔적역시 모두 지워졌다. 수도였던 샴샤트의 위치를 표시하는 유적들은 아타튀르크댐에 모두 수장됐다. 지워진 왕국의  안티오코스 1, 그는 지금 물속에 잠긴 왕국과 거대한 무덤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각종 기념품을 파는 휴게소.

아래로 내려오니 위에서 짐작한대로 휴게소가 있다. 뒤뜰에는 당나귀가 매어져 있다. 당나귀를 타고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준비했겠지. 그렇게 편하고 싶으면 집에 그냥 있을 것이지. 여기서 좀 쉬고 샨르우르파로 떠나게 된다. 휴게소 기념품 가게에서 흥정이 벌어진다.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에 있었던 석상들이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그걸 살까말까 망설이길래 터키어라고는 두 마디밖에 못하는 내가 오지랖 넓게 흥정에 나선다. 주인이 35리라를 부른다. 무슨 소리야. 너무 비싸. 그리고 그냥 팔면 아저씨도 재미없잖아.

조금만 깎아줘요.”

안 돼

조금만. 22리라면 딱 좋겠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돈이면 본전도 안 되거든? 29리라까지는 생각해볼게.”

에이, 그럼 안 사. (돌아서는 척 하다)저 혹시25리라는 어떨까? 그래봐야 10리라 깎는 건데.”

결국 25리라에 합의를 본다. 그 과정 내내 웃음이 질펀하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은 없다. 거봐. 여행의 재미는 깎는 거라니까. 물건도 안 사는 주제에 큰 소리 치기는.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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