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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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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야기, 그 두 번째 장정을 시작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연재했던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후 조리도 못한 채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일종의 신고 의식이 필요했던 셈이지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번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블로그에 연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책으로 낼까.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는 오랜 원칙을 깰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또 긴 여정에 들어갑니다. 읽은 뒤 그냥 가지 말고 한 줄 답글로 아는 척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권과 마찬가지로 댓글로 격려해주신 분들에게는 2권이 출간된 뒤 저자 사인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사진 왼쪽 넓은 바다가 마르마라해, 오른쪽으로 꺾어진 해협이 흑해와 연결되는 보스포루스, 가운데 강 같은 곳이 골든혼이다. 육지는 맨 왼쪽 반도처럼 나온 곳이 유럽 쪽의 구시가지, 골든혼을 건너 펼쳐진 땅이 역시 유럽의 신시가지. 그리고 앤 앞쪽에 보이는 것이 아시아 땅이다.

전쟁? 절대 안 나요.”

새벽 430.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두 명의 청년. 시리아와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들이대듯 묻자, 모루에 해머를 내리치듯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 왜 안 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전쟁을 해서 이득을 보는 쪽이 아무도 없거든요. 시리아는 물론이고 터키 역시 마찬가지예요. 전쟁이 나면 관광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잖아요. 또 전쟁에서 이긴다고 땅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옛날하고는 달라요.”

으으음”(엄청나게 감탄했다는 듯 끄떡끄떡)

미국도 이스라엘도 이득 볼 게 없고중국 역시 반대하는데다 NATO도 전쟁에 참여할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어요.”

그렇구나. 전쟁이 안 일어나는구나. 헌데, 이 친구들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해박하지? 내가 장군 출신의 군사평론가들을 만난 건가? 그나저나 안 물어봐줬으면 얼마나 섭섭할 뻔 했니? 나는 감탄을 지나 감동까지 하고 만다. 하늘의 점지로 우연히 만나게 된 터키 청년들. 한국에서 3년가량 일하고 돌아왔다는 그들과의 질펀한 수다가 시작된다. 너희들 딱 걸렸어. 내가 바로 그 유명한 호기심 사나이거든.

 

하늘에서 본 이스탄불.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한 게 더위전쟁이었다. 더위야 최종 목적지로 잡은 샨르우르파란 곳이 섭씨 50도를 넘나든다니 염려해주는 게 당연하지만 느닷없이 전쟁 걱정은 왜? 출발을 코앞에 두고 터키와 시리아 간에 전쟁 발발 가능성을 예고하는 사건이 터졌다. 먼저 시리아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지중해 연안에서 터키 전투기를 격추했다. 불뚝 성질 하나만큼은 선불 맞은 멧돼지도 부럽지 않을 터키가 넙죽 엎드려 있을 턱이 있나. 반응은 즉각 나왔다. 국경에 접근하는 시리아 군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고 대공포와 미사일 발사기 등을 국경지대에 배치했다. 여기까지가 출발 직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문제는 내가 갈 곳이 바로 잘못 넘어지면 배꼽이 국경선을 넘어갈 정도로 시리아에 가까운 접경지역이라는데 있었다. 몇몇 사람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고 몇몇 사람은 뭔가 기대하는 눈초리로 등을 떠밀었다. 이참에 날 치워버리겠다는 심보겠지? 나는 잘하면 종군기자 한번 해보겠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현실성 떨어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목표로 했던 지역을 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였다.  그러다보니 공항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 전쟁’일 수밖에 없었. 터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공항이나 이스탄불, 그리고 훗날 접경지역에서 만난 그 누구도 전쟁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걱정 따위는 서리서리 접어 배낭에 넣어두고 어렵게 만난 청년들하고 놀아볼 일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

주로 이야기를 나눈 청년의 이름은 이브라힘이다.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유일신 3대 종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이슬람식 표기가 바로 이브라힘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에는 드물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와 친해질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 일했다는 경험이상의 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갔을 때 서울에서 일했어요?”

아뇨, 저는 주로 지방에 있었어요. 혹시 예산이라고 아세요?”

예산?(사람들이 놀라 돌아볼 만큼 목소리가 커진다) 아다 마다야? 그쪽이 바로 내 고향이에요. 수덕사라고 들어봤어요? 내가 거기서 자랐거든.”

정말요?(기특한 것. 한국식 추임새까지 넣을 줄 알고). 제가 바로 예산에서 일했어요. 수덕사도 당근 알지요. 덕산을 거쳐서 가는.”

어라? 어라?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야. 이 머나먼 곳에 와서. 이 정도면 고향 동생? 아니, 동생이라기에는 나이차이가 좀 나고. 아무튼 객지에서 고향의 조카쯤 만난 듯한 감동이 물밀 듯 몰려온다. 이야기는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말투도 은근히 내려간다. 그의 소망은 한국에 가서 식당을 차리는 거란다. 전에 돈을 좀 벌어서 식당을 열었는데 망했다고 아쉬워한다. 터키에도 코리언 드림을 품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고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다.

 

아타튀르크 공항 내부.

식당을 차리면 서울은 좀 어려울 것 같고. 대전이나 천안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저 개업하면 형이 신문에 내줄 수 있어요?”

그럼, 내주다마다. 신문이 문제야? ‘테레비에도 빵빵 때려줄 테니 차리기만 해.”

내가 준 명함에서 신문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 친구, ‘실속하나 챙긴다. 나는 훗날 걱정 같은 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덜컥 굳은 맹세부터 한다. 내가 무슨 재주로 음식점 개업 소식을 신문에 내고 TV에 때려준단 말이냐. 하지만 그 소망 가득한 눈망울 앞에서 차마 “No”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용기부터 주는 거야. 그나저나 언제부터 우리가 형 동생이 됐지? 아무렴 어떠랴. 터키에 어린 동생 하나 생겼으니 좋은 일이지. 우리는 공항 대합실 한 가운데 서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사진도 신나게 찍어댄다. 남들이야 흘끔거리건 말건. 그러다가 결국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말았다. 그의 뜨거운 피가 내게로 내 피가 그에게 흐르는 느낌이 선연하다. ! 너와 나 사이엔 원래 하나의 이름을 가진 강이 흐르고 있었을지도 몰라. 이번 여행 일정에 넴루트 산이 있다니까 그쪽의 아드야만이 자기 고향이라고 또 한 번 팔짝 뛰며 반가워한다. 그래, 인연이라는 게 이렇다니까.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니 안내하고 싶다며 금방이라도 따라나설 기세다. 하지만 그도 직장생활을 하는 몸. 말만으로도 고맙지. 작별을 하기 전에 터키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새벽 승객을 기다리는 공항택시들.

내 동생, 이브라힘아, 너는 네가 유럽인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해?”

유럽이든 아시아든 아무 상관없어요. 우린 터키사람이거든요.”

우문에 현답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물어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터키는 국토의 97%가 아시아 땅(아나톨리아)에 있고 단 3%(트라키아)만 유럽의 끝 발칸반도에 걸쳐 있다. 영토의 비중으로 보면 아시아에 속한 국가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의 일원이 되고 싶은 열망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오스만 제국이 세계를 호령할 때, 동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삼고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기억을 갖고 있는 투르크족. 그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미련일까. 세계 1차 대전에서 참패하고 1923년 로잔조약을 체결할 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에게해의 섬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스탄불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 땅을 갖는다는 상징성과 서구로 연결되는 통로를 지켜야 한다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는 아시아의 이름으로 살기보다는 영광이 대대손손 계속 될 것 같은 유럽에 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찬반 논란이 거세긴 했지만 터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 자동차 번호판도 ‘EU Style’이다. ‘준비된비회원국인 셈이다.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서는 달러보다 유로화가 주로 통용된다.

 

세상은 아직 박명 속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터키는 여전히 유럽연합의 외곽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회원국인 그리스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과 인권이나 키프로스 갈등’, ‘쿠르드족 문제등을 가입 거부 이유로 들지만 까놓고 말하면 유럽은 터키가 싫은 것이다. 과거의 정복자에 대한 공포의 잔해도 있을 테고, 어쩌면 기독교 문화권에 이슬람 문화를 끼어주기 싫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터키 경제에서 별로 덕 볼 것도 없으니 잘(?) 나가는 자기들끼리 놀아보겠다는 수작이기도 하다.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요즘은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에 목을 매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 역시 유럽이 전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등 몇몇 나라의 경제가 도미노 게임이라도 하듯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의 뒤통수를 강타하는 판이니 그 아수라장에 무엇 하러 낄 것인가. 더구나 이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아시아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당신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거야? ‘유럽이든 아시아든 상관없다. 우리는 터키 사람일뿐정답이다. 스스로의 자존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뒤에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얘기가 잠시 무겁게 흘러갔다. 읽다가 덮은 독자는 없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임을 알아야 된다. ‘아빠 좋아? 엄마 좋아?’ 식의 선택지는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니. 아무튼 공항에서 금방 만난 동생 이브리힘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드디어 가이드들을 만났다. 맨 오른쪽이 이젯, 가운데가 훌리아.

한국에 오면 꼭 전화해. 알았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멀어지는 그의 어깨가 듬직하다. 근처에 서 있다가 잠깐 눈이 마주친 여행작가 P가 감탄사를 섞어 한마디 한다.

참 빠르시네요.”

뭐가 빠르다는 거지? 사람 사귀는 게? 내 삶이 그래요. 나는 오로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여행을 하는 걸. 그리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또 사람들 사이를 떠나는 걸. 이별은 상봉을 낳는 것일까? 이브리힘과 헤어지는 찰나에 가이드들이 허겁지겁 나타난다. 그들이 지각하는 바람에 일행은 잠시나마 공항의 미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귈 기회를 얻었지만. 가이드는 남녀 2명이다. 그들 눈에는 옆 사람과 내가 닮아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들 둘이 무척 닮아 보인다. 혹시 남매나 부부 아닐까? 뭐 차차 알아보면 될 테고. 둘 다 키가 크지 않고 아담하다.  내가 큰 키가 못돼놔서 작은 사람들을 만나면 형제애부터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큰 사람은 가까워지는 단계부터 약간 부담을 느낀다. 가끔은 터키 사람들이 유럽인처럼 키가 큰 줄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큰 사람은 크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작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생긴 것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짐작이긴 하지만, 아주 오랜 옛날 몽골초원에서 돌궐족으로 살 때는 우리네 생김새와 많이 비슷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중앙아시아를 지나며 적절히 피를 섞고 또 아나톨리아에 들어와서 또 다른 피를 섞으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들의 멀고먼 여행 이야기는 터키 역사를 말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하자.

 

여자 가이드의 이름은 훌리아(Fulya). 이들의 한국말은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들보다 어눌하다. 내가 잘 못 알아들으니 훌랄라라고 할 때 훌리아예요.”라며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준다. 훌랄라? 이거 또 괴물 하나 나타난 거 아냐? 그 순간 그녀가 말한 훌랄라는 훗날 많은 사람의 입에서 울랄라가 되기도 하고 얼랄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지만 한국에는 단 하루만 가봤다는 스물일곱의 그녀. 명물이다. 남자 가이드의 이름은 이젯 혹은 가제트를 연상시키는 이제트(Izzet). 어라? 이제트? 이집트에서는 여자 이름인데? 람세스 2세가 뜨겁게 사랑했던 여인이잖아. 이 친구는 비교적 과묵한 편이다. 스물여덟 쥐띠라고 한국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역시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포항에 있는 선린대에서 6개월 어학연수를 받았다. 그 역시 숱한 전설을 남겼다. 한국에 하루 가본 훌리아나 현지에서 6개월 공부한 이젯이나 말이 유창하지 못하긴 마찬가지. 나는 내가 터키말을 배우느니 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로 한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의 한국어 교사다. 하드트레이닝을 시킬 테니 각오하라. 속으로 하는 생각을 그들이 알 턱이 있나. 물론 암울한 미래도 알 수 없겠지. 비행기가 도착한 게 현지시간으로 4시 40분. 새로 만난 동생과 수다를 떨고 가이드들과 감격의 상봉을 해도 아침 먹을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다. 공항을 한 바퀴 돌아본다. 밖으로 나가니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맑은 날이 많은 터키에서는 보기 드문 하늘이다. 9개월 전에 만났던 폭주족 택시운전사가 생각난다. 생명을 담보로 유희를 즐기던 그, 잘 있겠지? 별 사람이 다 보고 싶다.

 

 

차 안에서 찍은 이스탄불의 주택가.

이스탄불 시내로 가는 길. 새벽이라 오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저 어디엔가 잠들어 있을 오욕칠정. 그리고 밝음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음습한 뒷골목 풍경. 사람 살이가 모두 빛과 그림자의 직조물이 아니던가. 오랫동안 궁금했던 게  느닷없이 생각 나 이젯에게 묻는. 이 느닷없음이야말로 나의 오랜 지병이다.

터키에도 집창촌이 있어요?”

? 무슨촌요?”

단어 자체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하긴 학교에서 그런 말을 가르칠 리 있나. 하지만 무슬림이 대부분인 터키에도 집창촌이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그냥 물러설 수 없다. 이리 저리 설명해 보지만 성매매라는 단어조차 모르니 요령부득이다. 이게 어디 온갖 단어를 동원해 설명할 일이던가.

돈 주고 여자를 사는 곳, 몰라요?”

그 말은 효과를 본 모양이다. 잠시 얼굴이 붉어지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있어요.”

정부에서 인정하는 건가요?”

그렇구나. 있구나. 그것도 공식적으로. 하긴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게 그 직업이라지 않던가. 에페소에 가면 고대에 창녀촌을 안내하던 세계 최초의 광고도 있는 판인데.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 동행자들의 눈초리가 약간 새치름해진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이건 순전히 학문적 궁금증이라니까요. 공부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이스탄불 시내.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새벽, 도시는 여전히 적막에 싸여있다. 그리고 모든 갈등은 평화라는 위장막에 덮여있다. 나는 지금 터키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푸듯, 이 도시에 수천 년동안 고인 이야기를 퍼내야 된다. 숙련된 백정처럼 도시의 정수리에 잘 벼린 펜과 카메라를 들이대야 된다. 느닷없이 불타오르는 전의로 온 몸이 뜨거워진다.

 

posted by sagang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석양을 받은 크즐쿨레가 붉게 빛난다.

조선소 쪽에서 바라본 크즐쿨레.

크즐쿨레의 꼭대기층. 가운데에 물 저장고가 있다.


크즐쿨레와 테르사네

오후 일정은 크즐쿨레와 테르사네에서 시작한다. 크즐쿨레는 높이 33m8각형 5층탑을 말한다. 단순히 기념물로 세운 탑은 아니고 직경이 29m나 되는 작은 성이다. 알란야 성이 산 위에 있는데 반해 크즐쿨레는 바다 곁에 세웠다. 두 곳은 서로 마주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다. 셀주크 튀르크의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드 1세 때인 1226년에 지었다. 테르사네는 역시 셀주크 튀르크 지배시기인 1228년에 완공한 조선소다. 그 당시 지어진 조선소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두 곳은 위치도 가깝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크즐쿨레를 지은 목적이 바다를 통한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조선소 테르사네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탑 내부에는 대포도 설치했었다고 한다. 시리아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 탑은 튼튼하기로도 유명하다. 두꺼운 곳은 벽 두께가 무려 12.5m나 된다. 어지간한 대포 정도로는 눈도 깜짝 안하게 생겼다. 단단하게 짓기 위해서 시멘트 반죽을 할 때 달걀을 섞었다는 말도 있다. 건축에는 문외한인지라 달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먹을 것 안 먹고 탑을 짓는데 썼다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겠다. 또 중간 기둥은 신전에서 뜯어다 썼다고 한다. 기둥이 탑보다 훨씬 오래된 셈이다. 1951년에 수리를 하면서 크즐쿨레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붉은 탑이란 뜻이다. 석양 무렵이면 탑 전체가 붉은 보석덩어리처럼 빛난다. 장관이다

.

크즐쿨레 내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각종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탑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이 얼마나 좁고 가파른지 금세 등에 땀이 밴다
. 이 건물은 현재 민속 박물관으로 쓰고 있지만 그렇게 특별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각종 사진과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셀주크 튀르크제국의 인장도 눈에 띄는데 독수리 머리가 둘, 즉 양두독수리다. 하나는 소아시아를 보고 다른 하나는 유럽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두 곳을 점령하면 세상 모두를 점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비잔티움제국 역시 양두 독수리를 인장으로 삼았다. 2층에는 산꼭대기에 있는 알란야 성채와 통하는 길을 만들어놓았다. 비상시에는 이 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맨 위층 한 가운데는 물탱크가 있다. 비상시에 대비해서 빗물을 받아서 보관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장기간 농성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탑의 맨 꼭대기에서 보는 풍경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알란야 성채에서 절경에 취했던 끝이라 감동은 좀 무디다. 이번엔 조선소인 테르사네로 간다. 크즐쿨레에서 내려와 서쪽 성벽 끝 쪽을 보면 다섯 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게 바로 테르사네다. 폐쇄된 상태로 있던 이 조선소가 수리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된 건 올 528일부터였다고 한다. 믿음 씨도 처음 가본다고 기대에 찬 표정이다.

크즐쿨레에서 내려다 본 알란야 언덕의 주택가.

동굴처럼 보이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조선소 테르사네다.

테르사네의 도크와 도크 사이.


세계 最古의 조선소에서


 가장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세계 최고(最古)의 조선소를 볼 수 있으니 나 역시 운이 좋은 편이다. 생각해 보면 독특한 의미를 지닌 조선소인 건 분명하다. 셀주크든 오스만이든 튀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민족이야 말로 근본이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이들 아닌가. 호수 정도에 배를 띄워봤을지는 모르지만, 커다란 전선을 타고 전쟁을 한다는 걸 꿈이나 꿔봤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만든 조선소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튀르크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조선술과 해전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확보한 배나 해전술로 그리스를 지배했다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기는 하지만. 그런 역사를 거치다 보니, 두 나라는 지금도 원수나 다름없다. 아무튼 오스만 튀르크가 해양까지 장악하는 기초가 된 조선소가 바로 이 테르사네다. 키프로스를 정복하러 갔을 때도 바로 이곳에서 만든 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조선소로 가는 길 옆에는 올리브 열매가 소담지게 달려 있다. 오렌지 나무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풍성하게 자란 아주까리도 자주 눈에 띈다. , 아주까리.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것인데. 조선소는 다섯 개의 도크가 있다. 맨 첫 번째 도크에는 목제 기중기가 전시돼 있다. 세월의 때가 덜 묻어 있어 아직은 도크와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한다. 다음 도크에는 건조 중인 목선이 전시돼 있다. 이것 역시 최근에 만든 것이다. 여기서 건조된 배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만조가 되면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테르사네 도크에서 바라본 지중해.

배를 만들 때 쓰던 기중기.

배의 골조.

조선소에서 나오니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 일행과 합류한 뒤 호텔로 돌아간다. 이제 알랸야에서, 아니 지중해에서의 공식일정은 끝났다. 나는 내일 새벽 이스탄불로 떠나야 한다. 저녁을 마치고 일찌감치 다큐팀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들은 저녁 촬영 일정이 있어서 나가야하고 나는 일찌감치 쉬어야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이 같으니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공항이나 인천공항에서 잠시 만나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은 없을 것 같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서로 다른 일을 했지만 편치 않은 길을 함께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동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어지간하면 알란야의 밤 문화도 함께 둘러보고 석별의 정이라도 나누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알란야는 지중해의 휴양지 중에 밤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을 어쩌랴. 그것보다는 새벽에 안탈리아까지 가는 게 더 걱정이다. 알란야는 공항이 없기 때문에 다시 안탈리아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아침 650분 비행기니까 새벽에 출발해야하는데 그 시간에는 버스가 안 다닌다. 택시를 타자니 너무 비싸고, 믿음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호텔 측과 얘기한 끝에 싼값에 미니버스를 내어준단다. 하지만 그 싼값이 내겐 거액이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짐을 정리하다보니 올 때보다 많이 줄었다. 새로 추가된 거라고는 카쉬의 거리에서 산 가죽신 하나.

알란야의 부두.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안탈리아 외곽.

이스탄불로 가는 길. 바다, 산맥, 그리고 도시들이 교대로 나타난다.

지중해와 작별하다

일찌감치 누워보지만 이 생각 저 생각이 거미줄처럼 얽혀 잠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집을 떠나온 지 몇 년은 된 기분이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깜박 잠에 들었나 했는데 알람이 울린다. 새벽 3. 부지런히 샤워하고 옷 입고 호텔 문을 나서니 작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 혼자 버스를 전세 내보기는 처음이다. 출발하려는데 믿음 씨가 눈을 비비며 로비로 내려온다. 운전사와 내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안탈리아 공항까지 잘 태워다주라고 부탁하러 나온 것이다. 고마운 친구. 서울에 오면 내가 쏘가리 매운탕 곱빼기로 쏠게.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자 버스는 온통 캄캄한 새벽길을 달려간다. 안탈리아 공항에 도착해 보니 제법 시간 여유가 있다. 안도감 때문인지 그제야 미뤄뒀던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까딱 잘못 졸았다가 비행기 놓칠라. 캐리어를 인천공항까지 보내고 일찌감치 수속을 밟는다. 650분 이스탄불행 비행기 이륙. 지중해여, 안녕.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아나톨리아 땅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떠도는 영혼들, 그리고 바다, 나무, 바람 한 자락에게까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안탈리아에서 이스탄불까지는 한 시간 남짓. 올 때도 그랬지만, 비행기가 비교적 낮게 날아가기 때문에 산과 바다와 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

낮은 집들도 보이고.

잠시 뒤, 눈에 익은 지형이 들어온다. ? 벌써 이스탄불이네. 보스포루스 해협이 저만치 보인다. 754분 아타튀르크 공항 착륙. 하늘은 시리도록 맑다. 기온은 지중해보다 제법 낮아서 비교적 청량하다. 이제부터 혼자 이스탄불을 탐험해야 한다. 저녁 이맘때까지는 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니 주어진 시간은 열두 시간. 한정된 시간의 외출을 허락 받은 무기수가 이런 심정일까? 낯설고 설레는 것 투성이다. 출발선에 선 스프린터처럼 온 몸의 근육에 긴장을 불어넣고 눈을 부릅뜬다. 지금부터는 버스를 태워줄 사람도 없고 길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 조금 무식하고(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무식하고 전혀 준비가 안 된)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배낭여행자일 뿐이다. 이거 괜한 짓을 하는 건가? 아무튼 힘차게 출발!! 공항서 첫 번째 목적지로 삼은 구시가지의 술탄아흐메트(Sultanahmet)까지는 전철(metro)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트램으로 갈아타야 한다. 전철을 타러 가는 길도 만만찮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물어물어 역에 도착한다. 어라? 여기는 아직도 토큰을 쓰네. 눈치를 보자 하니 우리처럼 전자식이 아니라 플라스틱 코인 같은 것을 넣고 전철을 탄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걸 제톤(Jeton)이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이건 웬 돌발 상황? 서울에서 표를 끊어서 전철을 탈 때처럼, 넣은 코인이 나와야 나갈 때 쓸 텐데 감감 무소식이다. 당황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에 역무원이 있다. 객지에서 오촌당숙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부른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메트로를 타러 가는 길이다.

이스탄불에서 '어리버리'


어이~ 역무원 아저씨. 얘가 내 코인 삼키고 안 내놓는데? 헌데 이 친구 반응이 또 엉뚱하다. 가까이 와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질문은 못 들은 척하고 카메라를 얼마에 샀느냐고 자꾸 묻는다. , 인간아!! 묻는 것에 대답부터 해야지. 이젠 카메라 얼마냐 소리 아주 지겹다. 한참 뒤 설명을 듣고 보니 코인을 넣고 그냥 가면 되는 것이란다. 그럼 나갈 땐? 그냥 나가면 된단다. 하지만 이미 코인으로 인한 불행이 잉태됐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탄 전철,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구조 자체가 시쳇말로 대략 난감이다. 폭이 좁디좁아서 앞에 사람과 겸상 받듯 가까이 앉아야 한다. 잘하면 얼굴 맞닿겠다. 다행히 내 앞에는 예쁜 여자가 앉아있다. 물론 딱 거기까지만 다행이다. 그녀 옆에는 남편이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다. 이들 역시 외국에서 온 여행객인 것 같다. 두 정거장을 간 뒤 내리더니 이번엔 아가씨가 탄다. 이번에야 말로. 어라? 이 아가씨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이게 웬 ㄸ…. 그런데 가만히 보니 눈의 초점이 내게서 약간 비껴나 있다. 그럼 그렇지. 내 옆에 그녀의 남자친구가 서 있다. ! 열차는 지상과 지하를 교대로 달린다. 내가 내려야하는 역은 가만, 가만, 굉장히 어려운 역인데? 맞다. 제이틴부르누(Zeytinburnu). 이 역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고 구시가지까지 가야한다. 전철역과 트램이 붙어 있기 때문에 종점인 악사라이 역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것보다는 편리하단다.

메트로 정거장 풍경.

트램을 타고 가는 길.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다행히 하늘이 어여삐 여기고 순국영령이 보우하사 제이틴부르누 역을 안 놓치고 제대로 내렸다. 트램으로 갈아타기 위해 사람들을 졸래졸래 따라가는데, 또 한 번 문제가 터졌다. 모두가 거기서 다시 코인을 넣고 트램 쪽으로 넘어간다. ? 난 코인이 없는데? 아까 안받아왔단 말이야.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코인을 갖고 있지? 그 역무원이 날 속인 거야?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없고 트램은 코앞에 서 있는데 게까지 갈 방법이 없다. 한참 두리번거리는데 이번에도 착하게 산 덕분인지 역무원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다. 역무원 아저씨, 이차 저차 해서 코인을 못 받아왔는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면 좋겠수? 손짓에 발짓까지 섞어서 물어보니,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갈아타려면 제톤을 두 개 사야한단다. 전철과 트램의 코인이 각각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당연한 얘기네. 알아들었으면 저쪽 가서 제톤을 다시 사오란다. , 무슨 국제 관광도시가 이래. 어디다 좀 써놓든가. 역무원에게 물어볼 때 카메라만 신경 쓰지 말고 그런 것도 알려주든가. 괜스레 등에 땀이 흐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떠난 내 스스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책에 다 쓰여 있는 것을. 이스탄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교통카드를 사는 것이다. 악빌(Akbil)이라고 부르는데 역 같은 곳에서 판다. 이거 하나면 버스, 지하철, 트램, 페리 등 뭐든지 만사 오케이라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한 개로 여러 명이 쓸 수도 있고 다 쓰면 충전할 수도 있다.

저 멀리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보인다.

저만치 블루모스크가


다 쓰고 난 악빌은 출국하기 전에 가까운 판매점에 반납하면 보증금도 돌려준다. 깨달은 진리 하나. ‘무식하면 용감하고, 용감하면 고생한다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트램으로 갈아탔다. 이제 구시가지의 술탄아흐메트역에서 내리는 것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좀 마음이 놓이니 별 쓸데없는 게 궁금해진다. 출근시간인데 왜 이렇게 트램이 한가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떠오른 생각. 그래, 오늘 일요일이잖아. 왠지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더라니. 요일이야 어떻든 나는 지금 로마 땅을 달리고 있다. 사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이곳은 1000년 넘게 로마의 수도였던 곳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이 걸쳐 있는 도시이자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터키 최대 도시다. 동양과 서양 문화, 고대와 현대, 기독교와 이슬람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만나고 융합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공화국의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갔지만 이스탄불은 여전히 이 나라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부동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보노라니 가슴이 벅차게 뛰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에 유적들도 보인다. 내가 드디어 이스탄불 한 가운데에 발을 디뎠구나. 트램이 서고 드디어 술탄마흐메트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저만치 블루모스크의 미나레트가 어서 오라고,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 손짓한다. 야호!! 나는 지금 이스탄불로 걸어들어간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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