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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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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케키'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9.15 [사라져가는 것들 76] 아이스케키10
2008. 9. 15. 10:46 사라져가는 것들


아~이스께끼~ 얼음~과자!!! 께~끼나 하아드~
구성진 목소리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으면 아이들 엉덩이가 들썩들썩합니다.
부엌의 ‘미원’을 설탕인 줄 알고 몰래 먹다 퉤퉤 내뱉던 시절, 아이스케키야말로 최고의 군것질거리였으니까요.
아이스케키는 사각양철통의 동그란 구멍에 사카린 탄 물을 붓고 막대를 꽂아서 얼린 것 것입니다.
케키장수는 궁벽한 시골동네에도 곧잘 나타났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침 넘기는 소리가 장마철 도랑물 흐르듯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졸라도 어른들은 담배만 뻑뻑 빨아댈 뿐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채 익지도 않는 개복숭아나 깨물며, 그 달콤한 맛에 대한 열망을 달래게 마련이었지요.
그러다 어른들 마음이 변해 감춰뒀던 대두병이나 뚫어진 양은솥, 더 이상 때우기 힘들어진 헌 고무신이라도 꺼내주면 그 날이 생일날이었지요.
펄펄 뛰며 나를 듯 케키장수에게 가지고 가면 눈대중으로 가격을 가늠합니다.
“제발 비싸게 쳐주기를…” 아이들은 기도하는 심정이 되어 기다립니다.
헌고무신 따위의 값을 매기는 거야 케키장수 맘이지 더 달라고 졸라 볼 엄두나 낼 수 있나요.
그러다 드라이아이스가 물씬물씬 솟아오르는 통이 열리고 한두 개, 혹은 서너 개의 케키가 손에 쥐어지면 아이들은 끝내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 맙니다.
케키를 받아들었을 때의 행복이란… 입에 넣을 때의 그 달콤함이란….
혹시 깨물릴세라 아끼면서 조금씩 빨아먹지만, 어찌 그리 빨리 줄어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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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케키장수라고 해서 모두 빈병이나 헌 고무신을 받아줬던 건 아닙니다.
리어카에 커다란 케키통을 싣고 다니는 이만 그런 것들과 케키를 교환해줬습니다.
마늘 같은 농산물은 물론이고 양은이나 양철, 철사 같은 금속류도 ‘환영’이었지요.
어떤 아이는 케키에 눈이 멀어, 담벼락에 걸어놓은 마늘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선반위에 올려놓은 아버지의 흰고무신을 몰래 들고나가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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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와 바꿔 먹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날 저녁 그 아이들이 무사할 리는 없지요.
멜빵이 달린 파란색의 케키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이들은 현금만 받았습니다.
짐이 될 것을 받아봐야 운반수단이 없으니 난감할 수밖에요.
읍내에는 아이스케키 공장이 있었습니다.
얼음 얼리는 시설을 갖춰놓고 퍼 올린 지하수에 사카린을 섞어 아이스케키를 만들었습니다.
대개 **당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지요.
아이스케키란 이름은 물론 아이스케이크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 이름 역시 제멋대로 이 나라를 점유했던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찌꺼기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방학이 되면 아이스케키 장수로 직접 나서는 용감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 아들 종택이는 돈을 벌어보겠다고, 알부자로 소문난 집 아들 순구는 아이케키를 실컷 먹어보겠다고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읍내 아이스케키공장, 진미당의 박종덕 사장은 고개를 쌀래쌀래 흔들었다지요.
“너희들은 너무 어려서 안 돼!”
하지만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아이들의 등쌀에, 에라!! 한번 밑지지 두 번 밑지겠냐? 하면서 통을 내주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장사가 그리 만만할 리 있겠습니까?
숫기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종택이는 아이스께끼~!!!!!! 소리 한번 제대로 못 지르고 마냥 쏘다니다보니 어느새 다 녹아버렸더랍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아이스께끼~ 얼음과자~ 할라치면 개구쟁이들이 따라다니며 아이새끼~ 어른과자~ 놀리는 통에 더욱 기가 죽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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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시설이 변변찮던 시절, 개별포장이 안된 아이스케키는 얼마 못 가 녹아버리고는 했습니다.
그나마 순구는 ‘본전치기’는 했답니다.
일찌감치 장사를 포기하고, 친구 몇 명 불러 저희들 입에 공평하게 팔아버렸으니까요.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순구아버지, 아들을 비 오는 날 먼지 날만큼 두드려 패더니, 박종덕 사장 찾아가 한바탕 멱살잡이를 한 다음 아이스케키값 물어주고 돌아왔답니다.
순구는 제 아비한테 맞은 게 문제가 아니라 배탈이 나서 몇 날을 끙끙 알았고요.

그렇게 아이들의 혼을 홀딱 빼놓던 아이스케키도 세월 앞에서는 속절없이 녹아버렸습니다.
대기업들의 달콤하고 혀끝 알싸한 아이스크림을 시골 공장의 사카린 케키가 당해낼 수야 있나요.
공장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아이스케키장수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청계천을 걷다가 아이스께끼~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봤습니다.
복고콘텐츠가 유행이라더니 아이스케키 역시 추억의 상품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제품 자체나 맛이야 옛날의 그것은 아니겠지만, 아이스케키란 이름을 내걸었으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지요.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추억이 버무려진 웃음을 키득키득 흘리면서 하나씩 입에 무는 걸 보면서도 차마 손을 내밀지는 못했습니다.
혹시, 아직도 달콤하게 입속을 맴도는 그 옛날의 아이스케키 맛에 원치 않는 덧칠이라도 할까봐….
첫사랑은 훗날 만나지 말고 가슴에 묻어두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희망보다는 추억을 먹고 살아야 할 테니까요.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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