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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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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샨르우르파 도시박물관 야외전시장.

 

눈에 검은 돌을 박아 넣은 1만 년 전 인물상.

샤워를 하는데 아침마다 문안을 오던 코피가 소식이 없다. 이게 무슨 징조냐? 어라? 그러고 보니 속도 제법 편안하다. 완전히 내려간 것은 아니지만 뱃속에 얹혀있던 돌덩이가 제법 가벼워진 느낌이다. ! 그 덕이구나. 속이 편해진 배경에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다. 먹지 못하고 고생하는 나를 위해, 누구는 가문의 비방(祕方)으로 지었다는 약을 가져오고 누구는 아끼던 깻잎 통조림을 풀었다. 음식점에 가면 따로 맨밥을 주문해주기도 했다. 그 마음들이 모여서 오래 속 썩이던 체증을 녹여낸 것이다. 사람의 마음만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머니의 약손에 약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듯이. 일단 아침밥도 어제 얻어놓은 인스턴트밥과 깻잎 통조림으로 혼자 해결하기로 한다.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는데, 이런! 내부구조가 인스턴트밥이 안 들어가게 돼 있다. 반으로 구겨도 비틀어도 들어갈 생각이 없다.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는데 엉뚱한 데서 막혀버리니 괜히 안달이 난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얼음을 담아 놓는 아이스 볼이 눈에 들어온다. 너 잘 걸렸다. 겉은 스틸로 돼 있어서 활용이 가능할 것 같다. 안에 있는 플라스틱을 빼내고 인스턴트밥을 넣으니 원래 세트였던 것처럼 딱 맞는다. 그럼 그렇지. 다 살게 돼 있다니까. 포트에 물을 끓여서 붓고 뚜껑을 닫는다. 내 나라에서라면 좀 구차해 보이는 그림이겠지만, 며칠 굶은 자의 밥을 향한 일념 앞에서는 그 무엇도 장애가 될 수 없다. 15분쯤 기다린 뒤 열어보니 보슬거리는 밥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먹을 만하게 익었다.

 

멧돼지 상.

 

사슴을 사냥하는 사람.

이거 상당한 노하우인데? 맨입으로 공개해도 될까? 아무튼 조금 서걱거리는 인스턴트밥에 깻잎 하나뿐인 아침 밥상은 내 생애 가장 맛있는 식사 중 하나가 됐다. 먹으니 힘도 난다. 그래, 난 원래 이렇게 단순한 동물이야. 훨씬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은 두 곳의 박물관을 들르기로 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샨르우르파 도시박물관.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강렬하게 내 눈길을 끌어당긴 것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인물석상 하나. 사람 키 높이 정도 될까? 거친 돌에 조각된 석상의 코는 깨져 있고 가슴엔 V자 모양이 양각돼 있다. 허리는 금이 가 있다. 상체보다 하체가 무척 짧아서 손은 무릎 아래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대체 무엇이 자꾸 내 눈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한참 들여다보니 두 눈에 검은 돌 같은 게 박혀있다. 마치 아몬드처럼 생긴. 저게 뭐지? 몸체와는 완전히 다른 재질과 색깔의 광물질로 눈동자를 해 넣은 것이다. 숱한 석상을 봐왔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다. 흑요석?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박물관 관계자가 설명을 해준다.

아브라함의 성스러운 연못 근처에서 발견된 석상입니다. BC 8000~95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으니, 지금까지 발견된 인간 모습을 한 석상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지요.”

나는 지금 1만 년 전에 만들어진 석상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아득한 옛날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모양을 갖춘 인간의 자화상. 그는 무슨 생각으로 검은 돌을 찾아 눈을 만들어 넣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석상은 저 검은 눈동자를 통해 무엇을 보고자 1만 년을 견디어왔을까.

 

 

 

매장된 고대인의 모습.

 

출산 장면으로 보인다.

석상을 만든 사람도 그가 만든 석상도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고대 인간과 작별을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 박물관은 1964년에 발견된 ‘1만 년 전의 사원괴베클리테페에서 나온 유물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고 한다. 돌에 양각된 사슴과 사냥하는 사람, 멧돼지, 여우, 도마뱀거칠지만 살아있는 듯 생동적이다. 화살을 든 군인은 히타이트 제국의 전사다. 저건 공룡일까? 활짝 웃는 것처럼 이빨만 부각시킨 게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장난감 같다. 한 층을 더 올라가다 또 하나의 기묘한 석상을 만난다. 길쭉한 바위에 사람의 형상을 새겼는데 얼굴은 없지만 여자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밑으로 아기가 새겨져 있다. 출산 장면인가? 강한 주술적 기운이 전해진다. 석상에 여성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BC 3000년경부터라고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석상들이 있다. 그리스인들의 섬세한 조각과는 다른 원초적 모습의 인간과 동물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 앞에서 1만 년 전 사람의 생각을 엿보려 한참 기다려본다. 누군가 돌 안에 배어 있는 신화를 조곤조곤 들려줄 것 같다. 보통 박물관에 가면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제법 오래 걸린다. 화두처럼 던지는 관계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유럽의 박물관에 있는 유물은 거의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져간 것들입니다. 그걸 모두 반환 받으면 유럽 박물관은 텅텅 비겠지요?”

훔치거나 약탈한 남의 물건을 버젓이 전시해놓고 자랑하는 사람들.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까? 우리 가까운 이웃에도 그런 나라 하나 있지.

 

매운 케밥.

맵지 않은 케밥. 재료는 양의 간이다.

점심에는 벼르던 매운 케밥을 먹어보기로 한다. 그동안 거의 물과 과일로만 때웠으니 이제 제대로 좀 먹어봐야지. 특히 샨르우르파에서는 그 유명한 매운 케밥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몸이 안 좋은 나를 위해 훌리아가 정보를 하나 준다.

터키에 여행을 다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Eczane라고 쓴 곳을 찾으세요. 그곳이 바로 약국이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병원은 뭔데?”

“Hstane라는 간판만 찾으면 돼요.”

“ne자 돌림이구먼. 우리 동포들에게 꼭 전해줄게.”

나는 참 여러 가지 보살핌을 받으며 산다. 음식 이야기 계속해야지. 어딜 가나 먹는 건 중요한 거니까. 우르파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음식은 지에르라고 부르는 양간이다. 얼마나 양간을 좋아하는지 아침식사로 먹는 것은 물론 세 끼를 모두 그것으로 때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맵게 만든다. 빵에 끼워서 고춧가루를 듬뿍 뿌리고 동그랗게 말아먹는다. 양 간을 원료로 한 케밥인 셈이다. 음식점에 도착했으니 선택을 해야 한다. 재료는 소, 닭고기와 양간이 있으니 그 중에 고르란다. 선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세 가지를 다시 매운 것 안 매운 것으로 나눈다. 내게는 가장 안전한 게 안 매운 소고기일 것 같은데 과감하게 양간을 선택한다. 굳이 간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직접 먹어봐야 맛을 전해줄게 아닌가. 대신 안 매운 것으로 시킨다. 매운 육회를 상추에 싸먹는 음식도 있다는데 이 식당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매운 케밥에 또 고추를 얹어먹기도 한다.

이렇게 김밥처럼 둘둘 말아서 먹는다.

후식까지 먹어야 식사 끝. 왼쪽은 아이란.

모든 케밥은 보자기처럼 널찍한 밀가루 전(라와시)에 싸먹는다. 안 매운 양간은 요리할 때 고춧가루를 안 친다. 그렇다고 고추의 고장에서 그냥 지나갈 리가. 살짝 구운 빨간 고추가 곁들여 나온다. 이건 장식이 아니다. 반으로 갈라서 함께 싸서 먹는 거란다. . 그럼 매운 거 시킨 것과 뭐가 다르담. 식사의 기본 절차는 라와시를 펼치고 적당량의 고기를 올린 뒤 향신료와 우리의 고수 같은 풀과 고추를 얹어서 말아서 먹는 것이다. 향신료나 나네민트라는 풀 대신 양파를 얹어 먹기도 한다. 양간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하지만 내가 시킨 음식만 맛보고 갈 수는 없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냥을 다니면서 조금씩 맛을 본다. 내 입맛에는 역시 안 매운 쇠고기가 가장 맞는다. 특히 깻잎에 싸먹으니 천상의 맛이다. 매운 것도 그렇게 엄청날 정도는 아니다. 희석식 요구르트인 아이란도 나왔지만 나는 시금털털한 것을 안 좋아하니 무효. 종업원들은 이방인이 자기네 음식을 열심히 먹으니 신기한 모양이다. 자꾸 주변을 오가며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모양이다. 드디어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벽에 걸린 하란 사진을 가리키며 가봤느냐고 묻는다. 그걸 계기로 몇 마디 손짓발짓 대화를 나누다 드디어 한국말 교육이 시작된다.

“Say! 안녕하세요.”

처음엔 수줍어서 말문이 안 터진다. 에이, 괜찮다니까. 어서 해봐. 그럼 그렇지. 몇 번 시키니까 자연스럽게 따라한다. 이젠 동양 사람들 나타나면 무조건 안녕하세요하면 돼. 알았지?

 

돈두르마를 만드는 모습.

돈두르마.

한낮의 거리는 프라이팬 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듯 뜨겁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이 나타난 뒤로 시원해졌다고 거듭거듭 강조하지만, 그래봐야 40도 가까이 되니 30도의 나라에서 온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다행인 것은 땀은 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사막에 가까운 지역이라 습도가 극히 낮아서 땀이 나오면 바로 마른다. 또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버스도 에어컨을 최대로 켜놓건만 선풍기를 켜놓은 정도의 역할밖에 못한다. 음식점에서 얻어올 때만해도 제법 시원하던 물은 거리를 조금 돌아다니면서 목욕하기 딱 좋을만한 온수가 되었다. 찹쌀떡을 닮은 아이스크림, 돈두르마 가게만 보면 뛰어 들어가고 싶어진다. 음식점에서 후식으로 나왔을 때 조금 더 먹고 나올 걸. 그러고 보니 샨르우르파에서 돈두르마의 본 고장 카흐라만 마라슈까지 그리 멀지 않다. 돈두르마를 출생지의 이름을 따서 마라슈 아이스크림이라고도 부른다. 이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카흐라만 마라슈에서는 눈이 내리면 그 눈을 석굴이나 움푹 팬 곳에 꽉 채운 뒤 관목 줄기나 나무 도막으로 밀봉해서 여름이 와도 녹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그 눈을 퍼내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로 만든 시럽을 섞어서 먹었다. 이게 바로 돈두르마의 기원이 됐다. 물론 시럽만 섞어서는 돈두르마처럼 쫀득한 맛이 안 난다. 거기에 야생 난초의 구근을 말려 가루로 만든 살렙과 질기게 해주는 유향수지 등을 첨부해야한다.

 

모자이크 박물관.

아킬레우스를 스틱스에 담그는 테티스.

돈두르마 생각을 하니 서울의 돈두르마 장수도 생각난다. 지금도 계속 장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동 입구에도 잘 생긴 아이스크림 장수가 있었다. 터키여행기 1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가 출간됐을 때 인사동에서 간단한 축하연을 하고 나오다 그 친구를 만났다. 터키라는 동질성만으로도 얼마나 반갑던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책을 보여줬더니 자기 와이프도 보드룸에 산다며 뛸 듯이 좋아했다. 그는 한국에서 터키를 그리워하고 나는 터키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셈이다. 어쩌다 보니 아이스크림 얘기가 신파조로 흘러버렸다. 정신 차리고 빨리 다음 목적지로 가야지. 지금 찾아가려고 하는 모자이크 박물관 역시 샨르우르파 시내 한 가운데 있다. 이 동네는 심심한 사람이 대충 삽질만 해도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인 셈이다. 모자이크 박물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박물관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자그마한 야산 기슭에 누런 포장을 쳤을 뿐이다. 언뜻 보면 옛날 우리네 잔칫집 같다. 산 위에는 빈민촌처럼 보이는 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모자이크가 펼치는 화려한 마술에 경탄을 아끼지 못한다. 넓은 토판에 작은 돌들로 섬세한 그림을 그렸는데 마치 스토리가 있는 달력처럼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 내용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아킬레스건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의 일생을 그린 것이다. 태어나는 장면에서부터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장면, 트로이 전쟁에 나가는 장면, 그가 죽은 뒤 슬퍼하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반인반수.

얼룩말을 조련하는 흑인노예.

모처럼 아킬레우스를 만났는데 잠깐 신화 공부나 하고 갈까.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들이 결혼하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이야기가 복잡해지니까 생략하기로 하자. 테티스는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겠다는 갸륵한 욕심으로 스틱스강(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강)에 담갔다. 왜 느닷없이 소림사 18동인이라는 영화가 생각나지? 헌데 아무리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바늘만한 빈틈은 있는 법. 아이를 담글 때 테티스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젖지 않아서 급소가 되고 말았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가리키는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트로이전쟁에 내보내지 않으려고 여장(女裝)을 시켜서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에 숨겨놓았다. 신화에 나오는 이름들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하지만 아킬레우스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발각되면서 전쟁터로 나가고 만다. 아킬레우스는 최고의 전사가 되어 싸우지만 결국은 치명적인 약점인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아 죽고 만다. 그는 트로이전쟁에서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모자이크는 아킬레우스의 일생 외에도 얼룩말을 조련하는 흑인노예를 그린 장면도 있는데 그 당시 아나톨리아에는 얼룩말이 없었단다. 대체 넌 어디서 온 거냐? 또 전설 속의 아마존 여인들, 아마조네스를 그린 모자이크도 눈에 띈다.

 

아마존의 여전사 아마조네스.

세계 최고로 일컬어지는 이 모자이크 보드가 발견된 것은 2007년이었다.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하는 중에 엄청난 유물이 나오는 바람에 공사를 중단하고 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작품들은 로마 후기나 비잔티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자이크를 제작하는 과정도 상상을 초월한다. 1m²5000~6000개의 돌이 들어간다고 한다. 돌 숫자가 많아질수록 좀 더 정교한 문양을 낼 수 있다. 돌들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가져왔는데 염색을 하지 않고 원래 색깔 대로 분류해서 썼다. 다양한 색깔의 돌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을까. 발굴은 2007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인데,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성스러운 물고기 연못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 세계 최대의 박물관을 지을 계획도 갖고 있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가 곧 책으로 출간됩니다. 출판사와의 협약에 의해 연재는 이번 주로 마칩니다. 나머지이야기는 책에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더 재미있는 여행 이야기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posted by sagang

 


*이왕 읽어주실 거 1회부터^^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각 수정하겠습니다.

보드롬 바닷가. 배들이 빽빽하게 정박해 있다.

보드롬 해변과 거리의 카페.

아잔, 그리고 무슬림의 예배

아주 오래된 빵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이다.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와 좁은 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다 보니, 언덕 위에서 보았던 보드롬성 근처의 해변에 닿는다. 이곳은 아직 휴가의 여진으로 들끓고 있다. 벌거벗은 인파가 물고기 떼처럼 거리를 유영한다. 하긴 9월말이라고는 해도 30도를 웃도는 날씨니 바다를 떠나기는 아쉬울 것이다. 부두에는 호화롭게 치장한 요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몸을 부비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요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세용이다. 요트를 세 내어 인근 바다에 나가 수영도 하고 배에서 만들어주는 즉석 해물 요리로 점심식사를 하는 재미가 근사하단다. 말 그대로 저 바다에 누워평화로운 한낮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돈만 있다면. 대부분 유럽인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유럽에 비해서 비교도 안될 만큼 싼 가격에 호화로운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보드롬이다. 해안가를 따라 각종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부터 카페, 음식점, 바들이 나란히 서 있다.

1720년에 지은 모스크(이슬람교의 예배당)

해변 탐색은 뒤로 미루고, 일단 빵집이 있다는 바자르(이슬람 특유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 보통 시장을 이르며 상점이나 공방이 늘어선 골목도 그렇게 부른다)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보드롬성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쇼핑타운이다. 바자르로 들어가기 직전, 광장에서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소리와 마주친다.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불경을 외는 소리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거리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구나. 그러면 저곳이 이슬람사원인 모스크. 그나마 공부 좀 했다고 바로 눈치를 챈다. 이슬람교도들은 아침에 해 뜨기 전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 정오를 넘긴 낮, 오후, 해가 질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도(聖都)인 메카 쪽을 향하여 모두 다섯 번의 기도를 한다. 그 기도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리는 소리가 아잔이다. 물론 새벽에도 아잔은 울린다. 전에는 모스크 한쪽에 높은 미나레트(첨탑)를 세워 담당 무슬림, 즉 무아진이 육성으로 기도시간을 알렸다는데 지금은 모두 확성기를 이용한다.

기도를 하기 전에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

이 아잔은 노래에 가까울 정도로, 특유의 리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 번 들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뜻은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 예배하러 오너라. 구제하러 오너라. 알라는 지극히 크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라고 한다. 과연 조금 있으니까 무슬림들이 모스크를 향해서 꾸역꾸역 모여든다. 바자르나 인근에서 생업을 하는 사람들이리라. 모스크 입구에는 1720년에 지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긴 세월에 감탄하고 있는데, 누군가 저 정도면 그리 오래된 모스크는 아니라고 일러준다. 무슬림들을 따라 슬그머니 모스크로 들어가 본다. 일찍 온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 기도 준비를 하고, 미처 못 들어간 사람들은 마당에 자리를 잡는다. 묵묵히 기도를 준비할 뿐, 누구도 이방인을 경계하는 기색은 없다. 오른쪽 마당으로 가보니 수도꼭지들이 있고 그 앞에 나란히 의자들이 놓여 있다.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거기서 손발을 씻는다. 젊은이들이 제법 많은데, 그 중엔 곱상하게 생긴 친구도 우락부락한 친구도 있다.

모스크 실내가 차면 자리를 깔고 바깥에서 기도한다.

튀르크족, 즉 지금의 몽골 땅에서 살던 돌궐족이 언제부터 이슬람교를 접했는지는 딱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아나톨리아로 땅으로 들어오기 훨씬 전인 8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돌궐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아바스왕조(7501258년에 동방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칼리프조)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슬람교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터키 인구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국교는 아니다.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아타튀르크가 1928년 헌법을 수정하면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히잡을 쓰는 등 종교적 특성을 나타내는 행위는 금지된다. 이를 세속주의라고 하는데 종종 저항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세속화와 서구화에 대한 반대하고 이슬람으로 복귀하자고 주창하는 정치 세력이 등장하기도 했다. 세속화의 영향으로 터키에서 교리의 적용은 다른 이슬람국가에 비해 그리 엄격하지 않다. 음주도 비교적 자유롭다. 일부 터키사람은 농담 삼아 스스로를 사이비 이슬람교도라고 칭하기도 한다.

바자르로 들어가는 길.


바자르에서 만난 사람들

기도를 더 이상 방해하면 안 되지. 모스크에서 나와 바자르로 들어간다. 햇볕을 막기 위해 친 하얀 차양이나 나무 넝쿨이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관광객들은 느긋하게 거리를 오가고 갖가지 상품들이 손짓을 한다. 나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길을 걷는다. 동양인이 신기해서일까? 장사를 하는 사람마다 “Where are you from”을 아끼지 않는다. 하긴 보드롬을 돌아다니는 내내 동양인들을 본 적이 없다. 대답을 안 하면 물건 파는 건 뒷전이고 따라오면서까지 국적을 캐묻는다. 재팬? 차이나? 그러다 코리아라는 대답이 나오면 곧바로 “My brother!!!“가 튀어나온다. 17년 전에 헤어진 형이라도 상봉한 듯 호들갑스럽다. 물론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네가 코리언이고 내 형제니까 특별히 ‘Good price’로 줄 테니 물건 하나 보고 가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쯤이면 궁금해진다. 정말 한국인이 반가운 거야, 아니면 누구에게나 하는 장삿속이야. 설령 장삿속이라고 해도 불쾌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귀찮게 물고 늘어지지도 않거니와, 물건을 사든 안 사든 낄낄거리며 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점을 치는 아저씨도 있고 달랑 저울 하나 밑천 삼아 몸무게를 재주고 돈을 받는 아이도 있다. 자유와 활기가 넘치는 거리다.

바자르를 오가는 관광객들.

오래된 빵집은 골목 중간쯤에 있다. 하지만 그 앞에 서는 순간 실망감이 앞선다. 화려한 겉모습이 여느 현대식 빵집과 다르지 않다. 종업원들도 세련된 모습이다. 허름한 가게에서 늙어 꼬부라진 영감님이 빵을 굽고 있을 거라는 상상이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들어가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마침 내가 서 있던 집이 음식점 앞이었나 보다. 돌아보니 음식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입에 환한 웃음을 베어 물고, 얼음을 가득 채운 오픈형 냉장고를 가르친다. 얼음 속에는 문어나 각종 생선이 터키 맥주 에페스와 함께 묻혀 있다. 그걸 먹고 가라는 것이다. 얼음 속에서 문어를 꺼내 싱싱하다고 흔들어 보이기까지 한다. 한 냉장고에 생선과 맥주를 동거시키다니 참 특이하다. 먹을 생각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이 아저씨도 그냥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카메라를 보더니,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면 굉장한 풍경이 있다면서 “Take photo”를 외친다. 떠밀리다시피 들어가 보니 식당과 바다가 맞닿아 있고 차양 아래 관광객들이 음식을 먹고 마시며 한낮을 즐기고 있다. 유유히 떠다니는 배들, 저만치에서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보드롬성. 자랑할 만도 하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음식점. 맥주와 생선이 한공간에...

맥주와 음료를 즐기는 관광객들. 저만치 보드롬성이 보인다.

135년을 이어온 빵집을 가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눈치 없는 종업원이 다가와 ‘One beer’를 외친다. 콜라 한 잔이라도 팔겠다는 결의가 얼굴에 가득하다. 사진 찍으러 들어온 거라고, 사양하면서 나오는데 굳이 따라 나오면서 말을 건다. 당연히 “Where are you from”이다. 코리아라는 대답에 반색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혹시 터키 초등학교 교과서에 동양인을 보면 그렇게 물어야 한다고 나와 있는 게 아닐까 궁금해진다. 이 친구 끝내 따라 나오면서, 자기네 사장이 태국의 방콕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자랑한다. 코리아와 방콕이 엎드리면 코 닿을 정도의 이웃인 줄 아나보다. 결국 나를 사장에게 데려가더니, 이 사람이 한국에서 왔다고 입에 거품을 문다. 사장 역시 반색을 하면서 자신이 애인과 함께 방콕을 세 번이나 다녀온 사람이라는 걸 거듭 강조한다. 그래, 좋겠다. 네 번 다녀오면 확성기 들고 돌아다니겠다. 별로 통하지도 않는 영어로 수다를 떨다 작별하고 나오는데, 그제야 빵집 간판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SINCE 1876’. 가만 계산해보니 135년이다. 참 오래도 됐다. 1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빵장사 하나로 버텼다니, 뭔가 들을 만한 얘기가 있을 것 같다.

135년 된 빵집 내부. 너무 현대식이라 세월을 실감할 수 없다.

빵집 간판

빵집 주인은 친절이 뼛속까지 배어있다. 장사에 방해가 될 법도 한데 다큐팀이 영상장비를 들고 들쑤시고 다녀도 마냥 웃는 얼굴이다. 어쩌면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터키인의 주식은 빵이다. 쌀농사도 조금 짓기도 하지만 소비가 많지는 않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에는 대부분 기계가 만든 빵을 사다 먹는다. 이 빵집도 전에는 식사용 빵만 만들다가 요즘은 케이크나 다이어트용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판다고 한다. 그 말을 뒷받침 하듯 수백 가지의 빵들이 진열돼 있다. 그런데 운영방침이 좀 독특하다. 관광객이 몰려오는 여름을 중심으로 6개월 동안은 24

빵집 주인. 전형적 낙천주의자다.

시간 장사를 하고 겨울시즌에는 문을 닫고 논단다
. 그거 참 괜찮다. 아예 눌러앉아 취직을 해버려? 주인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빵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일종의 가족기업이다. 지금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도 모두 친척이란다. 빵은 공장에서 새벽 3시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손으로 빵을 만들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옛날이 되었다는 걸 그의 말에서 읽는다. 그래도 한 장소에서 135년 동안 대대로 빵을 파는 사람들, 그 또한 장인정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케밥을 만들기 위해 돌려가면서 구운 고기를 자르고 있다.

케밥과 맥주 한 잔의 기쁨

빵집에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 뱃가죽이 등으로 달라붙은 지 오래다. 차를 통한 이동이나 식사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 별 수 없다. 기내식을 제외하면 터키에서 먹는 첫 번째 식사다. 기대가 크니 더욱 배가 고프다. 프랑스와 중국에 이어 터키음식을 세계 3대 음식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터키 대신 인도를 앞세워 4대 음식에 넣기도 한다. 3대면 어떻고 4대면 어떠랴. 맛있다는 얘기겠지. 특히 다양한 종류와,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케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야외 음식점에 자리를 잡은 뒤 케밥을 시킨다. 터키에서는 글과 말을 몰라도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찾기 어렵지 않다. 식당 앞 큰 메뉴판에 음식 사진과 가격을 함께 적어놓은 곳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도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맛있어 보이는 걸 가리키면 된다. 음료는 터키의 전통요구르트 아이란(Ayran) 외에도 콜라나 스프라이트, 과일주스 등이 있다. 보통 생맥주도 파는데 당연히 가격은 음료수보다 비싸다. 음식점을 찾는 또 하나의 팁은, 가능하면 화덕이 있는 집으로 가라는 것이다.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맛도 어느 정도 보장된다. 화덕은 보통 입구 근처에 있기 마련이다.

터키에서 첫 식사로 먹은 케밥.

불에 구운 요리를 뜻하는 케밥은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아서 일일이 구분하고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이 고기를 매달아놓고 돌려가면서 구운 뒤 얇게 잘라서 야채와 함께 빵 사이에 끼워 먹는 되네르(Döner)케밥이다. 국민요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케밥은 길거리 노점에서부터 카페, 식당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양도 제법 많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잘 알려진 대로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송아지고기나 양고기를 재료로 쓴다. 닭고기를 재료로 하는 음식도 제법 많다. 케밥은 음료수와 함께 먹기도 하지만, 앞에 말했듯이 보통 아이란을 곁들인다. 터키의 요구르트는 걸쭉하기 때문에 보통은 떠서 먹는데, 아이란은 여기에 시원한 물을 타서 묽게 만든 것이다.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해물 요리도 먹을 수 있다. 나는 단 한 번 먹어봤는데 가격은 그리 싼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회는 없었다. 또 유명한 터키음식 중의 하나가 이스탄불 갈라타다리 부근에서 파는 고등어샌드위치. 일정 마지막에 이스탄불에 갔지만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이것 역시 먹어보지 못했다. 다음엔 꼭 먹어보리라 다짐하며 돌아섰던 아픈 기억이 있다.

터키식 피자인 피데를 만드는 청년.

다 만든 피데를 화덕에 넣고 있다.

조금 뒤 나온, 되네르케밥은 역시 맛있다. 허겁지겁 먹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남기는 사람도 있다. 막입인 나만 맛있는 걸까? 남들이 콜라나 생수를 시킬 때 눈총을 무릅쓰고 맥주를 시킨다. 흘린 땀이 얼만데. 몇 시간 전부터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가이드와 몇몇 일행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점심 먹으며 술 마시는 사람도 있네? 혹은, 기자라는 족속들은 역시그런 눈초리. 아무렴 어떠랴. 이 황홀한 순간을 포기할 수 없는 걸. 잠시 뒤 화덕 쪽에서 수런수런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청년이 나와서 터키식 피자인 피데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식사를 해 준 이방인들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피데쇼를 보여주는 것 같다. 밀가루를 두드리는 장단이 아주 경쾌하다. 미안하게도 밀가루 반죽을 허공에 던져서 넓히는 장면은 한국에서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신기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쳐다봐준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청년의 동작에 신명이 붙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이른 아침 샘물처럼 맑은 얼굴이다. 하루 동안 만난 터키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욕심이나 원망보다는 긍정과 희망이 가득 찬 얼굴들. 거기서 힘을 얻는다. ! 일어나자. 또 걸어야지. 어쩌자고 하늘은 저렇게 푸르단 말이냐.

 

추천과 댓글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님은 참 아름다운 분입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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