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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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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수레를 타고 평원을 지나가는 일가족.

지워진 도시, 하란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시원하게 뚫려 있다. 샨르우르파를 벗어나면 그 끝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들판이 펼쳐진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시퍼런 물빛을 자랑하는 수로. 풍부한 수량과 빠른 유속을 자랑한다. 이 수로들은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에 새삼 혀를 내두른다. 이게 바로 GAP프로젝트의 결과다. 유프라테스 강에서 끌어들인 물을 실핏줄처럼 이어진 수로로 보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것이다. GAP프로젝트가 미치는 범위는 터키 땅의 10%나 된단다. 관계자들은 이스라엘 땅보다 더 크다고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지금 지나고 있는 이 하란 평원은 터키에서 가장 넓은 평야다. 토지는 비옥한 편이지만 비가 많지 않아서 농사에 애로가 많았지만 물이 풍부하게 공급되면서 터키 제1의 곡창지대로 우뚝 섰다. 특히 이곳에서는 목화가 많이 난다.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은 파란 목화밭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다. 목화가 벌기 시작하면 장관일 것 같다. 버스는 당나귀 마차를 타고 밭 사이를 지나는 일가족을 지나친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선 듯 평화롭다. 조금 더 내려가면 같은 나라 사람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터가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하란은 샨르우르파에서 남쪽으로 44km쯤 떨어져 있다.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와는 접경을 이루고 있다. 계속 달리던 차가 느닷없이 좌회전을 한다. 훌리아가 중요한 걸 놓쳤다는 듯이 급하게 말한다.

지금 좌회전한 데서 10km만 더 가면 시리아 국경이 나와요.”

, 조금만 일찍 말해주지. 이정표라도 찍어놨어야 하는데.”

 

하란으로 가는 왕복 4차선 도로.

구경이 아닌, 뭔가 기록해야한다는 목적을 가진 취재여행은 고통을 동반한다.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겨놓고 챙긴다고 챙기지만 뭔가 놓치는 것 같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늘 하는 소리지만, 혼자 온 여행이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시리아 국경선으로 갔을 것이다. 곡창지대를 벗어나 하란으로 가까이 갈수록 조금씩 황량해지는 느낌이다. 마치 사막에 들어선 것 같다. 푸른색보다는 누런 황토색이 더 많아지고 먼지마저 풀풀 날린다. 조금 더 달리니 길옆으로 하란성이 나타난다. BC 4000년부터 있었던 성이라고 하니 그 역사를 헤아려본다는 게 부질없어진다. 세월 탓인지 사람 탓인지, 지금은 거의 폐허가 돼 있다. 8개의 문이 있었는데 다 무너지고 1개만 남았다. 곧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옛 도시 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말이 옛 도시지 어딜 가나 쓸쓸한 풍경뿐이다. 둘러보기도 전에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한다. 그 유서 깊은 고대도시가 이렇게 몰락하다니. 하란이 얼마나 오래된 곳인가 하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정착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물론 전설이긴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방증으로 삼아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또 하란은 구약성서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아브라함과 그의 며느리가 되는 리브가,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리브가의 아들인 야곱은 모두 이 하란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그 이야기는 뒤에 천천히 하기로 하자. 하란 여행에서 구약성서를 빼놓으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으니까.

 

하란에 들어서면 이런 폐허들이 나타난다.

역사에서도 하란은 중요한 도시였다. 히타이트 제국이 일어나기 전에는 미탄니 왕국의 중심지였다. 히타이트에 패망한 뒤 아시리아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 뒤 바빌로니아, 파르티아의 영토가 되었다가 알렉산도르스왕에게 점령당한다. 한때는 시리아에 흡수되기도 했고 에데사, 즉 지금의 샨르우르파에 수도를 둔 오스로에네 왕국의 주요 거점이 된다. 지금은 침묵하는 땅, 하란평원이 품은 이야기는 밤을 새워도 부족할 만큼 많다. 그중에서도 로마의 제1차 삼두정치를 이끈 인물 중 하나인 크라수스가 이 평원에서 최후를 마친 이야기는 듣고 가야한다. 크라수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로마 공화국을 주무르던 실세였다. 그런 그가 왜 이곳에서 죽어갔을까. 따지고 보면 과도한 욕심 때문이었다. 크라수스는 사업가지 군인은 아니었다. 그는 부동산에 특히 능력을 보였는데, 그것으로 로마 최고의 부호가 될 정도였다. 지금 태어났으면 땅값 좀 올려놨을 것 같다. 크라수스는 돈을 모으는 데 물불을 안 가렸다. 상도? 그런 건 개에게 던져줘 버렸다. 카이사르가 집권하기 이전의 로마에는 경찰서나 소방서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치안대 같은 게 만들어진다. 여기서 크라수스의 도적질에 가까운 재능이 발휘된다. 어느 부호의 집에 불이나면 크라수스가 치안대를 이끌고 나타난다. 그리고는 집 주인을 불러 그 집을 팔라고 한다. 물론 불에 타고 있는 집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후려친다. 판다고 하면 불을 꺼주고 싫으면 그냥 가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결국 주인은 두 손을 들고 그렇게 산 집을 비싸게 되판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 뺨을 칠 사람이다. 혹시 직접 불을 지른 건 아닌지 모르지.

 

무너진 성 위엔 전봇대 뿐.

그런 그가 집정관으로 당선되면서 로마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가 된다. 헌데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폰토스 미트리다테스 왕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폼페이우스나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에 비해 전쟁 공훈이이 없었다. 지도자로서 엄청난 콤플렉스였다. 그렇게 비극은 시작된다. 시리아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한 그는 로마 시민이 인정하는 승리를 얻겠다는 열망으로 파르티아 원정에 나선다. 이 원정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카이사르를 따라다니며 유능한 장군으로 성장의 아들 푸블리우스도 큰 몫을 했다. 물론 원정에 나서게 된 가장 큰 목적은 한 몫 잡아보자는 것이었다. 시리아에서 크라수스가 가장 열심히 한 일은 예루살렘신전을 비롯한 곳곳의 신전에서 보물을 약탈하는 것이었으니 더 말해 무얼 하랴.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들이 더한다니까. BC 53년 크라수스는 총 6개 군단에 약간의 오리엔트 용병, 그리고 아들 푸블리우스가 이끄는 갈리아 기병대 1천기까지 약 4만 명을 이끌고 원정을 나선다. 여기서 우리는 전쟁의 승패가 군인의 수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당시 하란 지방의 군주였던 오스로에네 왕국의 아브가루스 2세가 파르티아와 내통하고 있었지만 크라수스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길잡이가 된 아브가루스는 아르메니아 지역으로 가는 대신 하란 평야로 로마군을 유인했다. 길 안내를 맡은 사람이 아브가루스가 아닌 아랍의 귀족이란 설도 있다. 로마군을 사막지대로 유인하는 임무를 띤 첩자였다고 한다. 안내자가 누구였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크라수스는 애초부터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배회하는 소들.

한편 하란 평야에는 물자와 무기를 넉넉히 챙겨둔 파르티아군이 로마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덫은 단단했고 그물은 촘촘했다. 파르티아에는 수레나스라는 젊고 유능한 장군이 있었다. 그가 이끄는 파르티아 기마병 2만여 기와 로마군이 만났다. 짜식들~ 2만이야? 4!! 크라수스는 로마군 특유의 정사각형 형태의 밀집대형으로 군사들을 배치한다. 그러나 수레나스는 순식간에 기마병을 활을 쏘는 궁기병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낙타들을 이용해 병사들에게 끊임없이 화살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파르티아의 궁기병은 돌격해서 맞장을 뜨는 대신 멀리서 화살을 쏘기 시작한다. 문제는 파르티아 군의 활이 워낙 강해서 로마군의 방패가 그대로 뚫린다는데 있었다. 속수무책.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크라수스는 아들 푸블리우스에게 파르티아 궁수들의 뒤를 쫓으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궁기병들은 퇴각하면서 몸을 180도로 비틀어 활을 쏘는 파르티아군 특유의 공격(파르티안 샷)을 퍼붓는다. 용맹을 자랑하던 갈리아 기병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푸블리우스는 추격을 자제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적들에게 우롱 당했다는 분노로 머리에서 김이 풀풀 날 지경이었다. 결국 퇴각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가고 말았다. 아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크라수스는 전군에게 진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역시 독 안으로 찾아 들어가는 쥐 꼴이었다. 황무지 한가운데서 로마군은 완전 포위되었다. 로마군의 전열이 무너지자 이번엔 파르티아 보병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무너진 옛 신전.

로마군이 대패하고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서자 수레나스는 크라수스에게 화평을 제의한다.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모든 영토를 넘기라는 조건이었다. 크라수스는 이를 거절했지만 로마 병사들은 회담장에 나가라고 압력을 가했다. 개죽음 당하기 싫다는 것이었겠지. 크라수스는 만약 자기가 죽더라도 적의 속임수 때문이지 아군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혼자 적을 향해 걸어갔다. 참 쓸쓸한 뒷모습이다. 총사령관을 혼자 보내는 게 못할 짓이라 생각한 참모장 옥타비우스가 장교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랐다. 수레나스는 크라수스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그는 강가에 따로 장소를 마련해두었으니까 거기까지 말을 타고 함께 가자면서, 마부를 시켜 말을 끌고 오게 했다. 말이 한 마리뿐인 것을 본 옥타비우스는 수레나스가 음모를 꾸몄다는 것을 알아챘다. 즉각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들고 마부를 찔러 죽였다. 놀란 수레나스와 수행 장교들도 칼을 빼들었다. 그 때 옥타비우스가 소리쳤다.

"우리는 로마군이다! 총사령관을 빼앗기는 설욕을 참을 수 없다!!"

파르티아의 장교들과 로마 장교들의 칼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뒤. 옥타비우스가 숨지면서 크라수스도 숨을 거뒀다. 그를 찌른 건 아군이었다. 총사령관을 적의 포로가 되게 할 수는 없다는 갸륵한 생각이었겠지. 찌른 자가 적의 편으로 갔다면 나쁜 놈이겠지만 같이 죽었다면 그 또한 충정일 터. 그런 과정을 거쳐 지휘관을 잃은 로마군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울루자미로 가는 길은 쓸쓸하다.

장신구를 파는 아이들.

BC 53년 크라수스의 나이 62세였다. 장군으로서 무능했든 오로지 돈만 알았든 삼두정치의 한 축이 그렇게 황야에서 숨진 건 충격이었을 것이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걸 좌우명으로 삼았던 한 사내의 욕심 끝은 그렇게 비참했다. 나는 전쟁사를 읽을 때마다 빛나게 혹은 부끄럽게 죽어간 장군들보다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병사들을 생각한다. 크라수스나 푸블리우스, 옥타비우스가 아닌 장삼이사란 이름의 집단에 묻힌, 기억되지 않는 숱한 생명들. , 잊고 갈뻔한 뒷얘기가 하나 있다. 그 싸움에서 포로가 된 로마인들은 지금의 한나라와의 국경에 수비병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얼떨결에 중국인들을 만난 최초의 유럽인이 아니었을까. 기원전, 그것도 멀고먼 나라의 집정관이 죽은 이야기를 너무 길게 썼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하란 평야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찌 그를 만나지 않고 갈 수 있으랴. 버스는 삭막한 땅 한가운데에 일행을 내려놓는다. 왜 이곳을 이렇게 내버려 둘까. 샨르우르파 주에서는 이곳 자체를 야외박물관으로 보존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의 신축이나 도로 포장을 허가하지 않는다. 반문명적인 내 시각으로는 무척 잘하는 일이다. 비까번쩍하는 건물이 들어서는 순간 풍경이 얼마나 망가질까. 눈앞에는 커다란 건물 하나가 서 있다. 말이 건물이지 거의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에 황량한 들판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의연함이 있다. 8세기에 만들어진 신전이라고 한다. 금화 1000만개를 들여서 지었다고 하니 그 당시로는 엄청난 건물이었을 것이다. 한 때는 대상들의 숙박시설, 즉 카라반사라로 쓰였다고 한다. 이곳은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저 낙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득한 옛날이 돌로 남았다.

하란이 얼마나 철저하게 부서졌으면 신전조차 폐허로 변했을까. , 크라수스 이야기를 먼저 하다 보니 하란의 역사를 건너뛰었구나. 로마의 치욕은 크라스수의 죽음 정도로 끝날 팔자는 아니었나보다. 296년에는 로마의 갈레리우스 황제가 이곳 하란에서 사산조 페르시아와 한판 벌였다가 참패를 당했다. 때문에 651년 이슬람군이 차지할 때까지 하란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세월이 흐른 뒤 유럽과 이슬람이 부딪힌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1104년 제1차 십자군과 이슬람군이 하란성을 사이에 두고 전투를 벌였는데 유럽의 참패였다. 바로 이웃인 에데사는 별 문제 없이 점령해서 나라까지 세웠는데 망신살이 뻗친 셈이었다. 물론 이것으로 하란의 역사가 끝난 건 아니다. 잘 나가던 도시가 왜 이렇게 폐허로 남았는지는 얘기하고 가야지. 셀주크투르크가 지배하고 있던 1259. 몽골에서 일어난 정복자 징키즈칸의 손자인 홀레구가 이끄는 원정군이 이곳에 도착했다. 셀주크군은 그들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지만 결국 함락되고 만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주거 역사를 자랑하는 땅, BC 2000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 고도의 문명을 자랑했던 고대도시, 한 때 아브라함이 살았던 땅은 말굽 아래 짓밟히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건물은 기둥뿌리까지 뽑혀 폐허가 되었다. 몽골군이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했던지 길고 긴 세월이 흘러도 하란은 다시 도시로 피어나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마을일 뿐이다. 어찌 사람만 죽어갔으랴. 그 긴 역사가 키워낸 문명과 유적들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흔적만 남은 울루자미.

 

무너진 모스크를 구경하고 있는데 흙집과 돌무더기 사이에서 나타난 송아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더니 일행을 구경한다.

아저씨들은 어디서 왔어요?”

짜식, 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이 동네에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만 통제받지 않고 돌아다니는 동물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소와 염소가 많다. 땅 위에 거뭇거뭇 한 것은 모두 소똥이라고 보면 된다. 귀에 인식표가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있는 녀석들이다. 모래뿐인 이곳에서 저들은 대체 무엇을 찾아다니는 걸까. 몇몇 녀석은 별 것도 없는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하란 특유의 고깔모양의 흙집을 지나 황량한 벌판을 걸어간다. 너무 쓸쓸하다. 인간이 인간의 흔적을 이렇게 파괴할 수도 있구나. 한낮의 기온은 기어이 온도계를 깨트려버리겠다는 듯 계속 치솟는다. 바로 시리아의 이웃이니 사막의 기온을 제대로 맛보는 셈이다.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 한 그루 없는 대지, 작열하는 태양 아래를 걸어가며 나는 자꾸자꾸 목이 마르다. 목이 마른 건지, 마음이 마른 건지. 울루자미로 가는 길에 대여섯 살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만난다. 손에는 역시 목걸이 같은 조잡한 기념품을 들고 있다. 내가 만난 일하는 아이들중 가장 어려 보인다. 사라는 말도 없이 그저 관광객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무엇이 저 아이들을 이 뜨거운 햇살 아래 세웠을까.

 

저 문으로 누군가 드나들었겠지.

폐허에 쳐놓은 철조망은 무엇을 의미할까.

루자미, 아니 그 잔해는 평원에 누워있다. 그 와중에 저 홀로 우뚝 선 33.3m의 미나레트가 생뚱맞다. 나머지는 대부분 무너지고 깨어졌다. 흔적만 남은 담장, 아치형의 문. 그게 전부다. 누가 이곳이 소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어진 모스크였을 거라고 짐작이나 할까. 모스크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큰 도시가 형성됐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모스크는 우마이아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인 마르완 2세 때 지었다고 한다. 혹자는 이슬람 세계에 지어진 최초의 대학이라고도 한다.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기 전 이 자리에는 고대 세계의 점성가와 석학들이 모여들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원이 있었다. 주로 의학, 수학, 천문학 등을 가르쳤다. 이곳은 뜻밖에도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다. 야훼 하느님은 그 때문에 아브라함을 이 땅으로 인도한 것일까? 하란은 세계 최초로 파가니즘이 생겨난 곳이라고 한다. BC 1100년경 신(SIN이라는 달의 신을 숭배하는 아시리아 사람들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그들을 사비라고 부르고 종교는 사비아교라고 불렀다. 이 종교는 초창기 그리스도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그리스 철학과 과학을 이슬람 세계에 전해주었다.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정복하면서 그들의 신전을 이슬람 양식의 모스크로 개조하고 신학교를 만들었다. 그렇게 세상살이는 교대를 하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 살던 땅을 타인이 점령하고, 또 누구는 점령자들의 문화를 초토화시키고. 철조망 사이로 아무리 안쪽을 들여다봐도 사람 사는 이치를 가르쳐 주는 이는 없다. 쓸쓸히 몸을 돌려 돌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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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었다.

샨르우르파로 가는 길의 황량한 광야.

샨르우르파로 가는 길. 산과 평원이 교대로 나타나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준다. 말라티아에서는 살구나무만 봤는데 이곳은 내내 밀밭이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작물까지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밀은 벌써 수확을 끝냈다. 이 지역에서는 밀 수확을 할 때 이삭만 자른다고 한다. 나머지 밀짚은 그대로 양들을 풀어놓고 먹인다. 길 옆으로 가끔 당나귀를 탄 아이들이 지난다. 심심해서 타고 다니는 건 물론 아닐 테고. 가만히 보니 당나귀 옆구리에 물통 같은 게 달려있다. 먼 곳으로 물을 길러 다닐 정도로 물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양젖을 담는 통? 가는 곳마다 확인하는 것이지만 터키에는 일하는 아이들이 많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보인다.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들도 가끔씩 보인다. 차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빠듯하다. 나만의 시간이 아니라 남들과 나눠 써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낮달이 계속 버스를 따라온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이,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 낮달. 그림처럼 목가적인 풍경이다. 물속에서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오리의 물갈퀴처럼, 일상의 고단함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샨르우르파에서 터키-시리아 국경까지는 65km. 말 그대로 엎어지면 배꼽이 닿고도 남을 만큼 접경이다. 우리 대사관에서 가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시리아의 불안한 정국 때문에 국경을 넘어오는 피난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해주는 사람도 전쟁을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넓게 펼쳐진 밀밭.

아브라함 동굴이 있는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의 입구.

뭐라고 적어야하나. 쓸 말이 너무 많으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드디어 샨르우르파에 도착했다. 이곳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 먼 길을 거쳐야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말문이 턱! 막혀버린 것이다. 적절한 감상문 한 줄 정도는 남겨야하는데 뭐라고 하지? 예언자들의 도시, 성서의 무대, 종교의 고향, 종교 부화장, 아브라함의 땅, 세계 최초의 도시샨르우르파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흐른다. 그 어떤 말도 가볍게 흘릴만한 게 없다. 그리고 대부분 종교적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니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종교로 말문을 열 수밖에 없다. 특히 곳곳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행적을 읽을 수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전에 이곳 하란에 머문다. 또 이설(異說)이 훨씬 더 지지를 얻고 있지만, 최소한 샨르우르파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고장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관련된 유적을 찾기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게 바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아브라함 동굴과 사형 직전에 살아났다는 발르클르 연못,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이다. 이 유적들이 있는 곳을 아브라함 공원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의 나라에 웬 아브라함 유적들이 이렇게 대우를 받느냐고 물으면 공부 좀 필요한 사람이다. 장차 더 설명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공동 조상으로 일컬어진다.

 

 

아치 중 맨 오른쪽에 아브라함 동굴이 있다.

왼쪽 문이 여성 전용, 오른쪽이 남성 전용.

아브라함 공원을 찾아가기 위해 숙소 문을 열고나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마치 냉장고에서 오븐으로 공간 이동을 한 느낌이다. 천지간을 가득 메운 열기. 역시 샨르우르파구나. 사막 국가인 시리아의 바로 이웃에 있는 이곳도 준사막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덕분에 사막이 되는 것을 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들도 태양의 영역까지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서두에서도 잠깐 밝혔지만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살인적인 더위였다. 안내책자에는 터키에서 가장 더운 지역’ ‘여름 평균기온 섭씨 50등의 문구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랑이다. 기껏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나. 후배 하나가 나를 생각한다고, 아니면 이 얼마나 고소한 일이냐고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여준 터키의 평균 기온에도 50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사진이 등장했다. 물론 이 사진의 제목은 터키의 평균 기온이 아닌 샨르우르파의 여름 평균 기온으로 바뀌어야 했을 것이다. 50도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최고 기온이라 봐야 기껏 35? 오븐에 들어가 연습할 수는 없으니 사우나에서 적응훈련을 하는 수밖에. 역시 뜨겁긴 뜨겁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나? 적응훈련의 효과를 보는 건가? 물론 실상은 그 게 아니다. 현지사람에게 물었더니 지난주까지는 평균 47도를 기록했단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37도밖에 안된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람도 선선하다고 이상기온이란다. 이 열풍이 선선한 바람이야?

 

동굴 안에서 '성수'를 받는 아이들.

저 안쪽이 아브라함 동굴인데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이왕 신기하게 생각한다면 생색 좀 내고 가야지. 이상기온 운운한 사람을 불러 진실을 가르쳐 준다.

이상 기온이 아니고요, 내가 와서 그래요. 도착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젠 날씨보다는 기운이 없는 게 더 걱정이다. 며칠 째 먹지를 못했으니 축적해둔 힘이 다 빠져나갈 수밖에. 아침도 과일 두어 조각으로 때운 참이다. 그래도 원하던 곳에 왔으니 힘차게 출발해봐야지. 아브라함 동굴은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 경내에 있는 석굴이다. 이 이름이 엄청나게 어려운 모스크는 오스만투르크 때 세워졌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탄생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일 게다. 모스크 광장의 다섯 개 아치 중 하나가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다. 헌데 출입문이 두 곳이다. 오른 쪽은 남자만 들어가고 왼쪽은 여자가 들어가는 입구라고 한다. 굳이 남녀를 가려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예배공간조차 남녀를 구분하는 게 이슬람 전통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거쳐 들어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사전에 상상했던 동굴의 모습과는 영 다르다. ’믿음의 조상이 태어난 곳 치고는 초라한 편이다. 4각형의 조그만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수도꼭지가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신성한 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갈 수 있나. 나도 줄을 섰다가 물을 한 컵 마신다. 내 몸 안에 신성한 기운이 가득 차는 것 같다. 이젠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을 들여다봐야 할 차례. 참배객이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야한다. 동굴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4각의 틀에 유리를 끼워놓았는데 천장은 바위 형태가 그대로 살아있다.

 

동굴 속의 우물.

 

드디어 내 차례. 바짝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본다. 어라? 이게 뭐야? 유리창 안에는 샘 하나만 보일 뿐이다. 바닥과 벽을 돌로 쌓은 네모난 샘. 샘은 물론 그 바깥에도 물이 가득 차 있다. 더 안쪽에 무언가 있을 법도 한데 조명이 물에 반사되는 바람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허무하다. 이렇게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아기 아브라함과 그 엄마는 어디에 있었다는 거야? 카메라를 들고 X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을 쳐보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등을 살짝 친다? 열 받는데 이건 또 뭐야? 돌아보니 수염이 하얗고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쓴 노인 하나가 내게 뭔가 자꾸 설명을 한다. 우리말이 아닌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도 아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우리말로 마구 떠든다. 각자 할 말만 하지만 대화는 충분히 된다.

왜 이렇게 촐랑이처럼 방정을 떨고 댕겨?”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이라고 해서 와봤더니 물만 있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왕 보라고 만들어 놨으면 뭐가 보이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뉴? 당최 뭘 보란 건지.”허어! 이 사람아. 동굴에 와서 동굴을 봤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래. 보고 싶은 것은 스스로의 가슴 속에 있다네.”

노인이 껄껄껄 웃는다. 무슨 소리야? 아브라함이 왜 내 가슴에 있다는 거야. 헌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듯하기도 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만난 노인.

동굴 바로 옆에 있는 기도실.

그나저나 아브라함이 이 동굴에서 태어나긴 한 것일까? 아니, 왜 하필 동굴에서 태어났을까. 샨르우르파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의문은 속물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증은 풀고 가야지. 이 동네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모두 구전에 의존한다. 아브라함이 구약에 등장하는 건 창세기 11장부터다. 이때의 아브라함은 이미 장년에 접어들어 있다. 그 이전의 행적은 어느 곳에도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전설만 난무하는 것이다. 이제 그 전설의 샘으로 풍덩 빠져 보자. 전설 속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난 것은 BC 2100년이다. 그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이는 님로드(Nimrod) 왕이라는 앗시리아의 영주였는데,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인간이나 신이래. 진짜 신들 열 받았겠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님로드 왕의 우상(신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이 님로드가 꿈을 꾸는데 별 하나가 얼마나 빛나든지 태양 빛을 가릴 정도더란다. 어라? 이게 무슨 뜻이지. 왕은 점술사들을 불렀다. 그들의 해몽은 한결 같았다. ‘올해 이 도시에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가 당신의 자리를 빼앗고 당신의 왕국을 없앨 것이다.’ 왕은 정신이 번쩍 낫겠지. 그래서 우선 취한 조치가 임신을 원천봉쇄할 수 있도록 남자들을 도시에서 모두 내쫓는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직 잉태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아브라함 어머니는 어떻게 임신을 했을까? 일이 그리 되려고 했던지 궁전에서 신상을 만드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시내에 남을 수 있었다. 특수보직을 가진 셈이었다.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

아브라함 동굴을 찾아온 참배객들.

님로드 왕의 불행은 그렇게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집으로 퇴근한 날 아이가 잉태됐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투철한 저항정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고. 점술가들은 곧 왕에게 달려가 이 도시에서 아이가 잉태됐다고 일러바쳤다. 이왕 그렇게 점괘가 용하면 누가 임신했다는 것도 알 법도 하련만. 이번에는 임신한 여자들이 모두 도륙을 당했다. 아브라함의 어머니는 배를 꽁꽁 동여매서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산달이 되자 그녀는 동굴로 들어가서 아이를 낳았다. 여기서 전설은 그 요건에 더욱 완벽성을 띠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어머니가 아기를 두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보니 사슴들이 찾아와 젖을 주고 있더란다. 정말 신기한 건 지금부터다. 아기는 태어난 지 한 달 뒤에 한 살짜리 아이가 되고 다섯 달 뒤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되었다. 15개월이 지나 15세가 될 무렵, 소년 아브라함은 동굴에서 나오다가 군사들에게 잡혔다. 15세나 됐으니 의심 받을 일은 없었다. 아브라함이 마음에 든 님로드는 그를 궁전에 머물도록 했다. 폭탄을 품에 안은 셈이었다. 궁전에 사는 아브라함은 신상들을 볼 때마다 투덜거렸다. 이따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신이야. 신이라면 힘이 있어야지. 그때 가브리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하늘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시거든. 그분도 널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열심히 해봐.“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조그만 녀석이 믿던 신을 바꾸라고 한다고 , 알았습니다.’ 할 사람이 어디 있나.

 

모스크 위를 나르는 비둘기들.

답답한 아브라함은 한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그때도 봄이 오면 야외로 나가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여의도 벚꽃축제 같은 것이겠지. 아브라함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 축제의 행렬에서 빠졌다.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들로 나가고 궁전이 텅 비게 되자 이 야무진 청년은 도끼를 둘러메고 신전으로 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아버지가 만든 신상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큰 신상에 도끼를 꽂아두고 슬쩍 빠져나갔다. 왕이고 신하고 신나게 놀고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와 보니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신상이란 신상은 몽땅 장작이 되고 멀쩡한 건 딱 하나 남았는데, 그나마도 도끼가 꽂혀 있으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축제에 가지 않았던 아브라함이 의심 받을 건 뻔하다. 그를 잡아다 족치기 시작했다.

야 임마, 네가 그랬지?”

무슨 소리래요?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요.”

너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불어.”

아참!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당신네들의 신한테 물어봐요. 내가 볼 땐 그 도끼 들고 있는 신상(사실은 도끼에 맞은 신상)이 한 짓 같은데요? 그놈이 다른 놈들 몽땅 찍어버린 건 아닐까요?”

이 청년 천연덕스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거기서 또 전도를 했다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신이냐.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어라.

 

사진 찍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아브라함은 바로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신상이 전부 자빠져도 범인조차 제대로 못 잡는 님로드 왕의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더욱 미울 수밖에. 여기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에 가서 해야 한다. 가보면 안다. 전설이 조금 길어졌지만 이 정도는 알고 가야 이 고장에 대한 예의다. 동굴에서 나와 모스크를 천천히 돌아본다. 이곳도 아이들과 비둘기들의 세상이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논다. 아이들이 카메라의 뷰파인더 속에 여러 번 들어오면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의사표현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그 정도 눈치는 금세 생긴다. 사진을 찍어줄 테니 모이라고 했더니 좋아 죽겠단다. 저 환한 얼굴들. 아이들과 비둘기까지 어울려 한참 놀아준다. 모스크 밖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신다. 머리 위로 보이는 성채에는 빨간 터키 국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고대사람 아브라함과 현대의 터키 국기. 느닷없이 타임머신을 탄 듯 어지럽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서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년 하나가 웃으면서 화장실을 가르쳐 주겠단다. 그럴 거까지 없는데? 내 정중한 사양을 못 들은 척 끝내 화장실 앞에까지 따라온다. 그러건 말건 입구에서 1리라를 내밀고 들어가려는데 그 청년이 손을 벌리고 서 있다. 어라? 너도 달라고? 이거 순 날강도일세 그려. 너 아니어도 화장실 알고 있으니까 필요 없다고 했잖아. 결국 1리라를 강탈당하고 만다. 영악한 것들.

 

모스크 위로 성채가 보인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앉을 때 보니 저만치 연못 하나가 있다. 저게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다른 쪽에 있고 아인제리하 연못이란다. 아인제리하분명 여자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뭔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도 슬픈 사연이 하나 잠겨 있다. 제리하는 님로드 왕의 딸이었다. 헌데 이런 비극이. 그녀는 아버지인 왕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인 하나님을 믿었다. 혹시 아브라함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적을 잡으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기까지 알 방법은 없지만 둘은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됐다. 신상을 때려 부순 연인 아브라함이 아버지인 님로드 왕에게 사형을 당하는 순간, 그녀도 이 연못에 몸을 던졌다. 이거야.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가 여기에도 있었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 여인의 눈물이 가슴에 닿는다. , 사랑이여! 그 덧없음이여! 끝내 궁금한 게 하나 있다. 하나님은 왜 그녀를 안 구해줬을까.

posted by sagang

터키 이야기, 그 두 번째 장정을 시작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연재했던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후 조리도 못한 채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일종의 신고 의식이 필요했던 셈이지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번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블로그에 연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책으로 낼까.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는 오랜 원칙을 깰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또 긴 여정에 들어갑니다. 읽은 뒤 그냥 가지 말고 한 줄 답글로 아는 척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권과 마찬가지로 댓글로 격려해주신 분들에게는 2권이 출간된 뒤 저자 사인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사진 왼쪽 넓은 바다가 마르마라해, 오른쪽으로 꺾어진 해협이 흑해와 연결되는 보스포루스, 가운데 강 같은 곳이 골든혼이다. 육지는 맨 왼쪽 반도처럼 나온 곳이 유럽 쪽의 구시가지, 골든혼을 건너 펼쳐진 땅이 역시 유럽의 신시가지. 그리고 앤 앞쪽에 보이는 것이 아시아 땅이다.

전쟁? 절대 안 나요.”

새벽 430.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두 명의 청년. 시리아와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들이대듯 묻자, 모루에 해머를 내리치듯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 왜 안 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전쟁을 해서 이득을 보는 쪽이 아무도 없거든요. 시리아는 물론이고 터키 역시 마찬가지예요. 전쟁이 나면 관광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잖아요. 또 전쟁에서 이긴다고 땅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옛날하고는 달라요.”

으으음”(엄청나게 감탄했다는 듯 끄떡끄떡)

미국도 이스라엘도 이득 볼 게 없고중국 역시 반대하는데다 NATO도 전쟁에 참여할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어요.”

그렇구나. 전쟁이 안 일어나는구나. 헌데, 이 친구들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해박하지? 내가 장군 출신의 군사평론가들을 만난 건가? 그나저나 안 물어봐줬으면 얼마나 섭섭할 뻔 했니? 나는 감탄을 지나 감동까지 하고 만다. 하늘의 점지로 우연히 만나게 된 터키 청년들. 한국에서 3년가량 일하고 돌아왔다는 그들과의 질펀한 수다가 시작된다. 너희들 딱 걸렸어. 내가 바로 그 유명한 호기심 사나이거든.

 

하늘에서 본 이스탄불.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한 게 더위전쟁이었다. 더위야 최종 목적지로 잡은 샨르우르파란 곳이 섭씨 50도를 넘나든다니 염려해주는 게 당연하지만 느닷없이 전쟁 걱정은 왜? 출발을 코앞에 두고 터키와 시리아 간에 전쟁 발발 가능성을 예고하는 사건이 터졌다. 먼저 시리아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며 지중해 연안에서 터키 전투기를 격추했다. 불뚝 성질 하나만큼은 선불 맞은 멧돼지도 부럽지 않을 터키가 넙죽 엎드려 있을 턱이 있나. 반응은 즉각 나왔다. 국경에 접근하는 시리아 군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고 대공포와 미사일 발사기 등을 국경지대에 배치했다. 여기까지가 출발 직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문제는 내가 갈 곳이 바로 잘못 넘어지면 배꼽이 국경선을 넘어갈 정도로 시리아에 가까운 접경지역이라는데 있었다. 몇몇 사람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고 몇몇 사람은 뭔가 기대하는 눈초리로 등을 떠밀었다. 이참에 날 치워버리겠다는 심보겠지? 나는 잘하면 종군기자 한번 해보겠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현실성 떨어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목표로 했던 지역을 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였다.  그러다보니 공항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 전쟁’일 수밖에 없었. 터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공항이나 이스탄불, 그리고 훗날 접경지역에서 만난 그 누구도 전쟁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걱정 따위는 서리서리 접어 배낭에 넣어두고 어렵게 만난 청년들하고 놀아볼 일이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

주로 이야기를 나눈 청년의 이름은 이브라힘이다.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유일신 3대 종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이슬람식 표기가 바로 이브라힘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에는 드물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다. 그와 친해질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 일했다는 경험이상의 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갔을 때 서울에서 일했어요?”

아뇨, 저는 주로 지방에 있었어요. 혹시 예산이라고 아세요?”

예산?(사람들이 놀라 돌아볼 만큼 목소리가 커진다) 아다 마다야? 그쪽이 바로 내 고향이에요. 수덕사라고 들어봤어요? 내가 거기서 자랐거든.”

정말요?(기특한 것. 한국식 추임새까지 넣을 줄 알고). 제가 바로 예산에서 일했어요. 수덕사도 당근 알지요. 덕산을 거쳐서 가는.”

어라? 어라?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야. 이 머나먼 곳에 와서. 이 정도면 고향 동생? 아니, 동생이라기에는 나이차이가 좀 나고. 아무튼 객지에서 고향의 조카쯤 만난 듯한 감동이 물밀 듯 몰려온다. 이야기는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말투도 은근히 내려간다. 그의 소망은 한국에 가서 식당을 차리는 거란다. 전에 돈을 좀 벌어서 식당을 열었는데 망했다고 아쉬워한다. 터키에도 코리언 드림을 품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하고 약간은 불안하기도 하다.

 

아타튀르크 공항 내부.

식당을 차리면 서울은 좀 어려울 것 같고. 대전이나 천안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저 개업하면 형이 신문에 내줄 수 있어요?”

그럼, 내주다마다. 신문이 문제야? ‘테레비에도 빵빵 때려줄 테니 차리기만 해.”

내가 준 명함에서 신문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 친구, ‘실속하나 챙긴다. 나는 훗날 걱정 같은 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덜컥 굳은 맹세부터 한다. 내가 무슨 재주로 음식점 개업 소식을 신문에 내고 TV에 때려준단 말이냐. 하지만 그 소망 가득한 눈망울 앞에서 차마 “No”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용기부터 주는 거야. 그나저나 언제부터 우리가 형 동생이 됐지? 아무렴 어떠랴. 터키에 어린 동생 하나 생겼으니 좋은 일이지. 우리는 공항 대합실 한 가운데 서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사진도 신나게 찍어댄다. 남들이야 흘끔거리건 말건. 그러다가 결국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말았다. 그의 뜨거운 피가 내게로 내 피가 그에게 흐르는 느낌이 선연하다. ! 너와 나 사이엔 원래 하나의 이름을 가진 강이 흐르고 있었을지도 몰라. 이번 여행 일정에 넴루트 산이 있다니까 그쪽의 아드야만이 자기 고향이라고 또 한 번 팔짝 뛰며 반가워한다. 그래, 인연이라는 게 이렇다니까.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니 안내하고 싶다며 금방이라도 따라나설 기세다. 하지만 그도 직장생활을 하는 몸. 말만으로도 고맙지. 작별을 하기 전에 터키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새벽 승객을 기다리는 공항택시들.

내 동생, 이브라힘아, 너는 네가 유럽인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해?”

유럽이든 아시아든 아무 상관없어요. 우린 터키사람이거든요.”

우문에 현답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물어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터키는 국토의 97%가 아시아 땅(아나톨리아)에 있고 단 3%(트라키아)만 유럽의 끝 발칸반도에 걸쳐 있다. 영토의 비중으로 보면 아시아에 속한 국가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의 일원이 되고 싶은 열망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오스만 제국이 세계를 호령할 때, 동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삼고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기억을 갖고 있는 투르크족. 그 위대했던 시절에 대한 미련일까. 세계 1차 대전에서 참패하고 1923년 로잔조약을 체결할 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에게해의 섬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스탄불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 땅을 갖는다는 상징성과 서구로 연결되는 통로를 지켜야 한다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는 아시아의 이름으로 살기보다는 영광이 대대손손 계속 될 것 같은 유럽에 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찬반 논란이 거세긴 했지만 터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 자동차 번호판도 ‘EU Style’이다. ‘준비된비회원국인 셈이다.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서는 달러보다 유로화가 주로 통용된다.

 

세상은 아직 박명 속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터키는 여전히 유럽연합의 외곽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회원국인 그리스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과 인권이나 키프로스 갈등’, ‘쿠르드족 문제등을 가입 거부 이유로 들지만 까놓고 말하면 유럽은 터키가 싫은 것이다. 과거의 정복자에 대한 공포의 잔해도 있을 테고, 어쩌면 기독교 문화권에 이슬람 문화를 끼어주기 싫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터키 경제에서 별로 덕 볼 것도 없으니 잘(?) 나가는 자기들끼리 놀아보겠다는 수작이기도 하다.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요즘은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에 목을 매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 역시 유럽이 전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등 몇몇 나라의 경제가 도미노 게임이라도 하듯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의 뒤통수를 강타하는 판이니 그 아수라장에 무엇 하러 낄 것인가. 더구나 이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아시아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당신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거야? ‘유럽이든 아시아든 상관없다. 우리는 터키 사람일뿐정답이다. 스스로의 자존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뒤에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얘기가 잠시 무겁게 흘러갔다. 읽다가 덮은 독자는 없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임을 알아야 된다. ‘아빠 좋아? 엄마 좋아?’ 식의 선택지는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니. 아무튼 공항에서 금방 만난 동생 이브리힘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드디어 가이드들을 만났다. 맨 오른쪽이 이젯, 가운데가 훌리아.

한국에 오면 꼭 전화해. 알았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멀어지는 그의 어깨가 듬직하다. 근처에 서 있다가 잠깐 눈이 마주친 여행작가 P가 감탄사를 섞어 한마디 한다.

참 빠르시네요.”

뭐가 빠르다는 거지? 사람 사귀는 게? 내 삶이 그래요. 나는 오로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여행을 하는 걸. 그리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또 사람들 사이를 떠나는 걸. 이별은 상봉을 낳는 것일까? 이브리힘과 헤어지는 찰나에 가이드들이 허겁지겁 나타난다. 그들이 지각하는 바람에 일행은 잠시나마 공항의 미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귈 기회를 얻었지만. 가이드는 남녀 2명이다. 그들 눈에는 옆 사람과 내가 닮아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들 둘이 무척 닮아 보인다. 혹시 남매나 부부 아닐까? 뭐 차차 알아보면 될 테고. 둘 다 키가 크지 않고 아담하다.  내가 큰 키가 못돼놔서 작은 사람들을 만나면 형제애부터 느낀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큰 사람은 가까워지는 단계부터 약간 부담을 느낀다. 가끔은 터키 사람들이 유럽인처럼 키가 큰 줄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큰 사람은 크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작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생긴 것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짐작이긴 하지만, 아주 오랜 옛날 몽골초원에서 돌궐족으로 살 때는 우리네 생김새와 많이 비슷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중앙아시아를 지나며 적절히 피를 섞고 또 아나톨리아에 들어와서 또 다른 피를 섞으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들의 멀고먼 여행 이야기는 터키 역사를 말할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하자.

 

여자 가이드의 이름은 훌리아(Fulya). 이들의 한국말은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들보다 어눌하다. 내가 잘 못 알아들으니 훌랄라라고 할 때 훌리아예요.”라며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준다. 훌랄라? 이거 또 괴물 하나 나타난 거 아냐? 그 순간 그녀가 말한 훌랄라는 훗날 많은 사람의 입에서 울랄라가 되기도 하고 얼랄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지만 한국에는 단 하루만 가봤다는 스물일곱의 그녀. 명물이다. 남자 가이드의 이름은 이젯 혹은 가제트를 연상시키는 이제트(Izzet). 어라? 이제트? 이집트에서는 여자 이름인데? 람세스 2세가 뜨겁게 사랑했던 여인이잖아. 이 친구는 비교적 과묵한 편이다. 스물여덟 쥐띠라고 한국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역시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포항에 있는 선린대에서 6개월 어학연수를 받았다. 그 역시 숱한 전설을 남겼다. 한국에 하루 가본 훌리아나 현지에서 6개월 공부한 이젯이나 말이 유창하지 못하긴 마찬가지. 나는 내가 터키말을 배우느니 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로 한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의 한국어 교사다. 하드트레이닝을 시킬 테니 각오하라. 속으로 하는 생각을 그들이 알 턱이 있나. 물론 암울한 미래도 알 수 없겠지. 비행기가 도착한 게 현지시간으로 4시 40분. 새로 만난 동생과 수다를 떨고 가이드들과 감격의 상봉을 해도 아침 먹을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다. 공항을 한 바퀴 돌아본다. 밖으로 나가니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맑은 날이 많은 터키에서는 보기 드문 하늘이다. 9개월 전에 만났던 폭주족 택시운전사가 생각난다. 생명을 담보로 유희를 즐기던 그, 잘 있겠지? 별 사람이 다 보고 싶다.

 

 

차 안에서 찍은 이스탄불의 주택가.

이스탄불 시내로 가는 길. 새벽이라 오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저 어디엔가 잠들어 있을 오욕칠정. 그리고 밝음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음습한 뒷골목 풍경. 사람 살이가 모두 빛과 그림자의 직조물이 아니던가. 오랫동안 궁금했던 게  느닷없이 생각 나 이젯에게 묻는. 이 느닷없음이야말로 나의 오랜 지병이다.

터키에도 집창촌이 있어요?”

? 무슨촌요?”

단어 자체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하긴 학교에서 그런 말을 가르칠 리 있나. 하지만 무슬림이 대부분인 터키에도 집창촌이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그냥 물러설 수 없다. 이리 저리 설명해 보지만 성매매라는 단어조차 모르니 요령부득이다. 이게 어디 온갖 단어를 동원해 설명할 일이던가.

돈 주고 여자를 사는 곳, 몰라요?”

그 말은 효과를 본 모양이다. 잠시 얼굴이 붉어지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있어요.”

정부에서 인정하는 건가요?”

그렇구나. 있구나. 그것도 공식적으로. 하긴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게 그 직업이라지 않던가. 에페소에 가면 고대에 창녀촌을 안내하던 세계 최초의 광고도 있는 판인데.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 동행자들의 눈초리가 약간 새치름해진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이건 순전히 학문적 궁금증이라니까요. 공부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이스탄불 시내.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새벽, 도시는 여전히 적막에 싸여있다. 그리고 모든 갈등은 평화라는 위장막에 덮여있다. 나는 지금 터키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푸듯, 이 도시에 수천 년동안 고인 이야기를 퍼내야 된다. 숙련된 백정처럼 도시의 정수리에 잘 벼린 펜과 카메라를 들이대야 된다. 느닷없이 불타오르는 전의로 온 몸이 뜨거워진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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