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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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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3.16 [사라져가는 것들 102] 손두부23
2009. 3. 16. 09:48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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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명절은 두부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살림이 어려워진 뒤로 추석에 송편을, 설에 떡국을 구경하지 못하는 빈도가 잦아졌지만 두부를 만들기 위한 맷돌질만큼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명절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두부만 먹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슬프고 어찌 보면 우습기도 한 풍경이지만, 그나마 배불리 명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할머니의 두부에 대한 ‘애정’ 덕분이었다. 집착에 가까운 그 애정은 아들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당신의 작은 아들, 즉 내 삼촌은 어려서 집을 나갔다. 그렇다고 요즘 흔한 ‘비행청소년’은 아니었고, 공부에 대한 열정을 재우지 못해 가출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굉장히 똑똑한 아이였는데 제 아버지(내게는 할아버지)가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집을 나갔다.”고 늘 가슴 아파했다. 그 이야기 끝에는 “그 아이만 제대로 가르쳤어도….”라는 아쉬움의 표현이 뒤따랐는데, 그 안에는 고된 현실에 대한 설움과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한탄이 버무려져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집을 떠난 삼촌은, 할머니의 가슴에 영원히 빼지 못할 큰 못을 하나 박아놓은 셈이었다. 그 삼촌이 가장 좋아한 게 두부였다고 한다. 할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자다가도 두부란 말만 들리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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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삼촌은, 할머니의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 맷돌이 닳아서 다시 쪼아올 때가 돼도 돌아올 줄 몰랐다. 그래도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명절 무렵이 되면 잊지 않고 두부를 만들었다. 언젠가는 아들이 돌아올 것이고, 그 시기는 다른 집의 가출했던 아들들이 그렇듯이, 명절 전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당신의 생각이었다. 아들이 돌아오자마자 손수 만든 두부를 실컷 먹여보는 게 소원이었던 셈이었다. 한 모판의 두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꽤 긴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할머니는, 이리저리 다 팔아치우고 손바닥만큼 남은 밭에 주로 콩을 심었다, 콩을 파종할 때부터 당신의 머릿속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콩을 수확할 때에도 가장 좋은 것을 하나하나 고른 다음, 잘 말려서 꼼꼼하게 보관해뒀다. 혹시 상했을까 벌레나 먹지 않았을까, 가끔 햇볕에 널어놓고 흠이 있는 것을 골라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는 건 콩뿐이 아니었다. 소금장수가 오면 가장 좋은 소금을 사서 깨끗한 자루에 담은 다음 간수(습기가 찬 소금에서 저절로 녹아 흐르는 짜고 쓴 물. 두부를 만들 때 콩물을 엉키게 하는 역할을 한다)를 받았다. 간수 역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은 것을 써야 성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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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두부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맷방석에 콩을 풀어놓고 다시 한 번 꼼꼼히 고른 다음, 그걸 잘 씻어 물에 담갔다. 콩을 불리는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름엔 한나절 이상, 겨울엔 만 하루정도가 필요했다. 다음에는 잘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았다. 콩과 적당량의 물을 표주박이나 국자로 떠서 맷돌의 주둥이에 넣고 돌렸다. 할머니는 늘 고행에 나선 수도승처럼 묵묵하게 그 일을 해내었다. 다른 사람이 도우려 해도 극구 손사래를 쳤다. 맷돌질이 끝나면 뽀얗게 갈린 콩과 물을 적당량 섞어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폈다. 콩물이 끓어오르면 거품이 생기는데, 그걸 중간 중간 걷어내면서 솥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줘야 했다. 잘못 한눈이라도 팔면 콩물이 넘치기 때문에 적절하게 찬물을 부어주는 것도 잊으면 안됐다. 어느 정도 끓으면 불을 약하게 하고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콩물을 끓이는 것은 단순한 가열이 아니라, 콩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하고 콩이 함유하고 있는 단백질이 골고루 용해되도록 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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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물이 다 끓으면 커다란 삼베 자루에 부어서 걸렀다. 자루를 눌러 짜면 콩물(두유 豆乳)이 흘러내리고 자루 안에는 비지가 남았다. 비지 역시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조금씩 나눠뒀다가 국도 끓이고 찌개에도 넣었다. 걸러진 콩물은 다시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한소끔 끓은 물이 어느 정도 식으면 간수를 서서히 흘려 넣으면서 저어줬다. 조금 있으면 물처럼 보이던 콩물이 몽글몽글 엉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엉기는 과정에서 떠내면 순두부가 되었다. 이후부터가 두부를 만드는 과정 중의 하이라이트였다. 간수에 의해 엉킨 물은 네모지게 만든 나무틀에 삼베나 무명을 깔고 부었다. 그 다음 뚜껑을 덮고 무거운 맷돌 같은 것으로 눌러 두면 숭숭 뚫린 틈으로 물기가 빠지고 안에서 두부가 만들어졌다. 어느 정도 기다린 뒤 보자기를 열어보면 뽀얀 두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만들어진 두부를 한 모씩 자른 다음, 맨 먼저 집을 떠난 아들 몫을 보관해두었다. 그렇게 두부를 만들고 보관하는 과정은 정성스럽다 못해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엄숙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정성과 소망과는 달리 그것을 꼭 먹어야 할 사람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만 무심하게 흘러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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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영양이 많다는 뜻이겠지만, 고기가 그리 흔하지 않았던 이 땅에서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특히 콩을 원료로 하는 각종 장류(醬類)는 우리민족 식생활의 기반이었다. 두부 역시 대중적인 콩 가공식품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조리법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부침, 두루치기, 찌개, 조림…. 최근에는 두부를 이용한 피자 등 퓨전식품까지 개발되고 있다.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에게 두부를 먹이는 풍습도 있다. 옛날 감옥은 식량배급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려서 나오기 일쑤였단다. 그래서 고단백 식품인 두부를 먹여서 급한 대로 영양보충을 시켜줬다는 것이다. 두부처럼 희고 깨끗한 음식을 먹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전에는 집집마다 두부를 직접 해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대량생산된 두부를 쉽게 사먹을 수 있다. 소위 ‘웰빙’ 바람을 타고 두부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맷돌을 돌리고 장작불을 지피는 것은 아니다. 가마솥에서 콩물이 몽글몽글 엉기던 풍경은, 끝내 아들에게 두부를 먹이지 못하고 눈을 감은 내 할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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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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