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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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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9. 10:13 이야기가 있는 사진

제게 여름은 좀 난감한 계절입니다.
휴가철이 시작되면 도로마다 동맥경화에 걸려 끙끙 앓아대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 제 차를 하나 더 얹자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휴식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과 일을 하러 가는 사람일 때문에 길을 나서야 하는 제가 더 절박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 역시 1년에 한번, 벼르고 벼른 휴가길이니 늘 길 위를 떠도는 제가 한 수 접는 게 옳을 것 같기도 합니다.
몰론 제게도 휴가는 있습니다.
휴가를 받으면 하루 이틀로는 갈 수 없었던 오지나 섬을 떠돌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는 전남 신안군 증도에 다녀왔습니다.
그밖에도 몇몇 섬을 돌아다녔지만, 제가 최종적으로 잡았던 목적지는 역시 증도였습니다.
염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염전이라면 부안의 곰소염전을 비롯해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국내 최고라는 증도는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벼르던 곳입니다.
아시아 최대의 단일염전이라는 태평염전을 중심으로 국내 소금 생산량의 60% 이상을 맡고 있는 염전단지가 바로 그곳입니다.
비옥한 갯벌과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온과 적절한 바람이 소금의 탄생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소금은 금()만큼이나 귀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생존을 위해서는 금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지요.
동물에게 소금은 생명유지를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소금은 체내, 특히 체액에 존재하면서 삼투압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체내에 칼륨이 많고 나트륨이 적어지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또 땀을 많이 흘려 급격하게 염분을 잃게 되면 현기증·의식혼탁 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옛날에는 소금의 확보 여부가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기도 했습니다.
소금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했지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소금을 얻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천일염이나 바닷물을 퍼서 솥에다 넣고 끓여 졸이는 자염 등이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각변동으로 바닷물이 갇혀 굳어진 고체 소금을 파내 얻는 암염이나 소금기 있는 지하수를 증발시켜 채취하는 정염도 있습니다.

방법이야 어떻든 쉽게 얻어지는 소금은 없습니다.
천일염만 해도 바닷물을 햇볕 아래 가두기만 하면 소금이 생길 것 같지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얀 금, 소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수문을 열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저장지에 가둔 다음 증발지로 보냅니다.
1차 증발지에서 어느 정도 증발시킨 뒤 2차 증발지로 보내집니다.
저장지에서 1, 2차 증발지로 갈수록 수분은 증발하고 염도는 높아집니다.
2차 증발지를 거쳐 염도가 최고조에 달한 바닷물은 마지막으로 결정지로 보내집니다.
볕이 좋은 날 새벽나절 결정지로 들어간 소금물은 한낮 내내 졸이고 졸여져 저녁 무렵이 가까워지면 하얀 소금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열 말의 바닷물을 가두면 소금 한 되가 나온다고 합니다.
봄가을은 열흘 정도, 여름은 한 사나흘이면 소금이 됩니다.
소금 꽃을 만드는 건 햇볕뿐이 아닙니다.
적당한 바람과 염부의 땀과 적절한 시간이 버무려진 결과입니다.
계절, 햇볕, 바람은 물론 결정지에 머무는 시간에 따라 소금의 굵기와 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입니다.
소금은 어쩌면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젖일지도 모른다는.
바다는 소금을 통해 우리가 잊어버린 시원(始原)의 사랑을 끊임없이 보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금이 귀하다는 걸 강조하다 보니 얘기가 옆길로 새고 말았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소금을 찾아갔던 이번 증도 여행은 별 소득이 없는 실패작이었습니다.
섬 어디를 가도 염전은 비어 있고, 땀 흘리는 염부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염전은 바다풀이 솟아올라 폐염전과 다름없었고, 소금창고 옆에는 장비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한참 소금을 만들어야하는 여름, 소금을 만들던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간 걸까요.
벌써 짐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비 때문입니다.
여름 내내 쏟아진 비가 소금을 만드는 사람도 장비도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비가 오면 염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140만평을 자랑하는 광활한 태평염전 역시 염부 대신 관광객들만 기웃거릴 뿐이었습니다.
67개의 소금밭에서 연간 약 15천여t의 천연소금을 생산한다는 그곳, 3km에 걸쳐 도열한 소금창고만 해도 66개나 되는 그곳이 두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마침 조금 열려있는 소금창고가 있길래 들여다봤더니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천일염은 1년 내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보통 4월 중순에 시작해서 9월말이면 끝납니다.
그런데 소금이 가장 많이 생산 되는 여름 중 두어 달을 공쳤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찌 증도뿐이겠습니까.
섬을 돌아다니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올 겨울에는 소금 값이 금값의 뺨을 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값싼 중국산 소금이 지천으로 흘러들어온다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미천한 입맛은 달게 짜다는 우리 소금맛과 쓰게 짜다는 중국산 소금 맛을 구분할 줄도 모르니까요.
그리 생각하니, 태생적으로 걱정 많은 나그네의 괜한 기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염부는 관광객입니다.

posted by sagang
2007. 11. 7. 13:1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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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에 나잇살이나 짊어지고 사는 이들은 '키' 란 말을 들으면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차서 키득키득 웃거나, 늦가을 대추처럼 붉어진 얼굴로 돌아앉기도 합니다.
키가 금세 오줌싸개 어린 시절로 데려가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다짐하고 잤건만 잠에서 깨어보면 요에는 커다란 지도가 하나 그려져 있었습니다.
애들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요.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는 건 아니고, 오줌싸개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그런 날 아침이면, 어머니는 아이에게 키를 씌우고 바가지를 들려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내보냅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옆집 대문을 두드리지요.
"엄마가 소금 좀 얻어 오라구…"
잠시 후, 머리에 쓴 키 위로 타타닥!!! 쏟아지는 부지깽이 세례.
연이어 들리는 싸르륵~ 소금 뿌리는 소리.
어마 뜨거라, 도망쳐 보지만 이미 소문은 동네방네를 달음질 친 뒤고 망신은 당할 대로 당한 뒤입니다.
아이는 그 날 등굣길-하굣길 내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어 쥐구멍을 찾게 마련이지요.
오줌싸는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어 버릇을 고쳐보려는, 일종의 어른들의 공조체제였습니다.
머리에 씌운 키가 '오줌싼 아이'라는 표식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지요.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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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만들어진 목적은 물론 다른 곳에 있지요.
키는 껍질을 벗긴 버드나무가지나 산죽(山竹 조릿대)으로 만듭니다.
옛날 천시 받던 고리백정들이 만들던 품목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크기나 모양은 지방이나 만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가운데가 움푹 파이고 날개가 달린 건 거의 비슷합니다.
키를 아래위로 까불러서 콩·팥·들깨 같은 알곡을 껍질이나 잔돌과 분리시키는 것을 '키질'한다고 합니다.
막 거둬서 타작을 마친 알곡에는 검불이나 잔돌 등이 마구 섞여 있기 마련이거든요.
겉보리 쿵덕쿵덕 절구질을 해놓고 껍질을 날려버릴 때도 키질이 필요합니다.
키에 알곡을 한 바가지씩 놓고, 까불질을 하면 가벼운 껍질이나 먼지는 날아가고, 잔돌과 쭉정이는 키 앞머리로 갑니다.
그리고 필요한 알곡은 움푹 패인 뒤편으로 몰리게 되지요.
그렇다고 키질이 말처럼 만만한 건 아닙니다.
즉,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잘못하면 알곡이 주르르 떨어지거나 장단을 못 맞춰서 헛키질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 키질도 제대로 하려면 오랜 세월 수련이 필요합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던가요?
젊다고 힘센 척 하고 글 좀 읽었다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이 넘쳐나도, 시간이 가르치는 게 어디 한 둘이어야지요.

경상북도 영덕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던 길, 작은 마을을 지나다 마당에 앉아 키질하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여쭸더니, "이런 거 찍어서 뭐할라고요?" 하면서 마당가 단풍처럼 발갛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옷매무새를 다듬는 모습이 꼭 시집 온지 여드레쯤 된 새색시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키질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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