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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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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4. 14:26 소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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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2권이 나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주말이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지난해 4월에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1’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1년 반 가까이 국토를 몇 바퀴 도는 발품을 팔아서야 2권을 냈습니다.
해마다 같은 시기에 한권씩의 책을 내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했는데 조금 늦어진 셈입니다.

원고는 진즉 완성했지만,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진통이 컸습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늘 ‘괴리’라는 큰 강이 흐르지요.
가끔은, 아주 가끔이지만, 작업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기쁜 날보다는 힘들고 아픈 날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소스라쳐 반성하고는 하지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이 땅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와의 약속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어느덧 응석하듯 세상에 기대고 있으니….

최근에 좋은 소식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1권 중 ‘섶다리’ 부분이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물론 검정과정 통과라는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다음 달에는 서울문화재단과 은평구가 공동주최하는 ‘시간여행,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엔…’ 이라는 행사에서 초청 사진전을 합니다.
부끄러움이 더 많지만,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호준 (思江, sagang) 드림

posted by sagang
2008. 1. 7. 16:54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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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일 삼아 다니다보면 여러 번 찾게되는 동네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겐 해남·강진·보성·순천을 아우르는 남도땅과, 발 닿는 곳 모두가 감동인 변산반도가 그런 곳이다. 영월·정선 역시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곳 중 하나다. 집을 나서는 순간 고생이라는 한겨울에,  영월까지 발걸음을 한 건 섶다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섶다리는 눈이 내릴 때 찾아가는 게 제격이다. 하늘과 땅이 경계선을 지울 만큼 온 세상이 흰눈으로 가득 찬 날, 다리 위를 걸어가는 촌부가 있는 풍경은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찾아간 날은 눈이 오기는커녕 빤빤한 하늘이 야속할 뿐이었다.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섶다리로 유명세를 탄 동네답지 않게 적막에 싸여있었다. 산촌에는 어둠이 일찍 내린다. 그래서인지 점심 먹은 배가 꺼지기도 전에 노루꼬리만큼 남았던 햇살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낮술에 취한 사내 하나가 구멍가게에서 나와서 괴춤을 내린 뒤, 부르르 몸을 떨며 신작로를 가로지르는 것만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풍경이다. 그런 고요는 이유 없이 안도감을 준다. 낯선 곳에서는 오직 나만 보고싶다. 도시의 삶 속에서 잡념 없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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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로야 그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영월이지만, 주천 판운리는 그 중에서도 발군이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 물이 불어나서 강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강물이 줄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강 이쪽 저쪽을 잇는 섶다리를 놓는다. 섶다리라는 이름은 풋나무나 물거리(잔가지처럼 부러뜨려서 땔 수 있는 나무) 같은 섶나무를 엮어서 만들었다 해서 붙여진 것일 게다. 다리를 놓을 때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꼬박 이틀 동안 작업을 한다. 원래 섶다리는 겨울을 나고 이듬해 장마철이 되면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가는 '이별다리'다. 하지만 판운리에서는 장마가 시작될 무렵에 거둬들인다. 가을에 다시 쓰기 위해서다. 판운리에서도 도로가 연결되고 강 위쪽에 시멘트다리가 생겨나면서 섶다리가 자취를 감췄었다. 튼튼한 다리가 있으니 더 이상 땀을 흘려가며 다리를 놓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다시 섶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시멘트 다리에 비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섶다리는 그 어느 다리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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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다리는 설계도가 없다. 하지만 다리를 놓는 과정은 오케스트라처럼 정교하다. 우선 평평한 돌을 골라 양쪽 강둑에 쌓는다. 이것을 '선창 놓기'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다리 놓기에 들어가는데 먼저 Y자 모양의 튼튼한 나무 2개를 거꾸로 물 속에 박아 다릿발(교각)을 세운다. 양쪽 강변에서 강심쪽으로 작업을 해나간다. 다음으로 다릿발에 맞도록 홈을 뚫은 통나무(머기미라고 한다)를 양쪽 다릿발 머리에 끼우고 쐐기를 박아서 고정시킨다. 섶다리의 특징 중 하나가 이렇게 못을 치지 않고 나무를 서로서로 꼭 맞추어서 만든다는 것이다. 강 이쪽서 저쪽까지 다릿발이 완성되면 그 위에 긴 통나무(널래)를 놓고 칡덩굴로 엮어 서 고정시킨다. 즉 다리 상판을 놓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널래 위에 소나무 가지를 골고루 펼쳐놓고 떼와 흙을 덮어 꼭꼭 밟는다. 소나무 잔가지는 겨울에도 푸른빛을 꽤 오래 간직하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도 짭짤하다. 이렇게 놓은 다리는 걸어갈 때 조금씩 출렁거리는데, 생각보다는 튼튼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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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다리는 강을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니 정성 들여 만들고 애지중지 하는 게 당연했다. 섶다리는 우리 전통사회에서 다리 이상의 역할을 했다. 질서와 인간성 교육의 수단이기도 했다. 섶다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양보와 포용, 그리고 예의가 필수항목이다. 섶다리는 폭이 좁기 때문에 한 사람만 건널 수 있다. 중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비껴 지나가기가 난감하다. 따라서 강 양쪽에서 건널 사람이 동시에 있을 경우 어느 한쪽이 기다리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그럴 때 연장자가 먼저 건너는 건 상식이었다. 또 짐을 졌거나 보따리를 머리에 인 사람을 우선 건너도록 배려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아이를 업은 사람도 당연하게 먼저 건넜다. 이렇듯 인정이 배인 섶다리에 웃지 못할 사연도 많았다고 한다. 장에 나갔던 어른들이 술 한잔 걸친 김에 팔자걸음으로 아리랑 한 자락 흥얼대다가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일도 꽤 있었다. 그래도 장마철 외에는 강이 그리 깊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었을 것이다. 소와 같이 건너다 빠지는 일도 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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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다리가 판운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월 주천면에만 해도 주천강이 흐르는 주천리와 건너편 신일리 사이를 잇는 쌍섶다리가 있다. 쌍섶다리는 전국에서 이 곳이 유일하다. 이 다리에는 비극의 소년 왕 단종과 관련된 사연이 서려있어 그 앞에 서는 사람들을 숙연케 한다. 3백년이 넘는 전통을 가졌다는 이 쌍섶다리 역시 시대의 급류에 휩쓸려 사라졌다가 근래에 다시 부활됐다. 이밖에도 반딧불이축제가 열리는 무주 남대천, 메밀꽃축제가 열리는 봉평, 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정선, 그리고 김천, 동해, 함양 등에서도 섶다리를 볼 수 있다. 일종의 관광상품이나 지역축제의 소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잇고 사람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던 본래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린 채 전시용으로 놓여진 섶다리는 좀 어색하다. 그렇다고 이만큼 흘러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야 없는 것이니 어찌하랴. 그렇게라도 섶다리를 볼 수 있으니 감지덕지 해야할 판 아니겠는가. 현실이야 어떻든 겨울강가에서 바라보는 섶다리는 아름답다. 찬바람에 사위어 가는 억새 밭에 앉아 꽤 오랫동안 사색의 늪을 허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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