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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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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5 [사라져가는 것들 164] 옛날 팥빙수4
2011. 9. 5. 09:18 사라져가는 것들

먼저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팥빙수를 사라져가는 것들 항목에 넣으면 그게 왜 사라져? 어제도 먹었는데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빙수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구차하지만 옛날 팥빙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계를 손으로 돌려서 대팻밥처럼 깎은 얼음에 팥을 넣었던 그 팥빙수 이야기입니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그날은 설악장날이었습니다.
홍천강으로 가는 길에 물건 몇 가지를 사려고 들른 참이었습니다.
꽤 여러 번 간 곳인데도 오일장과 마주친 건 처음이었습니다.
발길은 천관녀의 집을 찾아가는 김유신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장터로 향했습니다.
이곳저곳 쏘아 다니기를 일삼아 하다 보니, 장이 열린 걸 보면 그냥 못 지나가는 지병이 생기고 만 탓입니다.
살 물건이 있건 없건, 동네강아지처럼 껄렁껄렁 돌아다니다 보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한없이 풀어지는 곳이 장터입니다.
세상이 투전판처럼 각박해진지 오래지만 장터에는 아직도 따뜻한 정이 강물처럼 흐릅니다.
한 여름에 열린 오일장, 그러잖아도 손바닥만 한 장인데 뙤약볕까지 내리쪼이다보니 파리만 이곳저곳 구경 다니느라 분주할 뿐이었습니다.
배추 몇 포기와 양파 몇 단 들고 나온 촌부도, 눈에 백태 낀 생선 몇 마리 늘어놓은 어물전 사내도 흥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팔아도 그만 못 팔아도 그만이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앉아, 돈 대신 장대처럼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이나 세고 있었습니다.
장 구경에 나선 저도 금세 무료해졌습니다.
그렇게 초점 없이 흐르던 제 눈길이, 어느 순간 한 지점에 박히고 말았습니다.
아니, 저게 뭐야?
장꾼들을 상대로 군것질거리를 파는 간이 점포 안의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란 기계 하나.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빙수기였습니다.
스위치 한번 누르면 순식간에 얼음을 갈아놓는 요즘 빙수기가 아니라, 재봉틀 같기도 하고 머리에 바퀴를 달아놓은 에펠탑 같기도 한 그 파란 기계 말입니다.
고물상에나 있어야 할 물건이 장터 한 귀퉁이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니.

빙수기를 본 순간, 느닷없는 갈증으로 목이 컬컬해지더니 입안이 푸석푸석 말랐습니다.
발걸음은 벌써 간이점포 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팥빙수 하나 만들어 주세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서는 주문(呪文) 같은 주문(注文)이 쏟아졌습니다.
팥빙수!
어렵던 시절을 산 사람들에게달콤한 추억의 정점에 있는 그 이름.
에어컨, 냉장고, 선풍기 같은 단어를 책으로 배우던 시절, 더위를 식힐 것이라고는 냉수, 냉차, 미숫가루, 아이스케키가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팥빙수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한 것이었지요.
세상에는 팥빙수를 먹을 수 있는 아이들과 먹을 수 없는 아이들, 두 부류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 그 달고 시원한 팥빙수가, 먹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고통을 동반하는 남의 떡이었습니다.
팥빙수의 그 황홀한 맛은, 만들어지는 동안의 기다림과 비례했습니다.
기계에 큼직한 얼음을 올려놓고 손잡이를 돌리면 대팻밥처럼 스윽스윽 밀려나온 결 고운 얼음.
그렇게 갈린 얼음은 꽃잎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하얀 꽃들이 그릇에 소복이 쌓이는 순간, 아이들은 얼음구덩이에 오줌이라도 내갈기고 난 듯 진저리를 치고는 했습니다.

팥빙수가 돼가는 진짜 과정은 이제부터입니다.
소복이 쌓인 얼음꽃 위에 뭉글뭉글한 미숫가루와 팥을 올리고 연유를 뿌리고.
그 위에 얹어지는 쫄깃한 떡은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마지막으로 뿌리던 파란 물과 빨간 물, 그 달콤해 보이던 물들이 색소에 불과했다는 것은 훗날 알았습니다.
하지만 입 뿐 아니라 눈으로도 먹어야하는 팥빙수에서 빠져서는 안 될 결정적 요소였습니다.
우연히 들른 장터에서, 그 옛날 가슴 설레게 하던 광경과 마주친 감동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몇 십 년 전의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발걸음을 그냥 돌릴 수 있겠습니까.
주문을 한 뒤 간이의자에 앉아 얼음 덩어리가 팥빙수로 변신해 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봤습니다.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기계를 돌려 얼음을 깎아 내는 건 바깥 분 담당이었습니다.
기억 속의 풍경과 다른 것은 4각 얼음이 아니라 둥근 얼음이라는 것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듯, 모든 게 똑같았습니다.
기계에서 얼음꽃이 피어나는 순간 제 가슴도 봉우리를 열기 직전의 꽃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듯 침까지 삼키고 말았습니다.
다 갈린 얼음을 이어받은 아주머니의 손에서 본격적인 팥빙수가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팥과 미숫가루, 연유가 부어지고 쫄깃한 젤리가 얹히고.
그걸 바라보면서 저는 정말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 팥빙수가 등장한 건 일제 강점기였다고 합니다.
얼음에 단팥을 얹어 먹는 수준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과 함께 상륙한 연유가 섞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대 중후반 경기가 상승기로 접어들면서 제과점의 인기품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세월과 소득수준에 따라 내용물이나 모양도 점점 화려하지기 시작했습니다.
고급카페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빙수가 등장하면서 생과일이나 달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필수조건이 되었습니다.
어느 새 팥은 첨가물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팥빙수라는 이름도 조금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녹차빙수, 와인빙수, 커피빙수, 아이스크림빙수, 과일빙수별별 이름의 빙수가 등장했지요.
저 같은 옛날 사람들에게는 그저 화려한 음식의 하나일 뿐, 아릿한 기억의 그 팥빙수와는 애당초 한 공간에 나란히 세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몇 년 간은 팥빙수를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다 시골장터에서 만난,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은 구경조차 못 해본, 그 멋없는 팥빙수가 저를 끌어당긴 것입니다.
앞에 놓인 팥빙수를 급하게 섞어서 입에 떠 넣는 순간, !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이 입속에서 와르르 아우성을 쳤습니다.
회색의 땅에서 회색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입맛은 인스턴트 과자처럼 근본을 상실했지만, 추억까지 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몇 수저 떠 넣지도 않아서 등에 흐르던 땀이 식더니, 금세 뼛골까지 얼얼해졌습니다.
가슴은 고향동네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 누운 듯 환희로 가득 찼습니다.
정적만 떠도는 여름장터에 중년 사내 하나가 허허허! 실없이 웃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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