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구릉 위에서 바라보면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고대인들이 돌을 이용해 팠다는 물저장고.

다시 샨르우르파. 괴베클리테페로 가는 길에는 평원과 낮은 구릉이 교대로 출렁인다. 내 가슴도 함께 출렁거린다. 30분쯤 달렸을까. 포장도로를 벗어난 차가 심하게 덜컹거린다 싶더니 황량한 산악지대가 불쑥 다가선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제 저녁에 잠깐 있었던 해프닝이 생각난다. 함께 여행 중인 고참 기자 한 사람이 저녁 식사자리에서 샨르우르파의 관계자에게 농담 삼아 한 마디 던졌다. 아마 이지역의 유적, 특히 괴베클리테페에 대한 자랑을 잔뜩 들은 다음이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뭐든지 세계 최초, 인류 최고(最古).”

그 말이 통역을 통해서 전달되는 순간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싹 바뀌었다. 싸늘하다 못해 푸르딩딩해지는 표정. 제법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느닷없이 가라앉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신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대놓고 내색할 건 뭐람? 성질머리 하고는. 물론 그 말을 한 사람은 모욕을 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워낙 대단한 유적들이 즐비하다 보니 배도 살짝 아프고 해서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괴베클리테페를 자랑스러워하는지 확인하기 딱 좋은 해프닝이었다. 샨르우르파 사람들은 심지어 세상의 모든 교과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괴베클리테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과문한 탓도 있지만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큰 바위 구덩이를 파는 과정. 작은 구멍을 계속 뚫어나간다.

너럭바위를 지키는 개.

차는 공사용 임시 주차장에 멈춰 선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제법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크고 작은 구릉, 끝이 안 보이는 평원이 저만치 엎드려 있다. 이곳은 아직 발굴 중이기 때문에 관광지로 개발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들었던 자랑에 비해서는 조금 초라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발굴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널따란 바위에 뚫린 크고 작은 구멍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큰 바위구덩이는 물 창고로 쓰인 곳이라고 한다. 지하수가 없기 때문에 빗물을 받아 쓴 것 같다. 그럼 작은 구멍은? 큰 구멍을 만들기 위해 파놓은 것들이다. 금속은 구경도 할 수 없던 시대에 저렇게 큰 구멍을 어떻게 팠을까 궁금했는데 작은 구멍에 해답이 있었다. 단단한 돌을 정()으로 삼아 바위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고, 구멍 이외에 남아 있는 부분을 자르고 또 구멍을 뚫고 자르고 해서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로 하니까 두꺼비 파리 잡듯 쉬워 보이지 실제로 하라고 하면 거품부터 물 일이다. 돌로 돌에 구멍을 내고 주변을 깎아내는 과정을 거듭해서 물탱크를 만든다고? 모르긴 몰라도 1~2년이 아니라 최소 수십 년이 걸리는 공사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2,000년이 흐른 지금, 그 위대한 작업의 흔적에는 토사가 쌓여있고 누군가 던진 종이컵 하나만 덩그러니 들어 있다. 헌데 이상한 일도 있지. 아까부터 개 한 마리가 깎아놓은 돌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다. 사람들이 오고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뭔가를 고집스레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저 개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눈인사로 작별을 하고 발굴 현장으로 간다.

 

발굴 중인 신전

석상들이 둥그렇게 서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웅덩이. 이곳이 발굴 현장이다. 웅덩이 안에는 큰 돌들이 둥그렇게 늘어서 있고 주변에는 작은 돌을 담처럼 쌓아놓았다. 그리고 발굴 작업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나무 발판들이 웅덩이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돌기둥들. 어느 건 T자형으로 어느 건 갓을 쓴 비석처럼 생겼다. 받침대 위에 점잖게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사람으로 보면 양반의 씨를 타고 난 돌들인가 보다. 하지만 어느 건 중간에 잘려서 뭉뚝한 게 변방의 수자리를 살다 온 백성처럼 궁기가 흐른다. 대부분은 스스로 서 있거나 자기들끼리 어깨를 겯거나 지지대에 기대고 있지만 아예 누운 것도 없지 않다. 그런 돌기둥들이 회의라도 하는 듯 5~10m의 간격으로 원을 그리고 서있다. 선사시대 거석 유물들이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돌에는 각종 동물들이 양각돼 있다. 마모되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보긴 어렵지만 소나 사자, , 뱀 등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도마뱀? 악어? 아니, 늑대나 여우를 닮은 형상도 있다. 그림들이 낯설지 않다 했더니 샨르우르파 박물관에서 본 것들과 닮아 있다. 어느 돌기둥에는 사람의 형상을 표현한 듯 손가락이 그려져 있고 허리 부분에 여우가죽 같은 것을 두르고 있다. , 사람이 여우 가죽을 벗겨서 허리에 둘러 치부를 가린 형상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사냥과 관련된 조각들이다. 마모되기 전에는 무척 정교했을 것 같다. 이 조각들을 새기기 위한 도구도 돌이었겠지.

 

멀리서 바라본 발굴지.

 

바위에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하면 기껏 돌도끼나 돌칼 정도만 봐온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석기라는 것들도 손에 쥐기 좋게 깨진 것을 골라 쓴 건지 정말 사람이 두드리고 갈아 만든 것인지 늘 의심스러웠다. 그런 수준의 원시인들이 이런 작품들을 남기다니. 상상을 해보자. 원숭이나 벗어났을 정도의 인간들(창조론자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그림일까?)이 겨우 앞이나 가리고 앉아 돌로 돌을 조각한다. 이 거대 유적이 조성된 건 BC 9500년에서 BC 8500년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12,000년 가까이 된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게 어느 정도의 옛날인지 감이 안 잡히는 이들을 위해 또 예를 찾아보자.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친절한 작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거석문화를 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은 서남아시아에서는 요르단 지역에 BC 4000년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초기 청동기시대에 걸쳐 서부와 북부 유럽에서 많은 거석기념물이 건립되었다. (중략) BC 3000년대에 속하는 것이 많다.’ 여기에서도 거석문화의 기원을 기껏 BC 4000년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거석문화의 대표 선수로 꼽히는 영국의 스톤헨지는 얼마나 됐을까. 이왕 불러온 김에 지식백과를 더 찾아보자. ‘선사 시대인 기원전 3100년 무렵부터 세워지기 시작해서 기원전 1400년경에야 완성된 스톤헨지는여기도 BC 3100년이다. 그렇다면 BC 9500년에 세워졌다는 이 돌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려 6,0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12,000년 전, 인간들은 기껏 해야 동굴에서 살면서 채집과 수렵으로 연명했을 것이다. 샨르우르파 사람들의 말대로 나는 지금 인류사를 새로 써야 하는 혁명적 유물 앞에 서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곳.

 

사람의 형상을 새긴 돌. 손과 허리띠, 중요 부위를 가린 짐승 가죽 등이 보인다.

헌데 원시인들이 왜 이런 거대 유적을 만들고 동물들을 새겨 넣었을까. 이곳이 사원이나 신전이었을 것이라는 게 그 답이 될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접신(接神)을 위한 장소를 치장하는데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니까. 사원이나 신전이었다는 추정은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걸로 더욱 신빙성을 얻는다. 하늘에 제를 지낼 때나 장례의식 때만 찾아오는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걸 확인해주는 조각도 있다. 새들이 시신을 먹는 장면이 표현돼 있다. 그렇다면 조장(鳥葬)을 치렀다는 얘기다. 지금도 티베트 등 일부에는 조장 풍습이 남아있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런 장례 풍습을 지킨다고 한다. 더 이상 의심할 것도 없이, 나는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최초의 사원, 즉 최초의 종교건축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를 새로 써야한다는 말이 이제 조금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건 그렇고 12,000년 전의 사람들, 즉 원시인들은 아무런 도구도 없이 이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가장 큰 것은 높이가 5.5m, 무게가 20t씩이나 한다고 한다. 또 길들인 동물도 없던 시절, 이 돌들을 어떻게 날랐으며 또 이 조각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스터리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도구라고는 우리가 봐온 돌도끼나 돌칼밖에 없었던 시절이다. 기계를 동원할 수 있는 지금이라고 해도 쉬운 공사는 아닐 것 같다. 그 방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1~2년이 아니라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에 걸쳐 공사를 계속했을 거라는 짐작 외에는.

 

이 바위에도 동물이. 전갈처럼 보이는 게 새겨져 있다.아득한 구릉들과 평원.

괴베클리테페는 배꼽언덕이란 뜻이다. 괴베클리가 배꼽이고 테페가 언덕이다. 평원 위에 느닷없이 솟은 구릉이 배꼽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터키 사람들의 배꼽은 제법 높은 모양이다. 사방 어느 곳을 둘러봐도 시야의 끝은 지평선이다. 애당초 신전 같은 것이 자리할 수밖에 없는 지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만 년 넘게 길고 긴 잠에 빠져있던 괴베클리테페가 존재를 드러낸 건 1964년이다. 미국 고고학팀이 터키 남동부의 한 외딴 곳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이 언덕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은 불쑥 솟아난 언덕이 수만 개의 깨진 돌조각들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발굴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자연적인 지형은 아니지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 ‘비잔티움 시대의 무덤이 아닐까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덕분에 유적은 잠자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었다. 미국 고고학팀으로는 소위 큰 건을 놓친 셈이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괴베클리테페의 존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목동이 가축을 몰고 가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흙으로 뒤덮여 있던 낯선 모양의 돌들이 햇빛 속에 드러난 것이었다. 그 소식은 샨르우르파 박물관 큐레이터의 귀에 들어갔다. 박물관 측은 중앙 정부에 연락을 했고, 이스탄불에 있던 독일 고고학자들이 조사차 오게 된다. 1994년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박사가 책임자가 되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다. 처음 발굴할 때만 해도 이런 거대한 유물이 묻혀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장하는 광경을 새긴 듯. 새가 보인다.

지금까지 밖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6개의 신전을 발굴했는데, 조사 결과 모두 24개의 신전이 더 묻혀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구릉 전부가 신전이었던 셈이다. 석상들 틈에서 빠져나와 언덕을 올려다보니 정점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외로워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고고하다고? 그러니까 그런 그림이다. 끝없는 평원에 배꼽처럼 언덕이 하나 불쑥 돋아있고 그 꼭대기에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는. 나무 주위에는 돌로 담을 만들어 놨다. 가까이 가 봐도 언뜻 무슨 나무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뽕나무 같기는 한데 잎이 작아서 확신하기는 어렵고, 우리 땅에도 작은 잎 뽕나무가 있으니까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그렇다. 나무 이름을 물어보니 그곳에서는 드드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나 같은 문외한이 봐도 무척 경건한 풍경이다. 나무 옆에 서니 저 아래 낮은 구릉들과 세상 만물이 모두 한꺼번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 같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이 드드안 나무가 서 있는 장소는 유적이 발견되기 전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신성시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들도 이 자리에서 희생제를 치루는 등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져 왔다. 인류가 탄생한 때부터 대대로 성스러웠던 이곳.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묻혀 있는 것일까. 조사 결과 유적이 땅 속에 묻히게 된 건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신전의 흔적은 두 개의 시대로 나눠진다. 1차는 BC 9500~8500. 그리고 약간의 공백기를 가졌다가 BC 8500~8000년에 다시 인공의 흔적이 나타난다. 문제는 그 뒤다. BC 8000년 뒤에는 사람의 손길이 완전히 사라진다.

 

저 곳 어디쯤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곳을 인위적으로 덮어버리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부분 역시 미스터리다. 수백 년에 걸쳐 만들었으며 1,000년 이상 성스러운 곳으로 삼았던 곳을 왜 떠났을까. 그리고 왜 그냥 떠나지 않고 흙으로 덮었을까? 이 광대한 지역을 덮는 데만 해도 수십 년이 걸렸을 텐데. 느닷없이 또 추리소설을 써야말 할 것 같은 예감에 시달린다. 이 대답은 상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보다 먼저 고민한 사람이 있었다. 가장 그럴 듯한 상상을 한 사람은 톰 녹스(Tom Knox)라는 기자 출신의 소설가였다. 그는 어느 날 TV에서 괴베클리테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뭔가 을 받은 그는 현장으로 달려가 기획기사를 썼고 2년 뒤에는 <창세기 비밀(THE GENESIS SECRET)>이라는 팩션 소설을 내놓았다. 소설을 홍보하자는 건 아니고 그의 상상력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내용을 좀 빌려서 이야기를 풀어보려는 것이다. 톰 녹스는 브라이트너 박사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단서를 풀어놓는다.

“1만 년에서 12000년 전에 이 지역은 지금처럼 메마른 땅이 아니었다오. 오히려 아름답고 목가적인 땅이었지. 사냥감들이 초원을 뛰놀고 나무에는 야생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강에는 물고기가 가득했을 거요. 조각상에 지금 이곳에 살지 않는 동물들이 조각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지금은 황무지처럼 보이는 저 넓은 땅이 인류가 잃어버렸던 낙원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저 들판 어디에 이곳을 신전으로 둔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이 지역이 풍요로운 땅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상상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이 가까운 데다 석상에 새겨진 동물들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니까.

 

언덕 맨 꼭대기에 있는 '드드안 나무'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진다. 그들은 사냥감이 코앞에서 뛰놀고 열매가 입 안으로 뚝뚝 떨어지고 물 반 고기 반이었던 이 땅을 왜 떠났을까. 답 쪽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소설 속 브라이트 박사의 생각을 좀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는 성서 속의 에덴동산과는 조금 다른 에덴동산이다. 그는 에덴동산 이야기가 인간의 수렵채집 시대를 묘사한다고 전제한다. 인류의 조상이 낙원에 사는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로 형상화 됐다는 것이다. 그들의 풍요로웠던 삶은 채집수렵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훨씬 더 많은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삶으로 전락했다. 그 시기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시기로 규정한 것이다. 소설까지 인용하면서 이 괴베클리테페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받은 충격이 크다는 것이다. 12,000년 전의 신전이라니. 우리가 단군 이래 반만년 어쩌고 하는 것도 신화쯤으로 치부하는데, 그보다 7,000년이나 앞선 시대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유물이 지금 내 앞에 햇볕을 받고 서 있다니.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자. 그들은 왜 이 낙원을 버리고 떠났을까. 역시 채집수렵과 농경문화 어쩌고 하면서 얼렁뚱땅 덮어버려야 할까. 고고학적 지식이라고는 쌀 한 톨만치도 갖지 못한 나로서는 또 다시 소설가의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톰 녹스는 외래인의 유입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떠난 이유로 제시한다. 기원 전 1만 년경, 한 인종이 북쪽에서 살기 좋은 삼각주 지역으로 이주한다. 그들은 이곳에 사는 왜소한 사람들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고 난폭했다.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풍경이다.

또 이곳에 살던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현지 종족과 어울려 살면서 건축, 조각, 종교 같은 첨단 문물을 가르친다. 따라서 괴베클리테페 역시 외래인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괴베클리테페는 이들 왜소한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일종의 낙원이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신이 인간과 함께 거니는 에덴동산인 거죠. 그러나 어느 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량자원이 줄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 결과 북쪽에서 온 거인족은 열등한 현지 종족을 노예로 부려 쿠르드 평원의 야생 곡식을 거두게 했습니다.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농부 신세로 전락하게 된 거죠. 왜 갑작스럽게 농경문화가 시작되는지 그 수수께끼의 실체가 바로 이겁니다.”

그게 바로 인간 타락 신화의 정체라는 말이군요. 에덴동산에 추방당한 진짜 이유 말입니다.”

소설 속 대화를 빌려온 것이다. ,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겐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린다. 게다가 소설에 의하면 북부인들은 왜소한 수렵채집인 여자들을 성적으로 타락시킨다. 여자들은 새로운 종족과의 성교를 통해 새로운 성에 눈을 뜨게 된다. 이종교배에 의한 후손들도 태어난다. , 이젠 땅에 묻힌 괴베클리테페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달리다 못한 수렵채인민들은 북부의 침략자들에게 맞서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압도적인 숫자에 의지에 북부인들을 모조리 살육하는데 성공한다.

 

괴베클리테페는 엄청난 노력 끝에 땅에 묻히게 됩니다. 거인족과 수렵채집인 사이의 이종 교배라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악의 씨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말이죠. 수렵채집인들은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거대한 사원을 의도적으로 땅속에 매장했습니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쓰라린 낙원 추방의 기억을, 악과 함께 참혹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개와 교대로 바위를 지키는 청년.

소설을 가지고 맞다, 그르다를 판정하려 드는 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겐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눈앞의 유적을 보면서 기껏 소설이나 인용하느냐고 타박해도 부끄럽지는 않다. 나 자신이 상당부분 소설 속 상상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훗날 이 가설을 뒤집을 수 있는 학술적 결과가 나오면 앞장서서 전하면 되겠지. 나는 지금 에덴동산에 서 있다. 사과나무가 서 있고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은 없지만, 드드안 나무가 있고 뱀의 조각이 새겨진 거석들이 있는 그 에덴동산. 낙원을 잃어버린 인류의 후손으로 이 언덕에 서 있는 것이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햇살이 사선으로 비껴들고 황막한 평원에서 올라온 바람이 슬며시 옷자락을 들춘다.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다. 나오는 길에 보니 들어갈 때 개가 있던 그 자리에 한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잠들은 걸까? 민가가 무척 멀리 떨어진 곳인데. 개가 사람으로 바뀌었을 리는 없고 저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이곳을 교대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posted by sagang

성스러운 연못으로 흐르는 수로.

성스러운 연못과 모스크.

아브라함은 정말 샨르우르파에서 태어난 것일까? 그 대답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를 좀 추적해보자. 아브라함은 아담의 후손이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175세에 세상을 뜬 그는 노아의 방주노아와도 58년이나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출생은 전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삶의 궤적은 전설보다 역사 쪽에 가깝다.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는 홍수 심판이 있은 지 대략 292년이 지난 뒤고 바벨탑 사건 이후 100년 정도 지난 뒤이다.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고대 바빌론의 황제 함무라비 보다는 200년쯤 앞서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행적은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해 하란과 세겜을 거쳐 가나안에 이른다. 그런데 왜 태어난 곳이 그리 명확하지 않을까? 그 답은 갈대아 우르에 들어 있다. 잠깐 구약성서를 보고 가자. 아브람(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다)이라는 사람이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 1126절부터다.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흘과 하란을 낳았더라(창세기 11-26)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창세기 11-29)

 

문제는 본토라고 적은 갈대아 우르가 어디인지 확실히 증명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터키 사람들은 샨르우르파야 말로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갈대아 우르라고 주장한다. 또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져 왔다. 1930년대 이후 시리아의 몇 곳에서 출토된 토판 문서를 해독해보니 우르라는 도시가 여러 곳 있으며 모두 하란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브라함 동굴 같은 유서 깊은 곳도 이곳에 있지 않은가.

 

장작이 변했다는 물고기의 후손들.

먹이를 탐하는 물고기들.

하지만 학자들은 옛 바빌로니아가 있었던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지역, 즉 지금 이라크 남부와 쿠웨이트가 있는 지역을 우르라고 본다. 북쪽의 우르, 즉 샨르우르파에서 남쪽으로 1,500km 떨어진 곳에 고대도시 우르가 있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울리라는 사람에 의해 발굴되면서 바로 갈대아 우르가 이곳이라는 게 정설이 되었다. 발굴된 지하 무덤, 부장품 등이 갈대아 우르임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특히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여기저기 떠도는 별 볼 일 없는 유목민으로 묘사돼 있지만, 사실은 그의 고향 우르에서는 대도시의 귀족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아브라함은 빈손으로 가나안 땅에 간 것이 아니라 발달된 도시 문명의 법과 도덕 등을 가지고 가서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그렇게 입증됐다니 믿을 수밖에. 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 샨르우르파 쪽에 정이 더 갈까? 내가 이라크에 있다는 우르를 직접 가보지 못해서 그럴까? 과학보다는 전설을 믿고 싶어 하는 비과학적 사고방식 때문일까? 구약과 지도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데라가 그의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창세기 11-31)

 

산책 나온 무슬림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물렀다는 창세기의 내용을 기억한 뒤 지도를 보자. 학자들이 갈대아 우르라고 주장하는 이라크의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아까 말했듯이 1,500km나 된다. 그곳에서 가나안, 즉 지금의 팔레스타인 서쪽 해안지역은 서쪽으로 방향만 틀어서 곧장 가면 그 거리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남쪽으로 갔다는 그들이 왜 북쪽에 있는 하란으로 갔을까? 차는커녕 마차 한대 없는 그들이 굳이 그 먼 길까지 올라간 이유는 뭐였을까. 또 지나가는 길이었다면 그냥 지나갈 것이지 그 낯선 하란에서 말뚝 박고 살 건 또 뭐란 말인가. 혹자는 가로지르는 길이 사막이라서 좋은 길을 택하다 보니 돌아서 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가보지 않아서 큰 소리 치긴 좀 그렇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벗어나면 그 어느 곳도 광야이긴 마찬가지다. 하란으로 가는 길이라고 아스팔트가 깔려있을 턱이 있나. 그렇다면 지금의 샨르우르파, 아브라함의 전설을 지닌 그곳이 창세기에 나오는 우르에 더 가깝지 않을까? 손자까지 봤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문제였을 것이다. 샨르우르파를 당당하게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란쯤 걸어가다가 아이구! 허리도 아프고 난 더 이상 못 가겠다하면서 그냥 주저앉아 버린 건 아닐까. 믿음이 별로 깊지 않았던 그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고향을 떠나 멀고먼 가나안땅까지 갈까. 하란까지만 갔으면 성의를 보인 거지. 별 지식도 없이 너무 따지는 건가? 내가 성서 전문가들이나 고고학자들의 견해를 뒤집을 방법은 없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증의 뿌리는 여전히 뽑히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제 성스러운 물고기 연못구경을 가보자. 연못은 아브라함의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다.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르즈마니예와 압두르하르만이라는 두 개의 모스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직사각형의 긴 연못을 볼 수 있다. 이 연못은 도시의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하는 듯,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거닐고 있다. 그런데 왜 이곳이 성스러운 연못이 되었을까? 아브라함 동굴에서 끊어진 전설은 여기서 계속된다. 신상을 파괴한 죄로 감옥에 갇힌 아브라함은 드디어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님로드 왕, 그냥 죽이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성 꼭대기에 화장용(火葬用) 장작을 쌓고 아브라함을 매단 다음 불을 질렀다. 말 그대로 화형(火刑)을 시행한 것이다. 이걸 그냥 두면 하나님이 아니지.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아브라함을 에워싸려고 하자 느닷없이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치기 시작했다. 화형장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님로드 왕이 도망쳤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브라함은 성 아래 장미 밭으로 떨어지고, 그 장미 밭은 호수가 되었다. 타다 만 장작들은 물고기로 바뀌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이 바로 그때 타다만 숯이 변한 물고기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잉어처럼 생긴 이 물고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뭇거뭇한 자국을 볼 수 있다. 기적의 증거인 이 물고기들은 아무도 잡지 않는다. 만약 잡아먹게 되면 곧바로 장님이 된다는 설도 있다. 연못을 들여다보니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 물고기들이 너무 많다 보니 저희들끼리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일일 것 같다.

 

저거 하나 건져봐?

물고기 밥을 조금 얻어서 던져본다.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몰려들더니 저희들끼리 머리를 박고 꼬리를 치고 난리도 아니다. ! 이게 바로 아귀다툼이라는 거구나.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일단 먹고 보자가 그들의 모토인 것 같다. 나는 왜 이 성스러운 물고기들에게서 지옥도를 보는 걸까. ‘너 죽고 나 살자고 진흙탕에서 구르는 욕심 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그들과 자꾸 겹쳐진다. 대체 성스러운 것은 무엇이고 속된 것은 무엇인가. 그 경계는 누가 어떻게 지어준단 말인가. 아이 둘이 지나가길래 불러서 묻는다.

이 물고기 잡아먹으면 어떻게 돼?”

죽어요.”

정말? 네가 봤어?”

아뇨. 먹고 죽은 사람이 있대요.”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왜 먹으면 안 되는지 분명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성스러운 물고기니까’ ‘병에 걸린답니다’ ‘눈이 멀어버린대요대답도 가지각색이다. 하긴 정답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있는 면접요원처럼 집요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왜 이 물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재미있는 대답도 있다.

이건 나무가 변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물고기를 먹으면 나무를 먹는 거지요.”

흐흠, 그건 그렇겠네. 나무를 먹으면 반칙이지. 지금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시절도 아니잖아.

 

반대쪽 모스크.

 

결정적인 대답을 듣고 질문 행각을 멈춘다.

나 같이 종교를 안 믿는 사람은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정 그렇다면 한번 해보세요.”

어떻게 되는데요?”

잡으려고 손을 넣는 순간 다른 사람들한테 맞아죽을 걸요?”

그래. 그게 정답이네. 맞아죽지 않으려고. 그럼. 이 먼 곳까지 와서 맞아죽으면 안되지. 사실 나도 그 신성함을 믿는다. 신성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영역까지 무너트리고 나면 대체 어디에 기댈 것인가.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늘 그 영역을 들여다보지 못해 안달이다. 나야말로 이 물고기들이 영원히 신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이 연못에서 하얀색 물고기를 보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천국행 티켓 한 장 확보해볼까 하고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풍진에 물든 흐리멍덩한 눈에는 회색빛 물고기 한 마리 들어오지 않는다. 이 연못을 비롯한 공원 수로를 흐르는 물은 모두 성채가 있는 담라즉 언덕에서 흘러들어온 지하수라고 한다. 그런데도 물고기가 워낙 많다보니까 지하에 산소를 공급하는 파이프를 묻어놓았다고 한다. 또 프랏대학교 연구진이 조사를 해봤더니 모두 네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더란다. 그러니까 장작이 네 종류나 있었다는 얘기?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비슷비슷하다.

 

샨르우르파 지도.

 

샨르우르파의 역사를 잠깐 얘기하고 가야지. 해발 540m에 자리 잡은 이 도시의 역사는 9,000년을 헤아린다. 아니, 뒤에 가볼 괴베클리테페를 감안할 때는 그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역사에는 약 4,500년 전에 일어난 일부터 기록돼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후리라고 불렀던 종족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후리아인이인데 BC 2500년경에 코카서스 산맥을 출발해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아나톨리아 남동부와 시리아, 이라크 북부까지 내려가 정착했다. 이들은 우르퀘쉬라는 왕국을 세우고 잘 나가는 듯 했지만 BC 2000년대 초반 바빌로니아 제국의 힘이 팽창하면서 그 속국으로 편입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바빌로니아 역시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불꽃처럼 일어났던 히타이트에 망하고 만다. 그게 BC 1531. 후리아인들은 다시 미탄니라는 왕국을 세우지만 또 히타이트 왕국으로 흡수되는 운명을 맞는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뒤 BC 6세기부터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333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휘하에 들어간다. BC 303년 알렉산드로스의 휘하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는 이곳 동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마케도니아 퇴역병들을 정착시킨다. 낯선 땅에서 살게 된 그들은 이 곳을 자신들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의 수도 이름을 따서 에데사라고 부르게 된다. 이 에데사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두자.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에데사는 BC 63년 로마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다. 그 뒤 로마의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초기 기독교 교회도 발달하게 된다.

 

샨르우르파 거리.

낯선 땅의 역사를 편년체로 늘어놓는다고 머리에 쏙쏙 들어올 리가 있나. 이왕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람 이야기나 하나 하고 넘어가자. 통치자들 중에 세계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샨르우르파에 있었던 에데사 왕국의 아브가루스 왕이다. 아브가루스 왕은 끔찍한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수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예수에게 편지를 썼다. 병을 낫게 해주소서. 예수는 답장을 한다. 내가 요즘 바빠서 직접 갈 수는 없지만 제자들 가운데 한명을 보내겠소. 예수의 보내진 70중 한 명인 타데우스(다대오)가 에데사 왕국의 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왕은 그의 얼굴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고 엎드려 절을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환상이었다. 우리 왕이 죽을 병에 시달리더니 맛이 좀 간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시선이 문제가 아니다. 왕이 묻고 타데우스가 대답한다.

당신이 예수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한 제자입니까?”

왕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을 진심으로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입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왕이 예수와 성부를 믿는다고 고백하자 타데우스는 왕에게 손을 얹었다. 병은 순식간에 나았다. 타테우스는 그곳에 머물면서 왕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복음을 전했다. 아브가루스 왕은 성자로 추앙되어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511일을 그의 축일로 삼고 있다.

 

숙소에서 바라본 샨르우르파.

에데사는 로마를 거쳐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가 된다. 609년에는 페르시아에 정복당하지만 622년에 되찾는다. 하지만 638, 페르시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이슬람군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1087년에는 셀주크투르크 제국에 편입된다. 이 에데사가 역사, 특히 유럽사에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또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십자군 원정이었다. 1차 원정 때 참가한 젊은 지도자 보두앵 백작은 에데사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다. 그는 12년 동안 이 왕국을 통치 한 뒤, 예루살렘 왕국의 성묘 수호자였던 형 고드프루아가 사망하자 그곳 왕으로 옮겨간다. 그 뒤 에데사 왕국은 침체일로에 놓이게 된다. 결국은 11441224일 이슬람의 강자 젠기(장기)의 대대적 공세에 의해 무릎을 꿇고 만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스러운 크리스마스이브, 이 왕국에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 남자들은 모두 학살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서방세계는 죽 솥처럼 들끓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데사 왕국이 망한 데에는 그럴 만 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십자군 원정사를 읽을 때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다. 1차 십자군들이 어떻게 그리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십자군은 나라에서 보내는 군인이 아니라 개인들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병보충이 될 리 없었다. 싸우다 죽고 부상당해 죽고 늙어서 죽으니 병력은 갈수록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네 개의 나라를 세웠다. 물론 이슬람 세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자신들이 무단으로 점령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인 서방세계. 성스러운 도시 에데사를 탈환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2차 십자군이 출발하지만 땅 한 뼘 찾지 못하고 궤멸된다. 셀주크투르크 이후 에데사는 몽골, 티무르, 이집트의 맘룩 조 등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으로 치면 엄청나게 드센 팔자다. 1517년에 오스만투르크 땅이 된 뒤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1637년에는 지명이 에데사에서 우르파로 바뀌었는데, 그 근원은 이 지역을 거쳐 간 왕국 중의 하나인 오로아 또는 오흐하에서 온 것이다. 우르파가 오스만투르크가 아닌 다른 나라 땅이 되었던 적이 또 한 번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끝난 뒤. 독일편에 가담했던 오스만투르크가 패전국이 되면서 처음에는 영국군이 그 뒤에는 프랑스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슬람 민병대는 이곳을 시리아 영토로 포함시키려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1920411일에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1924년 이 지역은 새로 들어선 터키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샨르우르파라는 지금의 이름은 1984년 얻게 됐다. 샨르는 영광스러운이란 뜻으로 터키 혁명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도시들에게만 허용되는 명칭이다. 우르파 지역 주민들은 이 이름을 얻기 위해 10년 이상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posted by sagang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었다.

샨르우르파로 가는 길의 황량한 광야.

샨르우르파로 가는 길. 산과 평원이 교대로 나타나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준다. 말라티아에서는 살구나무만 봤는데 이곳은 내내 밀밭이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작물까지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밀은 벌써 수확을 끝냈다. 이 지역에서는 밀 수확을 할 때 이삭만 자른다고 한다. 나머지 밀짚은 그대로 양들을 풀어놓고 먹인다. 길 옆으로 가끔 당나귀를 탄 아이들이 지난다. 심심해서 타고 다니는 건 물론 아닐 테고. 가만히 보니 당나귀 옆구리에 물통 같은 게 달려있다. 먼 곳으로 물을 길러 다닐 정도로 물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양젖을 담는 통? 가는 곳마다 확인하는 것이지만 터키에는 일하는 아이들이 많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보인다.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들도 가끔씩 보인다. 차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빠듯하다. 나만의 시간이 아니라 남들과 나눠 써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낮달이 계속 버스를 따라온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이,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 낮달. 그림처럼 목가적인 풍경이다. 물속에서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오리의 물갈퀴처럼, 일상의 고단함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샨르우르파에서 터키-시리아 국경까지는 65km. 말 그대로 엎어지면 배꼽이 닿고도 남을 만큼 접경이다. 우리 대사관에서 가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시리아의 불안한 정국 때문에 국경을 넘어오는 피난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해주는 사람도 전쟁을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넓게 펼쳐진 밀밭.

아브라함 동굴이 있는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의 입구.

뭐라고 적어야하나. 쓸 말이 너무 많으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드디어 샨르우르파에 도착했다. 이곳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 먼 길을 거쳐야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말문이 턱! 막혀버린 것이다. 적절한 감상문 한 줄 정도는 남겨야하는데 뭐라고 하지? 예언자들의 도시, 성서의 무대, 종교의 고향, 종교 부화장, 아브라함의 땅, 세계 최초의 도시샨르우르파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흐른다. 그 어떤 말도 가볍게 흘릴만한 게 없다. 그리고 대부분 종교적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니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종교로 말문을 열 수밖에 없다. 특히 곳곳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행적을 읽을 수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전에 이곳 하란에 머문다. 또 이설(異說)이 훨씬 더 지지를 얻고 있지만, 최소한 샨르우르파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고장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관련된 유적을 찾기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게 바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아브라함 동굴과 사형 직전에 살아났다는 발르클르 연못,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이다. 이 유적들이 있는 곳을 아브라함 공원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의 나라에 웬 아브라함 유적들이 이렇게 대우를 받느냐고 물으면 공부 좀 필요한 사람이다. 장차 더 설명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공동 조상으로 일컬어진다.

 

 

아치 중 맨 오른쪽에 아브라함 동굴이 있다.

왼쪽 문이 여성 전용, 오른쪽이 남성 전용.

아브라함 공원을 찾아가기 위해 숙소 문을 열고나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마치 냉장고에서 오븐으로 공간 이동을 한 느낌이다. 천지간을 가득 메운 열기. 역시 샨르우르파구나. 사막 국가인 시리아의 바로 이웃에 있는 이곳도 준사막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덕분에 사막이 되는 것을 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들도 태양의 영역까지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서두에서도 잠깐 밝혔지만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살인적인 더위였다. 안내책자에는 터키에서 가장 더운 지역’ ‘여름 평균기온 섭씨 50등의 문구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랑이다. 기껏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나. 후배 하나가 나를 생각한다고, 아니면 이 얼마나 고소한 일이냐고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여준 터키의 평균 기온에도 50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사진이 등장했다. 물론 이 사진의 제목은 터키의 평균 기온이 아닌 샨르우르파의 여름 평균 기온으로 바뀌어야 했을 것이다. 50도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최고 기온이라 봐야 기껏 35? 오븐에 들어가 연습할 수는 없으니 사우나에서 적응훈련을 하는 수밖에. 역시 뜨겁긴 뜨겁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나? 적응훈련의 효과를 보는 건가? 물론 실상은 그 게 아니다. 현지사람에게 물었더니 지난주까지는 평균 47도를 기록했단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37도밖에 안된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람도 선선하다고 이상기온이란다. 이 열풍이 선선한 바람이야?

 

동굴 안에서 '성수'를 받는 아이들.

저 안쪽이 아브라함 동굴인데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이왕 신기하게 생각한다면 생색 좀 내고 가야지. 이상기온 운운한 사람을 불러 진실을 가르쳐 준다.

이상 기온이 아니고요, 내가 와서 그래요. 도착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젠 날씨보다는 기운이 없는 게 더 걱정이다. 며칠 째 먹지를 못했으니 축적해둔 힘이 다 빠져나갈 수밖에. 아침도 과일 두어 조각으로 때운 참이다. 그래도 원하던 곳에 왔으니 힘차게 출발해봐야지. 아브라함 동굴은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 경내에 있는 석굴이다. 이 이름이 엄청나게 어려운 모스크는 오스만투르크 때 세워졌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탄생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일 게다. 모스크 광장의 다섯 개 아치 중 하나가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다. 헌데 출입문이 두 곳이다. 오른 쪽은 남자만 들어가고 왼쪽은 여자가 들어가는 입구라고 한다. 굳이 남녀를 가려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예배공간조차 남녀를 구분하는 게 이슬람 전통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거쳐 들어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사전에 상상했던 동굴의 모습과는 영 다르다. ’믿음의 조상이 태어난 곳 치고는 초라한 편이다. 4각형의 조그만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수도꼭지가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신성한 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갈 수 있나. 나도 줄을 섰다가 물을 한 컵 마신다. 내 몸 안에 신성한 기운이 가득 차는 것 같다. 이젠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을 들여다봐야 할 차례. 참배객이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야한다. 동굴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4각의 틀에 유리를 끼워놓았는데 천장은 바위 형태가 그대로 살아있다.

 

동굴 속의 우물.

 

드디어 내 차례. 바짝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본다. 어라? 이게 뭐야? 유리창 안에는 샘 하나만 보일 뿐이다. 바닥과 벽을 돌로 쌓은 네모난 샘. 샘은 물론 그 바깥에도 물이 가득 차 있다. 더 안쪽에 무언가 있을 법도 한데 조명이 물에 반사되는 바람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허무하다. 이렇게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아기 아브라함과 그 엄마는 어디에 있었다는 거야? 카메라를 들고 X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을 쳐보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등을 살짝 친다? 열 받는데 이건 또 뭐야? 돌아보니 수염이 하얗고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쓴 노인 하나가 내게 뭔가 자꾸 설명을 한다. 우리말이 아닌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도 아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우리말로 마구 떠든다. 각자 할 말만 하지만 대화는 충분히 된다.

왜 이렇게 촐랑이처럼 방정을 떨고 댕겨?”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이라고 해서 와봤더니 물만 있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왕 보라고 만들어 놨으면 뭐가 보이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뉴? 당최 뭘 보란 건지.”허어! 이 사람아. 동굴에 와서 동굴을 봤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래. 보고 싶은 것은 스스로의 가슴 속에 있다네.”

노인이 껄껄껄 웃는다. 무슨 소리야? 아브라함이 왜 내 가슴에 있다는 거야. 헌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듯하기도 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만난 노인.

동굴 바로 옆에 있는 기도실.

그나저나 아브라함이 이 동굴에서 태어나긴 한 것일까? 아니, 왜 하필 동굴에서 태어났을까. 샨르우르파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의문은 속물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증은 풀고 가야지. 이 동네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모두 구전에 의존한다. 아브라함이 구약에 등장하는 건 창세기 11장부터다. 이때의 아브라함은 이미 장년에 접어들어 있다. 그 이전의 행적은 어느 곳에도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전설만 난무하는 것이다. 이제 그 전설의 샘으로 풍덩 빠져 보자. 전설 속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난 것은 BC 2100년이다. 그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이는 님로드(Nimrod) 왕이라는 앗시리아의 영주였는데,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인간이나 신이래. 진짜 신들 열 받았겠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님로드 왕의 우상(신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이 님로드가 꿈을 꾸는데 별 하나가 얼마나 빛나든지 태양 빛을 가릴 정도더란다. 어라? 이게 무슨 뜻이지. 왕은 점술사들을 불렀다. 그들의 해몽은 한결 같았다. ‘올해 이 도시에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가 당신의 자리를 빼앗고 당신의 왕국을 없앨 것이다.’ 왕은 정신이 번쩍 낫겠지. 그래서 우선 취한 조치가 임신을 원천봉쇄할 수 있도록 남자들을 도시에서 모두 내쫓는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직 잉태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아브라함 어머니는 어떻게 임신을 했을까? 일이 그리 되려고 했던지 궁전에서 신상을 만드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시내에 남을 수 있었다. 특수보직을 가진 셈이었다.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

아브라함 동굴을 찾아온 참배객들.

님로드 왕의 불행은 그렇게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집으로 퇴근한 날 아이가 잉태됐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투철한 저항정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고. 점술가들은 곧 왕에게 달려가 이 도시에서 아이가 잉태됐다고 일러바쳤다. 이왕 그렇게 점괘가 용하면 누가 임신했다는 것도 알 법도 하련만. 이번에는 임신한 여자들이 모두 도륙을 당했다. 아브라함의 어머니는 배를 꽁꽁 동여매서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산달이 되자 그녀는 동굴로 들어가서 아이를 낳았다. 여기서 전설은 그 요건에 더욱 완벽성을 띠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어머니가 아기를 두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보니 사슴들이 찾아와 젖을 주고 있더란다. 정말 신기한 건 지금부터다. 아기는 태어난 지 한 달 뒤에 한 살짜리 아이가 되고 다섯 달 뒤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되었다. 15개월이 지나 15세가 될 무렵, 소년 아브라함은 동굴에서 나오다가 군사들에게 잡혔다. 15세나 됐으니 의심 받을 일은 없었다. 아브라함이 마음에 든 님로드는 그를 궁전에 머물도록 했다. 폭탄을 품에 안은 셈이었다. 궁전에 사는 아브라함은 신상들을 볼 때마다 투덜거렸다. 이따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신이야. 신이라면 힘이 있어야지. 그때 가브리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하늘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시거든. 그분도 널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열심히 해봐.“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조그만 녀석이 믿던 신을 바꾸라고 한다고 , 알았습니다.’ 할 사람이 어디 있나.

 

모스크 위를 나르는 비둘기들.

답답한 아브라함은 한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그때도 봄이 오면 야외로 나가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여의도 벚꽃축제 같은 것이겠지. 아브라함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 축제의 행렬에서 빠졌다.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들로 나가고 궁전이 텅 비게 되자 이 야무진 청년은 도끼를 둘러메고 신전으로 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아버지가 만든 신상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큰 신상에 도끼를 꽂아두고 슬쩍 빠져나갔다. 왕이고 신하고 신나게 놀고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와 보니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신상이란 신상은 몽땅 장작이 되고 멀쩡한 건 딱 하나 남았는데, 그나마도 도끼가 꽂혀 있으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축제에 가지 않았던 아브라함이 의심 받을 건 뻔하다. 그를 잡아다 족치기 시작했다.

야 임마, 네가 그랬지?”

무슨 소리래요?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요.”

너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불어.”

아참!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당신네들의 신한테 물어봐요. 내가 볼 땐 그 도끼 들고 있는 신상(사실은 도끼에 맞은 신상)이 한 짓 같은데요? 그놈이 다른 놈들 몽땅 찍어버린 건 아닐까요?”

이 청년 천연덕스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거기서 또 전도를 했다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신이냐.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어라.

 

사진 찍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아브라함은 바로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신상이 전부 자빠져도 범인조차 제대로 못 잡는 님로드 왕의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더욱 미울 수밖에. 여기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에 가서 해야 한다. 가보면 안다. 전설이 조금 길어졌지만 이 정도는 알고 가야 이 고장에 대한 예의다. 동굴에서 나와 모스크를 천천히 돌아본다. 이곳도 아이들과 비둘기들의 세상이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논다. 아이들이 카메라의 뷰파인더 속에 여러 번 들어오면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의사표현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그 정도 눈치는 금세 생긴다. 사진을 찍어줄 테니 모이라고 했더니 좋아 죽겠단다. 저 환한 얼굴들. 아이들과 비둘기까지 어울려 한참 놀아준다. 모스크 밖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신다. 머리 위로 보이는 성채에는 빨간 터키 국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고대사람 아브라함과 현대의 터키 국기. 느닷없이 타임머신을 탄 듯 어지럽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서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년 하나가 웃으면서 화장실을 가르쳐 주겠단다. 그럴 거까지 없는데? 내 정중한 사양을 못 들은 척 끝내 화장실 앞에까지 따라온다. 그러건 말건 입구에서 1리라를 내밀고 들어가려는데 그 청년이 손을 벌리고 서 있다. 어라? 너도 달라고? 이거 순 날강도일세 그려. 너 아니어도 화장실 알고 있으니까 필요 없다고 했잖아. 결국 1리라를 강탈당하고 만다. 영악한 것들.

 

모스크 위로 성채가 보인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앉을 때 보니 저만치 연못 하나가 있다. 저게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다른 쪽에 있고 아인제리하 연못이란다. 아인제리하분명 여자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뭔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도 슬픈 사연이 하나 잠겨 있다. 제리하는 님로드 왕의 딸이었다. 헌데 이런 비극이. 그녀는 아버지인 왕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인 하나님을 믿었다. 혹시 아브라함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적을 잡으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기까지 알 방법은 없지만 둘은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됐다. 신상을 때려 부순 연인 아브라함이 아버지인 님로드 왕에게 사형을 당하는 순간, 그녀도 이 연못에 몸을 던졌다. 이거야.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가 여기에도 있었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 여인의 눈물이 가슴에 닿는다. , 사랑이여! 그 덧없음이여! 끝내 궁금한 게 하나 있다. 하나님은 왜 그녀를 안 구해줬을까.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