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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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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총'에 해당되는 글 2

  1. 2010.04.05 [사라져가는 것들 135] 고무줄10
  2. 2009.01.12 [사라져가는 것들 93] 참새잡기14
2010. 4. 5. 09:04 사라져가는 것들
가객 장사익은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고 노래했지만 저는 옛 정취가 그리워서 시골장을 기웃거립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와 똑같은 체취를 가진 노인들 틈에 섞여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보면, 거북등처럼 갈라졌던 마음도 어느덧 말끔하게 때워지고는 합니다.
아직도 시골장터에는, 도시를 떠돈 뒤로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이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유영합니다.
예고 없이 마주치는 추억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지요.
그들 중 하나가 고무줄이라고 하면,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네.” 하고 웃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제겐, 아니 저와 비슷한 시절을 사신 분들에게는 그리 싱거울 일 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세월에 묻혀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었지만, 과거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골장 한 모퉁이 잡화코너에 조금 부끄러운 듯 걸려있는 고무줄을 마주치면 금세 머릿속에 주마등이 하나 걸립니다.
코흘리개 아이 때처럼 신명이 전신을 훑기도 하고, 오래 전에 이별한 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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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장에 갈 때면, 어머니는 고무줄을 잊지 마시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고는 했습니다.
그만큼 아녀자들에게 중요한 게 고무줄이었거든요.
아래속옷을 ‘빤스’도 아닌 ‘사리마다’ 쯤으로 부르던 때였으니, 어쩌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돼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사리마다’에는 고무줄이 꼭 필요했습니다.
요즘이야 밴드 처리가 잘 돼 적절한 탄력을 주는 제품이 쏟아지지만, 전에는 고무줄을 넣어야 흘러내리지 않았거든요.
속옷의 윗부분, 지금으로 보면 밴드 처리된 부분에 고무줄이 들어갈 만큼 틈을 만들고, 그 안에 고무줄을 넣습니다.
옷핀이나 가는 머리핀에 고무줄을 매달아 틈새에 넣고 반대쪽까지 조금씩 밀고나간 뒤 양쪽 끝이 만나면 묶어줍니다.
여기엔 조금 값이 헐한 까만 고무줄이 주로 쓰입니다.
지금도 침침한 등잔불 아래서 속옷에 고무줄을 넣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고무줄을 한번 넣었다고 끝까지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속옷 한 장을 만들면 낡아 떨어질 때까지 입던 시절이니, 고무줄이 삭아 끊어지는 일도 흔했지요.
새로 짱짱하게 고무줄을 넣은 속옷을 입고 나서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허리에 힘을 주며 으쓱거리기도 했습니다.
엉덩이는 헤져서 몇 번씩 기운 걸 입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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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이 꼭 필요한 데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기저귀입니다.
요즘은 대부분 펄프로 만든 일회용 기저귀를 쓰니 천기저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출산을 앞둔 집은 맨 먼저 천기저귀를 준비했습니다.
아기의 여린 피부를 감안해서 소재는 부드러운 면을 쓰지요.
이때 필요한 것이 노란 고무줄입니다.
노란 고무줄은, 까만 고무줄이나 납작한 찰고무줄과는 달리 가운데가 빈 원통형의 고무줄입니다.
다른 것보다 값도 좀 비싸고 탄력도 좋지요.
기저귀를 댄 위에 묶어 흘러내리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너무 탱탱하면 아기가 불편하고 너무 느슨하면 흘러내리기 때문에 잘 조정해줘야 합니다.

사실, 고무줄은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놀이도구였습니다.
남자애들은 고무줄이 있어야 새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까만 고무줄은 새총에는 잘 쓰지 않았습니다.
찰고무줄이나 기저귀 고무줄에 비해서 탄력이나 내구성이 형편없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어린 동생의 기저귀 고무줄에 눈독을 들이는 녀석들도 많았습니다.
고무줄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양쪽으로 균형 있게 벌어진 나뭇가지를 자른 뒤, 깎고 다듬어 거기에 고무줄을 묶고 가죽을 대어 새총 하나를 완성하면 세상 모든 새가 내 손 안에 있는 듯 뿌듯했지요.
하지만 새총이 있다고 새가 절로 잡히나요?
가죽에 작은 돌이나 콩을 먹여 참새 떼를 향해 연신 쏘아보지만, 약 올리듯 포롱포롱 날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참새 중에도 눈치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녀석들이 있어 맞아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땐 최소 3박4일 자랑거리가 되었지요.
조금 큰 아이들은 나무를 깎아 장난감 권총을 만들기도 했는데, 격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탄력 좋은 고무줄이었습니다.
화약을 쓰도록 만든 이 총은 꽤 위력이 있어서 어른들은 ‘위험물건’으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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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에게 고무줄은 더욱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바로 고무줄놀이 때문이었는데, 이땐 까만 고무줄이 적격이었습니다.
고무줄 여러 개를 이은 긴 줄을 가진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엄마 ‘사리마다’에서 고무줄을 몰래 빼냈다가 종아리에 퍼런 줄 빨간 줄 그은  애들도 있었겠습니까.
아이들은 놀이를 한번 시작하면 해가 저무는 줄도 몰랐습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해만이냐…‘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느티나무집 너른 마당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가,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귓전을 간질이던 시절의 필름은 언제 돌려봐도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습니다.
잘 하는 아이들은 고무줄이 머리 위, 아니 팔을 최대한 뻗을 만큼 높아져도 펄펄 날면서 넘고는 했지요.
개구쟁이 사내 녀석들은 연필 깎는 칼을 갖고 다니다가 몰래 다가가서 고무줄을 끊어놓기도 했습니다.
심술보다는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랬다고들 하는데, 어디 그 심중을 확인할 방도야 있나요.
그 덕분에 오래된 고무줄은 잇고 이어서 철조망 가시 같은 매듭이 수십 개 씩 되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리본이 흔하지 않던 시절,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묶는 데도 고무줄은 꼭 필요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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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무줄 정도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고무줄이 필요한 놀이를 하지 않지요.
아직도 속바지 정도는 손으로 기워 입는 시골노인들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찮은 물건이 되었는데도, 가끔 까맣고 노란 고무줄을 보러 시골장에 가고 싶으니 이걸 고질병이라고 하나봅니다.


posted by sagang
2009. 1. 12. 09:22 사라져가는 것들

함박눈에 그시절
참새 덫 생각이 난다

앞마당 모퉁이 눈 쓸어내고
왕겨 뿌려 소쿠리 덫 만들어

새끼줄 길게 안방까지 끌고와
창호지 문 구멍으로 종일 망을 본다

몇마리 참새무리 덫 속으로
들락이니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데

난데없이 방 식는다는 아버지의
호통소리에 참새떼는 줄행랑 치고

서운하고 안타깝던
그옛날 고향의 참새 덫 사연

울 아버지 생각하면
콧날이 찡해 눈물이 나니

그시절 함박눈 내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남천사 <참새 덫>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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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참새는 텃새입니다.
집 주변에서 늘 볼 수 있었지요.
그러니 친근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별 볼품 있는 새도 아닌데 ‘진짜’를 상징하는 ‘참’자 벼슬까지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온 백성이 특별히 아끼고 보호했다는 건 아닙니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장난삼아 하는 사냥감으로나 여기는 게 예사였지요.
그러다보니 참새를 잡는 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내아이들은 고무줄 당길 만한 힘이 생기면 새총부터 만들었습니다.
가지가 양쪽으로 균형 있게 나눠진 나무를 잘라서 다듬고, 양쪽에 고무줄을 묶은 뒤, 가죽을 조그맣게 오려 고무줄 사이에 이어놓으면 새총이 되지요.
겨울이면 아이들은 새총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습니다.
뒤뜰 대나무밭에 참새가 지천이었거든요.
대숲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바람이 흔들어서 나는 것인지 참새들이 내는 소린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이 녀석들 수다는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떠들기 시작하면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저리가라지요.
사실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한쪽 눈 질금 감고 겨냥한다고 하는데도 총알(작은 돌멩이나 콩)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쑤지요.
가끔 한 마리씩 떨어지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것도 수십 마리 중 재수 없는 한 녀석이 맞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재미있던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남의 목숨을 놓고 놀이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죄악이라는 걸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새총으로 남의 집 장독을 깨놓고 죽지 않을 만큼 맞는 악동들이 꽤 있었던 걸 보면, 벌을 받은 건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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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정도는 말 그대로 ‘아이들 장난’일 뿐이었습니다.
참새고기를 먹겠다고 하는 ‘집단사냥’도 있었으니까요.
납일(臘日)*밤에 아이들이 통발(가는 댓살이나 싸리로 엮어서 통같이 만든 것)을 참새가 있을만한 지붕의 추녀에 대고 긴 막대기로 친다지요.
그러면 잠자던 참새가 놀라 도망치다가 정신없이 통발 속으로 들어간답니다.
또 참새 집에 손을 넣어 잠이 덜 깬 일가족을 생포하기도 했다지요.
참새들이 떼로 모여 자는 대밭에 그물을 치고 막대로 치거나 흔들면 놀라서 날아가다가 그물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납일 밤에 새를 잡는 풍습이 생긴 것은, 이날 나라에서 새나 짐승을 잡아 종묘사직에 공물로 바치고 대제를 지냈기 때문이랍니다.
민간에서는 납일에 잡은 참새를 아이들에게 먹이면 두창(痘瘡 마마‧천연두)에 걸리지 않고 침도 흘리지 않는다고 하여 이런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딜 가나 만만한 게 참새였던 모양입니다.

*민간이나 조정에서 조상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 동지 뒤 셋째 술일(戌日)에 지냈으나, 조선 태조 이후에는 동지 뒤 셋째 미일(未日)에 지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참새잡기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덫을 놓아 잡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사설이 좀 길어졌습니다.
나이 좀 드신 분들은 “난 무슨 얘기가 나올지 다 알아.” 하면서 벌써 입가에 미소가 걸렸을 것입니다.
덫으로 참새를 잡는 건 주로 겨울에 눈이 왔을 때 하던 놀이 겸 사냥입니다.
덫의 주재료는 대로 엮은 소쿠리입니다.
짚으로 짠 삼태기도 인기품목 중 하나였고, 아쉬운 대로 키가 차출될 때도 있었지요.
다음으로 적당한 길이의 막대와 긴 끈 혹은 새끼줄, 그리고 미끼로 쓸 좁쌀이나 왕겨 등이 필요합니다.
사냥장소는 뒤뜰이 적절합니다.
앞마당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새들이 잘 모이지 않지요.
우선 소쿠리를 막대로 걸쳐서 아가리를 만들고 그 막대기에 실을 묶어 길게 늘어뜨립니다.
다음에 소쿠리 안쪽에 좁쌀 등의 미끼를 흩뿌려놓습니다.
그리고 끈을 방안까지 끌고 간 뒤, 문종이에 구멍 하나 뚫고 감시만 하면 됩니다.
참새 역시 경계심이 보통이 아니어서 무조건 달려들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에 얼씬거리면서 상황 파악에 열중하지요.
그러다가 한 녀석이 용기를 내어 소쿠리 밑으로 들어가면 몇 마리가 따라 들어가게 됩니다.
참새의 경계심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먹을 것에 눈이 멀어 주변의 위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럴 때 톡! 하고 지지대에 연결된 줄을 당기는 것이지요.
소쿠리나 삼태기가 참새들을 덮치면서 놀란 참새들이 힘차게 날갯짓을 해보지만 모든 건 끝난 뒤지요.
아, 그 때의 스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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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어디 참새 잡을 일이 있나요.
포장마차에서 파는 참새구이라는 것도 메추리새끼라든가 하는 말이 있는 판에….
그런데, 최근에는 참새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답니다.
한 때는 너무 많아서, 곡물을 축낸다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녹지 면적이 줄면서 살 곳과 먹이를 잃은 탓에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먹이가 줄게 된 것엔 농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아무튼 10년 새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직도 주변에서 참새를 많이 볼 수 있으니 실감이 안 나겠지만, 조사결과가 그렇다는 데야 사실이겠지요.
이러다가 참새도 동물원에나 가서 보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뭐든지 있을 때는 귀한 걸 모르잖아요.
그러다 어느 날 돌아보면 그렇게 흔히 보던 것들도 사라져버린 뒤지요.
참새, 우리만 보고 즐길 권리가 있나요.
후손들도 봐야지요.
겨울이 되니 괜히 어릴 적 참새 잡던 일들이 떠올라서 해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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