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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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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7 [사라져가는 것들 30] 괘종시계
2007. 10. 17. 19:1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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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괘종시계의 태엽만큼은 반드시 당신이 직접 감았습니다.
세월의 채찍질에 지칠 법도 하건만, 평생 그렇게 사랑한 손자들에게도 '태엽권'을 넘겨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시계부랄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질 만 하면, 받침대를 놓고 올라가 꼼꼼하게 태엽을 감았습니다.
뭔가 뻑뻑한 느낌이 들면 기름을 쳐주는 일도 잊지 않았고요.
시계는 할아버지의 유물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쌀 섬을 배에 싣고 강경에 가서 사온 거라고 했습니다.
시계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는 얼마나 신기했던지 동네사람은 물론, 근동사람이 차례로 구경을 왔더랍니다.
우스개 소리겠지만, 시계를 보겠다는 일념에 멀리서 주먹밥을 싸들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지요.

그 시계를 사온 뒤 몇 년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어느 날 전답을 처분하더니 뭉칫돈을 싸들고 집을 떠났답니다.
간도라고도 하고 아오지탄광이라고도 하고, 아무튼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북선(北鮮)'을 유랑하고 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지요.
할아버지가 돌아온 건 삼팔선이란 게 생길 무렵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돈을 벌었는지 독립운동이라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집에 도착했을 땐 '거지꼴'이었습니다.
삼팔선에서 모든 걸 빼앗겼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답니다.
할아버지는 바로 자리에 누운 뒤 종내 일어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지요.
할아버지가 떠나고 난 집에는 빚과 괘종시계만 남았습니다.
그 많던 땅문서는 차용증서로 바뀌어 있었고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남편이 몹시도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의 유일한 유물인 괘종시계를 끔찍하게 아꼈습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떠난 이가 남긴 시간만큼은 계속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할머니가 떠난 뒤 시계에 태엽을 감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박제가 되어 시계 대신 걸렸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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