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8.04 [사라져가는 것들 70] 삼(大麻) <상>8
2008. 8. 4. 10:48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5년도 거의 저물어 가던 12월3일. 당시 최고 인기가도를 달리던 가수 27명이 무더기로 구속됐다는 뉴스가 전국에 타전됐다. 톱 가수 27명이 한꺼번에 사라졌으니 가요계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나라 전체가 들썩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큰 사건이었다. 구속명단에는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름들이 들어있었다. 이장희ㆍ이종용ㆍ윤형주…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12월 6일에는 신중현ㆍ김추자ㆍ손학래 등 ‘신중현 사단’의 핵심 인물들이 또 무더기로 구속되었다. 구속 사유는 대마초흡연이었다. 이 사건이 바로 지금까지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마초 파동’이었다. 어둠의 시절, 긴급조치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대마초 파동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76년에는 대마관리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단속은 더욱 강화되었고, 4년 동안 100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입건되면서 대마초는 사회적 금기로 낙인 찍혔다. 그 뒤로도 잊을 만하면 대마초와 관련된 뉴스가 매스컴을 장식했다. 전인권·김부선·심신·신해철·신동엽·싸이 등 숱한 인기연예인들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농촌사람들에게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대마초라는 게 밤낮으로 보고 사는 삼(大麻)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초여름이면 밭마다 지천인 게 삼 아니던가. 60~70년대만 해도 농촌에서는 삼 농사를 많이 지었다. 삼은 이 땅에서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작물 중의 하나다. 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 이름이 그가 입었던 옷, 마의(麻衣=삼베옷)에서나왔음은 삼의 역사를 웅변하기에 충분하다다. 삼 줄기에서 나온 섬유는 베를 짜거나 로프·그물·모기장·천막 등의 원료로 쓰이고, 열매는 향신료의 원료로 쓰인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화마인(火麻仁)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변비와 머리카락이 나지 않을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대마의 잎과 꽃이었다. 여기에는 테트라히드로카나비놀(THC)을 주성분으로 하는 마취 물질이 들어 있어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면 환각 증세를 보인다. 담배처럼 마음대로 피울 수 있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으로 분류돼 엄격하게 규제한다. 섬유의 원료인 삼으로서가 아니라 환각제로서의 대마초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중반 주한미군 등을 통해서였다. 그 후 70년대에 크게 번지다가 결국 75년에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을 심던 농가는 자다가 벼락을 만난 셈이었다. 대대로 아무 문제없이 농사를 지어왔는데 재배를 하려면 관청에 신고하라니…. 물론 이미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가 들어와 전국을 휘감을 때긴 했지만, 모든 농가가 하루아침에 삼 농사를 작파할 만큼 세상이 뒤집어진 건 아니었다. 농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삼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었다. 땅이 없는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논밭이 멀리 떨어져 있는 집들도 삼씨 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삼대는 베는 즉시 쪄내야 하는 것이라 먼 곳에 심었다가는 무거운 삼 다발을 삼굿(껍질을 벗기기 위하여 삼을 찌는 구덩이나 솥)까지 끌어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삼은 3~4월에 습기가 많은 밭에 씨를 뿌려 7월초에 베어낸다. 안동에서는 삼밭은 주로 사람이 쟁기질을 한다고 한다. 너무 깊이 갈리면 성장에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삼을 수확할 때는 이웃끼리 모여서 같은 날 한다. 공동 작업을 해야 삼을 베고 찌는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줄기를 베고 잎을 추려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묶어서 삼굿으로 옮긴다. 요즘은 추려낸 잎 등의 부산물을 현장에서 모두 태운다. 그래야 그 자리에 빨리 모를 심기도 하지만, 삼이 대마초로 변하는 걸 막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을 채취하고 쪄내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의 ‘안동포 마을’을 찾아간 건 7월초였다.  금소리는 토질이 대마재배에 적합한 사질토이고 기후조건이 좋아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안동포가 궁중에 진상되었다고 한다. 7월 초면 삼 수확은 끝물이다. 안동포마을은 마침 가늘게 내리는 비에 잠겨 조용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곳곳에 널어놓은 겨릅대(껍질을 벗기고 남은 삼 속대)만이 ‘예가 삼베마을이오’ 하고 설명해줄 뿐 한낮인데도 인적은 뜸하다. 마을회관을 찾아가보니 그곳에도 사람은 없고 방문자를 위한 전화번호 하나가 달랑 걸려 있다. 득달같이 전화를 했더니, 마침 오늘 마지막 삼을 벤다며 논으로 오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려간다. 삼을 베는 사람들보다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연기가 먼저 반긴다. 생잎을 태우려니 연기가 유난할 수밖에 없다. 사진 좀 찍겠다고 소리를 지를 다음 누가 고개를 끄덕일 새도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안동의 삼대는 다른 지방서 보던 것보다 가늘고 키가 크다. 삼실의 이음새를 줄이려고 길게 기르는 것 같다. 삼을 베고 잎을 추리고 한쪽에서는 경운기에 싣느라 분주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잎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연기와 씨름 중인 할머니 한 분을 붙잡고 이것저것 묻는다. 어딜 가나 할머니들은 친절하다. 조목조목 잘도 가르쳐 주신다. 삼 찌는 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경운기를 따라가 보란다. 생삼 무게로 속도가 한껏 느려진 경운기를 졸졸 따라간다. 하지만 경운기가 도착한 곳은 삼굿이 아니라 삼을 찌는 공장이다. 하긴 재래식으로 삼을 찐다는 자체가 그리 경제적이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반가운 마음에 언제 삼을 찔 거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날씨가 나빠 계획에 없단다. 힘이 쭉 빠져 나오다가 한 아주머니에게 옛날식 삼굿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조금만 더 가보란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멀지 않은 동네에서 진짜 삼굿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 곳 역시 텅 비어 있다. 기웃거리고 있자니 농부 한분이 지나다, 궂은 날에는 말리기가 어려워 삼을 찌지 않는다고 설명해준다. 모레쯤이면 날이 들 테니 그 때 와보라는 정보만 쥐고 터벅터벅 마을을 나선다. 이틀 뒤에는 이른 아침부터 삼굿으로 향했다. 삼굿 위에 무언가 높다랗게 쌓여있고 파란 포장으로 감싸둔 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없다. 불을 지펴놓고 기다리는 시간인 모양이다. 멀리 정자나무 아래에 몇 사람이 쉬고 있다. <계속>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