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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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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3.24 [사라져가는 것들 50] 뻥튀기11
2008. 3. 24. 18:34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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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길에 삼복이 없더냐?”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으로 맥질 한 걸로 봐서, 벌써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손자를 찾은 눈치다. 삼복이는 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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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다. 아직 학교 갈 나이가 안 됐기 때문에 할머니가 먼 곳으로 일을 갈 때는 집에 두고 간다. 먹을 것만 준비해놓으면 혼자서도 곧잘 놀고 집도 지키는데, 가끔 슬그머니 증발해서 할머니의 애를 태웠다. 아이는 고개를 반쯤 젓다말고 언뜻 떠오르는 생각에 책보를 마루에 던지고 뛰어나간다. 아이가 단숨에 달려간 곳은 웃말 최주사네 느티나무마당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삼복이가 있다. 마당가 느티나무 그늘 아래 혹부리영감이 뻥튀기 틀을 돌리고 있고, 그 주변에 아이들이 둥그렇게 앉아 있다. 삼복이는 그 중에 가장 작아 보일 듯 말 듯 하다. 아이가 반가움과 얄미움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동생의 귀를 잡고 잡아당긴다. 하지만 삼복이는 선뜻 따라나설 기세가 아니다. 몸은 끌려오면서도 눈은 혹부리영감 쪽에 가 있다. 그러고 있어봐야 누가 튀밥 한 줌 챙겨주는 것도 아닐 텐데 무얼 그리 기다리는지. 동생을 끌고 나오면서 아이는 괜스레 서러워져 눈물이 찔끔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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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이는 병적일 만큼 뻥튀기에 집착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순례하는 뻥튀기장수, 혹부리영감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아이의 동네에 나타났다. 삼복이는 그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마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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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 달려 나가곤 했다. 그리고는 미처 전을 다 펴기도 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머니와 아이들만 사는 집에 튀길 만한 곡식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이들이 혹부리영감 주위에서 얼씬거리는 것을 싫어했다. 먹지도 못하면서 기다리고 앉아있는 꼴이 가슴 아파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삼복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혹부리영감의 턱밑에 앉아서 다른 집 아이들이 자루에 쌀이나 보리를 담아 와서 튀겨가는 걸 꼼짝도 않고 지켜봤다. 가끔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튀밥을 한 두 주먹 집어주기도 하는데 그걸 다 먹어도 삼복이는 절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어쩌면 튀밥을 얻어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곡물이 튀겨지는 과정에 빠져서 그리 앉아있던 건지도 몰랐다. 오늘도 동네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혹부리영감이 조금 일찍 웃말로 옮겼던 모양인데, 삼복이가 그예 따라나섰던 것이었다. 삼복이는 그런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혼이라도 나간 아이처럼 혹부리영감을 따라다녔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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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철이 어느 정도 든 아이에게도 혹부리영감의 출현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먹을 것이 변변찮은 시절에 튀밥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혹부리영감이 은행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면 아이들은 엄마를 졸라 쌀이나 보리, 옥수수, 콩 등을 얻어냈다. 그걸 혹부리영감에게 가지고 가면 깡통에 담아서 순서대로 줄을 세워놓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늘 길고도 달콤했다. 무엇이든지 뻥튀기 틀에 들어갔다 나오면 달콤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누룽지나 말린 가래떡을 튀긴 것은 있는 집 아이들이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다. 뻥튀기 틀을 돌리던 혹부리영감이 둥그런 철망을 댄 뒤, 뻥이요~ 외치면 아이들은 귀를 막고 과장스럽게 호들갑을 떨면서 뒤로 물러섰다. 잠시 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아오르면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뻥튀기 틀 앞으로 몰려들었다.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연기 사이로 보이는 튀밥은 탄성이 나올 만큼 탐스러웠다. 반 됫박이나 될까 말까한 곡물을 넣었는데 나온 걸 보면 두 눈을 의심할 만큼 많았다. 손 빠른 아이들은 자루 속에 손을 넣거나 멍석 위로 흘린 튀밥을 한 움큼 훑어내기 마련이었다. 자신도 남의 것을 먹은 기억이 있는 튀밥 주인은 그 정도야 눈을 감아주기 마련이었지만 가끔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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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튀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입안이 깔깔해져서 밥을 못 먹는다고 성화였지만, 아이들은 다 떨어질 때까지 입에 달고 살았다. 튀밥은 쌀튀기, 광밥, 깡밥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주로 군것질거리용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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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강정의 겉에 묻히는 등 식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곡물을 넣을 때 ‘사카린’ 같은 감미료를 첨가했는데 그 단 맛이 아이들의 손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의 눈에는 시커멓게 생긴 통이 곡물을 수십 배로 튀겨내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지만, 사실 원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뻥튀기 틀에 곡물을 넣고 밀폐한 뒤 서서히 가열하면 용기 속의 압력이 올라간다. 전에는 조금 큰 깡통에 불을 피워 기계 아래에 넣고 손잡이를 돌려서 골고루 가열했다. 뻥튀기 틀에는 압력측정기가 달려 있는데 눈금이 적절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 깡통을 빼 가열을 멈추고 뚜껑을 연다. 뚜껑을 갑자기 열면 압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곡물이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때 압력차이로 펑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뻥튀기라고 불렀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등장한, 둥그렇게 튀긴 쌀과자에 ‘뻥튀기’란 이름을 내주기도 했지만 80년대 이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뻥튀기는 튀밥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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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뻥튀기 광경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전국의 5일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모퉁이인가에는 뻥튀기장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바뀌었다. 우선 옛날처럼 아이들이 둘레둘레 모여앉아 있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과자니 뭐니 주전부리가 지천인데다, 요즘은 어른 못지않게 바쁜 아이들이 거기 앉아있을 까닭이 없다. 대신 허리 굽은 촌부들이 이미 튀겨서 비닐봉지에 담아놓은 튀밥을 사간다. 뻥튀기를 하는 과정도 꽤 많이 달라졌다. 가열하는 역할도 가스통이 대신한다. 손잡이도 직접 돌리지 않고 기계적으로 돌아가도록 개량되었다. 강원도 어느 소읍의 5일장을 구경하러 갔을 때 어디선가 뻥 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봤지만, 자동화된 뻥튀기 틀이 트럭 위에 근사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걸 보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편하게 된 것이야 어디 뻥튀기하는 과정뿐이랴. 모든 게 총알처럼 달려가는 세상에 과거의 모습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욕심일 뿐이다. 하지만 느티나무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뻥튀기 틀을 지키던 삼복이의 모습은 세월이 갈수록 그립다. 아련하게 멀어졌으면서도 늘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빛바랜 사진 한 장처럼.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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