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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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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0 [사라져가는 것들 38] 나룻배5
2007. 12. 20. 18:12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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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언제나 오려나

김정구(1999년 타계)가 부른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의 1절입니다.
이 노래의 탄생배경에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겨레가 겪었던 눈물겨운 사연이 있습니다.
항일투쟁을 하던 남편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으나 결국 싸늘한 주검만을 만나야했던 한 여인의 애끓는 통곡이 담겨있다지요.
이렇듯 한이나 슬픔을 한 자락 깔고 있는 노래나 시 속에는 나룻배가 곧잘 등장합니다.
나룻배라는 게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숙명적으로 이별의 정한을 담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버드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강변에서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여인의 시선 끝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 조그만 나룻배가 있습니다.
노를 젓는 늙은 사공과 차마 이쪽을 바라보지 못하는 한 남자.
그 정경은 슬픔이지만, 또 가슴 저릴 만큼의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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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삿대를 저어라
1959년에 황정자가 불렀고, 70년대 중반에 듀엣 금과은이 다시 불러서 '국민가요' 반열에 올랐던 노래 '처녀뱃사공'의 1절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룻배가 꼭 이별의 정한만을 실어 나르는 건 아닙니다.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면서 노를 젓는 처녀뱃사공의 꿋꿋한 삶이 담겨 있기도 하니 말입니다.
물론 처녀가 노를 저어야 하는 배경에는 분명 사연이 있겠지만, 가난하다고 풀뿌리나 핥고 이별이 서럽다고 넉장거리나 놓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희망적인 정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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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를 횡으로 종으로 누비는 강이나 좀 넓다싶은 내 그리고 크고 작은 호수에는 나룻배가 있었습니다.
대개는 노 젓는 배였고 좀 넓은 강에는 돛을 단 배가 다니기도 했지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나룻배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노량진 같은 지명은 그곳이 배가 드나드는 나루터였음을 말해줍니다.
과거에는 다리 놓는 기술이 신통치도 않았거니와 어지간한 다리는 홍수 한번이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강을 끼고 사는 동네는 바깥 나들이를 위해서 반드시 나룻배가 필요했습니다.
대개 뱃사공은 나루터 근처의 작은 움막에서 기거했습니다.
강 저쪽에서 어이~ 어이~ 사공~ 하고 부르면 한밤중이라도 삐그덕 삐그덕 노를 저어가 강을 건너줬지요.
마을사람들은 추수 때가 되면 선임(船賃)을 곡식으로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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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룻배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닙니다.
나룻배가 보고 싶으면 은어가 물을 거슬러 오르고 재첩이 강바닥에 사는 섬진강이나, 우렁이가 지천이라는 우포늪으로 가면 됩니다.
강원도  깊은 골을 지나다보면 아직 줄배도 건재함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의 나룻배가 주던 정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나룻배들이 사라진 강에는 튼튼한 쇠와 시멘트로 만든 다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홍수가 와도 물이 얼어붙는 겨울이 와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다리입니다.
그래도 '시대부적응자'들은 님을 보내며 강가에서 흔드는 하얀 손수건을 그리워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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