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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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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2 [사라져가는 것들 96] 삐삐29
2009. 2. 2. 10:50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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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를 기억하십니까?
허리띠에 차거나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폼 깨나 잡던 그 무선호출기 말입니다.
휴대전화가 통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삐삐는 문자(숫자)를 전달받는 기기였습니다.
작은 액정화면에 전화번호가 찍히면 호출한 상대방에게 전화를 거는 방식입니다.
그 시절엔 삐삐 덕분에 공중전화 앞의 줄이 무척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구내에 있는 의사들을 호출할 때도 유용한 도구로 쓰였지요.
"삐삐 쳐라" 라는 말이 "연락해라"라는 말과 동일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숫자로 전화번호만 보내는 건 아니었습니다.
약어를 통해 의사전달을 하기도 했지요.
112는 ‘긴급 상황’이란 의미였고 119는 ‘아주 급하다’ 혹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특히 연인들이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0001이라고 보내면 ‘영원토록 변치말자’는 뜻이었고 04는 ‘영원히 사랑해’, 1004는 ‘당신은 나의 천사’였습니다.
또 1010235는 ‘열렬이 사모한다‘는 고백이고 100은 ‘돌아와(back)’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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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에 얽힌 이야기도 많습니다.
가장 허무할 때는, 벼르고 별러서 샀는데 아무도 호출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삐삐를 아침에 알람용으로 쓰기도 했는데,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게 주된 용도가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람 외에는 울릴 일이 없는 삐삐, 그런 걸 ‘캔디삐삐’라고 했다는군요.
만화 캔디의 주제가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하는 대목이 있잖아요.
울리지 않는 삐삐를 가진 사람의 외로움을 짐작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삐삐를 해동한다는 말도 있었다지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울리니까, 꽁꽁 얼어붙은 삐삐를 녹인다고 자기가 호출하고 음성까지 남기는 ‘서글픈’ 일도 벌어졌었다나요.
삐삐는 영어로는 pager(radio pager) 혹은 beeper라고 합니다.
무선호출기 정도로 번역되는 단어들입니다.
삐삐란 이름이 붙은 건, 호출이 오면 삐이~ 삐이~ 하고 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소리 대신 부르르 떠는 진동모드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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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의 전성기는 1980년~90년대였습니다.
시티폰이라는 조금 ‘기형적 휴대전화’가 한 때 반짝 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휴대전화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삐삐가 대세였지요.
삐삐를 처음 만들어낸 곳은 모토로라입니다.
1980년에 세상에 첫 선을 보였고, 우리나라에는 2년 뒤엔 1982년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처음 나왔을 때 무척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삐삐 역시 초기엔 20~30만원을 호가했기 때문에 아무나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삐삐를 가진 사람은 돈이 많다거나 한 자리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했지요.
어렵게 하나 마련하면 일부러 윗옷을 척하니 제쳐 허리띠에 찼다는 걸 강조하거나, 괜히 꺼내서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국내에 삐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이동통신사업자가 12개사로 늘어나면서 부터였습니다.
1992년 145만 명에 그쳤던 가입자가 95년에는 1천 5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런 붐을 타고 수많은 통신회사가 난립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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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삐삐의 전성시대는 봄꽃처럼 짧았습니다.
어차피 과도적 통신기기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지요.
1990년대 말부터 휴대전화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삐삐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중전화를 찾지 않아도 바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각종 부가기능까지 갖춘 ‘최신식 병기’를 따라갈 방법이 없었겠지요.
2000년대 들어서도 삐삐가 반짝 각광을 받은 적이 있긴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삐삐여, 다시 한 번”을 외쳤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대세가 뒤집힐 턱은 없지요.
결국 남자들의 허리에서, 여자들의 핸드백에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삐삐가 미약하나마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에이, 설마…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도 삐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물론 서비스 하고 있는 회사도 있고요.
수천 명 회원을 거느린 온라인 카페도 있습니다.
‘불편한‘ 것을 일부러 찾아서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요?
전깃불조차 없는 깊은 산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 걸요.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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