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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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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라군'에 해당되는 글 1

  1. 2011.12.19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11] 죽음의 바다에서32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욀뤼데니즈 해변의 패러글라이딩 착륙장. 모래와 잔디밭이라 안전하다.


그녀를 만나다

바바산에서 내려와 헥토르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그녀가 있다. 누구? 헥토르 에이전시에 일한다는 한국인 아가씨.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가출한 여동생을 타향에서 우연히 만난 듯 반갑다. 하지만 그녀는 7년 만에 만나는 오라비나 지을 법한 감동적인 표정을 보고서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하도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이곳이 서울인지 머나먼 이국 땅인지 헷갈리는 것 같다. ‘아니, 또 저런 감동 과잉형 인간이야?’ 하는 표정까지 살짝 내비친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나도 아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간다. 그녀가 터키, 그중에서도 페티예에 정착한 건 3년 전. 여행을 왔다가 눌러 앉았다고 한다. 나중에 기회 있으면 소개하겠지만 코디네이터 엄상욱 씨도 그렇게 무작정 눌러앉은 케이스다. 그럼 나도 이참에…? 아무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왔다가 패러글라이딩 회사의 직원이 된 셈이다. 엄청난 용기다. 고국에는 가족도 친구들도 있었을 텐데. 낯선 땅에서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는 건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헥토르 입장으로 보면 낮잠을 자다가 홍시 하나가 벌린 입으로 떨어진 셈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그녀가 큰 도움이 됐을 건 안 봐도 비디오고.

다시 한번 미스터 헥토르를 소개합니다!! 그는 끝내 패러글라이딩 값을 받지 않았다.

하필 이 동네에 정착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대답이 간단하다. “여기가 가장 따뜻해서요” 삶이 무척 추웠던 모양이다. 터키말은 전혀 몰랐는데 살면서부터 배웠다고 한다. 그녀 역시 헥토르가 한국인들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수수료를 포기하고 한국 청년들의 편의를 봐주기도 한단다. 그렇구나. 최소한 동포 말은 믿어야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손을 흔들며 떠난 딸이 느닷없이 낯선 땅, 그것도 시골 한구석에 틀어박혔을 때 부모 심정은 어땠을까. 의외로 선선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니, 지금은 친구 딸들은 다 시집을 가는데 넌 뭐하느냐고 하세요. 그러다가도, 거기에 자리나 잘 잡아놓으라고….” 그녀의 부모님 속내도 좀 복잡한 게 틀림없다. 이곳에 계속 있을 거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 한마디 덧붙인다. “여기가 속 편해요” 그렇지 뭐, 속 편하면 곳이 고향인 게지. 살던 땅으로 돌아간다고 누가 정착자금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아까 헥토르에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몇 가지를 물어본다. 욀뤼데니즈에는 패러글라이딩 사업을 하는 업체가 9개 있다고 한다. 5개는 고정적으로 성업 중이고 나머지 4개는 ‘생겼다 망했다 이름을 바꿔서 다시 시작했다’의 반복이란다.

욀뤼데니즈 해변.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잔잔하다.

가까이 가보면 모래가 아니라 이런 작은 돌들이 깔려있다.


해변을 거닐다


바바산에 길을 닦고 패러글라이딩의 기반을 마련한 건 관공서였다고 한다. 물론 입장료를 받고 관광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한국인마다 신기하다는 듯 반복하는 질문에 약간 짜증나는 기색도 없진 않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극구사양이다. 조금 조르면 오케이 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손사래를 친다. 실력부족인가? 터키사람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활짝 웃어주는데 말이 통하는 한국인의 사진을 찍는데 실패하다니.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있겠지. 그거야말로 존중받아야할 프라이버시. 몰래 한 장 찍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깨끗하게 포기한다. 헥토르는 다큐팀의 패러글라이딩 비용을 끝내 안 받는다. 인터뷰에 응해주고 여기저기 안내도 하고 직원들 일당도 나갔을 텐데. 고마운 일이다. 설령 고도의 장삿속이 숨어 있다고 해도 고마운 걸 ‘속 보인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헥토르의 사업이 번창해서 한국 청년들에게 좀 더 많이 베풀기를 기원하면서 끝내 이름을 묻지 못한 그녀와도 작별을 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욀뤼데니즈 해변을 탐색해볼 차례. 얼마나 아름다우면 지중해 최고의 해변이라는 찬사가 붙어 있을까. 헌데 여기도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에구, 어디 가나 그놈의 돈.

해변에 세워둔 구조물 사이로 지나가는 배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산, 바다, 숨은 배...

욀뤼데니즈는 ‘죽음의 바다’ ‘고요한 바다’ 라는 뜻이다. 물에 들어갔다 하면 죽어서 나온다는 잔혹동화 같은 얘기는 아니고, 죽은 듯 잔잔한 바다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말 잔잔하긴 하다. ‘X물에도 파도가 친다’는 말이 있듯이, 어지간한 호수도 기본적인 물결이 있는 법인데. 파랑보다는 초록에 가까운 바다는 한없이 투명해서 속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2km 정도 길게 뻗은 백사장에는 아직도 피서객들이 많다. 눕고 엎드리고 뒤집고, 오븐 속의 생선처럼 몸을 태우기에 여념이 없다. 물이 깊지 않아서인지 노인들도 많다. 그나저나 이렇게 살만 태우고 놀면 소는 누가 키우나. 일중독자 아니랄까봐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백사장은 모래가 아닌 작은 돌들로 이뤄졌다. 엄격한 의미에서 백사장이 아니라 백석장(白石場)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고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이 생각난다. 비가 많았던 지난여름엔 얼마나 썰렁했던지. 지금은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기 어렵겠지. 백사장을 지나 블루 라군(blue lagoon) 쪽으로 향한다. 라군은 모래언덕 등에 의해 바다와 격리된 호소(湖沼)를 말한다. 일반 호수와 다른 건 지하에서 해수가 스며들거나 바다와 연결되는 수로가 있어 염분농도가 높다. 일종의 바다호수인 셈이다. 이쪽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바다호수' 블루 라군.

해먹을 흔들어 주는 아빠. 잠이 들어도 끈은 놓지 않는다. 그게 '아비'다.

 

블루 라군을 아십니까

블루 라군 하니 ‘푸른 산호초’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던 영화 ‘블루 라군’이 생각난다. 브룩 쉴즈(Brooke Shields)의 백치미에 가까운 청순한 아름다움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지. 또 영화 속의 섬과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나저나 브룩 쉴즈는 지금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까. 1965년생이니 40대 중반이 넘었고, 배우로서는 환갑이 지난 나인데….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고 있다. 이곳 역시 영화 속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안온함을 더해준다. 해변을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홀로 걷다가 나무 그늘로 들어가 잠시 몸을 기댄다. 저만치 해먹에 아이를 재워놓고 흔들어주는 젊은 아빠가 보인다. 아빠는 아이가 깰까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조그만 소음에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정지된 풍경에 그 작은 그림 하나를 더하니 세상이 느닷없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찬다. 욀뤼데니즈를 떠나 돌아오는 길에 조선소가 눈에 띄어 들러 보기로 한다. 숙박하고 있는 호텔과 멀지 않은 곳이다. 말이 조선소지 노천에서 목선을 만드는 곳이다. 목선이지만 건조 중인 배는 제법 커서 30m는 충분히 될 것 같다. 골조를 세우고 송판을 배의 모양에 따라 곡선으로 만들어 붙이는 방식이다. 그 큰 배에 단 두 명이 달라붙어서 망치질을 하고 있다. 쯧쯧, 저 배는 언제나 바다로 나가볼까.

이 큰 목선에 두어 명이 올라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저 배는 언제나 물 구경을 해보나.

터키는 국토의 3면에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조선산업 역시 원시적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지중해를 품에 안고 천하를 오시했지만,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튀르크족이 이 땅을 정복한 뒤에는 배고 바다고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페티예의 조선소는 이 동네에 모두 모여 있다고 한다. 그래봐야 가내공업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3곳뿐이다. 우리가 들른 곳이 그나마 가장 규모가 크고, 다른 두 곳은 배를 만들기보다는 수리하는 정도다. 부자들은 배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쓴다고 한다. 배를 만드는 나무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들여온다. 잠시 뒤 쉬는 시간인지 목재를 자르고 켜던 인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는다. 배 위에서 망치질을 하던 사람들도 내려와 합류한다. 예외 없이 차이를 마신다. 앞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터키사람들의 차이 사랑은 유별나다. 차이가 없는 터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루의 시작도 끝도 차이와 함께한다. 보통 하루에 10잔 이상, 많이 마시는 사람은 20잔까지 마신단다. 한 시간에 한 잔씩 마신다고 하면, 차를 마시기 위해 네 시간만 자야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직접 끓이기도 하고 주문해서 마시기도 하는데 가격은 비교적 싼 편이다. 그래도 500원씩만 쳐도 하루 20잔 이상을 마시면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 그래서인지 여럿이 모인 곳에는 대개 차이를 끓일 수 있는 준비를 해놓았다.

나무를 곡선형태로 만들어 붙이는 형식으로 배를 짓는다.

수리를 위해 대기 중인 배들.


터키인들의 차이 사랑


어느 동네를 가든지 차이를 파는 차이하네(Cayhane)나 차이에비(Cayevi)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심에서도 야외 찻집인 차이 바흐체시(Cay bahcesi)가 곳곳에 있다. 일터에서도 어김없이 차이를 마시는데, 쉬기 위해 차이를 마시는 게 아니라 차이를 마시기 위해 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터키의 차이는 19세기 후반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전해져 왔다고 한다. 차이라는 말은 중국의 차(茶)에서 왔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녹차가 발효되면 우롱차가 되고 거기서 발효가 더 진행되면 차이가 된다. 차이를 더 발효시키면 홍차가 된다. 그래서 차이는 엷은 홍차 맛이 난다. 기호에 따라서 설탕을 적당히 넣어서 마시면 된다. 난데없이 차이 얘기가 길어졌지만 터키를 이야기할 때 차이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한번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차이와 비슷한 것으로 짜이가 있다. 인도나 네팔 등에서 마시는 밀크티를 말한다. 그 동네 발음이 ‘짜이’에 가깝다는 것이지 이것도 ‘차이’가 원음이다. 이름이나 뿌리는 같지만 제조법은 많이 다르다. 냄비나 주전자에 소량의 물로 홍차를 끓여낸 뒤 우유를 부어 장시간 우린다. 이후, 설탕을 넣어 맛내기를 한다. 우유가 들어가는 게 차이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짜이를 파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차이 한 잔 하실까요. 저 붉은 색의 유혹이란.

조선소 인부들의 휴식시간. 자세히 보면 모두 차이를 들고 있다.

차이를 마시던 인부들이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는 나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시커먼 차이 주전자에서 한잔을 따라준다. 잔은 자신이 마시던 걸 물에 대충 헹군 것이다. 사양을 미덕으로 삼는 한민족의 후예답게 손사래를 몇 번 쳤지만, 인심을 미덕으로 삼는 튀르크족의 후예답게 쉽사리 물러날 자세가 아니다. 터키 말을 알아야 구체적으로 사양이라도 하지. 물론 내가 차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아니, 그 맛에 은근히 반해서 휴게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도 난 차이를 마시곤 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도 커피 옆에는 늘 차이 주전자가 놓여있기 마련인데 난 망설임 없이 차이를 선택한다. 사양한 것은 물론 체면 때문이다. 길바닥 체질인 내가 언제 찬밥 더운밥 가렸던가. 못이기는 체 홀짝거리며 한잔을 마셨더니 이 남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또 한잔을 따라준다. 어라? 이러다가 차이로 배를 채우겠네. 얼른 입에 털어놓고 늙은 노새처럼 헤벌떡 웃으며 잔을 넘긴다. 고마워하는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그도 더 이상 권하지는 않는다. 원래 터키인들은 잔이 차면 곧바로 채워주는 것이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 마시고 싶을 때는 나처럼 헤프게 웃지 말고 차 스푼을 찻잔 위에 살짝 올려놓으면 된다.

남녀가 함께 예배를 보지 않는 이유

나뭇잎을 뜯어먹는 개. 저렇게 키우면 사료값 안 들어서 좋겠다.

아무튼 이렇게 타인에 대해 별 경계도 없고 인심도 좋은 게 바로 터키 사람들이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무언가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속성이 아니었던가.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런 나눔의 인심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산업화 현대화 도시화라는 ‘화’자 돌림의 괴물들이 온 국토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아무데나 주저앉는 바람에 톱밥이니 흙이니 묻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서는데 바닥에 사지를 펴고 늘어져 있던 큰 개도 느릿느릿 따라 일어난다. 이 나라의 동물들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천국이 따로 없다. 나를 전송이라도 하려고 일어난 줄 알았더니 커다란 화분에 가서 간식이라도 먹듯, 나뭇잎을 아작아작 뜯어먹는다. 이 동네 개들은 밥 대신 잎을 먹고 사나? 그럼 신선개? 밥값은 따로 안 들어서 좋겠다. 한국에서는 헛소리 하는 사람에게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한다’고 하는데. 신기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노인 한 분이 다가오더니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린다. 그러면서 "problem"이란다. 머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겠지? 아무리 봐도 미친개는 아닌 듯한데…. 에이, 아저씨, 전요… 솔직히 말하면 아저씨가 더 의심스러워요. 호기심 많은 이곳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 하고 있으면 와서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거리낌 없이 씨익~ 웃는다.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넘어진 배를 보았다. 홀로 넘어진 배는 홀로 일어서지 못한다.

노인과 그런 미소를 주고받는데 마침 근처의 모스크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진다. 전국에는 모두 7만7000여 곳의 모스크가 있기 때문에 어느 궁벽진 곳에 가도 이 소리를 피할 길은 없다. 며칠 듣다보니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한다. 새벽에도 아잔소리 때문에 잠을 깨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아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일손을 멈추고 모스크로 가는 건 아니다. 하긴 하루에 다섯 번 씩 쫓아다니다가는 언제 일을 하나. 배를 만드는 인부들도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아잔소리를 듣는 순간, 믿음 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터키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과 같은 층에서 기도하는 게 금지돼 있다고 한다.(전 이슬람권이 그런지는 못 물어봤다) 메카를 향해 절을 할 때, 여자 뒤에 있는 남자들이 ‘나쁜 생각’을 품어 정신이 혼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음 씨는 나쁜 생각이라고 표현했지만 엉큼한 생각이라는 말이 더 맞겠지. 이건 남녀차별이야? 여성 보호야? 이렇게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들도 그런 생각을 하나. 이럭저럭 저녁 시간이 가까워온다. 시내로 보충 촬영을 나가는 다큐팀과 헤어져 지척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간다. 페티예에서의 마지막 밤은 홀로 고적하게 보내볼 생각이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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