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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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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8.06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4] 톱카프 궁전의 간 큰 남자23

톱카프 궁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난 카펫수선 아저씨. “훌리아! 톱카프 궁전에 가면 예니체리 나무라고 있다거든? 관계자에게 물어봐서라도 꼭 좀 찾아줘요.” 톱카프 궁전으로 가는 길에 훌리아에게 신신 당부했다. 그녀는 선선하게 고개를 끄떡인다. 하지만 성사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훌리아와는 그새 제법 가까워져서 반은 내 개인 가이드가 돼버렸다. 역시 나는 사람 홀리는 데는 천부적인 재질이 있단 말이야. 오해하지 마시라. ‘여자’가 아닌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혔으니. 그녀도 예니체리는 알지만 예니체리 나무는 처음 들어본단다.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확인까지 한다. 하지만 역시 예니체리 나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일단 들어가 보면 감이 잡히겠지. 톱카프 궁전 앞에는 오늘따라 이상스러울 만큼 관광객이 많다. 그래서인지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더욱 많아진 것 같다. 카펫 수선하는 아저씨가 근사해 보이길래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눈길 한 번 주더니 말없이 바느질만 한다. 터키 사람이라고 모두 상냥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다. 그래도 특별히 거절하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땐 그냥 찍으면 된다. 몇 마디 나눠볼까 하다가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고, 또 일행이 벌써 저만치 가 있길래 부리나케 쫓아간다. 현장에서는 혼자 다니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일단 매표소를 통과할 때까지는 함께 행동해야 한다. 톱카프 궁전 앞의 기념품 가게. 1472년 착공해서 1478년 준공. 1856년 돌마바흐체가 지어질 때까지 38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궁전으로 사용. 총 면적 70만m². 이런 이력을 가진 톱카프 궁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복잡하다. 아마 다섯 번 쯤은 와야 제대로 봤다고 큰소리 좀 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한 달쯤 머물면서 이 궁전만 연구해보리라 마음먹는다. 대문에 해당하는 커다란 문만 해도 세 개, 넓은 정원만 해도 네 곳이나 된다. 이것을 모두 한꺼번에 다 보려고 하면 체하고 말 건 당연지사. 그래도 일단은 들어가 봐야 곰을 잡든 법을 잡든 하겠지. 첫 번째 문(황제의 문)을 지나면 제1 정원이 나온다. 흔히 예니체리 정원 혹은 예니체리 마당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본거지에 들어왔으니 예니체리가 뭔지 설명하고 가야할 것 같다. 그렇다고 나하고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터키 역사서를 읽다가 그들의 시작과 끝이 유난히 가슴을 헤집었을 뿐이다. 약간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지만 긴장할 건 없다. 다 듣고 나면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 ‘예니’는 ‘새로운’이라는 뜻이고 ‘체리’는 그 달콤한 이미지를 배신하고 ‘병사’란 뜻이 된다. 그러니까 ‘새로운 병사’가 바로 그들이다. 오스만 제국의 무라드 1세 때 만들어진 술탄 직할의 직업군인을 바로 예니체리라고 한다. 전쟁에서 대단한 용맹을 발휘해서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술탄의 친위대 역할을 하고 전시에는 정예군으로 싸웠다. 톱카프 궁전의 첫번 째 문. 예니체리의 시작과 끝은 영광보다는 슬픔의 역사다. 처음에는 전쟁 포로로 잡힌 아이들과 점령지 발칸반도의 그리스도교 가정 소년들로 주축을 이뤘다. 전쟁터에서 졸지에 부모와 헤어진 것도 하늘이 무너질 일인데, 낯선 땅으로 보내진 아이들. 그 슬픔과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전쟁을 일으키고 패한 것은 어른들이지 아이들이 아니거늘. 이렇게 이스탄불로 데려온 아이들은 이슬람교로 개종시킨 뒤 일반 가정으로 보내 투르크 말과 이슬람에 관한 일상을 배우게 했다. 그 후 재능 있는 아이들은 궁정 일을 배우게 하고 나머지는 '예니체리 훈련부대'로 보냈다. 그곳에서 환관들의 감독 아래 6년 이상 엄격한 훈련과 무기 다루는 기술을 가르쳤다. 훈련을 마치면 바로 부대에 배치된다. 부대는 몽골군과 비슷하게 10명, 100명, 1000명 단위로 편성됐다. 재미있는 것은 부대 용어가 주방과 관련돼 있다는 것. 부대원 하나하나는 숟가락(Kaşık)으로 불렀다. 부대장은 수프 요리사라는 뜻의 초르바즈(Çorbacı), 소대 깃발에는 커다란 솥이 그려져 있었다. '한 솥에 음식을 끓여 먹는 동지'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깃발에 그려진 솥은 큰 상징성을 갖게 된다. 예니체리는 술탄에게 불만이 있을 때마다 솥을 뒤집어엎었다. 거지들이 빈 냄비를 두드리며 각설이 타령을 부르듯, 뭔가 요구하는 도구로 솥을 활용한 셈이다. 그들은 특별한 군복을 입고 급여를 지급받았으며 다른 이슬람교도와는 달리 콧수염 외에 다른 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또한 영외 거주는 물론 초기에는 결혼도 금지했다. 예니체리 정원. 예니체리는 전쟁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전투 능력도 탁월했고 사기 역시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서유럽에서는 '악마의 군단'이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제국 내에서도 정예병으로서 높은 대우를 받았다. 예니체리의 기세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16세기. 숫자도 1만 5000명에 이를 정도로 많아졌다. 여기까지였다. 뭐든지 문제는 잘 나갈 때 일어나기 마련. 영향력은 커지고 늘 나가 싸우는 것도 아니다 보니 자꾸 다른 곳에 정신을 팔게 됐다. 또 초기와 달리 세습체제로 바뀐 것도 권력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눈을 돌린 게 바로 정치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 그 괴물의 입에 통째로 머리를 넣었다가 신세를 망친 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들은 무력을 이용해 재산을 쌓고 점차 이익집단화 돼갔다. 그에 비례해서 전투력은 약화됐다. 싸움판에서도 펑펑 나가떨어졌다. 배는 나오고 싸움은 못하는 일종의 괴물군대가 된 것이다. 그럴수록 무도함은 하늘을 찔러 술탄도 우습게보기 시작했다. 결국 17세기부터는 끄떡하면 반란을 일으켜 술탄을 살해하거나 자신들 입맛대로 갈아치웠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사람이 바로 마흐무트 2세. 참다못한 그는 예니체리를 뿌리 채 뽑아버리기로 했다. 1826년 술탄이 새로운 군대를 조직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예니체리는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소탕을 위한 함정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반란을 유도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뻔한 결말로 갈 차례. 톱카프 궁전을 가득 메운 사람들. 그해 6월 14일과 15일 예니체리 반란군은 술탄의 군대에 밀려 자신들의 막사로 후퇴했다. 하지만 끝내 항복을 거부했다. 술탄은 막사에 포격을 명령했다. 15문의 대포가 불을 뿜으면서 반란군 막사는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도 대부분 유배되거나 처형됐다. 한 때 천하를 호령하던 ‘무적의 군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새삼스레 교훈을 들먹일 생각은 없다. 그저 그들을 상징하는 나무 한 그루를 찾고 싶을 뿐이다. 그때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시신(혹은 머리라고도 한다)을 어느 나무 아래 쌓아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나무를 예니체리 나무라고 불렀다. 그 기록을 읽으면서 그 나무를 꼭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잘못을 떠나, 아비규환 속에 눈도 못 감고 죽었을 그들에게 묵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의 영혼 중 하나가 내게 손짓이라도 한 것일까. 결국 예니체리 나무는 찾지 못했다. 정말 그런 나무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여기저기 알아보던 훌리아가 괜히 미안해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목 자르는 나무’가 있대요. 물 대신 피를 먹여 키웠다는데…. 혹시 그걸 말하는 게 아닐까요. 이따 보여드릴게요.” “아니야. 됐어요. 이젠 포기할래.” 호러물이 그리워서 예니체리 나무를 찾은 건 아니라네. 병사들이 훈련을 했을 법한 마당에는 잔디들이 파랗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세월을 듬뿍 머금은 나무들이 키를 자랑하고 있다. 저들 중 하나겠지. 예니체리 광장의 나무와 그 아래 잔디밭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아야 이레네.

 

사람들은 그 나무들 사이를 무심히 오간다. 잔디에 앉은 연인들의 얼굴엔 행복이라고 쓰여 있다. 저들에게 그 비극의 한 자락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떤 방식이든 생명은 늘 오고가는 것을. 두 번째 문을 통과하려면 오른쪽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야한다. 아참, 자꾸 붙잡아서 미안하지만 제1정원에서 놓치지 말고 가야 할 건물이 하나 있다. 왼쪽 나무그늘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아야 이레네(Aya irene). 성소피아 성당 이전에 세워진 초창기 교회의 하나로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이었다.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 ‘니카의 반란’ 때 불태워져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했다. 오스만 시대에는 예니체리의 무기창고로 쓰이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고깔모자 기둥이 2개 우뚝 서있는 두 번째 문을 지난다. 전에는 오로지 술탄만 말을 타고 이 문을 지났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도 영화도 덧없는 것. 지금은 땀에 전 동양 사내 하나가 배낭을 메고 그 문을 지난다. 문을 나서면 바로 제2정원. 다섯 갈래의 길이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붓처럼 생긴 향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제2정원에는 대형 부엌이 있다. 궁전에서 일하는 5,000명의 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예니체리들은 월급과 빵을 받을 때 궁전에 왔는데 이때 모든 빵은 무게가 같아야 했다. 만약 다를 경우 빵 만드는 사람의 손목을 댕강 잘랐다고 한다. 어디 괴기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다. 예니체리와 관련된 얘기는 왜 이리 끔찍한 게 많지? 톱카프 궁전의 두 번째 문.  여기에도 ‘술탄의 여인들’이 사는 하렘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이번엔 하렘도 꼭 돌아보고 싶었지만 역시 여의치 않다. 별도로 티켓을 끊어서 관람해야한다. 티켓이 문제가 아니라 30분마다 그룹을 지어 입장해야 한다. 그만큼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훌리아를 찾아서 물어보니 일정에 하렘 관람계획은 없다고 한다. 허탈하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닐 때 가장 난감한 점이 이런 것이다. 조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포기하는 수밖에. 세 번째 문인 행복, 혹은 지복의 문을 지나 터덜터덜 제3정원으로 걸어들어간다. 오늘 관람객 정말 많다.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빽빽한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대 유람선이 들어왔단다. 바다를 낀 도시니 크루즈로 오는 관광객도 많다. 하필 그들과 톱카프 궁전에서 만난 것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여기가 바로 인종 전시장? 제3정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오른쪽에 있는 보석박물관. 내겐 쓰린 추억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 왔을 때 사진을 찍으려다가 경비원에게 끌려나오다시피 물러났던 그곳. ‘스트로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사진 좀 찍는다고 보석이 경기를 하냐?’ 어쩌고 꿍얼거린 기억이 있다. 거길 들어가기 위해 뙤약볕 아래 엄청나게 긴 줄이 이어져 있다. 보석에 대한 원초적 열망일까? 아니면 남들이 서니까 얼떨결에? 보물박물관 위쪽이 바로 의상 전시실이다. 옛날에는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역대 술탄의 옷들을 전시한 곳이다. 제2정원. 톱카프 궁전의 세 번째 문. 보석박물관 앞의 긴 줄.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옷과 비슷한 터키 전통의상이 전시돼 있다는 기 록이 생각나 슬그머니 방향을 바꾼다. 고구려와 터키인의 조상 돌궐 사이의 엄청난 비밀을 발견할지 알아? 마침 줄을 선 사람도 없고 한가한 편이다. 그렇다면 둘러보고 가자. 하지만 들어가서 첫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아니나 다를까. 보석박물관의 ‘그’와 똑같이 생긴 경비원이 눈에 불을 켜고 다가온다. 사진 찍으면 안 된다는 거지? 알았어, 알았어. 치사해서 안 찍고 만다. 그래도 한 장 찍은 건 안 지울 거지? 그대로 밖으로 나와서 나무그늘에 의지해 더위를 식힌다. 유난히 얼굴을 가린 아랍계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띈다. 히잡은 차라리 애교스러울 정도다. 아예 전신을 까만 통옷으로 덮은 여성들이 ‘Blackfish’처럼 정원을 유영한다. 심지어 한 여성은 까만 통가죽 옷을 입었다. 이 더운 여름에? 아주머니, 그러다 땀띠 나십니다. 평생 갇혀 살아야했던 하렘의 여인들이 오버랩 된다. 궁전에 갇혀 살든 검은 옷에 갇혀 살든 자유를 저당 잡힌 건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종교 가 어떻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여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헌데 좀 이상하다. 요즘 터키 여인들은 시골이나 아주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을 빼놓고는 히잡도 잘 안 쓰는데. 이들은 어디서 온 거지? 그나저나 그녀들이 입은 게 대체 차도른지 부르카인지 알 수 없다. 역시 책으로 배운 지식의 한계다. 무슬림 여성들의 몸을 가리는 옷이 한 가지인 줄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국가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  고구려 벽화의 옷과 비슷하다는 투르크족의 전통 의상. 우선 여성들이 밖에 나갈 때 머리에 쓰는 가리개를 히잡이라고 한다. 스카프나 두건과 비슷한데 얼굴과 가슴까지 가리는 것도 있고 머리에만 쓰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있다. 정작 구분하기 어려운 건 머리에서 발목까지 가리는 망토 형 통옷이다. 페르시아 말에서 온 차도르(chador)는 이란 등의 시아파 여성들이 입는 검은색 옷을 말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입는 검은 망토는 아바야(abayah)라고 부르고 아라비아반도와 베두인족 일부 여성들이 입는 옷은 부르카(burqah)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뭐가 차도르고 뭐가 부르카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또 옷의 형태까지 다른 건지 이름만 다른 건지도 잘 모르겠다. 재미있는 건 전에는 눈 주변에만 작은 구멍이 트여져 있거나 베일을 댔는데 요즘은 짙은 선글라스를 쓴다는 것이다. 그것 참 아이디어다. 멋도 내고 가리겠다는 목적도 달성하고. 어떤 여성은 DSLR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도 찍고 자기들끼리 수다도 떤다. 그래. 다를 게 무어람. 세상도 궁금하고 멋도 부리고 싶은 똑 같은 여성이겠지. 사진을 찍으려고 생각해보니 정면에서 셔터를 누르기가 민망하다. 결국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익명 속으로 가두는 수밖에. 일부러 역광을 안고 서서 뷰파인더 안에 그녀들을 불러낸다. 내 사진 속에서 그녀들은 검은 실루엣일 뿐이다.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일가족 중에 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불쑥 묻는다. 톱카프 궁전의 제3정원. 

이슬람 고유 의상을 입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성.

 

“Where are you from? Japan? Core?” Japan 다음에 China? 라고 묻지 않은 것이 고마워서 얼른 Core라고 대답한다. 물론 나도 그냥 말 수는 없지. “그러는 너는 어디서 왔니?” “나? 제노바” 으음, 제노바. 굉장히 멀리서 왔네? 아니지? 난 지금 이스탄불에 있잖아. 그렇다면 내가 멀리서 온 거고 이 친구는 이웃에서 온 거지. 해외를 다니다 보면 가끔 그렇게 공간 개념을 분실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 눈길을 잡아끄는 건 그의 아내다. 그녀는 부르카인지 챠도르인지로 전신을 완전 싸매고 있다. 예의 선글라스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내게 말을 건 남편이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차림을 했고, 부인을 따라가는 아이들 셋 역시 평범한 옷차림이다. 어찌 보면 부조화의 극치다. 제노바에도 저렇게 교리를 철저히 지키는 무슬림이 살고 있나? 아니면 아랍의 무슬림이 제노바에 가서 임시 거주 중일까. 유럽인과 아랍인은 쉽게 구분이 가능한데 이 친구는 좀 헷갈린다. 궁금한 걸 푸는 건 나중문제고 이렇게 특이한 가족을 만났는데 그냥 말 수 있나. 얼른 사진 한 장 찍어두자. 또 다른 걸 참견하려는 사내를 불러세운다. “이 사람들 몽땅 네 가족이냐?” “응. 맞아.” “그럼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 “No!! 절대 안돼.”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는 무슬림 여성들. 뭐야, 장난하는 거야? 말이나 걸지 말지. 조금 전에는 실실 웃으며 간이라도 빼줄 듯하더니, 사진을 찍는다니까 그렇게 펄펄 뛰냐? 에라이! 치사한…. 헌데 아직도 저런 남자가 있구나. 이 더운 날 통옷을 입고 버티는 아내에게 애들 셋을 혼자 맡기다니. 남자는 슬리퍼 끌고 마실 나온 사람처럼 이 참견 저 참견 다하며 지나가는데 여자는 아이들에 짐까지… 구경이고 뭐고 집에 있는 게 낫겠다. 하긴 한국에도 저렇게 간 큰 남자들이 없지는 않더라. 남들 걱정 그만 하고, 좀 쉬었으니 다시 움직여봐야지. 카메라를 바투 쥐고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전장 속으로 돌진한다. 하나, 둘 셋…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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