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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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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21 [사라져가는 것들 35] 똥개7
2007. 11. 21. 13:54 사라져가는 것들

제 이름은 워리입니다.
물론 제 아비나 어미가 지어준 이름은 아닙니다.
저를 얻어온 주인영감님이 "워리" 하고 부르길래, 누룽지라도 얻어먹을까 해서 꼬리 한번 흔든 뒤로 제 이름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제 이름을 특별히 좋다거나 불만스럽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 할아비도 아비도 워리였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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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할미와 어미는 메리였고요.
주인집 셋째 손자는 저를 워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 아이의 성격이 좀 유별나거든요.
어디서 쥐어박히기라도 하고 오면, 저를 발로 걷어차면서 "이 똥개새끼!!"라고 부르지요.
그때마다 저는 깨갱깨갱 울부짖으면서 땅바닥을 굴러야합니다.
그러지 않고 마주 서서 눈이라도 부릅뜨는 날이면 하루종일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똥개라고 부른다 하여 특별히 불만스러울 이유는 없습니다.
조상 대대로 족보 있는 똥개였다는 자부심도 있는 걸요.

자고로 똥개는 똥을 먹음으로서 그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저는 똥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기회가 없었지요.
제가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이 집에 오기 전에 제 어미는 똥개가 똥개로 불리게 된 사연을 조근조근 전해줬습니다.
옛날에는 그랬답니다.
아이들은 뒤가 마려우면 뒷간에 가지 않고 마당가에서 일을 봤다지요.
애가 볼 일을 다 보면 기다리던 똥개가 그 똥을 날름 주워먹는 건 물론이고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해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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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볼일을 다 봤는데, 똥개가 안 보이면 워어~리! 워어~리! 불러서 먹였다지요.
맛있어서 먹었냐고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리 마다할 이유도 없었나봅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술꾼이 술 끊는다고 하고 노름꾼이 노름 안 한다고 헛소리하면 하는 말.
'어이구 화상아! 개가 똥을 마다하지. 그걸 누가 믿어.'
그런 걸 보면, 조금 부끄럽지만, 제 조상들이 꽤 똥을 즐겼나봅니다.
그런데요, 가끔 사고가 나기도 했답니다.
제 조상 중의 한 분은, 주인 집 아이의 엉덩이를 핥다가 그만 불알을 덥석 물어버렸다지요.
간덩이가 붓지 않는 한 일부러 그러기야 했겠습니까.
시력이 좀 안 좋아서, 흔들리는 불알을 떨어지는 똥으로 착각했겠지요.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답니다.
불알을 떼인 아이는 그 집의 3대 독자였습니다.
생식기능을 상실했으니 대가 끊겨버린 것이지요.
제 조상이 그 자리에서 맞아죽은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동네 똥개란 똥개는 그 해 여름을 나기도 전에 씨가 말랐다지요.

사실 저희 일족은 태어날 때, 숙명처럼 비극을 지고 나옵니다.
똥개의 진정한 가치는 개장국에 있다지요?
지난 늦은 봄, 소복 같은 찔레꽃이 지천으로 필 무렵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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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인영감님이 혼잣말로 하는 소리를 듣고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신엔 뭐니뭐니 해도 황구여."
그러면서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핏발이 선 눈으로 저를 힐끔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똥개의 점잖은 이름이 황구라는 건 아시지요?
뭐, 진돗개 중 누런 색깔을 가진 녀석들도 황구라고 부른다고 하지만요.
1년 내내 개를 키워 여름에 아들이니 사위니 모두 불러 보신을 시키는 집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여름을 무사하게 난 똥개는 그야말로 천운을 타고난 셈이지요.
물론 다음 여름을 기약하긴 어렵겠지만….
요즘이야, 저 같은 순종 똥개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요.
제가 사는 이 동네만 해도 똥개를 찾느니, 3년 가뭄에 콩잎을 세고 있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이 궁벽한 시골동네에 코커스파니엘이라든가 슈나우저라든가 별 이상스런 것들까지 활보하고 다니는 걸요.
그것들이 갠지 도깨빈지 원….
게다가 겉모양이 누렇다고 해서 다 황구라고 할 수 있나요.
남우세스런 얘기지만, 서양개하고 똥개하고 어찌어찌 붙여서 덩치 큰 가짜 황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잖아요.
더구나 중국이란 나라에서 고기를 수입한다는 데야, 저희가 귀한 대접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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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귀한 대접이 목숨보다 더 좋기야 할까요.
저희도 하늘이 준 삶을 다 누리고 눈을 감고 싶지요.
생각해보세요.
저희야말로 이 나라 흰 옷 입은 백성들의 수천 년 친구가 아니었던가요?
삽살개니 진돗개니 하늘에서 떨어진 듯 떠받들지만, 저희 똥개만큼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가요.
저희가 얼마나 충성을 바쳤는지는 잘 알잖아요.
저희들은 그래요.
몸뚱이 위로 떨어질 몽둥이를 등뒤에 감춘 걸 뻔히 알면서도 주인이 부르면 속울음 울며 다가갑니다.
저희 핏속에는 목숨보다 주인에 대한 충성을 더 중시하라는 목소리 하나가 뜨겁게 흐르고 있는 걸요.
제 이름은 워리랍니다.
저를 날마다 때려도, 주인집 셋째 손자와 오래오래 함께 살고싶은 워리랍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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