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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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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2 [사라져가는 것들 90] 뒷간13
2008. 12. 22. 18:31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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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오이냐! 내 새끼.
할머니, 가면 안 돼? 끝까지 거기 있어야 돼!
원, 녀석두, 걱정말래두 그러네.

한밤중에 뒷간 앞에서 벌어지던 풍경입니다.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건 아이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할머니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형이나 동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다가 배가 살살 아프고 뒤가 묵지근해지면 처음엔 애써 참다가도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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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오줌이야 급하면 요강을 쓰거나 마루 끝에 서서 토방에 내갈기기도 하지만 어디 큰 걸 볼 때야 그럴 수 있나요.
결국 머나먼 뒷간까지 가서 볼 일을 보려면 식구 중 하나를 깨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육친이라도 자다가 난데없이 찬바람 쏘이는 걸 좋아할 사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가느니 마느니 하다가 결국 똥이 엉치 끝에 걸리면 그제야 누군가가 따라나서게 되는 것이지요.
뒷간에 전등이 걸린 시절이 아니었으니 도착하고 나서도 고난은 끝나지 않습니다.
달이라도 휘영청 밝은 날이라면 달빛에 의지하지만, 코앞의 손가락도 안 보이는 날이면 더듬더듬 찾아들어가야 합니다.
등불이나 촛불을 들고 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많거든요.
이럭저럭 옷을 내린 뒤 쪼그려 앉고 나면 밖에 사람이 서 있어도 왜 그리 무섭던지.
뒷간에 몽당 빗자루 귀신이 산다는 말도 생각나고, 손이 불쑥 나와 ‘파란종이 주랴, 빨간종이 주랴’ 한다는 이야기도 생각나고….
혹시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그냥 들어가기라도 할세라, 자꾸 자꾸 말을 시키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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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은 요즘의 화장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배설물을 처리하는 곳’이라는 목적은 똑같다고 해도 형태나 사용방법이 워낙 달라 동일시하기는 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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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라고도 많이 불렀지만 이젠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뒷간은 ‘뒤(똥)를 보는 집’ ‘뒤에 자리한 집’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 말이 있습니다.
뒷간은 가까우면 냄새가 나고 사돈집은 가까우면 말썽이 나기 쉬우므로 경계하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먼 것도 정도가 있지, 어느 집은 한참을 가야 뒷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즉, 집 울타리 밖에 한뎃뒷간을 짓는 것이지요.
어지간한 시골집에서는 대부분 한뎃뒷간을 뒀습니다.
냄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또 위생상의 필요 때문에 그랬겠지만, 급할 때는 거기까지 가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행세께나 한다는 집에서는 뒷간을 이원화하기도 했지요.
여성 전용의 안뒷간과 남성 전용의 바깥 뒷간을 따로 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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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뒷간의 이름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영 뜻을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정랑, 서각, 정방, 정낭, 청측, 청방, 변방, 청혼, 측간, 측실, 측청, 혼측, 혼헌, 통시, 회치실….
절에서는 근심을 푸는 곳, 혹은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우소라 부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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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요.
부잣집이나 지체 있는 집에서는 뒷간도 그럴 듯하게 지었습니다.
벽돌을 쌓거나 목재를 써서 짓고, 겉에는 회칠을 하고 문도 짱짱하게 짜서 달았지요.
반대로 서민들의 뒷간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무로 기둥 네 개를 대충 세우고 거적으로 얼기설기 둘러쳐 바람만 막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나무를 써서 짓는다고 지어도 찬바람이 제 맘대로 드나드는 건 마찬가지였고요.
더구나 문은 대충 얽어매기 때문에 바람결에 홀로 춤을 추거나 장단을 맞추기 일쑤였지요.
뒷간을 잿간이나 창고와 함께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좌변기도 조금만 더러우면 구역질을 해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말만 들어도 기절할지 모르지만, 가장 재미(?) 있었던 건 두 발을 놓는 바닥이었지요.
커다란 독을 바닥에 묻고 널빤지 두 개를 가로질러 놓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장마철에는 물이 들어가 넘치기 일쑤고, 여름에 엉덩이 내놓고 앉아 있으려면 냄새와 쉬파리‧모기들의 무차별 공세 때문에 뒷간을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변비라도 걸려 오래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저려오는 다리와 옷에 배는 그 독한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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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통농경사회에서 이 뒷간이야말로 보물창고였습니다.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거름의 생산지가 바로 이 뒷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즉, 뒷간은 거름공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놀러 나가는 아이들에게 이르곤 했지요.
“똥은 꼭 집에 와서 싸거라”
똥은 밥이었습니다.
똥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를 먹고 살아가니 소중할 수밖에 없었지요.
오죽했으면 오밤중에 남의 집 뒷간을 뒤지는 ‘똥 도둑놈’도 있었겠습니까.
새벽녘, 미처 날이 밝기도 전에 똥장군을 지고 밭으로 나가는 농부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요.
지금은 유기농을 하는 극소수의 사람을 빼놓고는 똥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농사에 똥을 쓰고 싶어도 쓸 만 한 걸 구하기도 쉽지 않지요.
요즘은 시골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많이 보급되고 정화조가 설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순회의 틀을 벗어난 땅도 자꾸 각박해진다고 합니다.
화학비료를 무더기로 주지 않고는 영 소출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세상도 갈수록 각박해진다고 하면 억지일까요.
뒷간의 풍경마저 지독하게 그리울 때가 있는 걸 보면 아주 헛소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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