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에 해당되는 글 2

  1. 2008.12.01 [사라져가는 것들 87] 바심16
  2. 2008.11.10 [사라져가는 것들 84] 벼베기8
2008. 12. 1. 10:24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전식(족답식)탈곡기

바심이 무슨 말이지?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바심은 타작((打作)과 비슷한 뜻의 우리말입니다.
즉,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추수의 마지막 과정을 이르는 말입니다.
가을이면 벼뿐 아니라 콩이나 깨, 수수 같은 잡곡도 바심의 과정을 거쳐서 거둡니다.
손바닥만 한 땅을 가진 집은 바심을 가족끼리 하지만, 대개는 모내기나 벼 베기처럼 품앗이를 하거나 놉을 사서 해결했습니다.
바심 자체가 약간의 숙달된 기술과 꽤 여럿의 손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벼 바심은 어느 정도 분업 형태로 진행됩니다.
논에서 벼를 져 나르는 사람, 벼를 털거나 훑는 사람, 갈퀴로 검불을 걷어내는 사람, 털어낸 볏짚을 치우거나 쌓는 사람, 알곡을 자루나 가마니에 담는 사람 등이 있지요.
벼를 져 나르거나 터는 일은 대개 힘 좋은 장정이 하고 검불을 걷어 내거나 볏짚을 처리하는 일은 연장자들이 하기 마련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이야 바심의 대부분 과정을 기계로 해결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벼의 탈곡(脫穀, 곡식을 떨어내는 것)은 오직 사람의 노동력에 의지했습니다.
회전식탈곡기와 같은 기계도 그걸 가동하기 위한 동력은 사람에게서 나왔으니까요.
가장 오래된 탈곡방식은 벼훑이(벼훌치라고 읽음)일 것입니다.
그 중에도 나뭇가지 두 개의 한쪽 끝을 동여매어 집게처럼 만들고 그 사이에 벼이삭을 끼워 훑는 방식이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일 자체야 누구든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그 작은 도구로는 ‘세월아 네월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일단 털어낸 다음 남아있는 낟알을 마저 훑어내는데 주로 쓰였습니다.
또 납작한 쇠살을 나무판에 촘촘히 박고 그 사이에 벼이삭을 끼워서 훑는 그네도 많이 썼습니다.
쇠로 만든 큰 빗처럼 생겼는데 홀태라고도 부릅니다.
훑는 방식에 대비되는 게, 벼를 어디엔가 때려서 알곡을 털어내는 방식입니다.
나무절구 같은 큰 통을 뉘어 놓고 볏단을 새끼로 두른 다음 내리치면 낟알이 떨어지게 되지요.
이 방식 역시 근래까지 많이 쓰였지만 힘과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헛손질하기 십상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탈곡도구의 제왕은 누가 뭐래도 회전식탈곡기였습니다.
발로 밟아서 동력을 얻는다고 해서 족답식(足踏式)탈곡기, 혹은 호롱기(돌릴 때 나는 소리에서 나온 이름일 거라고 짐작됩니다)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둥근 통에 쇠를 ^자형으로 박아 넣은 구조인데, 사람이 페달을 밟으면 그 통이 와룽와룽~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통 위에 벼를 대면 알곡이 떨어지게 됩니다.
콤바인이나 트랙터가 보급되기 이전인 70~80년대까지만 해도 족답식탈곡기가 우리 농촌의 바심을 전담했습니다.
다른 도구나 방식에 비해서 군계일학 소리를 들을 만큼 효율적이었지요.
물론 사람이 동력을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발은 페달을 밟고 손으로는 적절한 양의 벼를 대어 털어야하니 쉬운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요.
이 기계는 꽤 비싸서 집집마다 구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논이 많은 부잣집에나 드문드문 있었는데, 소작농이나 소규모 자영농은 돈을 주고 그 기계를 빌려다 썼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네(홀태)

수확은 기쁜 일이지만 아픔도 품고 있었습니다.
부자들에게는 최고의 날이겠지만, 남의 땅을 부치는 소작농들에게는 희비가 뒤섞이는 날이었습니다.
일정한 대가를 주고 빌려 쓰는 남의 논이나 밭을 도지(賭地)라고 하고, 치러야할 대가를 도조(賭租)라고 합니다.
바심을 한 다음 일정량의 곡식을 소작료로 떼 주는 것이었지요.
피와 눈물로 지은 곡식을 바쳐야하는 농부의 가슴은 찢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주의 대리인으로 소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징수하는 사람을 마름이라고 합니다.
큰 지주들은 마름을 동네마다 두기도 했지요.
지주의 땅이 있는 곳에 상주하면서 수확량을 조사하고 소작료를 받아 상납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소작인들이 바심을 하는 곳에는 마름의 형형한 눈빛이 함께 했지요.
아무래도 마름은 지주의 편에 서서 소작인들을 독려하게 마련이고, 땅을 얻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소작인들은 순종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가끔 과도한 횡포나 갈취로 소작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 태백산맥에 마름과 소작인과의 갈등관계가 잘 묘사돼 있기도 하지요.
지주에게 곡식을 떼 주고 나면 소작가구는 1년 먹을 식량이 간당간당하거나 부족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식들 공부시킬 엄두도 못 낼 수밖에 없고 가난은 자연스럽게 세습되었지요.
그렇다고 그 마저 안하면 굶어죽을 판이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갖지 못한 이들의 설움은 깊고도 높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리깨

가을걷이가 끝난 뒤 빈 논을 뒤지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추수 후 논바닥에 떨어진 벼이삭을 줍기 위한 것이지요.
운이 좋으면 한 바가지씩의 소득이 생기기도 하지만, 매일 운이 따라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것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양식이 되었지요.
학교에서 벼이삭을 주워오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걷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논이 있는 집 아이들이야 볏단에서 한 주먹씩 뽑아 가면 그만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논을 뒤져야 했지요.
콩이나 팥, 메밀 등의 잡곡은 도리깨로 바심을 했습니다.
장대 끝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막대를 가로로 박아서 심을 만든 다음 그 막대 끝에 가늘고 탄력 있는 나뭇가지를 여러 개 달아놓은 것을 도리깨라고 합니다.
밭에서 거둔 곡식을 널어 잘 말린 다음 도리깨로 때리면 껍질이 열리고 알곡이 빠져나오게 되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풍구

바심 도구 중에는 곡식의 쭉정이나 겨 등을 가리는 풍구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위쪽 깔때기 모양의 통에 곡식을 붓고 손잡이를 돌리면 날개에서 바람이 일어 쭉정이를 날려버리는 것이지요.
이제 회전식탈곡기나 풍구는 물론 도리깨조차 보기 쉽지 않습니다.
더 이상 쟁기를 끌 수 없는 늙은 소처럼, 농가 뒷담 아래에서 지나간 세월이나 되새김질하고 있을 테지요.

posted by sagang
2008. 11. 10. 11:29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일은 벼 베는 날이니 어여 자거라.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많다”
“응, 그런데… 음… 나도 벼 베보면 안 돼?”
“얘가 무슨 새빠진 소릴 하는 겨. 그게 도나 개나 다 하는 일인 줄 아냐?”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 그만 두고 잠이나 자라는 듯 어머니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아이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맨 날 애들인 줄 아나…. 나도 이제 5학년인데 씨이~ 비 맞은 중처럼 웅얼거려보지만 그 정도로 상황이 바뀔 턱은 없다. 아이는 꼭 벼를 베어보고 싶은데 어른들은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아이 눈에는, 낫으로 써억 써억 벼를 베어 나가는 광경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다. 애당초 아이 가슴에 불을 지른 건 동네친구 창식이였다. 어느 하굣길에 녀석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니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말을 꺼냈다.
“너 벼 베어봤냐?”
“뭔 소리여? 어떻게 애들이 벼를 베냐?”
“그래서 늬들은 맨 날 얼라들인 겨. 벼를 베어봐야 어른이 되지. 이 형은 작년부터 벼를 베었단 말이다”
벼를 베어야 어른이 된단 말이 개 풀 뜯는다는 소리처럼 뜬금없어 보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벼는 어른들만 베지 않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창식이가 벼를 베어본 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창식이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그래서 어머니 혼자 농사를 짓는다. 모를 내는 것처럼 큰일이야 동네사람들의 도움이나 품앗이로 해결한다지만 어지간한 일은 혼자 해야 한다. 그러니 창식이 어머니는 맨 날 논밭에서 살다시피 한다. 창식이 역시 반농군이 될 수밖에 없다. 창식이가 자랑하는 것도, 손바닥만한 다락배미의 벼는 놉을 사지 않고 모자가 직접 베다 보니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시퍼렇게 날 선 낫을 아이에게 들려 논으로 들여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손을 베거나 다리를 찍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더구나 벼 베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여러 포기를 한꺼번에 잡고 약간 비스듬히 베어 올려야하는데 숙달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런 사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꼴망태 메고 풀 뜯으러 다닌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닌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벼 베는 일이라고 다를 게 뭐 있담. 아이는 뒷간이라도 가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다. 등잔불 아래에서 양말을 꿰매던 어머니가 힐끔 쳐다봤지만 별 말은 없다. 달이 금가루를 온 세상에 골고루 뿌리고 있다. 마당가에 선 오동나무가 잎을 흔들어 아는 체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무신을 꿰어 신은 아이가 뒷간 아닌 뒤꼍으로 간다. 벽에 낫들이 나란히 걸려있다. 그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빼어든다. 달빛을 가득 삼킨 낫이 시퍼런 살기를 연신 토해낸다. 온 몸에 스치는 써늘한 기운에 아이가 움찔한다. 아버지가 오후 내내 갈아놓은 낫들이다. 달도 밝은데 이걸 들고 논에 가서 몰래 베어봐? 암만 못해도 한 마지기는 너끈하게 벨 것 같은데…. 아이의 상상이 날개를 단다. 아아, 나도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 벼만 베어보면 되는데…. 하지만 아이는 낫을 제자리에 놓고 힘없이 돌아선다. 아무것도 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행하지 못한 밤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빠르게 달려 아침을 데려다 놓는다.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벌써 어른들의 목소리가 두세두세 창호지를 두드린다. 모심기가 그렇듯이 벼 베기 역시 주로 품앗이로 해결한다. 동네사람들이 오늘은 누구 집 내일은 누구 집 하는 식으로 순번을 정해놓고 차례로 하는 것이다. 순번이 닿은 집은 일꾼들이 오기 전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놔야 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일손이 부족하다. 그러니 아이들 역시 놀고 있을 틈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구보다 어머니가 가장 분주하다. 새벽부터 부엌에서 종종걸음이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준비한다고 했지만 장정 여럿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장만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침‧저녁은 각자 집에서 먹는다고 해도 점심 전 새참, 점심, 그리고 점심 뒤 새참까지 세 번의 음식을 내야한다. 일꾼들 먹을 것만 마련하는 건 아니다. 가을걷이 때는 수확의 계절답게 모를 내는 봄보다 훨씬 풍요롭게 마련이다. 그래서 날마다 작은 잔치가 벌어진다. 일하는 사람은 물론 가족까지 벼 베는 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일도 품앗이로 하지만 먹는 것 역시 품앗이인 셈이다. 다행(?)히 아이 집은 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꾼이 적은 편이다. 아이도 집과 논을 오가며 심부름을 하느라 바쁘다. 물주전자를 들고 논에 도착했을 땐 동네사람들이 나란히 서서 벼를 베기 시작한 뒤다.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다. 누렇게 익은 벼는 금세 줄어들고 봄부터 벼를 안아 키운 논은 감춰뒀던 속살을 수줍게 내놓는다. 아이는 다시 한 번 벼를 베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린다. 어른들이 하는 걸 보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벼 포기를 왼 손으로 잡고 오른손에 든 낫으로 써억~하고 베어내면 그만 아닌가. 대체 왜 못하게 하는 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에 빠져 넋을 놓고 있는데 멀리서 어머니가 부른다. 또 막걸리 심부름이다. 아침부터 벌써 두어 행보를 했건만 참과 점심을 먹으려면 더 필요한 모양이다. 농사채가 많은 집에서는 막걸리를 통째로 주문하기도 하지만 소농들은 수요를 봐가며 조금씩 사 나른다. 막걸리를 받아오던 아이가 밤산 모퉁이를 돌다 말고 서더니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댄다. 하지만 주전자가 워낙 크고 무거운지라 자꾸 아래로 쳐진다. 아이는 아예 주전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엎드려서 주전자 주둥이를 빤다. 잠시 뒤 캬아~ 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더니 진저리를 한번 친다.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아이들이 흔히 하는 짓이다. 그렇게 홀짝홀짝하다가 너무 많이 먹어버려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땐 들킬까봐 샘에서 물을 채워갖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걸 모를 턱이 없다. 얼굴 색깔만 봐도 한눈에 알아챈다. “뭔 막걸리가 뜨물마냥 이렇게 싱겁다냐?” 하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한다. 자신들도 어려서 많이 해본 짓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논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어머니와 동네아주머니 두엇이 새참을 내온다. 논의 벼는 벌써 반 남짓 줄어들었다. 타작까지 하루에 마쳐야 하니까 베는 건 오전에 끝낼 모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정네들이 새참과 술을 먹는 동안 어머니와 아주머니들도 한켠에 앉아 남은 참을 먹는다. 남자들은 밥보다 막걸리에 손이 더 자주 간다. 두어 잔 씩 돌려 마시고도 입맛을 쩍쩍 다신다. 하지만 누구도 취한 기색은 없다. 새참 그릇을 물린 어른들이 담배를 한 대씩 무는 사이 아이가 슬그머니 논으로 들어간다. 우렁이라도 주우러 가나보다 생각하는지 눈 여겨 보는 사람은 없다. 아이가 볏단에 꽂아둔 낫을 슬쩍 빼들더니 벼 포기를 잡고 당겨본다. 벼는 예상 외로 질기게 저항한다. 어? 이상하네? 어른들은 낫을 대기만 하면 썩썩 잘리던데? 아니나 다를까. 논둑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다. “야 이 녀석아, 다친다. 어여 나와라” 춘길이 아버지의 목소리다. 아이가 낫을 놓고 힘없이 돌아선다. 긴 꿈과 작은 반란은 너무 싱겁게 끝났다. 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어른들이 일어서서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논으로 들어선다. 아이가 터벅터벅 논을 나선다. 벼 베는 날의 한나절은 하늘의 구름처럼 순식간에 흘러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낫으로 벼를 베는 모습은 이제 그 어디서도 보기 어렵다. 요즘은 어지간한 골짜기 논까지 기계로 추수를 한다. 설령 기계가 들어가지 않는 논이라고 해도 옛날처럼 흥겨운 풍경은 없다. 노인들의 굽은 허리만 안타까울 뿐. 세월은 속도와 편리함을 가져다주고 사람 사이의 정을 거둬가 버렸다. 동네사람들이 논에 모여 춤을 추듯 벼를 베던 풍경. 에헤야 데헤야~ 들녘 가득 울려 퍼지던 풍년가. 그곳엔 인정과 사랑, 웃음과 한숨이 골고루 버무려진 우리네 수 천 년의 역사가 있었다.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