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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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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04 [사라져가는 것들 129] 뱃사공6
2010. 1. 4. 08:50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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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구산(三龜山)을 휘감고 흐르는 와룡천(臥龍川)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좁고 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었다. 삼구산의 깊은 골 덕분에 상류에는 용소(龍沼)나 선녀못처럼 제법 깊은 소도 몇 개 거느리고 있었고 물 역시 사계절 흔전하게 흘렀다. 수면은 늘 잔잔해서 어지간한 비에도 범람하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강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 너른말에서는 가뭄이나 홍수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만한 그림자도 있는 법. 와룡천의 혜택으로 사는 마을사람들에게도 불편한 점은 있었다. 강을 건너야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외나무다리나 징검다리를 놓기에는 수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수단이 나룻배를 띄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마을에는 대대로 나룻배와 뱃사공을 두었다. 지금의 사공 천먹보의 아비도 할아비도 사공이었다. 사공은 보통 자식에게 물림 되는데, 소‧돼지 잡는 백정처럼 천민 취급을 받았다. 그게 싫었던 천먹보는 미처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을을 떠나 도시를 떠돌았다. 하지만 그 역시 사공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다. 피의 부름을 받기라도 한 듯, 어느 날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비의 오랜 손때가 묻은 삿대를 잡았다. 그의 아비는 며칠 뒤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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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먹보와 그의 아들 수길이가 사는 사공막(뱃사공이 거주하기 위해 나루터 근처에 지은 집)은 강가 억새밭 사이에 숨듯 엎드려 있었다. 강 저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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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언제든지 배를 띄워야 하기 때문에, 사공막은 강과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말이 집이지 두엇이 간신히 발을 뻗을 수 있는 방 한 칸과 추녀 밑에 소꿉장난처럼 늘어놓은 부엌살림이 전부였다. 천먹보에게도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몸이 약했던 그녀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다. 아내를 잃고 아이를 얻은 천먹보는 갓난아이가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젖동냥을 해야 했다. 불쌍하다고 두말 않고 젖을 물리는 아낙들도 있었지만, 상것에게 젖을 물릴 수 없다고 내치는 집도 없지 않았다. 아이 배를 채우려니 날마다 마을을 몇 번씩 왕래해야했다. 자신이 굶는 적은 많았어도 아들의 끼니를 거르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덕분에 수길이는 배를 곯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집안의 피를 이어받아서 기골이 장대했고 또래 중에 힘도 가장 셌다. 여덟 살 되던 해에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상놈이 어쩌고 양반이 어쩌고 하는 구습이 희미해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걸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공의 신분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어이~ 먹보! 강 좀 건네주게”하고 말끝을 잘라먹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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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외지에 나갈 때는 사공막을 들르게 마련이었다.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도 사공막 쪽에다 “어이, 사공” 소리를 질러 배를 청했다. 천먹보는 집 옆에 돗자리 서너 장만하게 일궈놓은 텃밭에서 풀을 뽑다가도 강 건너에 사람 기척이 보이면 얼른 달려가 배를 띄웠다. 아이들 역시 학교에 갈 땐 나룻배 앞에서 줄을 섰다. 배를 띄울 만큼 모이면 용케 알고 천먹보가 사공막에서 나왔다. 배는 손바닥만큼이나 작아서 등하교 시간에 아이들이 몰리면 두세 차례 왕복해야 했다. 하지만 천먹보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을 좋아했다. 작은 아이들은 하나씩 안아서 배에 태우고 내려줬다. 아이들의 신발이 물에 젖기라도 할까봐 늘 조심했다. 아이들도 먹보아저씨를 잘 따랐다. 집에 맛있는 게 있으면 몰래 가져와 살짝 건네주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러면 천먹보는 “너희들이나 먹지, 이런 걸 왜 가져오냐?”며 껄껄 웃었다. 장마철에 배를 띄우지 못하거나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지 않는 한 그의 배는 늘 부지런히 강을 오갔다. 뱃삯은 배를 탈 때마다 내는 건 아니었다. 너른말에서는 봄, 가을 추수철이면 곡식으로 뱃삯을 추렴했다. 배에 문제가 생겨 수리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할 때도 마을 공동으로 비용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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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먹보는 학교를 오갈 때가 아니면 수길이가 배 근처에 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수길이는 절대 사공을 시키지 않을 거여. 대처에 나가서 펜대를 잡고 살게 할 것이여”
할아비도 아비도 자신도 천형처럼 사공으로 살았지만, 자식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그의 의지는 굳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수길이 역시 펜대가 아닌 삿대를 잡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수길이는 제 아비의 원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사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언젠가 천먹보가 사공막을 잠시 비운동안, 급하게 바깥에 나가야 할 사람이 배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보다 못한 수길이가 밧줄을 푸는 참에 아비가 돌아왔다. 아들이 배를 띄우려 하는 것을 본 천먹보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펄펄 뛰었다. 평소에는 소처럼 순하다가도 한번 화가 나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는 그의 성격을 아는 동네 사람은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결국 수길이가 다시는 배를 만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다음에야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래도 불안했던 천먹보는 그날 저녁 아들을 앉혀놓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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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먹보가 앓아누운 건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평생 고뿔 한번 안 앓던 그가 한 여름에 앓아누웠으니, 개에게 뿔이 난 것만큼이나 놀랄 일이었다. 하지만 수길이 외에는 누구도 천먹보가 앓아누운 걸 알 지 못했다. 강물이 많이 불면 배를 띄우는 게 위험하기 때문에 사공막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때 사공막은 섬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수길이가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수길이에게도 앓아누운 아비를 일으켜 세울 만한 재주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항우 같았던 아비가 기신을 못하고 있으니 뭘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이었다. 수건에 물을 묻혀 아비 머리에 올려놓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천먹보는 다음 날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열이 펄펄 끓는데도 겨울이불을 몽땅 내오라 해서 덮었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신음이 그치지 않았다. 수길이가 쌀을 불리고 불을 때서 죽이라고 쒀다 디밀었지만 수저조차 들지 못했다. 가끔 급한 숨을 몰아쉬는 바람에 수길이가 깜짝깜짝 놀라고는 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양지벌 그 넓은 들이 물을 한껏 들이켜서 땡땡한 배를 내밀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나마 장마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서 천먹보가 배를 끌어올려놓은 게 다행이었다. 수길이가 살그머니 집을 빠져나온 건 또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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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배가 묶여 있는 바로 아래까지 차 있었다. 삼구산에서 훑어왔음직한 벌건 흙탕물이 혀를 날름거렸다. 수길이가 밧줄을 풀더니 배를 물 위로 띄웠다. 배에 올라타 삿대로 강바닥을 밀어봤지만 앞으로 나가기보다 자꾸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노련한 사공도 빨라진 물살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을 텐데, 삿대 한번 잡아보지 못한 아이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그나마 유달리 센 힘 덕을 보는 셈이었다. 배가 건너편 언덕에 도착했을 때는 사공막이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한참 떠내려간 뒤였다. 시간도 꽤 흘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조금만 더 내려가면 물살이 걷잡을 수 없이 급해지는 여울목이었다. 끙끙거리며 배를 끌어올려 미루나무에 묶은 아이가 내처 달리기 시작했다. 읍내에 가서 약을 사올 모양이었다. 한참이 지난 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아이가 배를 묶어둔 곳으로 돌아왔다. 약봉지를 싸서 갈무리한 가슴께가 도드라져 보였다. 강물은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이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배를 다시 띄웠다. 삿대질에 따라 배는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건너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래로 떠내려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삿대질에 서투른 아이가 그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무리였다. 더구나 빈속에 비를 맞으며 먼 길을 달려갔다 오느라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통제를 벗어난 배가 어느 순간 여울목으로 빨려들더니 퉁탕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아이가 재빨리 삿대를 여기저기 찔러 넣어봤지만, 배를 더욱 요동치게 만들 뿐이었다. 절망감이 아이의 눈을 스치면서 손은 저절로 약봉지가 들어있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배가 핑그르르 도는가 싶었는데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 손 하나가 몇 번 안타깝게 수면 밖을 할퀴는가 싶더니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비가 그친 뒤, 한 사내가 기다시피 강둑을 내려가고 있었다.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천먹보였다. 수길아!! 수길아!! 울부짖는 소리가 황소울음처럼 강을 건너 들판을 달려 나갔다. 하지만 잠시 뒤 돌아온 건 빈 메아리뿐이었다. 아이도 배도 없는 강변에 황금빛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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