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미진'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3.02 [사라져가는 것들 100] 피맛골32
2009. 3. 2. 10:43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광화문 육조거리가 끝나는 지금의 교보문고 옆에 좁고 오죽잖은 골목이 있습니다. 이름 하여 피맛골이지요. 다 아시는 얘기겠지만 어느 날 임금 타신 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가 육조거릴 지나는데 어떤 무지렁이가 고개를 조아리고 있어야 할 판에 꽁무니에 불이 붙은 양 내달리다가 관헌에게 붙잡히고 어찌어찌 하여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다지요. 사연을 들어보니 하필 그날이 이 친구 마누라 산일이어서 황토현에 미역을 사러왔다가 어가를 만났겠다. 임금행차가 지나려면 마누라 애 낳고 백일은 지나야 될동말동할 형편이니 에라 모르겠다 산목숨부터 살리고 보자 하고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라나. 임금님 이 말을 들어보니 딱한 마음이 들어 국가보안법이고 집시법위반이고 다 뒤로 하고 무지렁이들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사이 길을 만들었으니 거기가 바로 피맛(피마=避馬)길이랍니다.
 (후략)                 -전재현의 ‘피맛골’ 중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땅에 어느 어진 임금이 있어, 저 이야기대로 민초를 위한 길 하나 만들어 줬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으랴. 600년을 함께 해온 골목길을 가차 없이 지워버리는 이 시대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살맛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쉽사리 믿기 어렵다. 고금을 훑어 권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란 게 힘없는 자들의 편이었던 적이 있던가. 차라리 모두 수긍할 만한 이야기나 재탕하고 말 일이다. 조선왕조 때 행세께나 한다는 벼슬아치들이 교자나 말을 타고 종로통에 행차하면 민초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아니꼬운 건 둘째 치고 생업에 바빴던 백성들이, 큰길 뒤 사람 두엇 지나갈만한 골목으로 스며들어 가끔 흥타령도 뽑아보고 어느 땐 침도 찍찍 뱉어가며 걸어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또 웬 날벼락인가. 그렇게 만들어져 긴 세월을 견뎌온 그 길이 이 시대에 와서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도시환경 정비사업이라나? 수년 전 골목 한 구간이 훌쩍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 빌딩이 들어설 때만해도 거기서 그치려니 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청진동의 정든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쫓겨 가더니 이번엔 피맛골의 알짜구간을 밀어버린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골목 하나쯤이야…? 그리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오래된 것들은 떠날 때 혼자 가는
법이 없다. 수백 년 쌓인 삶의 퇴적물들과 곰삭은 전설들을 데리고 떠난다. 피맛길은 지금의 교보문고에서 종로6가, 즉 동대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종로통 큰 길 건너편에도 피맛길이 있었다. 그러나 그쪽 길은 일찌감치 이리저리 뜯겨져 버리고 지금은 종로3가 전(煎)골목 등에 듬성듬성 남아있을 뿐이다. 반면 교보문고 쪽 피맛길은 종묘공원까지 중간중간 제법 원형대로 보존돼 있었다. 길은 시간과 교접하여 문화를 잉태한다. 민초들의 길이었던 피맛길 역시 피맛골이라는 독특한 ‘음식문화촌’을 낳았다. 빈대떡과 막걸리는 물론이고 생선구이낙지족발 등 이 곳 특유의 메뉴는 호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그래서 이 골목에는 가난한 학생들은 물론 시인‧화가 등의 예술가나 샐러리맨들의 희로애락이 얼룩처럼 배어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제 흔적을 지울지 모르는 피맛골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골목 탐사에 나선 건 지난해
3월이었다.(그 뒤로 많은 것이 변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쓴다.) 종묘공원을 지나 피카디리극장 옆 골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곳에서부터는 전형적인 피맛길이 이어진다. 종로3가와 2가 사이에 늘어서있는 보석가게들의 뒷골목이다. 으슥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오고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깃줄이 어지럽게 얽혀있고 기원역술원만화가게호프집음식점 등이 줄지어 있다. 탑골공원을 휘돌아 종로3가에서 2가 쪽으로 건너면 인사동 큰길을 만나고, 피맛길은 거기서부터 다시 이어진다. 여관‧술집‧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어서 분위기는 3가 쪽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골목은 YMCA 건물을 만나면서 또 방향을 잃는다. 여기 어디쯤 우미관이 있었을 테고, 김두한의 호통이 들릴 것도 같은데 돌아보면 21세기 사람들의 발걸음만 분주할 뿐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삼성생명빌딩(옛 화신백화점)을 만나고 그 뒷골목에도 수많은 음식점들이 손짓한다. 차도를 건너면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다시 청진동을 중심으로 하는 피맛길이 시작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부터 음식골목이다. 이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음식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1939년에 문을 열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명 인사들
이 즐겨 찾았다는 한일관(리모델링 중)과, 자장면과 물만두 맛이 일품이라는 화상(華商) 신승관(2008년 북창동으로 이전)이 그 앞자리에 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농협중앙회 옆 골목인 청진동길과 만난다. 1937년에 문을 연 해장국의 대명사 청진옥을 비롯해 청일옥, 흥진옥 등이 있다. (청진옥은 2008년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이전) 여기서 좀 더 지나면 거대 빌딩 르메이에르를 만난다. 건물 1층에 길을 내고 홍살문 모양의 기둥을 세워 ‘피맛골’이라는 간판을 매달아 놓았다. 성의는 가상하지만 양복 입고 갓을 쓴 것처럼 영 어색하다. 피맛골 같은 유서 깊은 골목은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거기서 길을 하나 더 건너면 곧 헐리게 되는 '알짜배기 피맛골'을 만날 수 있다. 입구 쪽엔 낙지와 불판으로 유명한 서린낙지가 있다. 화끈한 낙지볶음의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콩나물‧소시지‧베이컨‧감자‧김치 등을 넣고 익혀먹는 불판도 일품이다. (2009년 1월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이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 걸음 더 가면 3대 째 생선을 굽고 있는 피맛골의 터줏대감 함흥집이 있다. 이곳 주인
은 피맛골이 없어지면 더 이상 가게를 하지 않을 거란다. 피맛골 아닌 곳의 함흥집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유다. 40년 전통의 삼성집 역시 생선구이를 앞세우고 있지만, 족발‧낙지전골‧아구찜‧빈대떡 등 화려한 메뉴를 자랑하는 음식백화점이다. 생선구이로는 대림도 빼놓을 수 없다. 삼치‧고등어‧꽁치 등을 식당 앞에서 석쇠로 굽는데, 골목에 들어섰다 하면 냄새의 유혹에 그냥 지나가기가 쉽지 않다. 열차집은 빈대떡으로 유명하다. 이집의 빈대떡이 얼마나 맛있던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주문해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열차집이 맨 마지막 집이다. 골목을 나오면 교보문고를 마주하고 오른쪽으로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여기에도 유명한 곳이 많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점심시간마다 길게 줄을 서는 메밀국수집 미진, 빈대떡‧족발로 유명한 청일집‧경원집‧장원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매운 낙지의 원조 이강순실비집, 생태찌개로 이름을 날린 안성또순이집(대부분은 이전했거나 이전 준비 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긴 세월동안 명성을 쌓아온 음식점들이 피맛골과 이별을 앞두고 있다. 아니, 벌써 많은 음식점들이 이전하거나 폐업하는 바람에 일부 구간은 폐허처럼 썰렁하다. 대부분은 근처에 있는 르메이에르 빌딩이나 광화문‧북창동 일대로 떠났거나 떠난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빌딩은 빈대떡 굽는 냄새나 족발 삶는 냄새를 제대로 끌어안아줄 것 같지 않다. 같은 주인이 같은 이름의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해도 오랫동안 익숙해진 그 맛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피맛골 같은 곳은 한번 사라지면 다시 만들 수 없다. 골목은 오랜 삶의 흔적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짓는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성으로 본다면 종로라는 금싸라기 땅에 허름한 건물들을 계속 남겨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부수고 없애는 것만 능사일까? 우리에겐 수백 년 발자취가 담긴 골목 하나 보전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당국은 국민들의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들어보려 노력했는가? 골목은 문화다. 더구나 피맛골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다. 우리에겐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슴이 도둑맞은 곳간처럼 텅 비어버린 게 나 혼자뿐일까?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