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6. 11:25
이야기가 있는 사진
새벽의 겨울바다가 주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의 추위입니다.
대왕암이라고 부르는 문무대왕릉에 일출을 찍으러 갔던 날이었습니다.
태양은 구름 속에 숨어서 인색하게 굴었지만, 어느 순간 우르르 일어 아우성치며 달리는 해무는 장관이었습니다.
해변에서 올라오는 길에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피데기'가 거의 다 된 오징어를 널고 계셨습니다.
꾸들꾸들하게 말린 반건조 오징어를 피데기라고 부릅니다.
치아가 안 좋은 분들은 마른 오징어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줄에 걸린 오징어들은, 마침 구름을 열고 나오는 태양 빛을 가슴마다 안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물체는 역광 속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남지만, 반투명한 물체는 역광을 받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 순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줄에 걸린 오징어였습니다.
갈무리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징어 사이로 문무대왕릉이 살짝 보였습니다.
그런 풍경을 마련해주신 대왕의 은총에 고개 숙여 감사 드렸습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차가운 바다에 누운 왕.
그가 지키려했던 나라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세상은 무심하여 여전히 아름답게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