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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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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해수욕장'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6.11 [이야기가 있는 사진 17] 철 이른 바닷가에서18
2012. 6. 11. 08: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이른 아침, 바닷가를 걸어본 적 있으십니까?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누군가가 백사장에 크고 작은 발자국을 남기고 지나간 그곳.

재채기라도 터질 듯 코끝을 간질이는 설렘과 누군가가 먼저 걸었다는 배신감(?)을 함께 추스르면서, 그래도 순수의 영역이 있을 거라는 기대에 자꾸자꾸 걷게 되는.

얼마 전 도반(道伴)들과 모세의 기적으로 이름을 알린 무창포에서 하루 저녁 묵은 적이 있었습니다.

철 이른 바닷가는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이른 아침 누가 손짓이라도 하는 듯, 밤새 치룬 전쟁의 산물인 숙취를 대동하여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말이 이른 아침이지 백사장은 이미 곳곳에 발자국이 찍힌 뒤였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이런 시간에 백사장을 걸어본 게 언제더라.

아마 젊었을 적, 그것도 청년기쯤이 아닐까.

애써 시간의 끈을 더듬거려 보지만 기억을 갈무리해둔 창고는 좀처럼 빗장을 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머리 검은 젊은이가 걷던 곳을 반백의 사내가 걷고 있는 건 분명했습니다.

늙어간다는 것,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하다가도 어느 특별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화두를 깨우치듯 전율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머나먼 날의 이야기로 들리겠지요.

 

걷다보니 저 멀리 있던 흑섬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생각에 휩싸이기도 하고, 예쁜 차돌을 줍고 버리다를 반복하다 보니 걸음은 자꾸 늦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발밑에 펼쳐진 낯선 풍경에 걸음을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물이 빠져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백사장에 벌집처럼 나 있는 작은 구멍들.

//뽕이라는 의성어 겸 의태어가 수식어로 가장 잘 어울릴만한 그런 구멍들이 셀 수 없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채굴 과정에서 나왔음직한 콩처럼 작은 모래 알갱이들까지.

물론, 그 무엇 하나 우연히 생긴 것들이 아니란 사실쯤은 눈치 무디기로 소문난 저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백사장을 점령했던 바닷물이 빠져나간 뒤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만들어진 흔적들이 분명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척 없이 한참 서 있으려니 저만치 구멍에서 아주 작은 생명 하나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게였습니다.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게.

집을 수리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 낯선 낌새를 감지했는지 잽싸게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말 번개 같은 동작이었습니다.

저 작은 몸 어디에 저런 경계와 속도가 숨어 있을까.

결국 카메라를 들고서도 한 마리의 게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숱한 구멍들은 바로 그 손톱만한 게들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물이 빠진 뒤, 온 가족이 집수리에 나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게들의 은 바닷물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무심한 발자국이 그 위를 마구 밟으며 지나고, 그때마다 집은 메워지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면 게는 또 묵묵하게 그 집을 수리합니다.

작업은 끝없이 계속 될 것 같았습니다.

하루인들 바닷물이 오고가지 않은 적이, 사람이 지나가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요?

미련한 짓이라고요?

, 그런 말에도 별로 대거리할 방법이 없겠네요.

몇 시간 뒤면 무너질 게 분명한 집을 파내고 또 파내는 반복의 이면에는 분명 기계적 끈기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할 테니까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마치 시시포스(Sisyphus)를 연상시키는 노역.

하지만 정말 미련하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미련보다는 순응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어졌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일을 해야 할 거라는 걱정을 미리 하지 않는 순응.

애써 지은 집을 밤마다 타인의 영역으로 넘겨줘야하는 운명조차도 받아들이는 순응.

그렇게 해서 게는 바닷물이 쉬어갈 집을 내어주고, 바닷물은 먹을 것을 날라다주는 행복한 거래가 성립됐겠지요.

슬프고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화나고 짜증나고우리가 흔히 쓰는 이런 단어들 중에 혹시 스스로 만들어서 지고 다니는 것은 없을까요.

새삼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을 품고 있는 거대한 학교라는 깨달음 앞에서 반백의 사내가 자꾸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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