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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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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에 해당되는 글 1

  1. 2011.04.13 [사라져가는 것들 158] 금강마을8
2011. 4. 13. 16:02 사라져가는 것들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경북 봉화군에서 시작해서 영주안동·문경과 예천을 거친 뒤 용궁(龍宮) 남쪽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길이 106.29km의 강. 내성천(乃城川)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다. 용궁이란 단어가 잠시 시선을 끌지만, 지명이란 게 조금씩 과장되기 마련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 뜻 정도는 금세 잊어도 좋다. 내성천의 진가를 아는 이들에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한마디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섬(물 위의 섬이란 뜻)마을이라 불리는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서 바라보는 강은 넓은 모래밭, 외나무다리와 어울려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내성천은 뱀 모양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산을 만나면 산을 감싸 돌고 들판을 만나면 들판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흐른다. 우당탕탕! 급하게 달려가는 기세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래서인지 강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가 상류고 어디가 하류인지 자주 헷갈리게 된다. 물 흐름을 한참 들여다봐야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내성천을 무엇보다 내성천답게 만드는 건 풍성한 금빛 모래다. 강가에 앉아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래알들이 사르르 사르르 흘러내려가는 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성천을 모래강이라 부른다. 물과 함께 금빛 모래가 흐르는 강.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큰 축복이다.

 
그 아름다운 강을 막는단다. 이름 하여 영주댐. 완성되면 영주시 평은면과 이산면 일부를 물속에 가둔다는 댐 공사가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다. 소위, 4대강 사업의 일환이라고 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라는데, 대체 그 골짜기에 왜 댐이 필요할까? 여기저기 알아봐도 시원한 대답은 없다. 다목적댐이란다. 용수확보, 홍수방어, 수질개선, 관광자원 확보 등 목적은 줄줄이 많은데 딱히 고개가 끄떡거려지지 않는다. 영주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내성천이 홍수로 자주 범람한다는 기록을 본적도 없다. 수질개선이야말로 서천 쇠가 웃을 말이다. 그대로 떠먹어도 좋을 만큼 그 맑은 물을 개선한다니. 그렇다면 관광자원? 지금 그대로가 천혜의 자원이다. 댐을 막는 대신 세계자연문화유산 지정운동이라도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금모래가 흐르는 길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 모래도 모래지만 더 걱정되는 건 물속에 고스란히 잠길 유구한 역사와 문화다. 강을 중심으로 생겨난 마을마다 수백, 수천 년을 머금은 유물이 지천이다. 물에 잠기기 전에 어딘가 옮겨놓기야 하겠지만, 태자리를 떠난 순간 박제로 전락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유서 깊은 안동 장씨의 집성촌, 금강마을은 통째로 잠긴다고 한다. 어찌 사람의 흔적뿐이랴. 강가를 지켜온 왕버들, 강둑을 집 삼아 살던 수달,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들. 그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지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까?

 

멀리서 보는 금강마을은 물속 마을처럼 고요했다
. 행정지명으로는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지만, 보통 금강(錦江)마을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비단 같은 강이 흐르는 마을이다. 물이 휘돌아 섬처럼 생긴 곳이라 제법 긴 다리를 건너야 마을로 들어설 수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이라도 하듯 맨 먼저 운곡서원(雲谷書院)유허비가 객을 맞이한다. 낮은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제법 너른 들판, 전체적으로 안온하면서도 만물을 품에 싸안는 느낌의 지형이다. ‘전통의 얼 금강마을이란 이름의 마을유래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조선 선조(宣祖)때 장여화(張汝華) 선조께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는 노승을 구제한 일이 있는데 훗날 그 노승이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마을의 터를흔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선조 재위기간이 1552~1608년이니 언뜻 계산해 봐도 터를 잡은 지 400년이 넘는다. 마을 안쪽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농사철이니 두엄 내는 경운기소리라도 들려야 할 텐데 그 흔한 강아지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는다. 곳곳에 빈집도 눈에 띈다. 마을길을 올라가다 고색창연한 집을 한 채 만난다. 안내판에 장씨 고택이라 쓰여 있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집은 조선후기 민가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형 기와집으로. 
집의 뼈대는 멀쩡해 보이지만 곳곳에 퇴락한 흔적이 역력하다
. 생기를 띤 것이라고는 아우성치며 솟아오르는 잡초뿐이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중문 안쪽 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라디오 같기도 하고 TV소리 같기도 하다. 빈집이 아니었구나. 대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주인을 불러본다. 한참 뒤에 방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분이 나온다. 걸음이 불편해 보인다. 인사를 하니 경계의 기색도 없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여기서 혼자 사세요?”
이리와 앉아요
자제분들은 도시로 나가고요?”
그렇지요
이 큰집을 혼자 지키시려면 적적하지 않으세요?”
별 수 있나요. 죽을 때까지 지키다 가는 거지
수몰된다고 이사 가라고 안 해요?”
한참 시끄럽더니 요샌 조용하네. 금방 가라고야 하겠어요? 물이 차려면 한참 걸릴 텐데.”
그래도 어디로 갈지 준비는 하셔야 할 텐데
가기는 어디로 가요. 사는 대로 살다가 갈 데 없으면 저승길로 가야지.”

노인과의 대화는 한참동안 이어진다
. 올해로 여든 셋, 수도리 무섬마을에서 스무 살에 시집 와 63년을 살았다고 한다. 시집오기 전에는 일본에서 공부도 했다. 공직생활을 하는 남편을 따라 대처에 나가 살기도 했지만 남편의 은퇴 뒤에는 금강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영주와 서울로 나가 살고 있다. 이 참에 자식들과 함께 사시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고 만다. 허리와 다리가 좋지 못해서 오래 걸을 땐 보조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집 앞의 텃밭도 손을 못 댄다고 살포시 한숨짓는다. 댐이 완성되고 물이 차오르면 노인은 갈 곳이 없다. 다른 이들은 보상을 받아서 영주니 어디니 간다고 하지만 금강마을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살 만큼 살다가 가면되지가 입에 붙었다. 자신의 삶터에서 남은 생을 마치겠다는 욕심밖에 없는 이 노인을 밀어내는 게 대체 누군지. 노인은 모처럼 찾아온 젊은 손이 반가운 모양이다. 인터뷰는 곁다리고 말벗을 하다가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기고 만다. “점심이라도 해야 할 텐데걱정하지만 차려낼 만큼 변변한 밥상이 없음을 섭섭해 하는 눈치다. 되레 미안해진 객이 얼른 일어서는 수밖에.

바깥마당까지 따라 나온 노인의 길고도 긴 전송을 뒤로 하고 마을길을 걷다 다시 할머니 한 분을 만난다. 인사도 차리기 전에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아들이라도 보듯 반갑게 맞는다.
이사 가라니 섭섭하시지요?”
왜 안 그려. 열 몇 살에 시집와서 70년을 산 동넨데.
어디 가서 사실 건데요?”
저 건너 어디로 가라는데.”
저 건너가 어디쯤 될까. 어디까지 물이 차오르고 어디부터 새 동네가 될까. 노인의 손끝을 따라가는 나그네의 눈길도 허허롭다. 마침 바깥노인이 나오기에 인사를 했더니 웃음으로 답한다.
그래도 올해 농사는 지으실 거죠?”
노인은 말없이 고개만 끄떡인다. 이분들의 미래가 보상 받은 돈 아들딸에게 나눠주고 도시 언저리를 전전하는 잉여인간의 모습이 아니기를.
길을 재촉해 낮은 산등성이를 오른다. 다 오르고 보니 마을 바로 너머가 댐 공사현장이다. !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굴삭기가 연신 강바닥을 파고 덤프트럭이 부지런히 오간다. 잘려진 산과 파헤쳐진 강이 무참하게 널브러져 있다. ‘건설이라는 이름의 파괴현장에서 나그네의 발걸음은 얼어붙고 만다.

언덕 위에는 제법 세월을 머금은 과일나무들이 꽃눈을 틔우고 있다. 올 봄, 주인은 가지치기를 건너 뛴 모양이다. 밭가의 굵은 산수유도 노란 꽃을 지천으로 내뱉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미륵당에 들러보지만 미륵은 어디로 떠나고 금줄만 빈집을 지키고 있다. 미리 옮겨둔 것일 게다. 미륵이 이사를 가야하는 세상에도 미래불은 오는 걸까? 오후 햇살이 자리를 편 무덤 앞에서 할미꽃을 만난다. 조금 전에 만났던 할머니들을 꼭 닮았다. 무덤 앞에는 비석 대신 이장공고팻말이 붙어있다. 물속에서는 할미꽃들도 꽃을 피워내지 못하겠지. 구제역이 다녀간 우사(牛舍)에는 소들의 울음소리가 간데없다. 저곳에 송아지들이 다시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의관댁, 만연헌, 장석우 가옥, 까치구멍집. 마을 전체가 유적이고 문화재다. 누가 이런 마을을 물속에 수장시킬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다른 곳에 옮기면 되지라고 쉽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문화유산이 아니다. 배어있는 숨결이나 혼은 날아가고 껍데기만 남은 건축물일 뿐이다. 돌아오는 길, 다리를 건너 차를 세우고 다시 마을을 한번 바라본다. 강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마을은 봄 햇살 속에 푹 잠겨 있다. 햇빛을 머금은 금모래들이 반짝, 손을 흔든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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