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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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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2 [사라져가는 것들 133] 목화밭5
2010. 3. 2. 08:4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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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오늘 같은 밤이었어. 그날두 이렇게 달이 징그럽게 밝았으니께. 희다 못혀서 파르스롬한 빛이 그 넓은 목화밭에 비단처럼 깔리는디 참 환장하것더라구. 노랗구 허옇게 피어난 꽃은 말할 것두 웂구, 막 깍지를 까구 시상에 얼굴을 내민 목화솜에도 퍼런 달빛이 얹히니께, 그 뭐시냐. 애머랄두? 아녀, 루빈가? 암튼 뭐 그런 보석이 따루 웂더라구. 그게 보기 좋아서 환장혔냐구? 안 그랬다구 허긴 좀 거시기 허지만, 마냥 좋기만 헐 수 있나. 오밤중에 남의 밭에서 목화 도둑질을 허는 처지니…. 깜깜혀야 안 들키는디. 밝을수록 가심이 두근세근 방맹이질 허지. 더구나, 그 목화밭이 혹부리영감네 밭이었거든. 그 냥반이 보통 숭악혀? 목화 따다 들키는 날엔 다리몽뎅이 부러지는 건 아무 것두 아니구 동네에서 쫓겨날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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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째서 목화를 도둑질허냐구? 아, 이 사람아. 그걸 심심파적 놀이 삼어 했것남? 오죽혔으면 남의 밭에 들어가겄어. 바늘 꽂을 땅 한 평 웂는 집이서, 아버지 일찍 여우구 병든 홀엄니 모시고 살라니께 연명할 방도가 있으야지. 처녀 몸뗑이구 뭐구 이 집 저 집 날품팔이 혀서 입에 풀칠은 허것는디, 병든 엄니 약값을 대야 허니…. 그려서 엄니가 평생 업으로 삼었던 질쌈이라두 헐라는디, 남은 밭뙈기까장 팔아먹은 뒤니 그놈의 목화가 워디 하늘서 떨어지남. 목화가 있으야 솜 맹글어 실두 잣구 무명을 짜지. 메칠 고민허다가 결국 솜이 다 피지두 않은 넘의 집 목화밭에 들어간 겨. 지금 생각허먼 내가 미쳤던 게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두 그러질 말아야는디, 그 벌루다가 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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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디, 달빛이 도깨비마냥 사람 맴을 홀린다는 말이 사실이긴 헌개벼. 그날 내가 제 정신이 아녔으니께. 아, 이 사람이 워째 장기 두다 장이 갔다 온 사람마냥 딴소리를 헌다나? 온제긴 온제여. 달빛이 징그럽게 내리던 그날 밤이라니께. 그날 저것, 두식이 아배를 만났으니께. 에구, 퇴깽이 같은 내 새끼, 잘두 자네. 내가 저눔으 자석 땜이 속이 상허니께 별 말을 다 허네. 죽을 때꺼정 가슴에 묻었다가 흙속으로 데꾸 갈라구 혔던 얘긴디. 징글맞은 달빛 때문이여. 암튼지간에 이 말은 자네헌티만 허는 겨. 그러니 절대 입밖으루 내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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츰엔 동구 밖에 서 있는 장승이나 삼불산 미륵부처가 걸어오는 줄 알었네. 금빛마냥 쏟아져 내리는 달빛을 그득허니 등에 업구, 지드란 그림자는 땅에 깔고 전봇대만헌 게 뚜벅뚜벅 걸어오는디, 대체 그게 꿈인지 생신지…. 그러잖어두 목화 도둑질 허느라구 간이 콩알만큼 쪼그러 들었는디. 느닷웂이 그런 모냥을 보니, 거품 물고 기함해버리고 만 게지. 한참 뒤 정신을 차리구 보니께 사내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날 내려다보고 있지 않겄나. 장승두 부처두 아닌 사람인 건 확인혔는디, 얼마나 허우대가 장엄헌지 냇가 미루나무가 와 앉아 있는 줄 알었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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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판서 일 허는 황씨 총각이라는 걸 알아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었네. 이 동네에는 그렇게 큰 사람이 웂었거니와, 전에두 그 총각을 몇 번 본적이 있으니께. 그 때가 바루, 저 송우산 아름드리 소낭구들을 비내느라구 큰 산판이 생겼을 때였으니께, 외지서 인부들이 많이 들와 있었지. 자네 시집 오기 한참 전이니께 잘 물르지. 그런디 이상헌 건, 다른 인부들은 전부 산판서 가까운 웃골에서 먹구 자는디, 그 황씨 총각만 이 동네에 와서 밥을 붙여먹구 살았다는겨. 그것두 승질 드럽기가 염라대왕 싸대기를 후려갈긴다는 혹부리영감네에 말여. 오죽허먼 그 황씨 총각이 혹부리영감 싯째딸헌티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이 동네에 짜허게 돌았겄남. 원체 키두 헌칠헌디다 인물두 깎아논 밤처럼 훤허게 생겨서 입맛 다시는 사람이 한 둘이 아녔지. 그날두 그 사람이 다른 일꾼들허구 술추렴을 허구 자러오는 참에 목화밭에서 사람 기척이 나니께 와본 것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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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서 그날 밤에 뭔 사단이 났느냐구? 이 사람이 참…. 쑥씨럽게. 뭐시여? 말이먼 다 말인 줄 아는 겨? 혹부리영감헌티 이를까봐서 거시기 헸냐구? 허참 기가 맥혀서. 목에 관운장 청룡언월도가 쌍으루 들어와두 그건 아닐세. 자꾸 그르케 애먼소리 허먼 얘기구 뭐구 때려 치구 잠이나 잘 텨. 그려, 진즉 그럴 것이지. 글쎄…. 나두 모르겄네. 강제로 그리 된 것두 아니구, 그렇다구 내가 옷고름 풀구 밭고랑에 나자빠진 건 더욱 아니니…. 울 엄니가 날 그리 허투루 갈치진 않았응께. 그러니 그저 모른다구 헐 수밖에. 굳이 핑계를 댄다믄 달빛 탓이라고나 헐까. 사람을 홀릴만큼 황홀했으니께. 땅꾼 만난 배암이나 배암 만난 개구락지마냥 꼼짝헐 수 웂었다는 기억만 또릿허네. 나중에 정신채리구 나서 달빛에 비친 내 몸뚱아리가 월매나 부끄럽던지. 지금도 그 생각만 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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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구 나서 열한 달 만에 낳은 게, 저 애물단지라네. 오매 뱃속이 뭐 그렇게 좋다구 열한 달씩이나…. 근디 남들은 열 달을 못 채우구 나와두 야물기가 밤톨 같은디 저것은 워찌 된 것이 한 달을 더 있다 나왔는디두 저 모양인지. 커나먼서 말이나 걸음이 늦는다는 생각은 혔지만, 애덜 크는 거야 오이 자라듯 제 각각이니께 큰 걱정은 안혔지. 그런디 네 살이 되구 다섯이 되구, 지 애비 지게를 끌구 댕길 나이가 되두 영 어린애 짓만 허는겨. 내가 션찮은 애를 나놨구나 하는 걸 받아들일 수밖이 웂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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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아버지? 결국 그 얘기까지 허게 되는구먼. 데쳐논 호박잎마냥 시들어가던 울 엄니가 돌아가시구 나서 얼마 안 있다 떠났지. 죽었냐구? 아녀, 그건 아니구. 엄니 장례를 치루구는 장작을 산데미처럼 패놓구 뒷간두 치구 울바자두 손 보구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더라구. 않던 짓이니께 뭔가 이상하단 생각은 혔지. 그러던 어니 날 새복에, 부시럭 부시럭 소리가 나서 잠이 깼는디, 그 사람이 문을 열구 나가더라구. 문을 나서다 말구 방안을 한참 쳐다보대. 그 순간 느닷웂이 그런 생각이 들더구먼. 저 사람이 떠나는구나. 그런디두 잡을 수가 웂었네. 언젠가 그런 날이 있을 거라구 각오하고 살었던 셈이네. 그 새복,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구는 소리죽여 우는 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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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오래 버틴 셈이었네. 그나마 새끼를 낳아놨으니 못 떠나고 그리 질게 맴돈 것이었지. 들짐승을 집에 가둬놓는다구 집짐승이 되든가. 애당초 워디 뿌리박구 살 사람이 아녔어. 산판마다 쫓아 댕기먼서 이리저리 떠도는 맛으루 사는 사람이었응께. 시상 워디나 늘 그렇게 바람 같은 사내덜이 있잖은가. 훗날 누가, 어디 어디 산판에 애 아버지가 있더라구 전해줬을 때두 안 찾아갔네. 그 사람 뒷덜미를 끌구 올 자신두 웂었지만, 설령 끌구온다구 혀두 눅진하게 녹인 엿마냥 늘어붙어 있을 사람두 아니니께. 그렇게라두 소망대루 살먼 됐다 싶은 생각이 들더구먼. 원망해본 적? 웂네. 길진 않었어두 내 평생 누릴 행복은 다 누린 셈이니께. 반편이나마 저 두식이 크는 거 보먼서 살게 해줬으니 그 또한 고마운 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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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두 내겐 금쪽같은 새끼 아니것나. 그런디 그 빌어 처먹을 눔덜이…. 어이구, 억장이 또 무너지네. 이눔의 눈물은 왜 요래 시두 때두 웂이…. 저게 잘못되먼 내가 워찌 살어. 누구긴 누구 것나? 지 할애비 꼭 닮은 혹부리영감네 손자 영석이란 눔이지. 그 호랭이두 안 물어갈 눔 허는 짓이 똑 놀부잖는가? 호박밭에 말뚝 박구 똥 누는 애 주저 앉힌다더만, 그 못지않게 심술루 그득헌 눔이지. 그려, 남의 귀헌 자식헌테 우째 그걸 멕이누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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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이랄 게 뭐 있겄나. 메칠 전에 두식이가 국민핵교 애덜 갈소풍 가는델 따러 갔었내벼. 재? 2학년 댕기다 말았잖여. 학교 댕기는 거버덤 개구락지 잡구 머루 따는 걸 더 좋아허는 눔이니께. 그리두 소풍 가는 건 부러웠던 모냥이지. 짐승마냥 싸댕기는 눔이니 가는지 마는지 워찌 알었겄나. 아무튼 게서 애덜 먹는 솜사탕을 읃었던가 줏어먹은 모냥인디, 그 맛을 못잊구 솜사탕 사달라는 말을 입에 달구 댕기대. 헌디, 돈두 돈이지만 이 골짜기서 솜사탕장수를 만날 수 있남? 그게 화근이었던 게지. 솜사탕을 염불허구 댕기는 걸 영석이눔이랑 똘마니 멫눔이 본 모냥이여.

아, 글쎄. 애를 데리구 목화밭에 가서 목화를 멕였다네. 왜 애덜 때야 목화다래를 따먹을라구 목화밭을 자주 드나들잖남. 꽃이 지고 스무날쯤 지나믄 다래가 손톱만 허게 크는디, 그때 까먹으먼 들큰한 게 올마나 맛있나. 그려. 그렸지? 자네두 많이 먹었지? 촌에서 그거 안 먹구 큰 애덜이 멫명이나 되겄어. 목화라는 게 7월이먼 꽃이 피기 시작허는디, 가을에 하얀 목화송이가 벌 때까지 쉬잖구 꽃피고 다래 맺고 허지 않는감. 벌 나비가 웂어도 열매를 맺는 게 목화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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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디 워째 얘기가 일루 빠졌댜? 내가 워디까지…. 아참, 그려. 그런디 이 급살 맞을 눔덜이, 우리 두식이헌티 다래가 아니라 깍지서 나온 솜을 멕인겨. 그게 솜사탕이라구 꼬드겨 갖구. 이 미련탱이가 그게 워쩐 것인지, 뭔 맛인지두 물르먼서 꾸역꾸역 먹었내벼. 나중에 들으니께, 계속 먹으먼 솜사탕처럼 단맛이 나온다구 해서 그렸다는 겨. 더구나 안 넘어간다구 도리질을 허니께, 이눔덜이 작당허구 입에 집어쳐늫기까지 혔다네. 최 주사네 밭을 매구 있는디 한 녀석이 쫓아왔지 뭐여. 두식이가 다 죽어간다구. 부리나케 쫓아가보니께…. 애가 벌써 숨이 넘어갔어.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구 눈은 허옇게 뒤집었구. 하늘이 무너지대. 혀라두 물구 같이 죽어야 쓰것는디 그리두 혹시 살릴 방도가 웂을까 혀서 울먼서 문질르구 뒤집어보구…. 그런디 마침 벌려진 입 속에 솜이 가득헌 게 보이는겨. 볼 것두 웂이 손가락을 집어느서 끄집어냈지. 올마나 많이 쳐늫는지 한 주먹이나 끄내니께 그때야 숨을 돌리는디…. 목화밭이서 생긴 눔이 워째 또 목화밭이서….

뭔 달이 이렇게 밝댜…. 징글징글 헌 거, 오늘 밤두 실타래마냥 질기두 허것구먼.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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