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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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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6 [사라져가는 것들 105] 초분(草墳)23
2009. 4. 6. 10:16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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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로 간다. 밤을 뚫고 달려 완도에 도착했을 땐 성질 강파른 강아지도 잠든 시간이다. 온통 어둠뿐인 풍경은 서울 변두리의 산자락이나 완도의 포구나 다르지 않다. 첫 배를 탈 무렵이 가까워서야 새 날이 문을 연다. 시야가 트이면서 반도의 남쪽 끝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는 뱃길로 50여분 거리. 배가 출발한 뒤에도 바다를 구경할 생각 따위는 포기하고 배 위에 실린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의 벌충에 나선다. 늘 그렇듯, 누군가에 쫓기는 꿈에 시달린다. 그 꿈이 결말을 맺기도 전에 배가 목적지에 이른다. 청산도에 내려서 맨 먼저 만난 건 바람이다. 환영의 뜻인지 거부의 뜻인지 거세기도 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지만 비가 올 기미는 아니다. 작은 국토라지만 남쪽은 남쪽이다. 서울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진달래며 개나리가 온통 봉우리를 열었다. 골짜기에 일궈놓은 밭마다 마늘과 보리가 푸르게 새 봄을 예찬하고 있다. 유채꽃들이 그 사이에 노란색을 점점 찍어놓았다. 우선 섬을 천천히 돌아보기로 한다. 맨 먼저 시선을 잡고 놓지 않는 건, 바다도 돌담도 아닌 무덤들이다. 많기도 하다. 그런 표현이 가당할지 모르지만 청산도의 무덤들은 모두 미끈하게 잘생겼다. 지극정성으로 돌본 게 아니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청산도는 죽은 자와 산 자들이 영토를 반씩 나눠 쓰고 있는 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맨 먼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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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그 먼 길을 간 건 초분(草墳)을 찾아서다. 초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이중장(二重葬)제도다. 사람이 죽고 나면 바로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뼈만 남을 때까지 별도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묻는 장례절차를 말한다. 육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종의 풍장(風葬)인 셈이다. 초분은 바닥에 짚 등을 두껍게 깔고 그 위에 관을 놓고 다시 짚으로 덮는다. 그렇게 해서 3년이 지나면 뼈만 남게 되는데 이 뼈를 추려 땅 속에 매장한다. 매장을 할 땐 길일을 받아서 하며, 그해에 길일이 안 잡히면 3년을 더 기다리기도 했다. 초분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또 섬마다 다르기도 하다. 부모상을 당했는데 맏상제(장자)가 고기잡이에 나가 상을 치를 수 없다든가, 아내 상을 당했을 때 남편이 멀리 나가 있는 경우 등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특수한 여건이 이러한 풍습을 낳았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한 설명도 있다. 청산도는 돌이 무척 많다. 땅 거죽만 벗기면 온통 돌이다. 그 때문에 시신을 바로 묻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매장하면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온 오염수가 수많은 돌 틈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키게 된다. 그래서 가매장을 한 뒤 뼈만 묻는 것이다. 초분에서 나오는 오염수는 아래에 깔아둔 짚이 흡수하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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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초분을 구장리에서 만난다. 큰 길에서 멀지 않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낮은 산 아래 일군 보리밭 가장자리에 다소곳이 서 있다. 저만치 대리석으로 잘 치장한 무덤이 몇 기 보인다. 청산도의 여느 무덤들과는 조금 다르다. 섬의 무덤문화에도 변화가 있는 모양이다. 이 초분의 주인도 때가 되면 저 대리석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초분의 모양은 사진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다만 외부에 검은 포장을 둘렀고 생솔가지는 꽂아놓지 않았다. 말이라도 물어보려 두리번거리지만 아무도 없다. 그냥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 저만치서 경운기 한 대가 빠르게 달려온다. 근처 밭에라도 나오는 듯, 노인 한 분이 앉아있다. 다짜고짜 다가가 인사부터 한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게 초분 맞지요?”
“그렇소만, 어쩐 일로…?”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사실은 물어보려는 게 뭔지 다 안다는 눈빛이다. 자신을 양기승(74)이라고 소개한 노인으로부터 초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동안 알고 있던 ‘초분을 쓰는 이유’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는 못 묻어. 선산에 묘를 써야하는데 생장(生葬)으로는 못 들어간다는 거지. 그래서 초분을 했다가 뼈만 묻는 거야. 그리고 음력 정월(1월)에는 땅을 파면 안 돼. 여기 풍습이 그래. 그때 땅을 파면 부락 자체에 액운이 오거든. 그래서 정월에 죽은 사람들은 초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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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초분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시신이 초분에서 2~3년 썩으면 뼈만 고스란히 남게 되지. 그때 잘 간추려서 제대로 묻는 거야. 요즘도 많이 하냐고? 이제 거의 안 해. 생각을 해봐. 장사를 이중으로 치루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최소한 돼지 한 마리는 잡아야지. 일할 사람 써야지. 복잡한 것도 복잡한 것이지만 비용이 최소 150만원은 들어야 하거든….”
그런 저런 이유로 초분을 하는 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긴 말이 그렇지, 두 번 장례를 치른다는 게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닐 것이다. 저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초분 역시 옛이야기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말을 마친 노인이 경운기의 시동을 힘차게 건다. 여러 번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서는데, 이해 못할 일이 벌어진다. 당연히 근처의 밭으로 갈 줄 알았던 경운기가 순식간에(평소에 알고 있는 경운기 속도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들어왔던 큰 길로 다시 빠져나가더니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렇다면 농사일로 온 게 아니라는 건데, 이 골짜기까지 왜 들어온 것일까? 초분을 설명해주러? 초분 때문에 온 것을 어떻게 알고? 궁금증을 풀어보려 온갖 상상을 다해보지만 우둔한 나그네는 끝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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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초분을 찾으러 신흥리와 청계리 인근을 헤매고 다녔지만 끝내 허탕을 치고 말았다.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저쪽으로 가보라고 가르쳐주는데 초분이란 게 집채만큼 큰 게 아니라서 당최 눈에 잡히지 않는다. 포기할까, 좀 더 찾아볼까 갈등하고 있는 참에 골짜기 좁은 길에서 트럭이 한 대 내려온다. 아무리 봐도 트럭이 내려올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무조건 세워서 초분을 찾아내라고 졸라본다. 트럭엔 장년남자 두 명이 타고 있다. 외지인의 생떼에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들의 트럭을 따라오란다. 꽁무니를 한참 쫓아가도 설 기미가 없다. 혹시 나를 유인해서…? 별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 골짜기 앞에서 차를 멈춘다. 도청리. 표지석으로 위치를 확인한다. 그냥 가르쳐줘도 되련만 두 사람 모두 차에서 내려서 상세하게 설명을 한다. “저기로 쭉 올라가 보세요. 저기 보이는 대나무 숲 아래 초분이 하나 있을 것이요. 그런데… 조심해야 될 겁니다. 금년 정월에 쓴 초분이라 귀신이 나올지도… 흐흐” 농담까지 던지고 차에 오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차를 돌리더니 온 길을 되짚어 간다. 그렇다면 이 길은 저들이 가려던 길이 아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먼 길을 일부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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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하다. 홀연히 나타나 초분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진 경운기할아버지나 가장 막막할 때 등장해 새로 쓴 초분을 가르쳐주고 떠난 두 사내. 대체 누가 보내준 것일까. 의문을 화두처럼 붙잡고 산길을 휘적휘적 올라가니 만든 지 오래 되지 않은 초분이 나타난다. 구장리 초분보다 훨씬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배의 노처럼 꽃아 둔 솔가지도 일부는 푸른 기운이 성성하다. 초분 앞 돌 위에는 과일까지 놓여있다. 아래에서는 초분이 잘 안 보였지만 막상 초분 앞에서 바라보니 눈앞이 확 트여있다. 섬이란 환경을 감안하면 보기 드문 명당이다. 섬사람들의 사자(死者)를 생각하는 마음이 읽혀진다. 초분 주변을 찬찬히 돌아본다. 누군가 표현했듯이 꼭 배(船)처럼 생겼다. 굳이 배라고 한다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을 건너 주는 배일 것이다. 사자가 노를 저어 저승으로 건너나는 모습을 상상하다 다시 초분머리와 눈을 맞춘다. 어차피 오래지 않아 사라질 풍경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어쩌면 지금 보고 있는 초분이 마지막 초분일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것도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초분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본다. 봄바람이 부드럽게 전신을 감싼다. 밤새 달려온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눈꺼풀을 자꾸 잡아당긴다. 눈앞에 길 하나가 길게 펼쳐져 있다. 삶과 죽음 사이가 지척이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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