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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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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에 해당되는 글 1

  1. 2009.10.05 [사라져가는 것들 123] 사물(四物)6
2009. 10. 5. 10:52 사라져가는 것들

“사물이 뭔지 아는가?”
“사물이라….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그 정도는 알지요. 꽹과리, 장구, 북, 징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그 사물을 가지고 한 마당 어울리는 걸 사물놀이라고 하고요.”
소백산 자락의 희방사와 희방폭포를 보고 내려와 부석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세상은 널브러지듯 사지를 내맡기고 있었다. 부석사로 올라가는 언덕길, 빗속의 사과과수원은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풍경화가 되었다. 가슴이 온통 푸르게 물드는 기분이다. 질문을 했던 선배가 조금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왜요? 그게 사물이 아니던가요?”
“허참. 이 사람아, 절 밑에 와서 사물을 물었으면 적당히 눈치 챌 줄도 알아야지 기껏 꽹과리, 징을 안다고 자랑하고 있나?”
“…”
“절집의 사물은 범종‧법고·운판·목어 4가지를 말하는 걸세.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고 하지. 어지간한 절에서는 범종각이나 범종루에 이 사물을 같이 걸어둔다네. 공통점은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는 거고. 그런 면에서는 자네가 말한 사물하고 일치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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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

이거야 원,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수박 겉핥듯 절 몇 곳 구경 다녔다고, 사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떠벌린 터에 사물이 뭔지도 모르다니…. 무참한 얼굴로 강의나 듣고 있는 수밖에. 빗줄기가 갈수록 촘촘해지는 기색이다. 하지만 우산을 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선배의 설명이 이어진다. 물건이든 지식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지 못해 늘 안달인 양반이다.
“똑같이 두드려 소리를 내지만, 그 사물의 소리가 목적으로 하는 건 각기 다르다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한다고 하지. 또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그 중에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을 제도한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제 무지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하면, 요즘은 어지간한 절에서도 사물을 격식 갖춰서 치는 걸 보는 게 쉽지 않아. 그런데 이곳 부석사는 시간만 맞춰 가면 사물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단 말일세. 사물이 금세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록해둘 필요가 있을 게야. 오늘 사물 소리를 직접 듣는다면 자네는 운이 좋은 거네.”
선배는 말이 나온 김에 어리석은 중생 하나 제도하겠다는 듯,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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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판

범종은 본래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쳤으나 점차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 치게 되었다고 한다. ‘범((梵)’이란 우주만물이며 진리란 뜻이다. 모든 중생의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 악도(惡道)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종을 친다. 그뿐 아니라 종소리를 지옥에 있는 중생에게까지 들려줘서 고통을 벗게 한다. 불교의 자비심이 넓고도 크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새겨진다. 지하세계의 중생이나 날아다니는 새, 물고기의 영혼까지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종을 울리고 북을 치다니…. 범종은 아침저녁 예불할 때 친다. 종소리가 지옥까지 울려 퍼지라는 의미에서 종 입구는 아래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다. 그 중에 특히 가축이나 짐승 등 축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몸통은 나무로 만들고 두드리는 면은 가죽을 대는데, 한쪽은 수소 가죽을 다른 쪽은 암소 가죽을 대야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법고는 북소리가 사바세계에 널리 울려 퍼져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사물 중에서 가장 먼저 친다. 두 개의 북채로 마음심(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물고기의 배 부분을 파낸 뒤 두드려 소리를 낸다. 어고(魚鼓) 또는 어판(魚板)이라고도 부른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로 만들었으나 점차 용머리에 여의주를 문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절에서 목어를 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물고기처럼 늘 깨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의미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목탁은 이 목어가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둥글게 깎은 것을 목탁이라 하고 길게 깎은 것은 목어라고 부른다. 운판(雲板)은 구름 모양으로 얇게 만든 청동판이나 철제 평판을 말한다. 대판(大版)이라고도 부른다. 판에는 보통 보살상이나 진언(眞言)을 새기고 가장자리에는 승천하는 용을 조각한다. 본래 공양간에 걸어두고 대중들에게 공양시간을 알릴 때 사용했으나 점차 의식 용구가 되어 예불 때 다른 사물과 함께 친다. 위쪽에 구멍을 두 개 뚫어 매달 수 있게 했다. 운판의 소리는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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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덧 ‘극락에 이르는 입구’라 일컬어지는 안양루에 이른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사물을 칠까요? 새들도 날개를 접고 물고기도 잠들었을 텐데….”
“치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제도할 게 없겠나. 아마 여섯시쯤일걸? 그때까지 기다려보시게.”
안양루 계단을 지난 일행이 무량수전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어차피 초행도 아니니 오늘은 일행과 떨어져 사물 치는 걸 볼 셈이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덕분에 세상은 적막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돌 벤치에 철퍼덕 앉아 비에 젖은 옛 절집을 감상하는 일로 시간을 줄인다. 여섯시가 가까워지는데도 누각은 텅 빈 채다. 오늘은 사물을 안 치려나?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잠시 뒤 어둑어둑한 누각 안에 희미한 움직임이 있다. 스님 한 분이 법고 앞에 서는가 싶더니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대지를 안마하듯,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북소리가 절집을 한 바퀴 돌더니 산 아래로 구르듯 내려간다. 풍진에 찌든 중생 하나가 감동에 젖어 그 소리를 와락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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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아참! 마냥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카메라를 앞세우고 안양루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가사장삼을 갖춰 입은 스님이 춤추듯 법고를 치고 있다. 법고는 마음심(心)자를 그리며 두드린다는데, 마음을 볼 능력을 못 갖춘 중생에게는 강약이 교차되는 소리만 귓속을 파고든다. 보인들 무엇 할 것이며 안 보인들 어떠랴. 훠이~ 훠이~ 이 소리 부처님의 사자후 되어 고통 받는 모든 영혼을 쓰다듬어 주기를…. 카메라에 소리까지 담아내고 싶지만, 늘 그렇듯 욕심일 뿐이다. 북소리가 절정을 넘긴 뒤 다른 스님이 운판을 치기 시작한다. 북소리와는 또 다른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허공을 떠도는 영혼들이여! 영원한 안식을 얻으소서. 카메라 뷰파인더 속에 들어온 스님과 운판 사이로 붉은 꽃이 얼굴을 내민다. 장미는 아닐 테고 배롱나무꽃일까? 가섭존자의 미소를 불렀다는 부처의 연꽃은 아니지만 이 또한 인연이려니…. 이어서 법고를 치던 스님이 목어 앞에 선다. 물고기 뱃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소리가 전신을 감싸고 흐른다. 목어를 치는 시간은 길지 않다. 범종각은 별도로 세워져 있다. 목어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우렁찬 종소리가 긴 파장을 남기며 산을 넘고 들로 달려 나간다. 무지한 중생들을 일깨우고 땅 아래 영혼까지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고자…. 뜻대로 되게 하소서.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참고자료 : 두산백과사전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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