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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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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연못으로 흐르는 수로.

성스러운 연못과 모스크.

아브라함은 정말 샨르우르파에서 태어난 것일까? 그 대답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를 좀 추적해보자. 아브라함은 아담의 후손이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175세에 세상을 뜬 그는 노아의 방주노아와도 58년이나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출생은 전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삶의 궤적은 전설보다 역사 쪽에 가깝다.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는 홍수 심판이 있은 지 대략 292년이 지난 뒤고 바벨탑 사건 이후 100년 정도 지난 뒤이다.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고대 바빌론의 황제 함무라비 보다는 200년쯤 앞서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행적은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해 하란과 세겜을 거쳐 가나안에 이른다. 그런데 왜 태어난 곳이 그리 명확하지 않을까? 그 답은 갈대아 우르에 들어 있다. 잠깐 구약성서를 보고 가자. 아브람(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다)이라는 사람이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 1126절부터다.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흘과 하란을 낳았더라(창세기 11-26)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창세기 11-29)

 

문제는 본토라고 적은 갈대아 우르가 어디인지 확실히 증명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터키 사람들은 샨르우르파야 말로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갈대아 우르라고 주장한다. 또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져 왔다. 1930년대 이후 시리아의 몇 곳에서 출토된 토판 문서를 해독해보니 우르라는 도시가 여러 곳 있으며 모두 하란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브라함 동굴 같은 유서 깊은 곳도 이곳에 있지 않은가.

 

장작이 변했다는 물고기의 후손들.

먹이를 탐하는 물고기들.

하지만 학자들은 옛 바빌로니아가 있었던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지역, 즉 지금 이라크 남부와 쿠웨이트가 있는 지역을 우르라고 본다. 북쪽의 우르, 즉 샨르우르파에서 남쪽으로 1,500km 떨어진 곳에 고대도시 우르가 있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울리라는 사람에 의해 발굴되면서 바로 갈대아 우르가 이곳이라는 게 정설이 되었다. 발굴된 지하 무덤, 부장품 등이 갈대아 우르임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특히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여기저기 떠도는 별 볼 일 없는 유목민으로 묘사돼 있지만, 사실은 그의 고향 우르에서는 대도시의 귀족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아브라함은 빈손으로 가나안 땅에 간 것이 아니라 발달된 도시 문명의 법과 도덕 등을 가지고 가서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그렇게 입증됐다니 믿을 수밖에. 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 샨르우르파 쪽에 정이 더 갈까? 내가 이라크에 있다는 우르를 직접 가보지 못해서 그럴까? 과학보다는 전설을 믿고 싶어 하는 비과학적 사고방식 때문일까? 구약과 지도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데라가 그의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창세기 11-31)

 

산책 나온 무슬림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물렀다는 창세기의 내용을 기억한 뒤 지도를 보자. 학자들이 갈대아 우르라고 주장하는 이라크의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아까 말했듯이 1,500km나 된다. 그곳에서 가나안, 즉 지금의 팔레스타인 서쪽 해안지역은 서쪽으로 방향만 틀어서 곧장 가면 그 거리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남쪽으로 갔다는 그들이 왜 북쪽에 있는 하란으로 갔을까? 차는커녕 마차 한대 없는 그들이 굳이 그 먼 길까지 올라간 이유는 뭐였을까. 또 지나가는 길이었다면 그냥 지나갈 것이지 그 낯선 하란에서 말뚝 박고 살 건 또 뭐란 말인가. 혹자는 가로지르는 길이 사막이라서 좋은 길을 택하다 보니 돌아서 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가보지 않아서 큰 소리 치긴 좀 그렇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벗어나면 그 어느 곳도 광야이긴 마찬가지다. 하란으로 가는 길이라고 아스팔트가 깔려있을 턱이 있나. 그렇다면 지금의 샨르우르파, 아브라함의 전설을 지닌 그곳이 창세기에 나오는 우르에 더 가깝지 않을까? 손자까지 봤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문제였을 것이다. 샨르우르파를 당당하게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란쯤 걸어가다가 아이구! 허리도 아프고 난 더 이상 못 가겠다하면서 그냥 주저앉아 버린 건 아닐까. 믿음이 별로 깊지 않았던 그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고향을 떠나 멀고먼 가나안땅까지 갈까. 하란까지만 갔으면 성의를 보인 거지. 별 지식도 없이 너무 따지는 건가? 내가 성서 전문가들이나 고고학자들의 견해를 뒤집을 방법은 없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증의 뿌리는 여전히 뽑히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제 성스러운 물고기 연못구경을 가보자. 연못은 아브라함의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다.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르즈마니예와 압두르하르만이라는 두 개의 모스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직사각형의 긴 연못을 볼 수 있다. 이 연못은 도시의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하는 듯,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거닐고 있다. 그런데 왜 이곳이 성스러운 연못이 되었을까? 아브라함 동굴에서 끊어진 전설은 여기서 계속된다. 신상을 파괴한 죄로 감옥에 갇힌 아브라함은 드디어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님로드 왕, 그냥 죽이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성 꼭대기에 화장용(火葬用) 장작을 쌓고 아브라함을 매단 다음 불을 질렀다. 말 그대로 화형(火刑)을 시행한 것이다. 이걸 그냥 두면 하나님이 아니지.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아브라함을 에워싸려고 하자 느닷없이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치기 시작했다. 화형장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님로드 왕이 도망쳤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브라함은 성 아래 장미 밭으로 떨어지고, 그 장미 밭은 호수가 되었다. 타다 만 장작들은 물고기로 바뀌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이 바로 그때 타다만 숯이 변한 물고기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잉어처럼 생긴 이 물고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뭇거뭇한 자국을 볼 수 있다. 기적의 증거인 이 물고기들은 아무도 잡지 않는다. 만약 잡아먹게 되면 곧바로 장님이 된다는 설도 있다. 연못을 들여다보니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 물고기들이 너무 많다 보니 저희들끼리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일일 것 같다.

 

저거 하나 건져봐?

물고기 밥을 조금 얻어서 던져본다.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몰려들더니 저희들끼리 머리를 박고 꼬리를 치고 난리도 아니다. ! 이게 바로 아귀다툼이라는 거구나.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일단 먹고 보자가 그들의 모토인 것 같다. 나는 왜 이 성스러운 물고기들에게서 지옥도를 보는 걸까. ‘너 죽고 나 살자고 진흙탕에서 구르는 욕심 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그들과 자꾸 겹쳐진다. 대체 성스러운 것은 무엇이고 속된 것은 무엇인가. 그 경계는 누가 어떻게 지어준단 말인가. 아이 둘이 지나가길래 불러서 묻는다.

이 물고기 잡아먹으면 어떻게 돼?”

죽어요.”

정말? 네가 봤어?”

아뇨. 먹고 죽은 사람이 있대요.”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왜 먹으면 안 되는지 분명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성스러운 물고기니까’ ‘병에 걸린답니다’ ‘눈이 멀어버린대요대답도 가지각색이다. 하긴 정답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있는 면접요원처럼 집요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왜 이 물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재미있는 대답도 있다.

이건 나무가 변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물고기를 먹으면 나무를 먹는 거지요.”

흐흠, 그건 그렇겠네. 나무를 먹으면 반칙이지. 지금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시절도 아니잖아.

 

반대쪽 모스크.

 

결정적인 대답을 듣고 질문 행각을 멈춘다.

나 같이 종교를 안 믿는 사람은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정 그렇다면 한번 해보세요.”

어떻게 되는데요?”

잡으려고 손을 넣는 순간 다른 사람들한테 맞아죽을 걸요?”

그래. 그게 정답이네. 맞아죽지 않으려고. 그럼. 이 먼 곳까지 와서 맞아죽으면 안되지. 사실 나도 그 신성함을 믿는다. 신성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영역까지 무너트리고 나면 대체 어디에 기댈 것인가.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늘 그 영역을 들여다보지 못해 안달이다. 나야말로 이 물고기들이 영원히 신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이 연못에서 하얀색 물고기를 보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천국행 티켓 한 장 확보해볼까 하고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풍진에 물든 흐리멍덩한 눈에는 회색빛 물고기 한 마리 들어오지 않는다. 이 연못을 비롯한 공원 수로를 흐르는 물은 모두 성채가 있는 담라즉 언덕에서 흘러들어온 지하수라고 한다. 그런데도 물고기가 워낙 많다보니까 지하에 산소를 공급하는 파이프를 묻어놓았다고 한다. 또 프랏대학교 연구진이 조사를 해봤더니 모두 네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더란다. 그러니까 장작이 네 종류나 있었다는 얘기?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비슷비슷하다.

 

샨르우르파 지도.

 

샨르우르파의 역사를 잠깐 얘기하고 가야지. 해발 540m에 자리 잡은 이 도시의 역사는 9,000년을 헤아린다. 아니, 뒤에 가볼 괴베클리테페를 감안할 때는 그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역사에는 약 4,500년 전에 일어난 일부터 기록돼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후리라고 불렀던 종족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후리아인이인데 BC 2500년경에 코카서스 산맥을 출발해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아나톨리아 남동부와 시리아, 이라크 북부까지 내려가 정착했다. 이들은 우르퀘쉬라는 왕국을 세우고 잘 나가는 듯 했지만 BC 2000년대 초반 바빌로니아 제국의 힘이 팽창하면서 그 속국으로 편입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바빌로니아 역시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불꽃처럼 일어났던 히타이트에 망하고 만다. 그게 BC 1531. 후리아인들은 다시 미탄니라는 왕국을 세우지만 또 히타이트 왕국으로 흡수되는 운명을 맞는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뒤 BC 6세기부터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333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휘하에 들어간다. BC 303년 알렉산드로스의 휘하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는 이곳 동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마케도니아 퇴역병들을 정착시킨다. 낯선 땅에서 살게 된 그들은 이 곳을 자신들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의 수도 이름을 따서 에데사라고 부르게 된다. 이 에데사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두자.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에데사는 BC 63년 로마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다. 그 뒤 로마의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초기 기독교 교회도 발달하게 된다.

 

샨르우르파 거리.

낯선 땅의 역사를 편년체로 늘어놓는다고 머리에 쏙쏙 들어올 리가 있나. 이왕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람 이야기나 하나 하고 넘어가자. 통치자들 중에 세계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샨르우르파에 있었던 에데사 왕국의 아브가루스 왕이다. 아브가루스 왕은 끔찍한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수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예수에게 편지를 썼다. 병을 낫게 해주소서. 예수는 답장을 한다. 내가 요즘 바빠서 직접 갈 수는 없지만 제자들 가운데 한명을 보내겠소. 예수의 보내진 70중 한 명인 타데우스(다대오)가 에데사 왕국의 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왕은 그의 얼굴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고 엎드려 절을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환상이었다. 우리 왕이 죽을 병에 시달리더니 맛이 좀 간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시선이 문제가 아니다. 왕이 묻고 타데우스가 대답한다.

당신이 예수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한 제자입니까?”

왕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을 진심으로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입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왕이 예수와 성부를 믿는다고 고백하자 타데우스는 왕에게 손을 얹었다. 병은 순식간에 나았다. 타테우스는 그곳에 머물면서 왕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복음을 전했다. 아브가루스 왕은 성자로 추앙되어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511일을 그의 축일로 삼고 있다.

 

숙소에서 바라본 샨르우르파.

에데사는 로마를 거쳐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가 된다. 609년에는 페르시아에 정복당하지만 622년에 되찾는다. 하지만 638, 페르시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이슬람군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1087년에는 셀주크투르크 제국에 편입된다. 이 에데사가 역사, 특히 유럽사에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또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십자군 원정이었다. 1차 원정 때 참가한 젊은 지도자 보두앵 백작은 에데사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다. 그는 12년 동안 이 왕국을 통치 한 뒤, 예루살렘 왕국의 성묘 수호자였던 형 고드프루아가 사망하자 그곳 왕으로 옮겨간다. 그 뒤 에데사 왕국은 침체일로에 놓이게 된다. 결국은 11441224일 이슬람의 강자 젠기(장기)의 대대적 공세에 의해 무릎을 꿇고 만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스러운 크리스마스이브, 이 왕국에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 남자들은 모두 학살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서방세계는 죽 솥처럼 들끓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데사 왕국이 망한 데에는 그럴 만 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십자군 원정사를 읽을 때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다. 1차 십자군들이 어떻게 그리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십자군은 나라에서 보내는 군인이 아니라 개인들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병보충이 될 리 없었다. 싸우다 죽고 부상당해 죽고 늙어서 죽으니 병력은 갈수록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네 개의 나라를 세웠다. 물론 이슬람 세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자신들이 무단으로 점령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인 서방세계. 성스러운 도시 에데사를 탈환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2차 십자군이 출발하지만 땅 한 뼘 찾지 못하고 궤멸된다. 셀주크투르크 이후 에데사는 몽골, 티무르, 이집트의 맘룩 조 등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으로 치면 엄청나게 드센 팔자다. 1517년에 오스만투르크 땅이 된 뒤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1637년에는 지명이 에데사에서 우르파로 바뀌었는데, 그 근원은 이 지역을 거쳐 간 왕국 중의 하나인 오로아 또는 오흐하에서 온 것이다. 우르파가 오스만투르크가 아닌 다른 나라 땅이 되었던 적이 또 한 번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끝난 뒤. 독일편에 가담했던 오스만투르크가 패전국이 되면서 처음에는 영국군이 그 뒤에는 프랑스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슬람 민병대는 이곳을 시리아 영토로 포함시키려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1920411일에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1924년 이 지역은 새로 들어선 터키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샨르우르파라는 지금의 이름은 1984년 얻게 됐다. 샨르는 영광스러운이란 뜻으로 터키 혁명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도시들에게만 허용되는 명칭이다. 우르파 지역 주민들은 이 이름을 얻기 위해 10년 이상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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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스 강가의 전망 좋은 자리.

유프라테스강으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황금 빛 밀밭이 바람의 속삭임에 연신 자지러지고 강가의 미루나무들이 실눈으로 훔쳐보며 키들거리고 있다. 그 미루나무 잎을 사랑하여 큐피드 화살을 연신 쏘아대고 있는 태양. 황홀한 저물녘이다. 드디어 차가 멈추고 깊고 느리게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어머니의 강 유프라테스. 석양 아래 가로 누운 강은 장엄하다. 역시 강가의 좋은 자리는 음식점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건 세계 공통인가? 사람들이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사람은 없다. 황혼을 품은 유프라테스에서는 사람마저 풍경 속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송어 양념구이. 이 나라 사람들은 생선을 잘 안 먹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이 강에서 잡은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고 만다. 시원(始原)의 강 유프라테스가 살찌운 물고기 맛 좀 보고가나 했더니 그럴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한번 떠난 입맛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바람 부는 강가에 앉았으니 평소 같으면 돌구이가 나와도 허겁지겁 먹을 판인데 어떤 음식이든 거부반응부터 일어난다. 몸이 지쳐서 그런 것일까.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거참.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술을 안마시면 대체 어디서 마신다는 거야. 운치 같은 건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양반들 같으니라고. 포크를 들고 깨작거리고 있는 나를 보고 옆에 앉은 사람이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 이런 땐 어떻게 해야 되지? 그래, 억지로 좀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냐.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국위선양일 거야.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것 같다는 표정으로 송어구이를 구겨 넣는다. 속에서는 아우성이지만 국위선양의 길이 어디 그리 쉬우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식사를 즐긴다.

덕분에 더욱 무거워진 속을 달래며 어둠이 내리는 강가에 선다. 이곳에서 쇠유트라고 부르는 버드나무 가지들이 여위어 가는 강바람에 머리를 감는다. 사람이여, 사람들이여. 나른한 서글픔과 행복이 동시에 밀려온다. 깜빡거리는 작은 불빛들을 보며 대상도 없이 그립다라고 속삭여 본다. 그리워하는 건 여행자의 특권이려니.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에 가득 차는 저녁이다. 내가 이 강 앞에 설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던가. 그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강인 줄 알았다.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는 아라랏산까지 올라간다. 아라랏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당신은 공부 좀 한 사람이다. 바로 대홍수로 떠내려가던 노아의 방주가 멈췄다는 전설의 산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북동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이란과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쯤에 있다. 높이가 무려 5137m. 그 아라랏산에서 발원해서 722km를 흘러 내려오는 무라트강과 에르주름 북동쪽에서 발원한 카라강이 만나서 유프라테스강이 된다. 무라트강과 카라강의 합수머리에서, 유프라테스강이 그 짝인 티그리스강을 만나는 이라크 바스라 항구까지는 총 2,289km나 된다. 유프라테스는 잘 갖다 준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잘 갖다 주는 것만큼 고마운 존재가 어디 있으랴. 당연히 문명 하나쯤은 탄생시킬 만한 이름이다. 그리스어로는 풍요롭다는 뜻을 가졌다니 금상첨화다. 이보다 동쪽에서 흘러내려와 만나게 되는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지역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들어온 메소포타미아다. 대단한 뜻은 없다. 그저 강 사이의 땅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집트, 인더스, 황하문명과 함께 인류 4대 문명이라 일컫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잉태한 위대한 땅이다. 현재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시리아의 북동부, 이란의 남서부가 포함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BC 5000년부터 인류가 정착했으며 우르와 우루크, 아카드와 바빌로니아 제국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들이 이곳에서 명멸했다. 이 글을 읽은 분은 오늘 인류 문명사까지 공부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강, 미루나무, 강 위를 나르는 새, 그리고 구름.

말라티아 시내로 돌아온 건 제법 이슥한 시간. 남들이 시내 구경을 간 사이에 훌리아에게 한국말 교육을 시킬 겸 잡담을 나눈다. 말이 잡답이지 내겐 터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시간이다. 어쩌다 보니 남자들 군대 가는 얘기부터 나온다. 사방에 적이 많은 터키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하는 모병제를 택하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건 복무기간이 뒤죽박죽이라는 것. 대학졸업자는 6개월만 복무하면 군대생활 끝이다. 그럼 고졸은? 무려 15개월을 복무해야한다. 대학 못 간 것도 서러운 데 이런 치사한 경우가. 그게 끝이 아니다. 부자들은 1000달러만 내면 한 달 훈련으로 군대생활 종친다. 한마디로 무전(無錢) 뺑뺑이, 유전(有錢) 집으로. 너도 나도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돈을 벌려고 할 것 같다. 훌리아가 다른 얘기를 꺼낸다.

터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숫자가 뭔지 아세요?”

글쎄, 413이겠지.”

!! 7이랍니다.”

? 그 좋은 숫자를 왜?”

그냥 안 좋아해요. 그래서요. 터키 사람들은 이혼을 해도 결혼한 지 7년은 넘어야 잘 산다고 믿어요. 그래서 꾹꾹 참고 있다가 7년 되는 해 잽싸게 이혼해요.”

거참, 별 일도 다 있다. 그나저나 잘 살겠다는 놈이 이혼은 왜 한담? 터키 여자들은 보통 23~24세에 결혼을 하고 아이는 보통 2명 정도 낳는다.

동쪽 지방은 아직도 7~8명에서 11~12명까지 낳아요. 그래서 공장도 없고 할 일이 없으니까 애기나 낳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해는 지고 강은 쓸쓸해진다.

저녁 식사로 나온 송어구이.

그냥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지역 간 경제력의 차이가 심각하다는 말이겠지. 그런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쿠르드족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디야르바르크 등에서는 일거리를 찾으러 이스탄불로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터키도 요즘엔 결혼 안 하는 여자 많아요. 터키 남자들 바람 많이 피거든요. 저도 5년 사귄 제 남자 친구가 바람 피워서 헤어졌어요.”

흐흐, 얘는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려, 자랑이다. 한국 남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도 덤으로 얘기한다.

한국 남자들 터키에 여행 왔다가 다른 여자 만나면 저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터키 남자들은 절대 안 밝혀요. 그런 때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 오면 배터리 떨어졌다고 하고 끊어요.”

훌리아야, 그건 오해야. 한국 남자도 배터리 떨어지는 사람 많단다. 어디 가나 남자들은 비슷하지 뭐. 옆에서 이젯이 귀를 쫑긋 세우고 얘기를 듣고 있길래 둘이 사귀어 보는 건 어떠냐고 슬그머니 중매쟁이를 자청했더니 먼저 훌리아가 팔팔 뛴다.

아무리 없어도 죽을 때까지 이젯하고는 안 살아요.”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젯이라고 그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턱이 있나.

저도 마찬가지예요. 훌리아! 너 왜 그래. 내가 너 쳐다본 적 한 번도 없잖아.”

이거 괜히 중매 한번 했다가 애들 싸움 시키겠네. 하지만 은근히 재밌는데? 내가 볼 땐 둘이 딱 어울리는데 뭘 그렇게 정색하니? 더구나 너희는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문 아니냐. 그만한 인연이 어디 있어.

 

 

석양 그리고 강가의 여인.

말라티아 시내에 뜬 달.

터키에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은 2곳이다. 지난해 만났던 규벤이라는 친구가 다녔던 수도 앙카라의 앙카라대학이 있고, 이젯과 훌리아가 다닌 카파도키아의 에르지에스(Erciyes)대학이 있다. 에르지에스 대학은 2003년에 한국어과를 개설했는데 훌리아가 이젯보다 1년 먼저 입학했다. 나이하고는 거꾸로 선후배가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밥 먹듯이 티격대격 거린다. 물론 주도권은 훌리아가 쥐고 있지만. 훌리아가 대학에 들어가던 사연이 재미있다.

입학해보니까 25명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5명 튀었어요.”

? 그 좋은 과에 들어가서 중도에 포기해?”

한국말이 힘드니까요. 그리고 취직에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이 나라 젊은이들도 취직에 목숨을 걸은 건 우리와 마찬가지다.

그러는 훌리아는 왜 취직 안 되는 과를 선택했어?”

그게.”

거기에 기구한 사연이 있다. 처음 대입시험을 치렀는데 점수가 영 아니더란다. 맞아. 네가 공부 잘하게 생긴 스타일은 아니야. 그래도 한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아서 재수를 했는데 역시 점수는 제자리였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가보자 싶어서 대학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선택 자체가 고역이었다. 왜냐하면 터키에서는 대학을 25개까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이곳저곳 무작정 넣을 수밖에. 훌리아가 가고 싶은 과는 영어과였다. 하지만 커트라인이 높았다. 가고 싶은 대학에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순서대로 선택한 뒤 10번째까지는 이 도시 저 도시에 분산해서 넣었다.

 

 

척박한 산에도 조금의 틈이 있으면 살구나무를 심는다.

 

레벤트 협곡.

그러다가 15번째 선택한 게 한국어, 16번째가 일본어. 어차피 거기까지 갈 일은 없겠지 싶어 별 생각 없이 20번째까지 아시아 국가들을 선택했다. 20~24번째는 비워두느니 아랍국가를 지원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데도 아랍은 가기 싫어하는 모양이다.

전 최소한 이탈리아, 프랑스어과는 될 줄 알았거든요. 한 달 뒤에 인터넷에 들어 가보니 한국어문학과 합격을 축하합니다이 문구 딱 하나만 있는 거예요. 한국어과를 썼는지조차 몰랐거든요.”

한심하고 당혹스럽더란다. 집에 갔더니 아빠와 엄마가 행복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더라지. ‘진실을 말했더니 , 정신 차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하는 반응부터 나오더란다. 한국어가 뭐 어때서. 기분 안 좋은데? 그녀의 아빠는 딸이 영어선생 되는 게 소망이었단다. 그러니 한국어과는 정신 차려야 할 대상밖에 안 된 것이겠지. 그래도 어쩌나. 3수는 정말 하기 싫고. 입학을 반대하는 아빠와 싸우고 가출한 뒤 할머니 집에서 2주일을 살고 나서야 OK가 떨어졌단다. 이제 이젯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설마 이 친구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과를 택했겠지? 하지만 혹시는 역시로 끝난다. 재수 끝에 24번째로 선택한 과가 한국어과였단다. 어휴! 난 왜 이렇게 공부 못하는 애들하고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이 친구들의 한국 사랑은 각별하다. 한국에서 터키의 한국어과에 지원해주는 제도 같은 게 있으면 훨씬 활성화 될 것이라고 애정 어린 충고도 한다. 입학특전 같은 것을 좀 더 확대해도 좋고. 터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레벤트 협곡의 바위들. 자세히 보면 수많은 굴이 뚫려있다.

 

어느 노인이 내게 줬던 kenger이라는 풀. 감기, 냉방병에 직효란다.

대학 졸업생들은 한국기업에 취업하는 걸 선호한단다. 지금은 현대, 포스코, 금호, 효성 등이 진출해있다. 또 터키 사람들은 한국 전자제품을 무척 좋아한다. 믿을 수 있어서 좋다나. 기업 하는 분들이여, 제발 실망시키지 말기를. 훌리아의 이야기는 거미줄 뽑아내듯 술술 풀어진다. 참 명랑 유쾌한 처녀다. 터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순위는 1위가 군인, 2위가 경찰, 3위가 공무원이란다. 여자들은 교사를 가장 선호하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오후에는 살림이나 육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야기를 하라면 밤새라도 하겠지만 시간도 늦었고 해서 아쉽게 헤어진다.

 

 

산상화원.

184m 절벽에 세우고 있는 공중 테라스.

아크챠다흐는 레벤트 협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동네다. 버스는 평원 지대를 씽씽 달린다. 역시 살구밭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돌산이라도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개간해서 살구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지대가 높고 물이 귀하기 때문에 성장이 무척 늦다고 한다. 헐떡거리며 산정을 향해 오르던 차는 어느 순간 너른 언덕바지에 멈춰 선다. 차에서 내려 보니 고원지대 특유의 작은 꽃들이 바람을 피해 엎드려 있다. 모든 생명은 자연이 야박하게 굴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법. 그렇게 낮은 자세로도 온갖 색깔의 꽃들을 피워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잘못하다가는 날아갈 것 같아 허리를 잔뜩 구부린다. 조금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레벤트 협곡을 조망할 수 있는 공터가 나타난다. ~!! 다들 입을 다물 줄 모른다. 1400m의 고원지대에서 바라보는 골짜기는 갖가지 예술작품의 경연장처럼 화려하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광활한 땅에 카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를 심어놓은 듯한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협곡은 6500만 년 전까지 바다였다고 한다. 물이 빠지고 난 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래서 요즘도 물고기 화석이 발견된다. 28km 계곡에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128곳이나 된다. 헌데 신기한 일이다. 자세히 보면 마치 쌀밥에 박힌 강낭콩처럼 곳곳에 집들이 박혀 있다. 어떻게 이런 척박한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지? 하지만 이 협곡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을 품어왔다. 무려 9500년 전에 동굴살이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여러 문명이 이 땅을 거쳐 갔다. 히타이트, 로마,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자연과 시간이 만든 기기묘묘한 바위들.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무덤.

이곳에서는 주로 밀과 살구농사 등을 짓는데 옛날에는 벼농사도 지었다. 석회질 땅이라 척박한 것은 물론 물도 없었지만 눈 녹은 물을 받아 벼를 심었다. 인간의 끝없는 의지에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협곡은 무척 중요한 도로도 품고 있다. 일종의 교역통상로인데 말라티아에서 페르시아로 넘어가는 상품은 이 길을 거쳐서 갔다. 물건이 있으면 군침을 흘리는 사람도 있는 법. 전에는 동굴에 거주하는 산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산중왕이다. 가진 것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만화 같은 상황을 상상하며 혼자 웃는다. 지금도 동굴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세 가족이나. 이거 그냥 갈 수 없겠는데? 동행한 말라티아주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한다. 만약 성사가 안 되면 협곡으로 뛰어내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말라티아주에서는 이곳을 자연스포츠의 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무덤으로 가는 코스’(48km)강 따라 가는 코스’(28km) 등 트래킹 코스들을 만들었고 곧 25m짜리 번지점프대도 설치한다. 지금은 184m의 절벽에 공중테라스를 설치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폐교를 펜션으로 꾸며놓았다. 좋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으니 최대한 활용해야겠지. 하지만 너무 많은 삽질은 하지 마시길.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에만 인간의 욕심을 틈입시키도록. 이만큼 소망했으면 알아서 하겠지. 하긴 내 나라 강산도 못 지키는 주제에 오지랖 넓은 짓이다.

 

바위 무덤의 내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바위 꼭대기에 있는 숱한 동굴무덤들.

차를 타는데 저만치서 노인 한 분이 손짓하며 부른다. 차는 떠나려고 하고. 그래도 어른이 부르시는데. 뛰어가 봤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풀을 하나 뽑아든다. 엉겅퀴처럼 생겼는데 가시는 훨씬 더 날카로워 보인다. Kenger이라는 이름의 풀이란다. 꺾어서 하루정도 놔두면 수액이 나오는데 껌의 원료로 쓴다고 한다. 약재로도 쓰는데, 레몬과 설탕을 넣고 끓여서 먹으면 냉방병이나 감기에 즉효라나. 혹시 소화에는 도움이 안 되려나? 유프라테스강에서 국위선양을 한다면서 저녁을 억지로 먹은 뒤 속이 영 좋지 않다. 단단히 얹힌 모양이다. 아침을 건너뛰었는데도 마치 뱃속에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은 듯 단단하고 무겁다. 내겐 전혀 소용없는 풀이지만 노인의 성의가 고마워서 얼른 받아들고 차에 오른다. 고지대에서 자라서일까. 손을 콕콕 찌르는 가시.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이리 강한 가시를 지녔을까. 협곡 아래로 내려가 탐험을 계속한다. 28km의 계곡은 차를 타고서도 한참 걸린다. 가는 도중에 곳곳에 숨어있던 깜짝 놀랄만한 풍경들을 만난다. 여행자들을 위한 샘도 있다. 비바람과 시간이 빚은 기기묘묘한 바위들. 카파도키아에 있는 요정의 굴뚝은 높이가 5~10m에 불과하지만 이곳엔 40m~210m의 거대한 바위들도 있단다. 산위에는 로마시대 석관무덤도 있다. 큰 바위를 파서 시신을 안치했던 곳들이다. 로마시대 귀족들의 공동묘지였던 듯 주변엔 이런 석관무덤이 110개나 있다. 기독교가 생기기 전인 파가니즘(paganism, 무종교주의) 시대, BC3000~4000년경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무덤 앞에 서니 수천 년의 시간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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