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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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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 잔치 윷놀이'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5.09 [사라져가는 것들 7] 멍석5
2007. 5. 9. 18:50 사라져가는 것들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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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삼불산 너머 용골에 커다란 연못이 하나 있었느니라. 하루는 저 건너 양짓말에 사는 조씨라는 사람이 나무를 하러갔다가…" 막내손자를 무릎에 앉힌 할머니가 옛날얘기를 시작한다. 큰손자와 둘째도 눕거나 앉아서 귀를 기울인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니건만 아이들의 눈망울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또랑또랑 빛난다. 마당 한편에 놓은 모깃불에서는 연기와 풀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막내는 얘기를 듣다 잠들었는지 쌕쌕 숨소리가 고르다. 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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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아이의 얼굴에 천천히 부채질을 한다. 도깨비가 등장하는 옛날얘기가 절정에 달하면서 큰아이와 둘째는 할머니 곁으로 바투 당겨 앉는다. 그렇게 여름밤은 깊어간다.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곳은 주로 마당에 깔아놓은 밀방석(밀대로 짠 넓은 방석. 짚으로 짠 멍석보다 시원하지만 수명이 짧음)이나 멍석이었다.

'하던 짓도 멍석 깔아놓으면 안 한다'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그만큼 멍석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기본도구였다. 옛날에는 놀이를 하거나 굿판을 벌이기 위해 가장 먼저 멍석을 깔아놓았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나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노는 곳이라면 어디든 멍석이 따라다녔다. 멍석은 짚으로 촘촘하게 짜기 때문에 두껍고 탄력이 있으며 내구성도 좋다. 무엇보다도 맨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주는 기능이 탁월하다. 멍석과 관련된 속담은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강아지에게 메주멍석 맡긴 셈' '앉을 자리를 보고 멍석을 깔아라' '멍석구멍에 새앙쥐 눈뜨듯' '덕석이 멍석이라고 우긴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밀접해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멍석은 '휴대용 주거시설'이라고 할 정도로 필수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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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잔치가 있거나 상을 당했을 때는 가장 먼저 동네의 멍석을 모았다. 마당 가득 깔고 그 위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상을 놓았다. 혼례 때는 마당에 차려지는 혼례청에 먼저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머리 위에는 차일, 땅에는 멍석이 기본이었다. 윷놀이 판에서도 멍석은 요긴하게 쓰였다. 멍석의 탄력성이라야 윷가락이 튀거나 제멋대로 구르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도 멍석이 쓰이지 않는 곳은 없었다. 고추나 알곡을 널어 말리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었다. 추운 겨울이면 작은 멍석(덕석)을 소 잔등이에 덮어주어 따뜻함을 유지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장판을 할 만한 여력이 없는 가난한 집에서는 맨흙이 드러난 구들장 위에 깔기도 했으며, 뒷간에 걸어놓으면 훌륭한 문 대역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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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이 반드시 좋은 일에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골골마다 서민의 애환과 서글픈 사연도 많이 품고있다. 소위 양반이라는 이름의 권세가들이 자행한 집안 내 사형(私刑)인, 멍석말이에도 멍석은 요긴하게 쓰였다. 멍석말이는 한 집안 뿐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이뤄지기도 했다. 마을의 규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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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거나 어지럽힌 자를 벌하는 집단구타가 멍석말이이다. 거기에 왜 억울한 사연이 없으랴. 사람을 멍석에 말아서 때렸던 이유는 외상(外傷)이나 뼈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즉, 골병이 들거나 불구가 되는 것을 막아야 노동력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멍석말이를 당하면 뼈가 부러지는 건 막을 수 있지만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고 한다. 그 고통 또한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멍석은 또, 죄를 지은 자가 엎드려서 임금의 처분을 기다라는 석고대죄에도 쓰였다. 그 때 바닥에 까는 거적이 바로 멍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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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은 대개 장방형으로 짜는데 길이는 약 3미터, 폭은 보통 1.8미터 정도가 보통이었다. 네 귀퉁이에 손잡이 모양의 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소 굵은 새끼줄을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뒤 가로로는 짚을 넣어가며 촘촘하게 엮는다. 그 작업이 쉽지 않아 능숙한 사람이라도 한 장을 완성하려면 여러 날이 걸린다. 때로는 둥근 형태의 멍석을 짜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작은 것은 맷방석이라고 하여 맷돌질을 할 때 밑에 까는 용으로 사용한다. 농촌에서조차 '우리 것'들이 거의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는 지금도 멍석은 아직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만큼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멍석 역시 수명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아이 울음이 그친 지 오래인 농촌에서 멍석을 짤 이는 누구이며, 쓸 사람은 또 얼마나 있을까. 조곤조곤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존재처럼, 갈수록 기억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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