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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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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6 [사라져가는 것들 132] 매사냥5
2010. 2. 16. 08:41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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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줄기를 훑어 올라온 털이꾼들의 기척이 턱밑에 있다. 이젠 막바지다. 어디선가 꿩이 튀어오를 것이다. 오늘은 장끼라도 몇 마리 건지려나. 새벽녘에 꾼 꿈이 제법 괜찮았다. 산마루에 세워놓은 장승처럼, 꼼짝 않고 서 있던 봉받이(매를 부리는 사람, 매받이라고도 한다) 김 영감이 가볍게 몸을 떤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순간 속에 서 있었건만, 긴장은 늘 같은 무게로 전신을 훑는다. 어쩌면 통증, 아니다, 쾌감에 가깝다. 그는 잠깐, 이 순간 때문에 매를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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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버렁이(매를 받을 때 발톱으로부터 팔목을 보호하기 위해 끼는 두터운 장갑)에 박제처럼 앉아 눈만 굴리고 있던 참매 수지니도 몸을 한번 푸르르 턴다. 이 녀석도 긴장이란 걸 하는 것일까. 순간 김 영감의 머리가 곤두선다. 예감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털이꾼들의 함성이 먼저였는지 푸드득!! 소리가 먼저였는지는 모른다. 수탉만큼 큰 꿩이 하늘로 치솟는다. 새삼 당황할 건 없다. 김 영감이 팔을 가볍게 앞으로 민다. 입에서는 “매 나간다!!!”하는 소리가 터진다. 수지니가 버렁이를 박차고 오른다. 마치 힘껏 던진 돌멩이 하나가 하늘로 풍덩 빠져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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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 같다. 구원의 빛이라도 갈구하듯 높이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하늘로 솟든 땅으로 꺼지든 놓칠 수지니가 아니다.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하는 것 같더니 총알처럼 목표물을 덮친다. 두 마리의 날것이 교접이라도 하듯 공중에서 엉킨다. 꿩의 깃털이 흩날린다. 둘은 곧 한 덩어리가 된 채 숲으로 곤두박질친다. 김 영감이 그들이 떨어진 방향으로 달려간다. 털이꾼 두엇이 뒤를 따른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떨어져 다행이다. 꿩이 멀리 날아간 뒤 매가 덮쳐버리는 날에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멀리 떨어지면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향을 잡고 쫓아가보지만, 도착했을 땐 수풀 속에 잠긴 뒤니 어디 박혀있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런 때 유용한 것이 시치미(매 주인의 이름표. 꽁지 털 속에다 네모꼴의 뿔과 빼깃을 단다)와 함께 달아둔 방울이다. 쫓아가다가 방향을 잃게 되면 잠시 귀를 기울여 방울 소리를 찾는다. 매가 날카로운 부리로 쪼면 꿩이 몸부림치고 그때 방울이 울린다. 사냥꾼이 일찍 도착하면 살아 있는 꿩을 빼앗아 낼 수 있지만, 웬만큼 늦으면 꿩은 많이 상해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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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 몇 번 쪼이긴 했지만 비교적 성한 걸 건졌다. 많이 늦을 땐 매가 저 혼자 포식하고 날아가 버리는 수도 있다. 매는 아무리 잘 길들여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안 하거나 달아난다. 어쩌면 매란 녀석은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단지 먹이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허기질 만큼 먹여야한다. 김 영감이 허리에 맨 먹이주머니에서 닭다리를 꺼내 수지니 부리에 들이댄다. 그러면서 서서히 꿩을 빼내기 시작한다. 떼어낼 때에는 꿩을 쥔 다음 조금씩 빼앗아야 한다. 사냥을 한 매는 발톱에 온 힘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잡아당기면 발톱이 빠져 버리기도 한다. 김 영감의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떠오를 때 얼핏 본 것보다 꿩이 소담지다. 역시 꿈 덕 좀 보려는가 보다. “여남은 마리는 잡을 수 있으려나.” 혼잣말이 꽤 호기롭다. 열 댓 마리까지 잡은 적도 있었다. 이젠 꿩도 적어졌고 전만큼 흥도 오르지도 않는다. 김영감이 수지니 다리에 맨 끈을 감아쥐면서 닭다리를 입에서 떼어낸다. 사냥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먹이를 빼앗긴 수지니가 못마땅하다는 듯 푸르르 몸을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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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인 매를 날려 보내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것을 매사냥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방응(放鷹)이라고도 했다. 매사냥의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서 중국, 한국, 일본, 유럽 등으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생계수단으로 매사냥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왕족 및 귀족들이 레저로 즐겼다. 고려시대에는 매의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鷹坊)까지 설치했는데, 충렬왕은 매사냥에 빠져서 민간에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조에 들어서도 왕조실록에 응방과 응방군까지 언급된 걸로 볼 때 매사냥이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태종은 매사냥을 자주 즐겼으며, 연산군 때는 매사냥 때문에 백성이 고통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종 때는 일부 폐지하기도 했지만 민간의 매사냥은 금지하지 않았다. 후대로 가면서는 일반 백성의 놀이문화로 정착되어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자료에는 매사냥 허가를 받은 사람이 1,740명에 달했다고 기록돼 있다. 매사냥에 쓰는 매는 크게 매목의 매과와 매목 수리과 두 분류로 나눈다. 일반적으로는 두 분류를 합쳐서 ‘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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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매과는 송골매인데, 날개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빠른 스피드가 주특기다. 공중에서 급강하하여 사냥감을 채며, 날면서도 먹이를 뜯어 먹는 습성이 있다. 또한 부리에 포유류의 송곳니와 같은 한 쌍의 치상돌기(부리칼)가 있어 일격에 사냥감의 목뼈를 부러트려 즉사 시킨다. 수리과를 대표하는 것은 참매(보라매)다. 날개폭이 넓고 길이가 짧아 장애물이 있는 산속이나 들판에서 사냥을 잘 한다. 이 매는 지상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의 숨통을 쥐고 질식시킨 뒤 부리로 가슴팍을 뜯어내고 심장을 터트려 죽인다. 송골매는 거의 사라져버리고 요즘 매사냥은 대부분 참매를 길들여서 쓴다.
매사냥꾼들은 매를 잡는 것을 ‘하늘에서 받는다’고 한다. 가을걷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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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뒤 날을 받아 목욕재계하고 제를 올린다. 매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기둥을 세우고 그물을 쳐야한다. 미끼는 살아있는 비둘기를 쓴다. 보이지 않게 숨어서 비둘기 다리를 묶은 끈을 2~3분에 한번 씩 당겨줘야 한다. 매는 경계심이 많기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길어질 수도 있다. 경계가 풀린 매가 어느 순간 비둘기를 덮치면 그물에 걸린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놀라지 않게 눈을 덮어주고 매를 보내준 하늘에 감사를 드린다.
이 땅에 남아있는 전문 매사냥꾼(응사 鷹師)은 단 2명이다. 그 중 하나가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8호 매사냥 기능보유자인 박용순씨다. 그는 대전시 동구 이사동에 고려응방을 열고 매사냥을 전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산에 놀러갔다가 새매새끼를 주워와 기르기 시작한 게 40년 인연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매에 대한 사랑과 매사냥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응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연을 좋아하고 매와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될 수가 없지요.”
평생을 매와 함께 해온 박용순씨. 매를 손 위에 올려놓은 그와 마주 서 있으면 사람이 매인지 매가 사람인지 혼돈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매에 ‘미친’ 가장과 살아간다는 건, 가족들에게는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생업이 안 되니 가족들이 좋아할 리 없지요. 한 때는 마누라가 '매하고 살라’면서 이혼하자고 합디다. 허허”
매는 국가에서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다. 그래서 잡거나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무형문화재인 박용순씨조차 관리자 자격으로 임시로 맡아두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매사냥 자체를 배우려고 해도 배울 방법이 없다.
“매사냥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풍류이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민속입니다. 수천 년 동안 위로는 왕에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즐겨오던 것이지요. 그 명맥을 이어 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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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그의 소망은 매사냥을 조건부로라도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즉,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교육을 받은 사람에 한해 매사냥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레저 활동이 뭐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껏 PC방이나 틀어박혀 있는 것이지요. 그 아이들을 들과 산으로 불러내어 심신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오죽 좋겠습니까. 그걸 위해 10년 넘게 쫓아다녔는데, 그때마다 공무원들은 ‘억울하면 법을 만들어라’고만 합디다.”
어차피 매사냥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날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도 드물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매를 받고 길들일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더구나 바쁜 요즘 사람들이 엽총을 놔두고 매사냥에 매달릴 턱이 없다. 하지만 이 땅에 긴 세월동안 매사냥이란 게 존재했다는 걸 후세에 전해주고자 하는 목소리가 그냥 스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사진제공 : 서울신문 안주영 기자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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