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말타기'에 해당되는 글 1

  1. 2009.03.09 [사라져가는 것들 101] 말뚝박기놀이22
2009. 3. 9. 10:29 사라져가는 것들

인터넷 검색을 하는 중, 사진 하나가 눈길을 확 끌어당겼습니다.
어느 계곡 같은 곳에서 젊은 남녀들이 말뚝박기놀이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 한 가닥이 절로 걸렸습니다.
아직도 이런 걸 하고 노는구나….
이왕이면,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찾아봤더니 재미있는 사진이 꽤 여러 장 있었습니다.
학교교정에서 여중생들이 말뚝박기를 하는, 조금 민망한(?) 장면도 있었고요.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말뚝박기놀이를 아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한때는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부활을 했다지요.
특히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말뚝박기놀이에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분명 남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였는데, 언제부턴가 여자놀이로 둔갑한 모양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여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뚝박기놀이의 실태에 대해, 졸업생의 ‘증언’을 들어봤습니다.
우선, 복장이 중요하다더군요.
교복 치마허리를 돌돌 말아서 무릎 위로 짧게 올리는 게 맨 먼저 하는 준비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는다지요?
약간 ‘격한’ 친구들은 그 체육복바지마저도 무릎까지 걷어 올려 전의를 다진다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왕 체육복을 입었는데, 거추장스럽게 치마를 왜 입지?
그랬더니, 치마를 벗고 체육복만 입거나 혹은 체육복 없이 치마만 입으면 ‘간지’가 안 난답니다.
예를 들어 체육복만 입었을 경우 고쟁이만 입은 것과 다름없다나요?
교복치마에 체육복 바지를 함께 입어야, 말뚝박기를 위해 제대로 한 세트 차려입은 것 이라는 거지요.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느냐고 물었더니, 가시나들이 그런 놀이를 한다고 선생님‧부모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답니다.
그래도 끊을 수가 없었다는군요.
여학교의 말뚝박기놀이에는 상대편을 괴롭히기 위한 다양한 기술도 전개된다고 합니다.
높이뛰기를 하는 것처럼, 몸을 틀면서 올라타기‧올라탄 뒤에 위에서 내리찍기‧무릎으로 찍기‧손 안대고 올라타기….

말뚝박기놀이는 말타기라고도 부르는 집단놀이입니다.
말은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었지요.
전장의 장수나 행세깨나 한다는 사람들만 탈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죽을 때까지 말 한번 타보기 어려운 민초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일종의 보상심리로 아이들끼리 이런 놀이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놀이의 방법이야 다 알겠지요.
하지만 언젠가 기록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순서대로 적어봅니다.
먼저 편을 둘로 나누게 되지요.
이 때 양쪽 ‘선수’들 간에 균형을 잘 맞춰야 적절히 공수교대가 가능해지고 재미있어집니다.
부실한 친구들이 꼭 있거든요.
그러다보면 그 친구 쪽만 집중공략하게 되고 지는 편은 매번 지게 됩니다.
편이 갈라지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편에서 맨 앞에 마부를 세우고 나머지 아이들은 머리를 앞사람 가랑이에 끼우고 두 다리를 꽉 잡은 채 엎드립니다.
다소 민망한 자세의 긴 말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긴 편은 차례로 달려와 말 등에 올라타게 됩니다.
앞에 탈수록 말의 맨 앞까지 가야하기 때문에(그렇지 못할 경우 뒤에 타는 아이에게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음) 가능하면 날렵한 아이를 앞세우게 됩니다.
그 아이는 멀리서부터 뛰어 거의 날다시피 하지요.
인원이 많아서 말이 길어질수록, 거의 경공술 수준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그때의 충격을 못 이겨 말이 쓰러지거나 대열이 무너지면 진 걸로 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반대로 말을 타는 사람이 떨어지거나 발이 땅에 닿으면 공격과 수비가 교체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말 등에 다 올라타면 맨 앞의 기수와 마부가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여기서 마부가 이기면 말이 바뀌지만 만약 지게 되면 또다시 말이 됩니다.
친구들의 엉덩이에 깔려서 끙끙거리면서도 이번엔 이기겠지 기대하던 아이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신음과 비난이 터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이야 이런 놀이가 아니어도 재미있는 게 얼마든지 있지만, 전에는 최고의 단체놀이 중 하나였습니다.
특별한 기구나 장소가 필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개구쟁이들 몇 명만 모이면 가능했지요.
겨울엔 양지바른 담장 및, 여름엔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면 누군가가 말뚝박기를 제안합니다.
자연스럽게 팀이 짜여 지고 아이들은 해 지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지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축구공 하나 변변치 못하던 시절,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 으슥한 곳에서 꼬마들의 함성이 솟아올랐지요.
그러다가 선생님께 혼쭐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른들이야 늘 걱정이 많으니까요.
“그러다 허리 다친다, 이놈들아.”
“점심 먹은 배 다 꺼진다, 이 녀석들아.”
농촌도 어촌도 산골도 텅텅 비어버린 지금이야 모두 옛이야기일 뿐이지요.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