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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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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아마라톤'에 해당되는 글 1

  1. 2011.12.05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9] 시골마을에서 보낸 한나절22


* 이왕 읽어주실 거라면
1회부터^^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각 수정하겠습니다.

우연히 머물게 된 마을의 모스크와 첨탑.

식물학대? 조롱박에 새겨진 이니셜이 재미있다.


시골동네를 혼자 거닐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큐팀의 일정을 체크해보니 울트라마라톤 참가 선수들 인터뷰가 잡혔다고 한다. 울트라마라톤은 2000년 전 리키아의 도시들을 달리는 것인데 그 거리가 무려 240km, 정식마라톤의 6배에 가깝다. 공식명칭은 리키안웨이 마라톤. 올해가 2회째다. 내일 새벽에 출발한다니 그때나 만나볼 생각으로 다큐팀과 따로 움직이기로 한다. 몸 상태도 그리 좋지 않은데다, 고즈넉한 시골길을 혼자 걷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행과 헤어진 곳은 유령도시카야쾨이로 들어가기 전의 조그만 마을. 마라톤 출발지가 그 근처다. 동네 이름은 KÖI MUHTARLIGI(?) 이 이름을 100% 장담하지 못하는 건 말이 통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돌무시(Dolmus, 미니버스) 정류장의 간판을 베꼈기 때문이다. 터키의 시골동네는 우리의 시골과 별로 다르지 않다. 마치, 아주 오래된 면소재지쯤 거니는 것 같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잘 가꿔놓은 화단. 한쪽에는 조롱박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그 중 하나에 누군가 ‘GS’라고 큼직하게 새겨놓은 걸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심은 사람이 이건 내거야하는 뜻에서 이니셜을 새겨놓은 것일까? 한쪽에서는 석류가 익어간다. 터키, 지중해 쪽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본 과일 중 하나가 석류다. 시장에서는 빨갛게 벌어진 석류를 즉석에서 주스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마을 곳곳에 석류가 지천이었다.

이발소 앞의 평상? 손님이 없을 때 이발사가 쉬는 곳인 듯.

조롱박과 석류를 구경하다보니 ‘BERBER’이라고 세로로 써놓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발소라는 말 ‘barber’의 터키식 표기인 모양이다. 아니면 barber의 오기(誤記)일 수도. 터키는 라틴문자를 빌려서 만든 문자로 자신들의 말을 표기한다. 과거 튀르크 제국 시대에 세워진 오르혼(Orkhon) 비문을 보면 자체적인 문자를 갖고 있었지만 제국이 멸망하면서 문자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가 망하면 글자까지 조국을 잃는 것이다. 그 뒤 튀르크인들은 오랫동안 아랍 문자를 빌려서 자신들의 말을 적었다. 하지만 배우기가 무척 어려울 뿐 아니라 악센트가 거의 없는 터키말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는 2% 부족한 감이 있었다. 여기서 다시 터키의 아버지 아타 튀르크, 즉 무스타마 케말이 등장한다. 터키공화국이 건립될 당시, 인구의 90% 가까이는 문맹이었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케말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로 한다. 우리의 세종대왕이 그랬듯이, 위대한 통치자(혹은 독재자)들은 백성을 위하는 것부터가 남다르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케말 정부는 1928년 새로운 문자를 발표한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글자를 가르쳤고 온 국민이 익힐 수 있도록 교육했다. 새 문자는 배우기가 쉬워서 요즘은 문맹률이 거의 0수준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동네 이발소.


터키 글자 한번 배워볼까요?

글자는 영어 알파벳과 비슷하고 어순은 우리말과 같아서 한국인도 배우기 쉽다고 한다. 다큐팀의 코디네이터로 현지에서 합류한 엄상욱 씨 말에 따르면, 빠른 사람은 3개월이면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자모체계는 자음 21개와 모음 8, 모두 29개로 이뤄져 있는데, 순서는 알파벳과 똑 같고 발음을 보충하기 위해서 중간 중간에 Ç Ü Ö 등이 추가돼 있다. 영어와 비슷한 단어들도 많다. 예를 들면 은행이라는 단어 bank‘banka’로 쓰고 반카로 읽는다. 느닷없는 터키어 공부는 이쯤 하고, ‘BERBER’라 썼든 barber’라 썼든 내가 서 있는 곳이 이발소 앞인 것만은 틀림없다. 손님은 단 둘.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지고 수염이 탐스러운 이발사는 꼬마아이의 머리를 깎고 있다. 사방이 유리로 돼 있어서 이발소 안의 풍경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의자도 사람도 우리의 옛 모습과 비슷하다. 아이의 찡그린 표정도 어찌 그리 정겨운지. 마치 거울 속에 있는 어릴 적 나를 만나는 것 같다. 키가 작은 저 아이의 엉덩이 아래에는 빨래판 같은 게 놓여 있지 않을까? 혹시 머리에 땜빵(기계충 자국)은 없을까? 괜스레 머릿속에 온갖 그림을 그려본다.

 

저 개에게 심한 위협을 당했다. 저만치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어디 가나 개조심!!

기웃기웃 들여다보다 소파에 앉아있던 노인과 눈이 마주친다. 쉽게 웃어주는 터키의 젊은이들과 달리 엄숙한 표정에 변화가 없다. 한마디로 네 이놈, 거기서 뭐하는 게냐?’ 하는 얼굴. 그러고 보니 터키의 젊은이들과 달리 노인들의 표정은 좀 무겁다. 석관이 있던 거리에서 마주친 노인들도 정물화속 인물 같았다. 격동의 시절을 살아온 우리네 노인들처럼, 삶의 핍박이 표정마저 빼앗아간 것일까. 이발소 앞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작정 같은 건 없다. 그저 두 다리를 내비게이션 삼아 걸을 뿐. 마을 한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가는데 커다란 철대문 안쪽에서 작은 여자 아이 하나가 낑낑거리며 문을 열고 있다. 집에서 타고 나온 자전거는 곁에 자빠트려 두었다. 도와주려고 가까이 가는 순간, 끼이익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린다. 헛걸음! 머리를 나풀거리며 뛰어간 소녀는 금방 돌아온다. 손에는 달걀이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있다. 이번엔 문을 여는데 애 좀 먹는다. 한손에 달걀을 들었으니 놓을 수도 없고. 얼른 뛰어가 문을 밀어준다. 문이 쉽게 열린 건 좋았는데, 그 대가로 나는 위기에 직면한다. 저만치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컹컹거리며 바람처럼 달려온다. 낯선 사람이 제 어린 주인을 해치는 줄 안 모양이다. !! 이 먼 곳까지 와서 개한테 물려죽는구나.

개에게 놀란 내게 미소를 보여주던 카페 여주인.

저 여인은 지붕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을 닫은 또 하나의 이발소.


개에게 물릴뻔한 순간

다행이 안으로 들어간 아이가 얼른 문을 닫는다. 그러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얼마나 큰 집에서 살기에 집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나. 경황없는 중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집자리의 규모에 감탄부터 한다. 개는 아직도 대문 앞에서 컹컹 짖어대며 을 공격할 기회를 노린다. 엄청나게 크고 무섭게 생겼다. 그제야 대문에 그려놓은 개 조심이라는(이라고 짐작되는) 글자가 보인다. 겁을 주려는지 개도 함께 그려놨는데 실제보다 더 무섭게 생겼다. 저게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그렇게 무서워했던 캉갈이란 개인가? 그냥 지나갈 걸 괜히 오지랖 넓은 짓을 해가지고. 놀란 가슴을 달래며 뒷걸음질을 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카페 여주인이 지켜보고 있다가 눈을 마주치자 빙그레 웃는다. 저게 무슨 뜻이지? 고소하다는? 괜찮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아니면 너 맘에 든다는? 그래도 그녀의 미소를 보니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된다. 몇 마디 나눠보고 싶지만 손짓 발짓만 하다 그칠 것 같아서 그만 둔다. 다시 걸음을 옮겨 돌무시 정류장에도 앉아보고 여기저기 사진도 찍는다. 지붕 위에 올라가 뭔가 일을 하는 여인의 뒤로 모스크의 첨탑이 파랗게 빛난다. 아직도 이렇게 뜨겁지만 가을이 저만치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이 조금씩 여물어 가고 있다.

축구공을 굴리며 친구를 찾아가는 아이.

옛날 우물에 간판과 메뉴를 달아놓은 카페.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들.

걸음을 옮기다가 축구공을 몰고 오는 아이와 마주친다. 씩 웃어줬지만 공에 정신이 빼앗긴 녀석은 그냥 지나간다. 짜식~ 한번만 웃어주지. 잠시 뒤 또 다른 이발소와 마주친다. 그런데 여긴 BERBER가 아니라 BARBER라고 썼다. 하지만 문을 닫은 듯 쇠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저쪽의 BERBER는 목하 성업 중인데 BARBER는 망하다니. 간판을 영어식으로 써서 그랬을까? 그럼 BERBER네 아저씨 머리는 누가 깎아주나? 나그네는 쓸데없이 궁금한 게 많다. 우물이 있던 자리를 예쁘게 꾸며놓고 간판을 세워둔 카페 앞에 이른다. 마당 그늘에는 노인들이 여럿 앉아서 무언가 하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주사위와 말판이 보인다. , 저게 타블라스라는 게임인 모양이구나. 모두들 게임에 푹 빠져서 누가 왔는지 가는지도 모른다. 고스톱이라면 나도 한판 끼어볼 텐데. 다시 이리저리 배회한다. 평생 살면서, 아니 어른이 되어서 이런 시간을 가져본지가 언제던가. 전국을 내 집 마당처럼 쏘아 다니면서도 늘 쫓겨 다녔다. 오늘은 맘 놓고 게으름 한번 피워보자. 조금 커 보이는 슈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베개만한 빵들이 진열돼 있다. 이젠 시골에서도 식사용 빵을 직접 만들지 않고 가게에서 사다먹나 보다. 물을 사러오는 사람도 많다. 터키는 물에 석회질이 많아서 그냥 먹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밖에도 수박, 메론, 사과, 감자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오래 머물렀던 슈퍼마켓.

슈퍼마켓의 베개만한 빵들.


슈퍼에서 만난 소녀

목이 마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소녀 하나가 의자에 앉아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부모님 대신 가게를 지키는 것 같다. 아이가 참 예쁘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고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상냥하게 웃는다. 귀여운 것. 이 정도면 OK라는 뜻. 찰칵! 셔터를 누르는데 손을 흔들며 또 한 번 살짝 웃어준다. 심봤다!!! 소녀와 눈인사를 하고 나와 가게 맞은 편, 길 건너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이것저것 메모를 한다. 한참 뒤 심상찮은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동네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나를 구경하고 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관심 가득한 눈길로 나를 흘끔거린다. 심지어 아이들은 내 곁을 뱅뱅 돈다. 소문이 났는지 일부러 구경삼아 나와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느닷없이 나타난 작달막한(그렇다고 그들이 큰 건 아니지만) 동양인이 이렇게 오랫동안 동네에 앉아있는 걸 처음 보는 모양이다. 양 손에 생수통을 들고 가던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이가 거의 빠져서 입이 동굴처럼 컴컴하다. 내 할아버지를 먼 나라 땅에서 만난 기분이다. 이번엔 서양인이 지나간다. 그도 눈웃음을 짓는다. 에라, 이런 땐 무조건 “Hi”. 그도 “Hi”로 대답한다. 나그네끼리 인사쯤이야 인색할 게 뭐 있으랴. 마음이 넉넉해진다.

 

슈퍼마켓의 예쁜 소녀.

어차피 줄 것도 없는데 구경거리 좀 된들 어떠랴. 이 나라 사람들 호기심 많은 거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예쁜 아가씨 둘이 힐끗 힐끗 쳐다보며 가길래 손을 흔들어줬더니 웃음이 구슬처럼 쏟아져 길 위에 구른다. 그래, 떨어지는 낙엽에도 깔깔거릴 나이긴 하다. 이 동네 괜찮은데 눌러 살까? 잠시 뒤 아이 아버지, 즉 슈퍼의 사장이 돌아온다. 이 친구는 내가 좀 구체적으로 이상한 모양이다. 자기 가게 앞에 앉아서 수첩에 연신 뭔가 적지를 않나,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질 않나. ‘저놈이 대체 누구지? 세무서에서 나왔나? 애들 시켜서 확 묻어버려?’ 그의 복잡한 머릿속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사실 그는 순둥이처럼 생겼다. 그래서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도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용기를 내어 곁으로 오더니 수첩을 들여다본다. “Do you know Korea?” “”(이 자식, 뭐라는 거야?) 돌아오는 건 어색한 표정뿐이다. 영어가 금시초문인지 코리아가 초문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양쪽 모두일 것이라고 짐작만 해본다. 터키에 와서 코리아라는 단어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하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한글이라고 알 턱이 있나. 수첩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뭐 이런 글씨가 다 있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떠날 때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 자전거를 타고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다.


아저씨의 순박한 미소

이렇게 말도 안 통하는 상태에서 착한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겉보리 훔쳐 먹은 말처럼 잇몸까지 보여주며 히히힝~ 웃어주는 수밖에. 그제야 그도 경계를 풀고 미소를 베어 문다. 얼굴 가득 순박이라고 씌어있다. 어쩌면 이 미소를 보기 위해 이 동네를 서성거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잃어버린 웃음. 그렇지만 그는 웃음 정도로는 확신이 안 서는지 뭉그적거리고 서서 탐색을 계속한다. 세무서에서 보낸 간첩 아니라니까요. 에구, 답답해라. 당신의 딸이 예쁘니까 좋은 얘기만 써줄게요. 아참, 내겐 무기가 있지. “아저씨, 가게 앞에 가서 서보세요. 사진 멋있게 찍어줄게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손짓 발짓이다. 그래도 뜻은 금세 통한다. 얼른 가게 앞으로 가서 선다. 하지만 표정은 밀랍인형처럼 굳어있다. 그래도 기념으로 찰칵!!! 나중에 확인해 보니 사진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긴, 피곤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고 저녁 무렵인데도 ISO를 안 높였으니 흔들릴 만도 하다. 주소를 모르니 어차피 보내줄 수도 없지만, 성의껏 포즈를 잡아준 아저씨에게 미안하다. (미안해요, 슈퍼아저씨!) 어느덧 석양이 산마루에 걸린다. 이제 돌아갈 시간. 오랜 시간 신세를 진 벤치에서 일어서는데 자전거를 세워놓고 놀던 아이가 힘차게 손을 흔든다. 근처에 있던 동네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배웅을 한다. 나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마치 명예주민이라도 된 듯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나 정말 여기서 살까봐.

 

미소로 정을 나눈 슈퍼마켓 사장님. 피곤이 극에 달해 사진이 형편없이 흔들렸다.

일행과 합류해서 돌아오는 길에도 자꾸 마을 쪽으로 시선이 간다. 이 작은 동네에서 보낸 한 나절이 화석처럼 가슴 깊이 박혔다. 시간은 어찌 그리 느릿느릿 흐르던지, 그곳에서는 하루가 48시간은 될 것 같았다. 이 글을 읽은 분 중에 터키 카야쾨이에 가셨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서 EKiZLER MARKET라는 간판을 보시거든 꼭 들어가 보시길. 간판 끝에 적힌 TEL 618 0106 같은 숫자는 신경 쓰지 마시길. 가게 안에 예쁜 소녀가 앉아있거든, 어느 늦여름 날 다녀간 동양인 하나 기억하느냐고 물어봐 주시길. 고개를 끄떡이거든, 그 사내가 두고 떠난 영혼 한 자락 아직 잘 있느냐고 물어나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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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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