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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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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04 [백두산을 가다 2] 탈도 많았던 심양의 첫날 밤4
2011. 7. 4. 08:38 백두산을 가다

조상의 발자취 아득한데
공항을 나선 버스는 심양시내를 달립니다. 목적지는 심양의 한인촌(코리아타운)인 서탑가(西塔街). 심양(瀋陽), 중국 발음으로는 센양(Shenyang)쯤 되는 도시. 요녕성(遼寧省, 랴오닝성, Liaoning)의 성도(省都)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곳은 아닙니다. 과거 고구려의 영토였고 발해의 영향권에 있었던 곳이지요. 그 뿐 아닙니다.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혹은 나라의 독립을 이루겠다는 큰 뜻을 품고, 그도 저도 아니면 먹고 사는 게 좀 나아질까 해서 국경을 넘은 우리 선조들 중에 심양까지 간 분들도 있었습니다. 자주 듣던 만주 봉천이 바로 이곳입니다. 농담 삼아 하는 말로 만주에서 개 타고 말 장사할 때.” 어쩌고 하는 소리 들어본 분들도 많을 겁니다.

여진족이라 불렸던 만주인이 세운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이 이곳 심양에서 깃발을 올렸습니다. 청 태조(누루하치), 태종 때에는 수도로 삼아 성경(盛京)이라 불렀지요. 그 후 북경(北京,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봉천부(奉天府)를 설치하게 됩니다. 그 심양이 2차대전이 끝난 뒤 길림성(지린성, 吉林省요녕성(랴오닝성, 遼寧省흑룡강성(헤이룽장성, 黑龍江省)을 아우르는 중국 동북3성의 최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중국에서도 10번째 이내에 드는 도시라고 합니다. 개발붐은 중국의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이곳까지 예외가 아니어서 곳곳에 빌딩이 키를 재고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요란합니다.

코리아타운, 서탑거리
퇴근길의 복잡한 도로를 한참 달리던 버스가 비교적 한적한 거리에 일행을 내려놓습니다. ‘西塔街라고 쓰인 커다란 입간판을 지나자 느닷없이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여기 중국 맞아? 곳곳에 낯익은 한글 간판들. 한국의 어느 거리로 순간 이동한 것 같습니다. 말은 안 붙여봤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한국 사람일 것 같다는 착각이 듭니다. 횟집도 있고 백화점 같은 큰 상점도 있고. 가장 눈에 띄는 건 룸살롱입니다. 중국 사람들의 KTV(원래는 가라오케TV에서 나온 말로 노래방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룸살롱처럼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이 됐다고 한다)와 구분하기 위

해서인지 한글로 ‘**룸싸롱이라고 분명하게 써놓아 더욱 눈에 띕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역시 물장사가 최고인 모양입니다.

 코리아타운이라고는 하지만 관광객이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애당초 쇼핑은 안 하기로 했기 때문에 물건을 살 일도 없고, 가이드를 따라 설렁설렁 돌아보는 게 전부입니다. 구경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이 우리 민족이 지고온 고난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얹힙니다.  이 낯선 땅에 집단 거주지가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과 눈물이 있었으랴. 중심가를 벗어날 무렵 가이드가 한 식당으로 일행을 안내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기내식으로 먹은 밥은 아직도 뱃속에 원기왕성하게 남아 있는데.

북한식당에서 벌어진 일
들어가면서 보니 간판이나 분위기로 볼 때 말로만 듣던 북한식당입니다. 규모가 굉장히 큽니다. 전에 중국을 몇 번 왔지만 북한식당에서 식사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거부감이 들 이유 같은 건 없고, 되레 좀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일행들 사이에서 약간의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한두 분은 조금 당황한 표정까지 짓습니다. 평화보다는 냉전의 시대를 더 오래 살아온 분들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복을 날아갈듯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 밝은 인사로 맞이합니다. 역시, 곱긴 곱구나. 새삼 남남북녀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2층에 있는 방 중 하나로 안내돼 들어갔는데 14명 전부가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원탁형 식탁이 놓여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어른들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 마당에,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에 바늘을 찌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가씨가 들어와 물병과 김치를 갖다 놓더니 그 다음은 감감무소식입니다.

표정이 내내 굳어있던 어른 한 분이 아가씨를 부르더니 음식은 언제 주려고 김치만 갖다놓고 마느냐고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나무랍니다. 아가씨의 표정이 거북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그녀가 나가자 이번엔 가이드가 불려 들어와 경을 칩니다. 친구로 보이는 다른 한 분도 옆에서 거듭니다. “누가 북한식당으로 오랬어.” 가이드가 이곳은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니고 중국인이 주인인데 북한 아가씨들을 고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고성과 짜증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북한 사람이라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갈고 다시 자는 체질인 것 같습니다. 집권자가 밉다고 해서 타국까지 돈 벌러 나온 사람들까지 그리 취급할 건 뭐람? 저 역시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좀 황당해하는 표정입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고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니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싸늘하게 변합니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북한 아가씨는 아예 들어올 생각도 안 하고 가이드만 불난 집 며느리처럼 들락거린 뒤에야 음식이 나옵니다. 준비가 안 돼 있었거나 다른 손님들이 많아서 늦어진 것 같습니다. 모두들 묵묵히 밥을 떠 넣습니다. 식사시간이 아니라 벌 받는 것 같은 시간. 중국에서의 첫 식사가 이 모양이라니. 슬그머니 화가 치솟지만 그저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화를 낸 어른은 6.25때 피난을 내려온 분이라고 합니다. 먼발치에서나마 고향 땅을 바라보기 위해 압록강, 금강산을 찾아온 것이지요.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났지만 북쪽의 위정자들에 대한 증오는 조금도 식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니 갈수록 더해 가는지도. 남의 나라에서 민족의 비극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박카스가 기가 막혀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었습니다. 호텔은 비교적 양호합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쉐라톤호텔. 내일부터는 호텔의 급수가 여기보다 떨어진다니 오늘 밤이라도 만끽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을 혼자 배정 받은 제게는 쓸쓸한 밤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술을 마시거나 이국의 밤을 쏘아 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 체질들이거든요. 마눌님들을 호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뒤 감감무소식입니다. 의리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혼자 밖으로 나가기는 그렇고,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해간 술을 혼자 마신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었는가 싶었는데 전화벨이 마구 떠들어댑니다. 예고됐던 모닝콜.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입니다. 이건 뭐 군대보다도 더 고된 여행입니다. 호텔식으로 아침으로 먹고 차에 오르니 어른들은 벌써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젊은 것들이 게을러 터져서하는 소리가 쏟아질 것 같아 슬슬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습니다. 어젯밤의 그 험악했던 분위기가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그런 분위기를 한방에 깨버리는 작은 해프닝은 출발 바로 전에 일어났습니다. 일행 중에 혼자 오신 어른이 계셨는데, 누가 와서 호텔로 다시 모셔갑니다. 한참 뒤에 나온 어른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더니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느냐는 듯 큰 소리로 외칩니다. “무슨 박카스가 6천원이나 혀! 우리 동네 같으면 그 돈으로 열 병도 더 마셔박카스가 6천원? 이게 무슨 소리? ! 그걸 드셨구나. 대충 상황이 그려졌습니다. 침대 머리맡에는 우리나라 박카스와 흡사하게 생긴 음료수가 하나씩 놓여있었습니다. 세상을 똘똘하게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바가지라는 걸 알고 소 닭 보듯 했지만, 그 어른은 이까짓 거 돈을 받겠느냐 생각하고 덜컥 마셔버린 겁니다. 그런데 6천원 씩이나 내라니. 불만 가득 찬 목소리는 좀체 그칠 줄 몰랐습니다. 덕분에 냉랭했던 차 안은 키득거리는 웃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를 한방에 바꿔주신 어른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드립니다.

오늘 일정은 고구려 땅 집안(集安, Jian))의 압록강과 광개토대왕비, 그리고 장수왕릉.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사람들을 실은 버스가 심양을 힘차게 출발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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