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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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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장이'에 해당되는 글 1

  1. 2010.05.31 [사라져가는 것들 139] 땜장이11
2010. 5. 31. 09:00 사라져가는 것들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월이 호환(虎患)이나 마마보다 무섭다는 걸 실감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세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세월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주름살을 그려놓고 등을 휘게 할 뿐 아니라, 눈 깜빡할 새에 주변에 있던 것들을 훑어가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라진 것 중에는 다양한 ‘직업’도 있는데,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땜장이, 굴뚝청소부, 엿장수, 버스 차장 등 헤아리기 숨찰 정도입니다.
돌아보면 그리 먼 시절도 아닌데 말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땜장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땜장이가 있어서 그나마 덜 팍팍했지요.
지금이야 뭐든지 쓰고 버리는 게 당연한 줄 알지만, 뚫어지고 찌그러지고 깨져도 모양만 남아있으면 깁고 때우고 묶어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땜장이는, 3년 가뭄 끝에 쏟아지는 비처럼 반가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지요.

땜장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솥땜장이입니다.
“솥이나 냄비 때워요~ 뚫어진 그릇 때워요~”
단골로 땜장이의 목소리가 고샅을 한 바퀴 휘돌면 동네 자체가 술렁거리기 마련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한참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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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땜장이'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야 되거든요.
땜장이는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린 다음, 동네에서 가장 큰 마당의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를 폅니다.
그러면 동네사람들이 솥이든 그릇이든 구멍 난 것 하나씩 들고 모여듭니다.
때울 게 없는 사람도 구경삼아 나옵니다.
사실 하늘이나 강물, 혹은 사람의 마음 같은 것만 아니라면 땜장이가 때우지 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각종 솥이나 냄비는 물론이고 화로, 그릇, 아이들 도시락까지 구멍 뚫린 것들은 몽땅 땜질의 대상이 되지요.
느티나무 아래로 어른들만 모여드는 건 아닙니다.
변변한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 땜장이의 감쪽같은 재주야말로 놓치고 싶지 않은 볼거리입니다.
그러니 뒷방 노인들부터 아이들, 강아지까지 신이 나서 마당을 채우게 마련이지요.

솥이나 냄비를 때우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제법 재미있습니다.
아주 작은 구멍은 알루미늄이나 납 재질의 납작머리 리벳(금속재료를 결합하는 못)을 대고 망치질 몇 번으로 때우기도 합니다.
그보다 큰 구멍은 조금 거창한 수술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땜장이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우선 납 녹일 준비부터 합니다.
숱이 담긴 조그만 화로에 용광로 구실을 하는 작은 도가니를 얹고, 그 안에 납 조각을 몇 개 넣습니다.
그리고 숱에 불을 붙이고 풍구를 돌리면 도가니가 달아오르면서 납이 녹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땜질을 할 차례입니다.
손잡이를 구멍 한쪽에 대고 납물을 떠서 부은 뒤 다른 손잡이로 꾹 눌러줍니다.
그러면 납이 감쪽같이 붙어 구멍을 메우게 됩니다.
조그만 망치로 톡톡 두드려 고르게 한 뒤 물을 부어서 새는지 확인만 하면 모든 공정은 끝납니다.
말로 하니 쉬울 것 같지만, 땜질 과정은 나름대로 고도의 기술입니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납땜이 끝난 뒤에야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큰 숨을 몰아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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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땜장이는 솥이나 냄비만 때우는 건 아니었습니다.
뚫어지고 깨어진 것이라면 무엇이건 그의 손을 거쳐 멀쩡한 물건이 되고는 했지요.
아이들 돌팔매질로 깨진 간장독이나 긴 세월이 무거워 금이 간 김칫독도 그냥 버리는 법은 없었습니다.
깨어진 독이나 항아리는 원래 형태대로 잘 맞춘 뒤 접착제를 바르고 철사 같은 것으로 얽어서 고정시킵니다.
이렇게 때운 독은 곡물을 담거나 허드레용으로 또 한세월을 나게 됩니다.
그밖에도 땜장이의 손이 필요한 곳은 많았습니다.
동네 우물의 두레박이 망가지면 새것처럼 만들어놓고, 덜렁거리는 문틀이나 비새는 지붕을 손봐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땜장이가 마을에 들어오는 날은 아이들이 경을 치기도 했습니다.
땜질을 하려고 한쪽에 잘 보관해뒀던 냄비를 어른들 몰래 엿으로 바꿔먹는 녀석들이 가끔 있거든요.
멀리서 “솥이나 냄비 때워요~“ 하는 소리가 들리면 일을 저지른 녀석들은 슬금슬금 꼬리를 감추기 바쁩니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용서 받을 턱이 있나요.
일을 마친 땜장이가 길어진 그림자를 끌며 마을을 떠날 때쯤이면, 어미에게 뒷덜미를 잡혀온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담을 넘는 건 예사였지요.

땜장이계의 대표선수 중에는 고무신땜장이도 있었습니다.
돈이 샘물 흐르듯 하는 부잣집이야 모르겠지만, 보통은 구멍 난 신발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지요.
몇 번씩 깁고 때워 쓴 뒤 정말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야 엿가락이나 빨래비누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고무신도 함께 때우는 솥땜장이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고무신 땜장이는 동네마다 돌아다니지 않고 장을 따라 돌았습니다.
솥하고는 달리 고무신은 비교적 쉽게 들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또 장비가 꽤 무거워서 동네마다 지고 다니기도 불편했을 테고요.
고무신 때우는 것도 솥 때우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먼저 구멍보다 조금 크게 고무를 오려놓고, 고무신의 덧댈 면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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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솔이나 사포로 문지릅니다.
솔질은 찌든 때를 벗기려는 목적도 있지만 고무에 미세한 흠집을 만들어 접착력을 높이는 역할도 합니다.
다음으로 구멍 주변과 덧댈 고무에 고무풀을 바르고 약간 기다린 뒤 양면을 붙여 꾹꾹 눌러줍니다.
여기서부터는 기름 짜는 기계와 비슷하게 생긴 고무신 수선 기계가 쓰입니다.
먼저 여러 개의 바닥쇠틀 중에 맞을만한 것을 골라 고무신을 고정시킵니다.
그 위로 쇠틀을 올려놓고 축을 돌려 압착시킵니다.
이때 누름쇠는 사전에 뜨겁게 달궈서 고무가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물이 질질 새던 고무신도 감쪽같이 때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고무를 덧댄 신발이 새 것처럼 예쁘기야 하려고요.
아이들은 새 신발을 얻어 신을까 기대하다가, 고무를 덧댄 헌 신발이 돌아오면 입이 나팔만큼 나오기도 하지요.

가마솥이나 고무신조차 볼 수 없는 지금, 아이들에게 그 시절 얘기를 들려주면 ‘전설의 고향’이라도 듣는 기분이겠지요?
솥을 때우는 땜장이든, 고무신을 때우는 땜장이든 세월의 뒤안길로 걸어 들어간 지 오래니까요.
재활용이란 단어조차 사망해버린 세상에 때운다는 말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실을 증명하듯 땜장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사진 한 장 제대로 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풍부하고 편리해진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살벌할까요?
왜, 제겐 여전히 “솥 때워요~ 냄비 때워요~” 하는 소리가 눈물을 동반하는 그리움일까요?
어쩌면 땜장이들은 솥이나 고무신뿐 아니라, 구멍 난 세상을 몰래 때우면서 세상을 돌아다녔던 게 아닐까요?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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