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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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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서리'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6.10 [사라져가는 것들 62] 닭서리11
2008. 6. 10. 09:29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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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끈! 와장창! 뭔가 부서지는 소리, 그 뒤를 아버지의 고함이 따른다. 마당 쪽이다. 진즉에 잠에서 깼으면서도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문을 연다. 마당에는 조금 기묘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형이 마당에 엎어져 있고, 그 옆에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에서 놀러온 외사촌형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 있다. 아이는 부신 햇살에 잠시 눈을 찡그린다. 밤새 눈이 내렸는지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난다. 마당 한 쪽에서는 어머니가 씩씩거리는 아버지를 붙잡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는 형을 패대기쳐놓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연신 손을 뿌리친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평소의 아버지는 매질은커녕 큰 소리 한번 제대로 친 적이 없다. “야 이 썩을 눔의 자식아.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지. 용팔이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집 닭에 손을 대. 빌어먹는 놈도, 남의 집 담을 넘는 놈도 도리라는 게 있는 겨. 당장 가서 빌고 와 이눔아” 대충 무슨 사단인지 짐작이 간다. 순진한 형…. 모처럼 동갑내기 외사촌이 왔으니 뭔가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닭서리를 모의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긴긴 겨울 밤, 재밋거리를 찾기 어려운 시골에서 닭서리만큼 매력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아버지가 저리 노발대발 하는 걸 보면, 그들의 닭서리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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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형으로부터 들은 얘기는 그랬다. 동네 큰형들이 지휘하는 닭서리를 몇 번 따라 가보긴 했지만, 자신이 주도하는 건 처음인지라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외팔이네 닭장을 털기로 했다는 것이다. 형과 외사촌형, 그리고 동네 친구 셋이 한패가 되었다. 외팔이네 집은 외딴 곳에 있는데다 닭장 자체가 허술했기 때문에 거사를 치르는데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외팔이의 원래 이름은 용팔이다. 전쟁 통에 한쪽 팔을 잃은 터라 너나 할 것 없이 외팔이라 불렀다. 원래 이 동네 사람은 아닌데 어느 해인가 아내와 함께 흘러들어와 산모롱이에 터를 잡고 닭을 키우며 살고 있다. 농사 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들은 항상 궁색했다. 달걀을 내다 팔기는 하지만, 먹고사는 걸 해결해주기엔 역부족인 것 같았다. 팔이 그 모양이니 놉을 팔러 다닐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닭고기의 황홀한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성이 마비된 풋내기들에게 그런 사정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닭서리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한 듯 보였다. 밖에서 망을 보고 동작 빠른 침투조가 소리 없이 닭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으며, 손을 겨드랑이에 넣어서 따뜻하게 한 다음 한 손을 닭의 날갯죽지에 슬그머니 밀어 넣고 재빠른 동작으로 닭의 목을 비틀어야한다는 기본도 잊은 바 없었다. 그들은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희희낙락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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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런 사단이 난 것일까. 그들은 서리원칙 중에 잊어버린 게 하나 있었다. 어제는 밤중에 눈이 내렸다. 눈이 오면 들뜨는 게 개뿐 만은 아니다. 그들 역시 들뜬 마음에 자신들의 발자국이 눈 위에 남는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잊어버렸다. 게다가 그들이 외팔이네 집을 떠난 뒤 눈이 그쳐버렸기 때문에 발자국이 지워질 기회도 없었다. 새벽에 일어난 외팔이에게 모든 상황이 한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닭털과 눈 위에 찍힌 발자국. 외팔이는 범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 어느 집으로 들어갔는지 확인만하면 되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화를 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몸이 성치 못한 사람의 생계수단을 서리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집집마다 닭 몇 마리씩은 길렀다. 마당에 풀어놓으면 알아서 나락도 주워 먹고 벌레도 찾아 먹기 때문에 크게 손이 갈 일도 없다. 그런 닭 한 두 마리쯤은 서리로 잃어도 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서리 대상은 그런 닭이어야 했다. 풋내기 서리꾼들이 그 원칙에 모래를 끼얹은 것이었다. 또 닭서리는 자기 동네를 피하는 게 상식이었다. 네 집 살림이 내 집 살림인 터에 자기 닭을 잡아먹을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아주 급(?)할 지경이 아니면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갔다. 그래봐야 그쪽 동네 젊은이들은 이쪽 동네로 원정을 오게 마련이니 결과는 마찬가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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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서리가 크게 말썽이 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애지중지 키우던 닭을 솔개나 족제비도 아닌 사람 손에 잃어버렸으니 속이 뒤집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경찰서에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또 언제 자신의 아들이 닭서리 대열에 합류할지 모르니 무조건 야박하게 굴 수도 없었다. 닭서리가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거나 닭 값을 물어주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허~ 징헌 놈들” 하고 혀 몇 번 끌끌 차는 걸로 화를 삭이는 게 보통이었다. 요즘 인심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절도범으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콩밥 먹는 것까지 각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예 시작도 말아야할 게 서리다. 그만큼 세상은 각박해졌다. 아니, 각박해지지 않았더라도 서리가 남아 있을 까닭은 없다. 우선, 농촌에도 전처럼 닭을 키우는 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닭고기가 먹고 싶으면 사다 먹으면 된다. 닭이 많은 양계장이야 난공불락의 성이 되었으니 가봐야 말짱 허사다. 하지만, 닭서리가 사라진 결정적 원인은 딴 곳에 있다. 이젠 닭장을 노릴만한 아이들이 없다. 역전의 용사들은 도시로 떠났고, 새 생명은 잉태되지 않은지 오래다. 설령 아이들이 있다고 해도 할 일이 넘치는 세상이다. 뭐 대단한 게 있다고 남의 닭장이나 기웃거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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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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