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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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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논 다랭이논 삿갓배미'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7.11 [사라져가는 것들 16] 다랑논11
2007. 7. 11. 18:45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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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되어있는, 좁고 긴 논' (국어연구원 표준국어 대사전)
다랑논에 대한 해석은 간단하다. 하지만 이름은 셀 수 없이 많다. 다락논, 다랭이, 다랑전, 다랑치, 논다랑이, 다랭이논, 다락배미, 삿갓배미…. 이름만큼 사연도 구구절절 많다. 그 중 삿갓배미란 말이 생기게 된 일화는 다랑논을 구경조차 못한 사람에게도 금세 뚜렷한 그림 한 장을 그려준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 보니 딱 한 배미가 부족했단다. 세어보고 세어봤지만 끝내 사라진 논을 찾을 수 없었다는구나.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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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영감이 마을을 찾아 든 것은 참혹했던 전쟁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전쟁의 상흔은 조금씩 아물어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던 상이군인들의 모습도 뜸할 무렵이었다. 영감 하나가 보따리 두어 개와 솥단지 하나를 얹은 지게를 지고 앞장서고, 그 뒤에는 다리를 저는 젊은 아낙과 작은 아이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논에는 찬바람이 제법 날카로운 손톱을 내세워 쌓아놓은 볏단을 훑으며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냇둑의 미루나무는 빈 가지를 흔들며 휘파람 소리를 냈다. 마을에 들어온 그 낯선 일가는 미리 알고 왔다는 듯이 곧장 장부자네 집으로 향했다. 하긴 누구라도 그 마을을 찾은 나그네라면 기와를 번듯하게 올린, 그 집을 찾았을 것이다. 그 날부터 그 일가는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장부자의 눈에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침 비어있던 행랑채에서 번듯하게 한 살림을 차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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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바우영감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름이 바우였는지, 그가 그렇게 불리길 원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이의 이름이 용식이였으니 용식아버지라고 부를 법도 하건만 어른이나 아이나 하나같이 바우영감이라고 불렀다. 하긴 그가 '용식 아버지'가 되기에는 너무 늙어 보였다. 차라리 용식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성싶었다. 바우영감은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의 젊은 아내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성한 사람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했다. 아니, 두세 배 일했다. 그들이 쉬는 것을 구경하기란 개의 머리에 뿔이 돋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어린 용식이도 한가하게 앉아서 노는 적이 없었다. 갓 올라온 찔레순처럼 여리게 생긴 아이였지만 꼴머슴 몫을 제법 해냈다. 장부자로서는 똥누다 개똥참외를 발견하듯, 앉아서 복덩이를 주운 셈이었다. 전쟁 이후 쓸만한 머슴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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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바우영감 덕분이라고 못박기는 어렵겠지만, 장부자네 논밭은 갈수록 늘어났다. 눈처럼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장죽을 문 장부자가 논둑 위에 서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일 역시 더욱 잦아졌다. 하긴 어딜 둘러봐도 자기 땅 뿐인 데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찌 감추랴. 그 일은, 그들 일가가 동네에서 몇 년을 지낸 뒤 시작됐다. 어느 날부터 바우영감이 용골 들머리의 조부자네 산자락을 파헤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용골은 골짜기가 꽤 깊어 평소 나무꾼 외에는 잘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조그만 내가 흐르고 그 냇물이 모이는 곳에 용소라는,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연못이 있어 선계(仙界)에라도 든 양 제법 신비스런 곳이었다. 소문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바우영감이 파헤치기 시작한 곳은 햇빛이 제법 반반하게 드나들고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산자락이었다. 산을 어느 정도 파헤친 뒤에는 돌로 둑을 쌓아 올렸다. 그러면 제법 넓직한 '계단'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꽤 지나고서야 바우영감이 목적하는 게 모습을 드러냈다. 쌓은 돌은 논둑으로, 파헤쳐진 곳은 작은 논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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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바우영감이 만드는 것이 다랭이논이라고 했다. 바우영감이 그 일을 하게 된 뒷얘기도 입을 타고 전해졌다. 장부자 집에서 행랑아범 겸 머슴살이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나 추수가 끝난 뒤 간곡하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가족이 일한 새경을 받지 않을 테니, 몇 년이 걸려도 땅값만큼만 되면 용골에 있는 산자락을 떼어 자기 이름 앞으로 해달라고…. 장부자로서는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다. 어차피 용골에 있는 산은 빚 대신 받은 것이었고, 그 깊은 골짜기를 가본 적도 없으니, 내 땅이라는 애정이 있을 턱도 없었다. 하지만 눈 밝은 바우영감에게는 그 산자락이 금맥 만큼이나 값져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다랭이논을 만들면서도 틈틈이 장부자네 일을 해주기로 약조까지 했으니 장부자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다랭이논을 만드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산자락 초입이야 이럭저럭 깎아 내리면 땅을 얻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난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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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은 바윗덩이 만치 큰돌부터 작은 돌 순으로 쌓아 올라가는데, 얼마나 촘촘한지 그야말로 '물샐 틈' 하나 없어 보였다. 위로 갈수록 석축은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 어느 곳은 어른 두어 길 폭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도 얻는 땅은 말 그대로 '삿갓으로 덮을 만큼' 작았다. 큰돌은 주로 산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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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걸 썼지만 작은 돌은 대부분 지게로 져 날랐다. 그의 아내도 장부자네 부엌을 벗어날 틈만 있으면 달려와 돌을 머리에 이어 날랐고, 용식이도 망태에 돌을 날랐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쉬지 않았다. 일은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계속되었는데 사람들 눈에는 볼 때마다 똑같아 보일 만큼 느리게 진행됐다. 그러는 동안에, 그러잖아도 늙어 보이던 바우영감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머리에는 서리가 내려앉아 백발이었고 얼굴에는 고랑이 깊게 패었다. 그렇게 한 두 해가 지나고 제법 꼴을 갖춘 논배미들이 몇 개 태어났다. 어느 논에는 황소 만한 바위가 그대로 들어앉아 있고 어느 논은 손바닥보다 클 것도 없었지만, 그 속에 땀과 눈물이 어느 만큼 들어있다는 건 누구든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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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논에 첫 모를 내던 해 봄, 바우영감네는 용골에 움막처럼 작은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살림살이는 여전히 지게로 져 나를 만큼 보잘것없었다. 그제야 장부자네집 행랑아범과 행랑어멈, 꼴머슴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 해 가을 다랑논에 벼가 익어 깊이 고개를 숙인 어느 날, 동네사람들은 모두 낫 하나씩을 들고 용골로 갔다. 반은 벼를 베고 반은 논두렁에 앉아 놀았지만, 추수는 순식간에 끝났다. 첫 해라 소출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바우영감은 끝내 볏단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의 소리 없는 통곡에 그의 아내도 울었고 그의 아들도 울었고 동네 사람들도 울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람들은 신발도 꿰지 못한 채 다리를 절며 고꾸라지듯 동네로 달려오는 그의 아내를 볼 수 있었다. 빈 논마다 무서리가 하얗게 그림을 그린 이른 새벽이었다. 이틀 뒤 그의 지친 육신이 잠들어 있는, 장식 없는 상여는 동네를 천천히 돌아, 용골로 돌아갔다. 상여가 지나가는 동안 텅 빈 들녘엔, 처음 보는 갈까마귀 한 마리가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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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며] 다랑논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다랑논은 이미 논이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밭으로 바뀐 곳은 형태라도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풀과 잡목으로 뒤덮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한때 다랑논이었다는 사실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들판의 논들도 묵어 나자빠지는 마당에 다랑논까지 챙길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현실을 감안하면 지리산 피아골 자락에서 만난, 잘 가꾸어진 다랑논은 눈물겹게 반가웠습니다. 그 안에 배어있을 어느 촌부의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을 생각하며 논둑에 한참 쪼그리고 앉아있었습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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