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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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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로드 왕'에 해당되는 글 1

  1. 2012.10.08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 13] 아브라함 동굴에 가다16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었다.

샨르우르파로 가는 길의 황량한 광야.

샨르우르파로 가는 길. 산과 평원이 교대로 나타나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준다. 말라티아에서는 살구나무만 봤는데 이곳은 내내 밀밭이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작물까지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밀은 벌써 수확을 끝냈다. 이 지역에서는 밀 수확을 할 때 이삭만 자른다고 한다. 나머지 밀짚은 그대로 양들을 풀어놓고 먹인다. 길 옆으로 가끔 당나귀를 탄 아이들이 지난다. 심심해서 타고 다니는 건 물론 아닐 테고. 가만히 보니 당나귀 옆구리에 물통 같은 게 달려있다. 먼 곳으로 물을 길러 다닐 정도로 물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양젖을 담는 통? 가는 곳마다 확인하는 것이지만 터키에는 일하는 아이들이 많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건강해보인다.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들도 가끔씩 보인다. 차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빠듯하다. 나만의 시간이 아니라 남들과 나눠 써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낮달이 계속 버스를 따라온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이, 양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 낮달. 그림처럼 목가적인 풍경이다. 물속에서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오리의 물갈퀴처럼, 일상의 고단함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샨르우르파에서 터키-시리아 국경까지는 65km. 말 그대로 엎어지면 배꼽이 닿고도 남을 만큼 접경이다. 우리 대사관에서 가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시리아의 불안한 정국 때문에 국경을 넘어오는 피난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해주는 사람도 전쟁을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넓게 펼쳐진 밀밭.

아브라함 동굴이 있는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의 입구.

뭐라고 적어야하나. 쓸 말이 너무 많으면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드디어 샨르우르파에 도착했다. 이곳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 먼 길을 거쳐야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말문이 턱! 막혀버린 것이다. 적절한 감상문 한 줄 정도는 남겨야하는데 뭐라고 하지? 예언자들의 도시, 성서의 무대, 종교의 고향, 종교 부화장, 아브라함의 땅, 세계 최초의 도시샨르우르파를 수식하는 말은 넘쳐흐른다. 그 어떤 말도 가볍게 흘릴만한 게 없다. 그리고 대부분 종교적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니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종교로 말문을 열 수밖에 없다. 특히 곳곳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행적을 읽을 수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전에 이곳 하란에 머문다. 또 이설(異說)이 훨씬 더 지지를 얻고 있지만, 최소한 샨르우르파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고장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관련된 유적을 찾기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게 바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아브라함 동굴과 사형 직전에 살아났다는 발르클르 연못,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이다. 이 유적들이 있는 곳을 아브라함 공원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의 나라에 웬 아브라함 유적들이 이렇게 대우를 받느냐고 물으면 공부 좀 필요한 사람이다. 장차 더 설명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공동 조상으로 일컬어진다.

 

 

아치 중 맨 오른쪽에 아브라함 동굴이 있다.

왼쪽 문이 여성 전용, 오른쪽이 남성 전용.

아브라함 공원을 찾아가기 위해 숙소 문을 열고나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마치 냉장고에서 오븐으로 공간 이동을 한 느낌이다. 천지간을 가득 메운 열기. 역시 샨르우르파구나. 사막 국가인 시리아의 바로 이웃에 있는 이곳도 준사막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덕분에 사막이 되는 것을 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들도 태양의 영역까지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서두에서도 잠깐 밝혔지만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가장 걱정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살인적인 더위였다. 안내책자에는 터키에서 가장 더운 지역’ ‘여름 평균기온 섭씨 50등의 문구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랑이다. 기껏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나. 후배 하나가 나를 생각한다고, 아니면 이 얼마나 고소한 일이냐고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보여준 터키의 평균 기온에도 50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사진이 등장했다. 물론 이 사진의 제목은 터키의 평균 기온이 아닌 샨르우르파의 여름 평균 기온으로 바뀌어야 했을 것이다. 50도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최고 기온이라 봐야 기껏 35? 오븐에 들어가 연습할 수는 없으니 사우나에서 적응훈련을 하는 수밖에. 역시 뜨겁긴 뜨겁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나? 적응훈련의 효과를 보는 건가? 물론 실상은 그 게 아니다. 현지사람에게 물었더니 지난주까지는 평균 47도를 기록했단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37도밖에 안된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람도 선선하다고 이상기온이란다. 이 열풍이 선선한 바람이야?

 

동굴 안에서 '성수'를 받는 아이들.

저 안쪽이 아브라함 동굴인데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이왕 신기하게 생각한다면 생색 좀 내고 가야지. 이상기온 운운한 사람을 불러 진실을 가르쳐 준다.

이상 기온이 아니고요, 내가 와서 그래요. 도착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젠 날씨보다는 기운이 없는 게 더 걱정이다. 며칠 째 먹지를 못했으니 축적해둔 힘이 다 빠져나갈 수밖에. 아침도 과일 두어 조각으로 때운 참이다. 그래도 원하던 곳에 왔으니 힘차게 출발해봐야지. 아브라함 동굴은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 경내에 있는 석굴이다. 이 이름이 엄청나게 어려운 모스크는 오스만투르크 때 세워졌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탄생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일 게다. 모스크 광장의 다섯 개 아치 중 하나가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다. 헌데 출입문이 두 곳이다. 오른 쪽은 남자만 들어가고 왼쪽은 여자가 들어가는 입구라고 한다. 굳이 남녀를 가려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예배공간조차 남녀를 구분하는 게 이슬람 전통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거쳐 들어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사전에 상상했던 동굴의 모습과는 영 다르다. ’믿음의 조상이 태어난 곳 치고는 초라한 편이다. 4각형의 조그만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수도꼭지가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신성한 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갈 수 있나. 나도 줄을 섰다가 물을 한 컵 마신다. 내 몸 안에 신성한 기운이 가득 차는 것 같다. 이젠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을 들여다봐야 할 차례. 참배객이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야한다. 동굴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4각의 틀에 유리를 끼워놓았는데 천장은 바위 형태가 그대로 살아있다.

 

동굴 속의 우물.

 

드디어 내 차례. 바짝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본다. 어라? 이게 뭐야? 유리창 안에는 샘 하나만 보일 뿐이다. 바닥과 벽을 돌로 쌓은 네모난 샘. 샘은 물론 그 바깥에도 물이 가득 차 있다. 더 안쪽에 무언가 있을 법도 한데 조명이 물에 반사되는 바람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허무하다. 이렇게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아기 아브라함과 그 엄마는 어디에 있었다는 거야? 카메라를 들고 X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을 쳐보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등을 살짝 친다? 열 받는데 이건 또 뭐야? 돌아보니 수염이 하얗고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쓴 노인 하나가 내게 뭔가 자꾸 설명을 한다. 우리말이 아닌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도 아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우리말로 마구 떠든다. 각자 할 말만 하지만 대화는 충분히 된다.

왜 이렇게 촐랑이처럼 방정을 떨고 댕겨?”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이라고 해서 와봤더니 물만 있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왕 보라고 만들어 놨으면 뭐가 보이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뉴? 당최 뭘 보란 건지.”허어! 이 사람아. 동굴에 와서 동굴을 봤으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래. 보고 싶은 것은 스스로의 가슴 속에 있다네.”

노인이 껄껄껄 웃는다. 무슨 소리야? 아브라함이 왜 내 가슴에 있다는 거야. 헌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듯하기도 하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만난 노인.

동굴 바로 옆에 있는 기도실.

그나저나 아브라함이 이 동굴에서 태어나긴 한 것일까? 아니, 왜 하필 동굴에서 태어났을까. 샨르우르파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의문은 속물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증은 풀고 가야지. 이 동네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모두 구전에 의존한다. 아브라함이 구약에 등장하는 건 창세기 11장부터다. 이때의 아브라함은 이미 장년에 접어들어 있다. 그 이전의 행적은 어느 곳에도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전설만 난무하는 것이다. 이제 그 전설의 샘으로 풍덩 빠져 보자. 전설 속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난 것은 BC 2100년이다. 그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이는 님로드(Nimrod) 왕이라는 앗시리아의 영주였는데, 그는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인간이나 신이래. 진짜 신들 열 받았겠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님로드 왕의 우상(신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이 님로드가 꿈을 꾸는데 별 하나가 얼마나 빛나든지 태양 빛을 가릴 정도더란다. 어라? 이게 무슨 뜻이지. 왕은 점술사들을 불렀다. 그들의 해몽은 한결 같았다. ‘올해 이 도시에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가 당신의 자리를 빼앗고 당신의 왕국을 없앨 것이다.’ 왕은 정신이 번쩍 낫겠지. 그래서 우선 취한 조치가 임신을 원천봉쇄할 수 있도록 남자들을 도시에서 모두 내쫓는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아직 잉태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아브라함 어머니는 어떻게 임신을 했을까? 일이 그리 되려고 했던지 궁전에서 신상을 만드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시내에 남을 수 있었다. 특수보직을 가진 셈이었다.

 

 

흐즈 이브라임 할릴룰라흐 모스크.

아브라함 동굴을 찾아온 참배객들.

님로드 왕의 불행은 그렇게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집으로 퇴근한 날 아이가 잉태됐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투철한 저항정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고. 점술가들은 곧 왕에게 달려가 이 도시에서 아이가 잉태됐다고 일러바쳤다. 이왕 그렇게 점괘가 용하면 누가 임신했다는 것도 알 법도 하련만. 이번에는 임신한 여자들이 모두 도륙을 당했다. 아브라함의 어머니는 배를 꽁꽁 동여매서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산달이 되자 그녀는 동굴로 들어가서 아이를 낳았다. 여기서 전설은 그 요건에 더욱 완벽성을 띠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어머니가 아기를 두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 보니 사슴들이 찾아와 젖을 주고 있더란다. 정말 신기한 건 지금부터다. 아기는 태어난 지 한 달 뒤에 한 살짜리 아이가 되고 다섯 달 뒤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되었다. 15개월이 지나 15세가 될 무렵, 소년 아브라함은 동굴에서 나오다가 군사들에게 잡혔다. 15세나 됐으니 의심 받을 일은 없었다. 아브라함이 마음에 든 님로드는 그를 궁전에 머물도록 했다. 폭탄을 품에 안은 셈이었다. 궁전에 사는 아브라함은 신상들을 볼 때마다 투덜거렸다. 이따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신이야. 신이라면 힘이 있어야지. 그때 가브리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하늘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시거든. 그분도 널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열심히 해봐.“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조그만 녀석이 믿던 신을 바꾸라고 한다고 , 알았습니다.’ 할 사람이 어디 있나.

 

모스크 위를 나르는 비둘기들.

답답한 아브라함은 한 가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그때도 봄이 오면 야외로 나가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여의도 벚꽃축제 같은 것이겠지. 아브라함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 축제의 행렬에서 빠졌다.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들로 나가고 궁전이 텅 비게 되자 이 야무진 청년은 도끼를 둘러메고 신전으로 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아버지가 만든 신상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큰 신상에 도끼를 꽂아두고 슬쩍 빠져나갔다. 왕이고 신하고 신나게 놀고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와 보니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신상이란 신상은 몽땅 장작이 되고 멀쩡한 건 딱 하나 남았는데, 그나마도 도끼가 꽂혀 있으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축제에 가지 않았던 아브라함이 의심 받을 건 뻔하다. 그를 잡아다 족치기 시작했다.

야 임마, 네가 그랬지?”

무슨 소리래요?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요.”

너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불어.”

아참!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당신네들의 신한테 물어봐요. 내가 볼 땐 그 도끼 들고 있는 신상(사실은 도끼에 맞은 신상)이 한 짓 같은데요? 그놈이 다른 놈들 몽땅 찍어버린 건 아닐까요?”

이 청년 천연덕스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거기서 또 전도를 했다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신이냐.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어라.

 

사진 찍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아브라함은 바로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신상이 전부 자빠져도 범인조차 제대로 못 잡는 님로드 왕의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더욱 미울 수밖에. 여기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에 가서 해야 한다. 가보면 안다. 전설이 조금 길어졌지만 이 정도는 알고 가야 이 고장에 대한 예의다. 동굴에서 나와 모스크를 천천히 돌아본다. 이곳도 아이들과 비둘기들의 세상이다.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논다. 아이들이 카메라의 뷰파인더 속에 여러 번 들어오면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의사표현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그 정도 눈치는 금세 생긴다. 사진을 찍어줄 테니 모이라고 했더니 좋아 죽겠단다. 저 환한 얼굴들. 아이들과 비둘기까지 어울려 한참 놀아준다. 모스크 밖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신다. 머리 위로 보이는 성채에는 빨간 터키 국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고대사람 아브라함과 현대의 터키 국기. 느닷없이 타임머신을 탄 듯 어지럽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서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년 하나가 웃으면서 화장실을 가르쳐 주겠단다. 그럴 거까지 없는데? 내 정중한 사양을 못 들은 척 끝내 화장실 앞에까지 따라온다. 그러건 말건 입구에서 1리라를 내밀고 들어가려는데 그 청년이 손을 벌리고 서 있다. 어라? 너도 달라고? 이거 순 날강도일세 그려. 너 아니어도 화장실 알고 있으니까 필요 없다고 했잖아. 결국 1리라를 강탈당하고 만다. 영악한 것들.

 

모스크 위로 성채가 보인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앉을 때 보니 저만치 연못 하나가 있다. 저게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다른 쪽에 있고 아인제리하 연못이란다. 아인제리하분명 여자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뭔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도 슬픈 사연이 하나 잠겨 있다. 제리하는 님로드 왕의 딸이었다. 헌데 이런 비극이. 그녀는 아버지인 왕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인 하나님을 믿었다. 혹시 아브라함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적을 잡으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기까지 알 방법은 없지만 둘은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됐다. 신상을 때려 부순 연인 아브라함이 아버지인 님로드 왕에게 사형을 당하는 순간, 그녀도 이 연못에 몸을 던졌다. 이거야.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가 여기에도 있었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 여인의 눈물이 가슴에 닿는다. , 사랑이여! 그 덧없음이여! 끝내 궁금한 게 하나 있다. 하나님은 왜 그녀를 안 구해줬을까.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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