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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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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2. 12. 17. 08:30 나를 치유하는 여행

10월 중순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꽃살문에 담긴 뜻은

 

내소사 일주문

내소사 가는 길, 걷는 자의 행복으로 온 세상이 빛납니다. 굴강(屈强)한 기세로 높다랗게 솟은 전나무들이 달려 나올 듯 반깁니다. 전나무는 주변 숲이 가을색으로 치장하든 말든 신경도 안 씁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암청(暗淸)의 무게를 더해갑니다. 그 타협 모르는 색()에 대한 고집은, 눈 내리는 한 겨울에 청청하게 빛날 것입니다. 걸음걸음에도 푸른빛이 뚝뚝 묻어날 것 같아 자꾸 돌아봅니다. 내소사 전나무 길은 광릉수목원, 오대산 월정사 길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불립니다. 500m 정도 이어지는 이 길에는 수령 150년 이상, 높이 30~40m의 전나무들이 소풍 길의 아이들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일주문에서 내소사까지 10분 넘게 걸어야 하지만 전나무들의 열병식 덕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눈이 가는 곳마다 황홀한 풍경이 그림처럼 이어지는 변산반도지만, 내소사 전나무 숲이 없었다면 이 빠진 듯 허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전나무 숲이 생겼을까요? 이 정도 숲이라면 일부러 심은 게 틀림없을 텐데. 이유가 없을 수 없지요. 원래 대가람이었던 내소사는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됐다고 합니다. 바다를 눈앞에 두었으니 왜적의 침탈을 피할 수 없었겠지요. 왜가 물러간 뒤 다시 절집을 짓기는 했지만 옛날의 위용을 되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전한 빈 자리에 전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지나가면 되련만, 또 그놈의 궁금증이 발동하는 바람에 기어이 손을 꼽아보고 맙니다. 임진란에 이은 정유재란이 1598년에 끝났으니 지금으로부터 414년 전. 그런데 왜 나무의 수령은 150년밖에 안되지? 둘러봐도 어긋난 세월을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땐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 절집을 짓고 나무를 심은 걸까? 아니면, 저들은 원래 심었던 나무들의 두어 대() 후손일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절에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알밤을 혼자 주운 아이처럼, 모처럼 길을 독식한 행복을 만끽합니다. 큰 숨을 들이쉴 때 감긴 눈을 뜨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뗍니다. 전나무 특유의 향기가 온몸을 감쌉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향기가 모공마다 파고들어 가슴까지 푸르게 적십니다. 이곳은 여름밤이 되면 별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그 사이로 반딧불이 유영한다고 합니다. 그 풍경을 그려보는데 왜 자꾸 천국이 떠오를까요?

 

조금 걷다가 밑동만 남은 나무를 발견합니다. 천재지변을 당했는지 한 살이를 마치고 세상과 이별했는지 모르겠지만 싸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가로지릅니다. 세상에는 전설 한 자락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한 존재가 떠난 자리엔 슬픔이 고이기 마련입니다. 몸을 낮춰 그루터기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하나 둘 셋. 어찌 그 긴 세월을, 가물거리는 눈으로 헤아리려 한 것인지. 조금 세다가 포기합니다. 나이테 속에는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방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간격과 모양. 조금 더 걷다가 또 걸음을 멈춥니다. 이번엔 더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베고 지납니다. 전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온전히 드러낸 채 쓰러져 있습니다. 땅 속을 벗어나, 줄기와 잎을 키우지 못하는 뿌리는 더 이상 뿌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니 뎅겅뎅겅 머리를 잘린 나무들도 많습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이 저지른 짓이겠지요. 볼라벤이니 산바니, 이름도 낯선 큰 바람들은 이 작은 반도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마침 이곳이 바람이 지나가고 싶은 길이었나 봅니다. 안온하던 숲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나무들은 하나 둘 부러지고 쓰러졌겠지요.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

그 많은 길을 두고, 바람은 하필 이 길로 지나갔을까요? 그걸 따져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바람이라 했거늘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바람이야 자신이 가는 곳이 곧 길이지요. 하필 그 길에 나무들이 서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기억이 지워져서 그렇지 이 숲이라고 시련이 왜 없었겠습니까? 어느 때인가는 더 무서운 바람이 지났을 수도 있고 우듬지의 눈을 이기지 못해 뚝뚝 가지를 잃은 날도 부지기수였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들이 씨줄 날줄로 직조되고, 그 직조물을 인생이라 부릅니다. 느닷없이 바람이 들이쳐서 뺨을 때리거나 넘어트리거나 아예 부러트리는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불행을 원망하며 울부짖어봐야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람도 그냥 지나가는 그물에, 불행인들 걸리겠습니까? 원망이나 한탄보다는 추스르고 일어나는 게 먼저여야겠지요. 눈 속에 피어난 꽃을 칭송하는 건 시련을 이기고 선자에 대한 경의이기도 합니다.

 

태풍에 머리가 뚝뚝 꺾인 나무들

제겐, 유별날 정도로 젊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제 젊다는 표현이 어색할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렇게 인연 속을 걷다 보니, 40대에 결혼식 주례를 10건 가까이 해치운어처구니없는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건 들을 이야기도 많다는 의미입니다. 행복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불행하고 아픈 이야기가 더 많기 마련입니다. 어떤 친구들은 제게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합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의 불화를 천형처럼 안고 살아온 친구도 있습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생사의 문턱을 오락가락 하는 이도 있고, 이혼 뒤의 아픔을 안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직장 문제는 가장 빈번한 소재입니다. 상사와의 불화, 막연한 장래, 이직의 유혹과 불확실성.

 

어떤 친구들은 피가 철철 흐르는 가슴을 안고 찾아옵니다. 애써 울음을 구겨 넣지만 통곡보다 더 아프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타나 편작 같은 명의(名醫)가 아닌 저로서는 그 고통 앞에서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런 땐 그저 들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아픔에 시정(市丼)의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라는 것, 당의(糖衣) 같은 위로가 상처를 덧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심력을 다해 그의 가슴에 제 가슴을 동조(同調)시키는 것입니다. 동조나 공감은 동정이나 연민과는 다르지요. 자신이 안고 있는 고통을 누군가가 이해하고 있다는, 혹은 공유하고 있다는 안도는 때로 큰 위로가 됩니다. 가끔은, 앓고 난 아이에게 미음 먹이듯 아주 조금씩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합니다.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지. 처음에는 고개를 젓던 이도 어느 순간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합니다. 새로 발견한 스스로를 낯설어하기도 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캄캄하다고 절규하는 친구들에게는 한마디밖에 해줄 말이 없습니다.

고통이 거의 끝났네.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니까.”

 

내소사 부도들

가장 힘든 건 고치 속에 갇힌 친구를 만났을 때입니다. 당신은 囚人(수인)이라는 한자를 기억하는지요. ()라는 글자의 모양을 보면 사람()이 사방을 둘러친 공간()에 갇혀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건 그 감옥을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감옥 속에 들어가 꼼짝도 안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곳은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으면 소멸의 시간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자신을 세상 밖으로 데려갈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뿐이거든요. 어떤 이들은 스스로 사랑받지 못했음을 한탄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일이지요? 이야기를 듣다보면 남들보다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살아온 이도 많습니다. 망각의 강이라도 건넌 듯 잊어버렸을 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진정 가난한 이들은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 한 가닥에도 눈물겨워 한다는 사실을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시 한 줄뿐입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이해인 <어떤 결심>

 

내소사 벚나무길

쓰러진 나무 앞에서 서늘한 가슴을 추스른다는 게, 너무 멀리 나가고 말았습니다. 나무든 사람이든 쓰러지지 않는 세상이길 소망하지만 자주 어긋나고 맙니다. 설령 그게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질서라고 하더라도 눈앞에 두고 보는 일은 고통입니다. 예까지 왔으니 내소사를 보고 가야겠지요. 전나무 숲을 벗어나면 늙은 벚나무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고운 가을빛 속에서 나무들은 이별의 예감으로 수런거립니다. 이들은 이별을 거스르려 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봄부터 여름까지 애써 피워낸 융성을 지워 내년을 기약합니다. 이들의 이별은 존재의 존속을 위한,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합의입니다. 오로지 사람만이 한번 쥔 것을 절대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 역시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지고 가는 숙명이겠지요.

 

내소사 경내의 당산나무절 마당에 들어서면 맨 먼저 시선을 당기는 게 커다란 느티나무입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요? 그냥 느티나무가 아니라 분명 당산나무입니다. 금줄을 칭칭 동여맨 것도 그렇지만, 당산나무는 나름의 특별한 기운을 갖고 있거든요. 절에 당산나무가? 그러고 보니 일주문 앞에서도 당산나무를 본 기억이 납니다. 둘이 참 많이 닮았네요. 모를 땐 물어볼 수밖에. 그렇답니다. 당산나무가 맞는다는군요.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는 할아버지 당산나무고 일주문 밖의 나무는 할머니라는데, 할아버지는 1000년을 살았고 할머니는 700년을 살았답니다. 절 안의 당산나무, 좀 낯설지 않은가요? 믿음의 대상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제 눈에는 왜 이리 보기 좋지요? 네 신(), 내 신 따지며 싸우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하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제가 쓴 터키 여행기에서 여러 번 한 소리지만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 안에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교 문화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제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풍경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공존이 있었군요. 미신이라고, 그 구박을 받던 당산나무가 절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 이거야말로 포용이고 어울림이고 사랑 아닐까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렇게 조화롭게 흐른다면 싸우고 미워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곳에서는 해마다 스님과 주민이 어울려 당산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날짜를 알아봐서 꼭 참가해야겠습니다.

 

내소사 대웅전

내소사 경내

능가산이 병풍처럼 에워싼 곳에 자리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633) 창건됐다고 전해집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내소사를 한국의 5대 사찰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산과 어울리는 조화로움이 매력이라고 했던가요? 내소사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절을 중창할 때 단청을 하기 위해 화공이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나올 때까지 절대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했답니다. 하지만 한 달이 되도록 화공이 나오지 않자 궁금증을 못 견딘 사미승 하나가 살짝 법당 문을 열었다지요, 금지된 것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은 이렇게 곳곳에 전설을 낳습니다. 사미승이 보니 화공은 없고 영롱한 새(觀音鳥 관음조)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더랍니다. 사미승을 본 새가 날아간 건 예견된 결과. 그래서 지금도 단청 한 부분이 미완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전설은 두 가지 교훈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인간의 천박한 호기심에 대한 경계겠지요. 다른 하나는 비움의 미학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는 미완성을 아쉬워하지만, 제게는 그 비움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마지막 붓질처럼 보입니다.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되레 아름답다는말도 안 되는 역설인가요?

 

내소사 대웅전 꽃살문

비어있음은 대웅보전 외양에서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보물 291호인 내소사 대웅전은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단청을 안 한 건지, 세월이 벗겨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다른 절들이 화려함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일 때, 나무 고유의 색깔로 비바람을 견뎌왔다는 게 또 하나의 비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소사를 상징하는 두 가지를 꼽는다면 전나무 숲과 꽃무늬 문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양 중의 으뜸은 꽃 공양이라고 했던가요? 여덟 짝의 꽃무늬 문살은 막 피어나는 꽃잎의 요철을 반영한 정교한 조각으로 마음을 당깁니다. 나무의 질감은 세월에 씻겨 무뎌졌지만, 꽃들은 아침이슬에 피어난 듯 생생합니다. 모란과 연꽃 수천 송이를 연년세세 피워내어 사바세계의 어리석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꽃 하나하나엔 깨달음을 희구하는 서원이 담겨 있을 테지요. 저도 꽃살문 앞에 서서 서원 하나 세워봅니다.

 

말로 말하지 않고, 바람으로 듣지 말고, 밥으로 마음 부르지 않도록.

posted by sagang
2012. 5. 14. 08:30 길따라 바람따라

 

‘길따라 바람따라를 연재합니다. 지자체나 개인, 단체에 의해 끊임없이 이 생겨나거나 복원되고 있지만 아직 그 길들을 통칭할 만한 이름은 없습니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생기더니 지리산과 북한산에 둘레길이라는 명찰을 단 길이 태어났고, 또 어디엔 마실길이 또 어디엔 자드락길, 자락길이또 아직은 이름 없는 길, 잊혀진 길들도 많습니다. 주말마다 그 길들을 순례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보다는 길을 걸으며 저만의 시각으로 본 풍경,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숨어 있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출발지인 모항 어촌체험관에서 바라본 개펄

 

 

변산마실길 안내도. 확인하실 분은 클릭!

 

시인 김춘수가 꽃이라고 부른 순간 꽃이 꽃이 되었듯이, 길은 사람의 발자국과 만나면서 비로소 길이 된다. 꽃이 꽃이 되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듯이, 길도 길이 되기 전에는 그저 산이고 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길은 사람과 대지가 설레는 몸짓으로 나눈 교감의 흔적이다. 길은 또 망각의 존재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스스로 흔적을 지우며 다시 산이 되고 들이 되고 물이 되고 풀과 꽃받이가 된다.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걷는다.

  풀과 낮은 꽃들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곳이 바로 갯벌체험관

출발지 근처에 있는 안내도와 이정표. 거리표시는 제각각이었다.

 

 

나무마다 저렇게 안내 리본이 달려있다.

 

길을 만나기 위해 새벽길을 달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전라북도 부안, 그 중에서도 변산반도 일대다. 천지에 길 아닌 곳이 없거늘 굳이 그곳까지 가는 이유는? 당연히 만나고 싶은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안, 특히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우리 땅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다. 우리나라 최고의 반도공원인 이곳은 흔히 말하는 천혜(天惠), 즉 하늘이 선물한 땅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적절히 안배된 바다와 산, 그리고 숱한 섬들. 해수욕장만 해도 위도해수욕장 모항·상록·격포·고사포·변산섬은 또 어떤가. 위도·식도·정금도·달루도·대외치도·소외치도. 국가어항으로 격포항과 위도항이 있다.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내소사는 고졸한 멋으로 사시사철 손짓한다. 그리고 곰소염전과 솔섬. 저녁 무렵 그 앞에 서보라. 아름다운 앞에서 몸이 떨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해안절벽이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은 채석강,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놀았다는 적벽과 닮은 적벽강. 이쯤에서 마쳐야 한다. 부안 자랑을 하자면 길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날이 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발하자마자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에는 당연히 묘지도 있고. 햇살이 곱다.

위에는 마실길 가는 길이라 써놓고 아래에는 위험지역이니 접근금지란다.

 

변산 마실길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외변산에 생긴 길이다. 마실은 마을(을 가다)’의 사투리. 추억의 샘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트레킹의 시작을 마실길의 3구간 1코스의 출발점인 모항어촌체험관으로 잡았다. 이곳에서 시작해서 왕포까지 11km를 걸어갈 계획이다. 이 길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 없다. 먼저 걸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면서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코스 하나를 찍었을 뿐이다. 물론 채석강과 적벽강을 거쳐가는 코스 역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지만 이미 그곳은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동차를 어촌체험관 주차장에 두고 배낭에 비상식량과 물을 챙긴 뒤 씩씩한 걸음으로 출발한다. 그깟 11km 정도야. 수년 간 전국을 누비질 하듯 돌아다닌 내게는 걷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마실길은 총 4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노을길이라 이름 붙여진 1구간은 새만금 서두터-대항리패총-고사포 해수욕장-성천마을-하섬전망대-채석강 코스. 체험길이라는 이름의 2구간은 해넘이공원-이순신 세트장-상록해수욕장-솔섬-모항 갯벌체험장. 문화재길인 3구간은 모항-마동방조제-작당마을-진서리도요지-곰소염전. 자연생태길인 4구간은 곰소염전-구진마을-호암마을-호암저수지-줄포 자연생태공원까지다.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손짓한다.

걷다 보면 이런 비석도 만나고

꽃들과 한참 놀았다.

 

어촌체험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국도를 조금 걷다가 바로 해안 쪽 소로로 들어선다. 나뭇가지에 마실길 리본을 달아두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 안내 리본은 물론이고 코스 지도, 이정표 등이 어린아이라도 찾아갈 만큼 친절하게 준비돼 있다. 길을 조성한 이들의 정성과 수고로움에 감사를 표한다. 그래도 하이에나처럼 냉혹한 내 눈은 옥에 티를 하나 발견하고 혼자 흐뭇해한다. 안내판 하나에 변산 마실길 가는 길해놓고 바로 밑에는 위험지역 접근금지라고 써놓았다. 여보세요, 아저씨! 저더러 가라는 말입니까, 가지 말라는 말입니까. 조금 걷자 길은 산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다. 나뭇가지의 여린 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가 가슴까지 파랑으로 채색해준다. 길에는 참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작은 꽃들 사이를 조심조심 지나니 봄 햇살을 듬뿍 머금고 누워있는 묘지가 나타난다. 어느 분인지 저승에 가서도 팔자가 좋다. 늘 파도소리와 갈매기를 벗할 수 있을 테니. 조금 더 걷자 비석 하나가 반긴다. 사물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고 쓰다듬다보니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하지만 어떠랴. 어차피 이들을 만나러 온 것을. 

 

길이 깔아준 양탄자. 미안해서 조심조심 걸었다.

아우!! 뛰어들고 싶다.

다 걷어내지 못한 철조망이 날카로운 이빨로 으르렁거린다.

산 속 오솔길이지만 전혀 험하지 않다. 산과 바다 사이에는 철조망이 쳐진 곳도 있다. 전에 쳤던 것을 미처 거두지 못한 모양이다. 미처 날카로움을 갈무리하지 못한 가시들이 냉랭한 눈길도 틈입자를 지켜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 곳은 군사지역, 즉 민간인 통제구역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자연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이데올로기가 낳은 불행은 가끔 이렇게 의외의 선물을 잉태하기도 한다. 전쟁 따위는 망각한 잔잔한 바다가 은빛 비늘을 반짝거리며 손을 흔든다. 구릉을 하나 넘어서니 느닷없이 개활지가 펼쳐진다. 누군가 농사를 짓다 묵힌 듯, 풀만 아우성치며 솟아오르는 묵정밭이 쓸쓸하다. 길은 연초록의 풀들을 양탄자 대신 내어 드문드문 찾아오는 손님을 환영한다. , 푹신하고 황홀한 이 감촉. 이렇게 마구 밟아도 되는 거야? 미안하기 그지없지만 돌아서 가는 길이 따로 없으니 신세를 지는 수밖에. 가지를 제멋대로 뻗은 개복숭아 나무가 연분홍꽃잎을 살짝 열었다. ‘자 붙은 이름과는 안 어울리게, 시집온 다음 날 새벽 우물가에 나온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다.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놀아주느라 걸음은 자꾸 늦어진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길에서는 적막도 친구가 된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작은 백사장(?)

길에서 만난 옹달샘.

굴 혹은 조개 캐는 아낙들

 

철조망 너머로 혹은 철조망이 걷힌 자리에 군데군데 작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 길이 마실길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는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었던, 숨겨진 해수욕장이었을 것이다. 여름 날 가족이나 친구끼리 와서 오붓하게 쉬고 가기에는 딱 좋을 것 같다. 이참에 두어 평 말뚝이나 박아두고 갈까? 이마에서 송글송글 땀이 솟아날 무렵, 작은 옹달샘을 만난다. 주둔하던 군인들이 물을 긷던 샘터일까? 지금은 갈잎들이 차지하고 앉아 몸을 적시고 있지만 청소만 잘 해주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로수가 될 것 같다.(마실길을 관리하는 관계자가 이 글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잠시 산길에서 벗어난 길은 바닷가에 새로운 길을 연다. 저만치 굴을 따는 아낙네 둘이 햇볕 아래에 정물처럼 앉아있다. 걷기 시작한 이후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달려가 말을 걸고 싶을 만큼 반갑지만 그들은 굴을 따야 하고 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에서는 사람도 그저 풍경일 뿐이다.

 

구름은 저렇게 아름답고

드디어 대숲을 만나다.

저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닷가의 자갈들은 모처럼 만난 나그네가 반가운지, 발길마다 덜그럭거리며 노래를 한다. 길은 다시 산으로 향한다. 이 구간의 바다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의 한계를 실감할 만큼 황홀하다. 서해에도 이런 색깔의 물이 있었나? 옥색으로 빛나는 바다 위에 작은 어선들이 점점점 떠 있다. 이곳의 어부들은 물고기 대신 보석을 낚아 올릴 것 같다. 한참 걷다보니 느닷없이 대숲이 나타난다. , 여기구나. 사실 3구간 1코스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 대숲 사진이었다. 시누대들이 빽빽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어릴 적 시누대를 깎아 연을 만들고 칼싸움도 하던 생각이 난다. 대숲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중간에 군인들의 막사로 쓰였음직한 시멘트 구조물도 나타난다. 건물이 제법 큰 것을 보니 분대 병력 이상이 생활했을 것 같다. 지금은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만 비바람에 늙어가고 있다.

 

산을 내려오니 이런 제방이...

마동마을을 설명하는 입간판

아무도 없는 방조제를 걷는다.

대나무터널을 나오니 드넓은 개펄이 눈앞에 펼쳐지고 길은 길게 이어진 방조제로 향한다. 산길의 끝에서 입간판을 발견한다. ‘옛날 선비가 이곳을 유람하던 중 유유동의 말재를 넘어 마동을 지나다 말이 쉬기에 알맞은 곳이라 하여 마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동네 유래를 적어놓은 것이다. 말이 쉬기 좋은 곳이라 해서 마동(馬洞)이라딱히 전설이랄 것도 없고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길손에게 무언가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와 닿는다. 숱한 길들이 생겨나고 복원되고 있지만 단순히 걷기만을 위한 길은 별 의미가 없다. 세월에 묻혀 잊어버린 이야기들을 캐내고 그걸 잘 포장해서 걸어놓을 때, 그 길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나마 구전이 가능한 노인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채집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외지 사람들을 부를 목적으로 길을 만드는 지자체에게 충고 삼아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하다. 몸은 최소한 7~8km는 걸었다고 말하는데 이정표는 여전히 절반도 못 왔다고 쓰여 있다. 거리를 재는 센서에 이상이 왔나? 어쨌든 걷고 또 걷다보면 목적지가 나타날 터. 긴 마동방조제의 끝은 차도로 이어진다. 모처럼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로 올라선다. 고맙게도 인도 에 가드레일을 설치해놓았다.

 

 

잠시 차도와 조우. 인도를 잘 분리해 놓았다.

작당마을의 우물

근사한 카페를 지나친 길은 다시 몸을 낮춰 마을로 들어선다. 출발 이후 처음 만나는 마을이다. 헌데 동네 풍경이 범상치 않다. 수백 년은 묵었음직한 느티나무와 세련된 집들. 특히 언덕 위 느티나무 곁에 지은 집은 어지간한 별장은 울고 갈 만큼 근사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역시 마을을 설명하는 입간판이 있다. ‘마을 뒷산 까치봉에서 까치 자웅이 마을로 내려와 정자나무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풍어의 전성기를 이룬 칠산어장의 요충지로 각처에서 모인 등불들이 밤이면 꽃밭처럼 장관을 이뤄어법은 에헤야~ 데헤야~ 숨 쉴 곳 찾기 어려운 만담조로 늘어지지만 내용은 금세 이해가 간다. 까치가 둥지를 틀면서 풍어를 이뤘고 그 덕분에 마을 이름이 작당마을이 됐다는 얘기겠지. 왠지 느티나무마다 까치집이 주렁주렁 열렸더니. 까치에 얽힌 전설도 전설이지만 칠산어장의 요충지였다는 기록에 더욱 눈이 간다. ‘고기 반 물 반이라는 허풍까지도 허풍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조기가 많이 잡혔다던 어장. 칠산바다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칠산바다 조기튀난 제주바당 복쟁이 튄다라는 제주 속담도 있다. 칠산바다 조기가 뛰니 제주바다의 복어가 뛴다는 뜻이렸다. 오버하지 말고 분수껏 살라는 얘기겠지. 저 앞바다 어디쯤에 어선들이 힘차게 오가고 불끈불끈 힘줄이 튀어나온 어부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경로당이 예쁘다.

부럽고 또 부러웠던 언덕 위의 집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수적으로 제공한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경로당이 예쁘다. 그 옆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다. 식수로 쓰지는 않지만 잘 단장돼 있어 보기 좋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덕 위 느티나무집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저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아침마다 느티나무에서 좋은 글이 하나씩 뚝뚝 떨어질 것 같다. 할머니 한분이 저만치서 걸어오길래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더니 고개만 까딱하고는 그냥 지나간다. 최소한 어디서 왔수?”쯤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좀 무색하다. ‘이 생긴 뒤로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많아서인가?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두 분과 아직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젊은 초로의 아저씨가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 중 할머니 한 분이 소쿠리에 가득 담긴 무언가를 다듬는다. 그냥 지나갈 수 있나.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인다.

할머니 뭘 다듬으세요?”

이거? 민들레라우

나물해 드시려고요?”

아니, 약에 쓰려고

초로의 아저씨가 거든다.

서방 해줄라고 이렇게 열심히 다듬는대요. 이게 거시기에 그렇게 좋다네

거시기에 좋다고? 거시기가 뭐지? 아저씨의 짓궂은 웃음으로 봐서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저씨, 일은 안하고 쓸데없이 앉아서 누님들을 놀리고 있구먼.

 

길을 잘못 들어 느닷없이 걷게 된 갈대 길.

바닷가에는 쭈꾸미 포획용 소라껍질이

개펄...바다...그리고 배

아저씨와 비밀이라도 나눠가진 듯, 묘한 웃음을 미처 지우지 못하고 마을을 벗어난다. 한참 걸어가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이게 아닐 텐데. 길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로 향해 있다. 그 흔하던 이정표도 없고 나무마다 달렸던 리본도 안 보인다. 표식을 놓친 건 아닌지 잠깐 돌아가 보기도 하고 수풀까지 뒤져보지만 마실길은 감쪽같이 꼬리를 감췄다. 마을을 벗어날 때쯤 안내판이 좀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아무래도 차도는 아닌 것 같다. 목적하는 방향과 비슷하다고 짐작되는, 제방으로 연결되는 작은 길로 내려간다. 기대하지 않았던 갈대밭이다. 사람이 다닌 지 오래인 듯 길은 이미 흔적을 지워가고 있지만 갈대 사이를 걷다보니 예상 못했던 선물을 받은 듯 행복해진다. 우리네 삶도 가끔은 이렇게 길을 잃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 아서라, 말아라, 이제 모험을 할 나이는 지났거늘.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제방으로 올라가 한참 걷다가 다시 나무에서 리본을 발견한다. 집 나간 강아지라도 만난 듯 반갑다. 안도감이 드니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저만치 보이는 동네에는 구멍가게라도 있을까? 걸을 때마다 고민하는 부분이 짐을 꾸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맥주를 충분히 지고 다니면 좋겠지만, 그러다가는 짐에 눌려서 발병 나기 십상이다. 그래도 이렇게 시원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 마시는 맥주는 그 자체가 천국인데. 중간중간 나그네를 위한 가게를 두면 안될까? 물고기를 입에 가득 문 갈매기 한 쌍이 맥주나 그리워하는 중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 위를 선회한다.

 

이곳이 왕포마을

왕포마을의 동백

왕포마을을 벗어나서 과수원길을 걷는다.

제방이 끝난 곳에서 만난 마을 이름은 왕포마을. 이름 한번 거창하다. 이정표를 찾아보니 아직도 5.9km밖에 걷지 못한 것으로 돼 있다. 오늘따라 내 걸음이 왜 이리 더딘 거야. 길옆에 활짝 핀 동백이 자꾸 놀다가라고 손짓하지만 오래 눈길을 줄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는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왕포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차도를 따라가다 보니 걷는 재미가 반감된다. 권선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친 뒤 잠시 다리쉼을 하는데 이정표가 눈에 띈다. ‘모항 갯벌체험장 7.5km’ ‘곰소염전 5.3km’ 가만, 가만!! 뭔가 이상하다. 부랴부랴 프린트 해 온 안내 팸플릿을 꺼낸다. 어어? 이게 뭐야. 안내서에는 모항 갯벌체험장에서 왕포마을까지가 11km이고, 다시 왕포마을에서 곰소염전까지 12km로 돼 있다. 합하면 23km인데 눈앞에 있는 안내판 숫자는 합쳐봐야 12.8km밖에 안 된다어라? 왕포마을? 조금 전 지나온 그 마을이잖아.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인데 왜 까마득하게 몰랐지? 맞다. 이정표 때문이다. 이정표에는 분명 5km 밖에 걷지 못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니 11km를 걷기로 한 나로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1km5km로 둔갑한 사연은 뭘까? 아무튼 한참 지나치고 말았다.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더라니. 더 걸은 게 억울한 게 아니라, 엉터리 이정표가 당혹스럽다. (뒤에 확인해보니 모항 갯벌체험장 출발지에 서있는 안내도에도 곰소까지 23km로 돼 있고 바로 옆의 이정표에는 12.5km로 돼 있었다. 어느 장단에 춤을?)

 

나를 돌아서게 한 이정표. 갯벌체험장 7.5km 곰소염전 5.3km라고 적혀있다.

나물 캐러 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야지.

이제 돌아가야 한다. 갈 때는 버스를 타기로 했으니 버스 정류장까지 되짚어 걸어 올라간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다. 버스정류장에는 과일과 채소를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아저씨는 큰 비닐봉투에서 나물을 꺼내 작은 봉투에 나눠담고 있다.

여기서 모항까지 가는 버스 있을까요?”

딱 한 마디 대답하더니 얼른 트럭을 몰고 가버린다.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좋으련만. 내가 강도같이 보이나?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올 기미가 없다. 이러다가는 다음 일정이 펑크 날 것 같다.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 택시 전화번호를 꺼내 한참 망설이다가 전화를 건다. 위치를 대고 모항까지 택시비를 물으니 15천원이란다. 생각보다 싼 편이다. 블로그에서는 채석강까지 3만원 정도한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할 수 없지. 딱 오늘만 택시로 돌아가기로 한다. 대신 다음 여행지에서는 벌칙으로 걸어서 돌아가기로.

 

관선마을. 이곳에서 돌아섰다.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내 배낭만 쓸쓸하다.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버스가 안 왔던 이유를 듣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지요?”

, 그렇네요

그럴 이유가 있어요. 이 코스를 다니는 버스회사 사장이 돈을 떼어먹고 튀었거든요. 어차피 정부에서 받는 50%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게 시골버스인데, 사장이 튀어버렸으니 기사들만 골탕을 먹었지요

기사들만 골탕 먹은 건 아니다. 나처럼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도 골탕이다. 아니, 정말 난감한 건 버스에 의지해서 장이라도 봐야하는 촌부들이다. 왠지 버스정류장에 누군가를 규탄한다는 표어가 덕지덕지 붙었더라니. 택시를 타니 모항까지는 금방이다. 짧지만 길었던 일정은 끝났다.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다운대로 가슴에 남고, 해프닝은 또 해프닝대로 가슴에 남는다. 걷는다는 행위, 가장 원초적인 몸짓은 걸은 만큼의 뿌듯함으로 내 안에 기록된다.

 

 

 

[꼬리] 마실길을 걷고 난 뒤에 다음과 같이 코스가 변경됐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 뉴스대로라면 그날 걸은 곳은 6코스 쌍계제 아홉구비길이었고 역시 11km였습니다. 찾아가실 분들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안군은 종전의 변산 마실길인 새만금전시관~부안자연생태공원 664구간 7코스와 내륙 마실길 746코스를 연결해 총 길이 14013코스로 연장, 개통키로 했다.

명칭도 부안 마실길로 통일키로 결정했으며 지역특성을 고려해 노선명도 변경됐다.

부안 마실길은 1코스-조개미 패총길(새만금전시관~송포, 5km),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송포~성천, 6km), 3코스-적벽강 노을길(성천~격포해수욕장~격포항, 7km), 4코스-해넘이 솔섬길(격포항~솔섬, 5km),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솔섬~모항해수욕장, 9km), 6코스-쌍계제 아홉구비길(모항해수욕장~왕포, 11km)이다.

7코스-곰소 소금밭길(왕포~곰소염전, 12km), 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km), 9코스-반계선비길(개암사~우동마을, 14km), 10코스-계화도 간제길(계화도~석불간, 16km), 11코스-부사의 방장길(석불산~부안댐, 24km), 12코스-바지락 먹쟁이길(변산해수욕장~부안댐, 10km), 13코스-여인의 실크로드(성천~유유저수지~격포항, 10km)로 확대됐다.

이 같은 마실길을 탐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총 34시간 30분 정도로 한번에 완주하는 데는 34일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생략)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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