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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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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에 해당되는 글 2

  1. 2010.12.06 [사라져가는 것들 153] 난로10
  2. 2007.10.24 [사라져가는 것들 31] 도시락4
2010. 12. 6. 13:46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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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늘 ‘과장(誇張)’이라는 질 좋은 포장지에 싸여 저장되기 마련이란 걸 감안해도, 그 시절은 요즘보다 두 배쯤은 더 추웠던 것 같습니다.
어지간한 추위 정도는 그러려니 하는 어른이 돼서도 등굣길 위를 달음박질치던 그 작은 아이를 생각하면 괜스레 몸이 옹송그려지거든요.
제가 태어난 곳은 농촌이었지만 바다도 그리 멀지 않아, 가끔 마실가듯 갯벌에 나가 게나 조개를 주워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집에서 국민(초등)학교까지는 한 시오리길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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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겐 제법 먼 길이겠지만, 그땐 시오리라면 쉽사리 다녀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보다 두 배쯤은 먼 곳에 사는 아이들도, 농사일을 돕느라 혹은 노는데 팔려서 학교에 빠진 적은 있어도 길이 멀다고 결석하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 씩씩한 아이들에게도 겨울은 고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눈구덩이에 묻어놔도 한숨 자고 나올 만큼 따뜻하게 입히지만 그 시절은 어디 그랬나요.
좀 산다는 집 아이들이나 솜 넣은 누비옷에 무릎 나온 내복이라도 챙겨 입었지, 샅이나 겨우 가리고 겨울을 나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으니까요.
등굣길은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었지요.
바닷바람 무서운 거 아는 분은 날마다 아이들에게 닥치는 추위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갈 겁니다.
차디찬 바닷물에 밤새 몸을 얼렸던 바람이, 신작로 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후다닥 달려들어 뺨을 할퀴고 도망치고는 했습니다.
아! 피가 얼어붙는 것 같던 그 추위….
그렇게 늘 찬바람, 찬 물에 노출 된 아이들의 손은 툭툭 터서 피가 흐르기 일쑤였습니다.
그 터진 손을 덮치는 바닷바람은 저주처럼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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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학교에 도착해도 추위는 여전히 따라다녔습니다.
교실이라고 해봐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게 예사였으니 한데보다 그다지 나을 것도 없었습니다.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난로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불을 내뿜는 시대라야 그것도 만만하지요.
난로를 피우려면 먼저 당번이 창고에 가서 조개탄을 타 와야 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이 대신해 주기도 했지만, 일꾼 하나 몫을 하는 고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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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스스로 피우는 게 원칙이었지요.
곱은 손으로 바께쓰라 부르던 함석양동이를 들고 창고 앞으로 가면 하루 분량의 장작과 조개탄을 나눠 줍니다.
조개탄이란 무연탄에 목탄분말(숯가루)과 펄프폐액(廢液)을 혼합해서 조개처럼 뭉친 고체연료를 말합니다.
난로를 피울 땐 종이를 불쏘시개 삼아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장작이 타오르면 그 위에 조심스럽게 조개탄을 올립니다.
한꺼번에 많이 올리면 장작불마저 꺼지게 되기 때문에 적절한 조절이 필요합니다.
한참 뒤 조개탄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교실을 점령했던 냉기는 조금씩 물러가고 온기가 돌기 시작하지요.
다른 아이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들어설 무렵이면 교실은 제법 훈훈해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들어오자마자 난로 곁으로 달려듭니다.
꽁꽁 얼었던 손에 갑자기 열기가 닿으면 깨질 듯 아프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추위보다는 덜 무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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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가 몸만 덥혀주는 건 아니지요.
젖은 옷이나 양말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는 것 역시 난로였습니다.
얌체들은 젖은 양말을 연통의 철사에 걸기도 했습니다.
양말을 매일 갈아 신던 시절이 아닌지라(그럴 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냄새가 향기로울 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선생님께 꿀밤 한 대 맞고 걷을 수밖에요.
난로가 달아오르면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주전자에서도 물이 펄펄 끓어오릅니다.
수증기의 몸짓에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장단을 맞추면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가슴까지 훈훈해집니다.
언뜻 내다본 창밖으로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이면, 온몸이 가라앉을 듯 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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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곤 했지요.
세월이 온갖 것을 덧칠한 지금 생각해봐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난로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찰떡궁합’이 하나 있지요.
바로 ‘벤또’라 부르던 도시락입니다.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선생님이 나가시기도 전에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 들고 부리나케 난로가로 달려갑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지요.
뭐, 가장 좋은 자리는 늘 한 주먹 하는 ‘일그러진 영웅’들이 차지하기 마련이지만요.
그때쯤이면 난로가 약간 식은 뒤기 때문에 도시락을 그대로 올려놓아도 밥이 금세 타지는 않습니다.
칠이 벗겨지고 찌그러진 도시락들이 제법 열을 받아들일 무렵에는 냄새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반찬 째 올려놓은 도시락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맨 아래 도시락의 밥이 눌어붙는 구수한 냄새….
밥이 데워지기를 기다리는 순간은, 기대가 주는 행복과 기다림이 주는 고통이 반반씩 교차했습니다.
확실한 거 하나는, 훗날의 어떤 진수성찬도 그 때의 그 ‘가난한 밥’을 따라갈 수 없더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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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의 추억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군에 입대해서 정점을 찍게 되지요.
요즘은 군에서도 보일러 난방을 한다지만 그 시절에는 ‘뻬찌까(페치카)’라고 부르던 벽난로나 경유난로를 주로 썼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소위 벌통난로라고 부르던, 겉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경유난로를 사용했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기름통을 들고 보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날들은 추억보다는 고통에 가깝게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기름을 제 때 못 타거나, 밤에 난로를 꺼트려서 하늘같은 고참병들을 떨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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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가 한 겨울에 팬티바람에 운동장을 돌던 추억은 지금도 끔찍합니다.
요즘에도 난로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나 가스난로는 난방용구로서 여전히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에게서 어린 시절의 정감을 읽기란 쉽지 않습니다.
최소한 새벽시장의 드럼통 난로나 오래된 이발소를 지키고 있는 무쇠난로 쯤은 돼야 마음이 훈훈해 지지요.
그들 앞에 서면 운동장을 가로질러 씩씩하게 달려가는 추억 속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리창에 낀 하얀 성에가 온갖 그림을 그리던 아침, 곱은 손 호호 불며 난로를 피우던 아이.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에 몰래 가져온 가래떡이나 고구마를 올려놓고 침을 꿀꺽꿀꺽 삼키던 아이.
젖은 단벌 나일론양말을 말리다가 호르르 태워먹고 울먹이던 아이.
그 아이들이 저만치서 환하게 손짓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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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24. 19:30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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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에 들어가기에 그리 적절한 소재는 아니다.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맛있고 영양 많은 도시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시락은 더 이상, 한끼를 때우기 위해 먹는 대용품이 아니다. 식도락가들의 까다로운 구미를 맞추는 데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산 사람들의 추억속에는 다른 도시락이 들어있다. 이름만 같을 뿐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도시락, 시커멓게 변한 보리밥 덩어리가 부끄러웠던 도시락, 딸그락딸그락 소리를 동반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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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도시락…. 급식시대인 지금, 학교에서 도시락을 볼 수는 없지만 과거에는 '책보다 중요한' 게 도시락이었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도시락 검사라는 걸 했다.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혼식을 강요당하던 때였다. 눈치가 없는 부잣집 엄마들은 매일 쌀밥만 싸줬다. 보리밥을 싸가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내 새끼 내가 잘 먹인다는데 지들이 뭐길래….' 그래서 도시락 검사시간 전에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부잣집 아이들이 가난한집 아이들에게 보리알을 빌리러 다녔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나눠먹던 도시락. 젓가락만 가져와 십시일반을 외치며 밥을 공출해가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도시락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런 추억이 깃들어 있는 도시락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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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이불을 파고든지 오래건만 아이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린다. 가슴은 연신 콩닥콩닥 뛴다. 내일은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 가는 날이다. 소풍 갈 때 싸 가지고 간 적은 있지만, 평일 날 학교에 도시락을 갖고 가는 건 처음이다. 저녁을 먹은 뒤 어머니가 "내일부터 벤또를 싸주마" 했을 때, 아이는 뛸 듯이 기뻤다. 얼마나 기다렸던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졸랐던가. 이젠 아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도시락을 펼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는 동안, 학교 뒤뜰을 배회하거나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에 하릴없이 그림을 그렸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보통 2~3학년만 되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도시락이란 언감생심 쳐다보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도시락 하나를 쌀 식량에 시래기를 넣고 죽을 쑤면 온가족이 먹을 한끼 식사가 나오는 판이었다. 도시락 대신 감자나 고구마를 싸 가는 아이들도 꽤 있었지만 그것 역시 사시사철 무한정으로 있는 건 아니었다. 봄이면 하루에 두끼 먹기도 허덕거리는 집이 많은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는 늘 높았고 꺼진 배는 늘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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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라고 다 같은 도시락은 아니었다. 번듯한 양은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애들도 있었지만, 어떤 애들은 집에서 쓰는 놋그릇에 밥을 싸오기도 했다. 반찬이라 봐야 대개 쉬어터진 김치나 짜디짠 장아찌가 전부였다. 새우젓을 싸오는 애들도 있었다. 그래서 김치 국물이 흘러 배어든 책은 항상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특별히 흉이 될 것도, 뭐라 타박하는 사람도 없었다. 콩장이나 멸치볶음을 싸오는 애들도 있었는데 그 정도면 고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끔 밥 위에 계란부침이 얹혀져있거나 반찬으로 장조림을 가져오는 애들은, 그야말로 부잣집 자식이었다. 그런 애들은 죄라도 진 것처럼 도시락뚜껑을 다 열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밥을 먹었다. 아무튼 이제는 아이도 '도시락 먹는 아이들'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밥을 먹을 때보다 집에 갈 때가 더 부러웠다. 빈 도시락이 담긴 책보에서 나오는 딸랑딸랑 소리는 아이에게 "배고프지? 배고프지?"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제부터는 부럽지 않게 도시락 뚜껑을 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쉽사리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도시락을 싸주면 어머니가 먹을 밥 한끼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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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2 하늘이 파랗다 못해 잉크 빛으로 여물어 가고 있다. 학교운동장이 유난히 시끌벅적하다. 전교생이 모여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다. 운동회를 하루 앞두고 총연습을 하는 날이다. 6학년 형들은 모두 웃통을 벗어 부치고 기마전 연습을 하고 있다. 땀에 젖은 아이들의 몸이,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을 받아 검은 보석처럼 빛난다. 3학년은 릴레이연습이 한창이다. 시골의 운동회는 근동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종일 떠들썩하게 즐기는 잔치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2교시가 끝난 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총연습은 대부분의 절차를 운동회와 똑같이 한다. 두시간의 연습이 끝나면 바로 점심시간이다. 배가 출출한 아이들이 운동장가 플라타너스 나무 밑을 흘끔거린다. 그 곳엔 아이들의 책보가 나란히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안에 도시락이 있다. 드디어 오전 연습이 끝났다는 호루라기가 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플라타너스 밑으로 달려간다. 동작들이 잽싸다. 자신의 책보를 찾던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책보는 아무렇게나 풀러져 있고 그 안에 있어야할 도시락이 없다. 운동회 연습을 하는 동안 누군가 실례한 것이다. 담장이 없는 학교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아이의 울음보가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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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3 4교시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신경은 온통 난로로 쏠리기 시작한다. 난로에는 도시락이 탑처럼 쌓여져 있다. 3교시 쉬는 시간에 올려놓은 것들이다. 아이는 도시락을 다른 아이들 것보다 아래에 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도시락은 아래에 놓을수록 따끈해진다. 적당히 물을 뿌린 뒤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뚜껑을 열었을 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서 새로 한 밥처럼 맛있다. 가끔 부수입으로 누룽지도 얻어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난로의 면적은 뻔하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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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락은 많다보니 아래를 차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거지반 주먹쯤 쓴다는 녀석들이 아래를 차지하고, 그 다음은 그 똘마니들이 차지하기 일쑤다. 선생님에게 몇 번 혼나기도 했지만 영 고쳐지지 않는다. 어느 녀석이 반찬 통을 안 꺼내고 도시락을 올려놓았는지 반찬냄새가 교실에 가득하다. 그 냄새가 아이들의 목젖을 더욱 자극한다. 선생님도 더 이상 수업을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종도 안 쳤는데 수업을 끝낸다. 아마 선생님 도시락도 교무실 난로 위에서 따끈따끈하게 데워지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나가기도 전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제 도시락을 찾아낸다. 여기저기서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흥겹다. 몇몇 애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화장실에 가는 척,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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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4 중학교의 첫 소풍날이다. 어제 밤까지 비가 내렸는데, 아침엔 말짱하게 개어 온 세상이 날아오르기라도 할 듯 가볍고 상쾌하다. 봄꽃들이 소풍길의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2, 3학년은 좀 멀리 가기도 하지만 1학년은 보통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저수지가 목적지다. 소풍이라는 게 뭐 특별할 것도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대개 점심시간이 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오락시간을 갖고 적당히 놀다가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러니 소풍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점심시간이다. 아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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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밥 먹을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선생님의 몇 가지 주의사항이 끝나고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친한 아이들끼리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시락뚜껑을 연다. 다른 아이들이야 음료수에 과자에 과일까지 이것저것 싸온 눈치지만 아이에게는 김밥만으로도 충분한 별식이다. 김밥을 급하게 몇 개 집어먹던 아이의 한순간 멈춘다. 읍내에서 사는 아이들의 김밥이 이상하다. 자고로 김밥이란 김에 밥을 싼 것이어야 하거늘, 김밥 속에 밥뿐 아니라 온갖 것들이 들어있다. 언뜻 봐도 대충 내용물을 짐작할 수 있다. 계란부침, 소시지, 시금치, 당근…. 언제 김밥이 저렇게 변했단 말인가. 한 두 명이 아니라 대부분 그렇다. 산골에서만 살아온 아이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김밥이다. 아이가 도시락 뚜껑을 슬그머니 닫고 돌아앉는다. 숲 속에서 새 한 마리가 높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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